|
과유불급(過猶不及)
말씀 : 전 7:16~17. 지나치게 되지 말라. 2023년 8월 6일 일요일 오전 11시.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국민들의 노후보장으로 여러 가지 연금제도를 실행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공무원들로 시작하여 이제는 일반 직장인들과 소상공인들에게도 노후를 대비하여 연금을 들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직장 연금만으로는 노후 생활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보험을 통하여 일반연금보험에 가입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젊고 건강할 때는 일할 수 있고 돈을 벌수 있으나 늙고 병들면 더 이상 일하지 못함으로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내려면 젊어서 노후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런데 60세가 넘으면 일을 해도 연금 가입이 불가능합니다. 적어도 20년은 연금을 부어야 하는데 연금을 받아야 할 61세가 곧 되므로 연금을 시작하기는 너무 늦기 때문입니다.
제가 지난 달 “가장 좋은 노후대책”이란 제목으로 설교하면서 확실한 노후 대책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원자로 믿고 받아들여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며 주께서 자신을 믿는 자들을 먹이고 입히신다는 약속을 믿고 근심걱정 하지 않는 것이라 했습니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마6: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생명을 위해 너희가 무엇을 먹을까 혹은 무엇을 마실까 또 너희 몸을 위해 너희가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생명이 음식보다 소중하고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아니하냐?]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 입는 것과 먹는 것과 잠자는 집 즉 의식주(衣食住), 입니다. 이것들로 사람들의 삶의 질을 평가합니다. 우리 주위에도 가난한 사람들과 부자들의 차이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입을 것과 먹을 것과 살아갈 집을 걱정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마6:26, [공중의 날짐승들을 보라. 그것들은 씨 뿌리지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모아서 곳간에 넣지도 아니하지만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시나니 너희는 그것들보다 훨씬 더 낫지 아니하냐?] 하셨습니다. 그렇다고 사람이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사람은 창조된 때로부터 일했습니다. 에덴동산이 낙원이라고 일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잘못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맡기신 일이 무엇입니까? 성경기록을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1,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을 지배하는 일입니다.(창1:26)
2, 다산하고 번성하여 땅을 기득 채우고 정복하는 일입니다.(창1:28)
3, 에덴동산을 가꾸고 지키는 일입니다.(창2:15)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은 지나친 욕심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넘어가면 주께서 주신 복을 누리지 못하고 아담처럼 낙원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됩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있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가지려고 욕심을 내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마저도 모두 다 잃게 됩니다.
가난한자와 부자는 옛적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있을 것입니다. 각자가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일해야 합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하셨습니다. 살후3: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도 너희에게 이같이 명령하여 누구든지 일하려 하지 아니하거든 먹지도 말라고 하였노라.] 하셨습니다.
우리를 구원 하러 오신 주께서도 일하시고 창조주 하나님께서도 지금까지 일하십니다. 요5:17,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시되,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이처럼 누구나 일해야 합니다. 주님은 일하지 않고 게으르며 말 많은 수다쟁이들을 몹시도 싫어하십니다.
딤전5:13-14, [또한 그들은 게으르게 지내는 것을 배워 집에서 집으로 돌아다니며 게으를 뿐만 아니라 또한 수다쟁이와 참견하기 좋아하는 자가 되어 자기들이 말해서는 안 될 것들을 말하나니 14) 그러므로 나는 젊은 여자들이 결혼해서 아이들을 낳고 가정을 꾸리며 비방할 기회를 대적에게 전혀 주지 않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심지어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 가서 배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잠6:6-11, [너 게으른 자야, 개미에게 가서 개미의 길들을 깊이 살펴보고 지혜로운 자가 되라. 7) 개미는 인도자도 없고 감독도 없고 치리자도 없지만 8) 여름에 자기의 먹을 것을 에비하며 수확 때에 자기 양식을 모으느니라. 9) 오 게으른 자야, 네가 어느 때까지 자려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에서 일어나려느냐? 10)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자자, 하고 말하면 11) 네 빈궁이 여행자같이, 네 궁핍이 무장한 자같이 오리라.] 하였습니다.
개미는 인도자도 감독자도 치리자도 없지만 스스로 알아서 열심히 일합니다. 일할 수 없는 겨울이 오기 전에 수확 때에 열심히 모아 저장합니다. 이처럼 여러분들도 시키는 자가 없어도 젊을 때 스스로 알아서 일해야 하며 인생의 겨울이 오기 전, 즉 늙고 병들기 전에 열심히 일하여 절약하고 저축해야합니다.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해야합니다. 젊은이들은 스스로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께서 잘 입히시고 잘 먹이시고 좋은 집에 살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는다면서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하늘만 쳐다보며 주께서 입히시고 먹이시고 잠자리를 주신다고 믿는다면 성경의 어느 한 구절만 믿고 다른 말씀은 믿지 않는 꼴이 됩니다.
저도 열심히 일하며 살았고 지금도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노후대책 연금을 준비하지 못했으므로 나이가 들수록 앞날을 걱정하게 됨으로 잠언의 아굴의 기도를 좋아하고 주께서 그렇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난번에도 읽었지만 잠언 30:7-9절을 다시 한 번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잠 30:7-9)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요청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그것들을 내게 주시기를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8)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옮기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마시며 내게 알맞은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9) 내가 배불러서 주를 부인하고 말하기를, {주}가 누구냐? 할까 염려하오며 또는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헛되이 취할까 염려하나이다.] 아굴은 적당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나친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분수를 안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욕심은 끝이 없고 채울 길이 없습니다. 누구나 부요하고 잘사는 것을 추구합니다. 누구나 궁핍한 것보다는 넉넉한 것을 좋아합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가난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며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법니다. 그런데 오래도록 가난하게 살아온 사람은 어느 정도 돈을 벌어도 자신이 부자가 된 줄도 모르고 더욱 더 많이 가지기를 원합니다.
이는 비록 재물만이 아닙니다. 지혜와 지식과 명예와 권세도 동일합니다. 배움은 매우 좋은 것이지만 끝이 없습니다. 공부에 열정이 있고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초중고의 의무교육을 거쳐 대학과 대학원을 가고 석사 박사가 되어도 만족하지 못하고 외국에 유학까지 갑니다. 지식을 쌓고 명예를 얻어 최고의 자리에 올라야겠다는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불행해집니다. 정도를 넘는 지나친 지혜와 지나친 지식은 행복이 아니라 근심과 슬픔을 더해줍니다.
지혜가 부족하면 하나님께 구하면 됩니다(약1:5). 하나님께서는 지혜를 구하는 자들을 꾸짖지 아니하시고 너그러이 주십니다. 그러나 지혜도 너무 많으면 근심도 많습니다. 전도자는 자기의 경험을 말합니다. 전1:18, [지혜가 많으면 근심도 많나니 지식을 늘리는 자는 슬픔을 늘리느니라.] 했습니다. 이는 정도에 지나친 것을 말합니다. 공부가 지나치면 행복하지 않고 오히려 슬프고 피곤합니다. 경험자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참고하면 큰 유익이 있습니다.
정치를 하고 권력을 맛본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동네의 구 의원을 한 사람은 시 의원을 하려하고 더 나아가 도의원을 거치면 국회의원을 하려고합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한 나라의 대통령을 해 보려고 모든 정력과 물질을 쏟아 붙습니다. 그러다 망한 사람들 많습니다. 이는 종교계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육신의 본성이 그러합니다.
저는 평생 미 자립 목회를 했습니다. 이는 한마디로 능력이 없다는 말입니다. 교회를 세웠으면 다른 교회의 지원이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생하는 것을 자립교회라 말합니다. 자립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람들 앞에서나 교회들 앞에서나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으로도 능으로도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변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오늘 없는 자의 변명이라기보다는 정도보다 지나친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려고 합니다. 사자성어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습니다. 지나친 것은 오히려 부족함만 못하다. 라는 뜻입니다.
過 지날 과; 지나다, 초월하다, 낫다, 빠져나가다, 여유가 있다, 심하다, 동떨어지다, 실수하다,
猶 오히려 유; 오히려, 마치 -와 같다, 조차, 지금도 역시, 그 위에 더,
不 아닐 불; 아니다, 말라(금지의 뜻), 새 이름
及 미칠 급; 미치다, 이르다, 미치게 하다, 끼치다,
그러므로 저는 적당히 가난한 것도 하나님이 주신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욕심에 사로잡혀있습니다. 욕심이 사람의 근본 뿌리, 즉 인간의 본성이라고 여겨집니다. 에덴동산을 가꾸고 지키라고 명령 받은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나는 것 외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것을 마음대로 먹어도 되는 환경에서 부족함이나 불만 없이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마귀의 속삭임을 듣고 신들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심에 이끌려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는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모양과 아담의 형상(창5:3)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각자가 자기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지구상엔 230여개 정도의 나라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 대한민국은 10위권의 경제력을 자랑할 만한 부유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북한은 몰라도 남한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추구하며 피 터지는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좋은 의미로는 살아있는 생명력의 증거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거듭난 성도들은 새사람이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합니다. 주님은 사도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딤전6:8~10,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우리가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니라. 그러나 부유하게 되려는 자들은 사람들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이는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이기 때문이라. 어떤 자들이 돈을 탐내다가 믿음에서 떠나 잘못을 범하고 많은 고통으로 자기를 찔러 꿰뚫었도다.] 했습니다. 아마도 돈을 싫어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돈을 좋아합니다. 저도 좋아합니다. 그러나 돈을 지나치게 탐내거나 사랑할 만큼 돈에 얽매이면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됩니다.
성경인물 가운데 부귀영화를 누린 대표적인 인물은 단연코 솔로몬을 능가하는 인물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지혜로 전쟁을 해 보지 않고도 세계를 지배한 인물로 유명합니다. 당시 세상에서 가장 지혜롭고 가장 부유하고 가장 강한 권력을 가진 자로서 인근 나라들로부터 조공을 받으며 세상을 두려움으로 떨게 한 인물입니다. 그것이 지나치다보니까 자신에게 지혜를 주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교만한 자가 되고 결국은 하나님께 버림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곧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過猶不及)입니다.
솔로몬은 왕이 되었을 때 처음엔 어떠했습니까? 아주 겸손했습니다.
왕상3:5~13, [기브온에서 밤에 주께서 꿈으로 솔로몬에게 나타나시고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주어야 할지 구하라. 하시므로 6)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진리와 의와 올바른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걸은 대로 주께서 그에게 큰 긍휼을 베푸셨고 또 주께서 그를 위해 이 큰 친절을 간직하사 이날 드러난 것과 같이 그의 왕좌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7) 이제, 오 주 내 하나님이여, 주께서 주의 종을 내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으나 나는 단지 작은 아이라 나가거나 들어 올 줄을 알지 못하오며 8) 주의 종이 주께서 택하신 주의 백성 한 가운데 있나이다. 그들은 큰 백성이므로 너무 많아 셀 수도 없고 계산할 수도 없사오니 9) 그러므로 주의 백성을 재판하도록 주의 종에게 명철한 마음을 주사 내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이같이 큰 주의 이 백성을 누가 재판할 수 있나이까? 하니라.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주께서 그 말을 기쁘게 여기셨으므로 11)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였으며 너를 위해 장수하는 것도 구하지 아니하고 너를 위해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네 원수들의 생명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너를 위해 판단의 공의를 분별하기 위한 명철을 구하였으니 12) 보라, 내가 네 말대로 행하였느니라. 보라, 내가 네게 지혜롭고 명철한 마음을 주었으므로 너 이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고 너 이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13)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것 즉 부와 명예도 내가 네게 주었으므로 네 평생토록 왕들 가운데서 너와 같은 자가 없으리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겸손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던 솔로몬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니 그의 마음이 높아져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가 하나님을 떠나 죄를 짓기 시작하여 이방여인들을 사랑하고 그녀들을 아내로 받아들여 하나님의 명령들을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들의 왕을 사람으로 세울 줄 아시고 그들을 다스릴 왕이 지켜야 할 법을 주셨습니다.
신17:17, [또 그는 자기 마음이 돌아서지 않도록 자기를 위해 아내를 많이 두지 말며 자기를 위해 은금을 심히 많이 늘리지도 말지니라.] 그런데 솔로몬은 부귀영화를 누리게 됨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수많은 이방 여인들을 아내로 맞았으며 그녀들의 신들을 따르는 죄들을 짓게 되었습니다.
왕상11:3-5, [그에게 아내들 곧 왕비 칠백 명과 첩 삼백 명이 있었는데 그의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돌렸더라. 4)솔로몬이 늙었을 때에 그의 아내들이 그의 마음을 돌려 다른 신들을 따르게 하였으므로 그의 마음이 그의 아버지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주 그의 하나님을 향해 완전하지 아니하였으니 5) 이는 솔로몬이 시돈 사람들의 여신 아스도렛을 따르고 암몬족속의 가증한 신 밀곰을 따랐기 때문이라.] 솔로몬은 지나친 지혜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지식과 과도한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며 교만하고 타락하여 죄를 짓고 결국 주께 버림받았습니다.
잠언에 나오는 아굴의 기도와 같이 너무 가난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부요해서도 안 됩니다. 아굴은 기도하기를, 잠30:9, [내가 배불러서 주를 부인하고 말하기를, 주가 누구냐? 할까 염려하오며............] 솔로몬은 배가 불러 결국은 주가 누구냐? 하며 자기에게 지혜와 부와 영화를 주신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여인들과 결혼하고 그녀들이 가지고 온 다른 신들을 섬겼으므로 결국은 주님께 버림받게 되었습니다.
전에 독재정치를 하던 대통령들의 최후가 어떠했습니까? 욕심의 끝은 비참합니다. 저는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유명한 목사님들의 비참한 말로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타락한 목사님들도 처음엔 가난과 겸손과 눈물과 기도로 교회를 일으키고 오직 주님을 의지하고 수고와 고생을 하다가 교회가 부흥하고 성도들이 많아지고 명예도 얻고 물질도 풍부해 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만해지고 부정축재와 음란의 스캔들로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는 것을 너무 많이 보아왔습니다. 부와 명예와 권력이 분수에 넘치게 되면 자신은 그동안 고생했으니 당연히 그런 것들을 누려도 된다는 교만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적당히 부족하고 적당히 가난한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 달 그러니까 7월 17일 대구말씀침례교회 목사 임직 식에 다녀왔습니다. 금년 62세 되신 형제님이 감독의 직무를 사모하여 목사 안수를 받는 자리에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목사 안수 받을 때가 41살로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여 안수받기를 두려워했는데 그 형제는 주께서 자신을 신실하게 여기시고 사역을 맡기심에 감사하는 모습을 보고 깨달은 바가 많았습니다. 믿음이란 그런 것입니다. 주님의 일은 주께서 주신 지혜와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 됩니다.
그 형제가 믿는 바는 딤전1:12, [나를 능력 있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를 드리나니 이는 그분께서 나를 신실한 자로 여기사 내게 사역을 맡기셨기 때문이라.] 하신 말씀을 믿고 사역의 길로 나가는 것입니다.
목사 안수식 순서는 대략 사회자의 진행에 따라 찬송을 한 다음 대표기도가 있은 뒤에 안수 위원 소개와 본 교회 성도들의 특별찬양이 있고 설교가 있은 뒤에 안수위원들이 안수 받는 형제에게 두 손들을 얹고 기도로 안수하고 안수증 수여와 성도들의 환영의 꽃다발 선물이 있었고 안수 받은 자의 간증 및 소감이 있었으며 격려사와 축사가 있은 뒤에 찬송과 기도로 모든 예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 행사의 한 순서를 맡은 한 형제가 그 행사의 순서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여 안수 받은 형제와 그 교회 성도들에게 많은 충격을 주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그 형제의 이름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독립침례교회는 총회나 노회 같은 제도화된 조직도 없고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는 그야말로 독립된 교회로서 그 교회의 성도들과 그들이 목자로 세운 목양자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교회를 세워가는 것인데 안수식의 한 순서를 맡은 그 형제가 그 교회의 재정을 간섭하는 말을 하고 안수 받은 목양자에게 자신의 교회와 같은 이름을 쓰는 한 자신과 같은 믿음, 자신과 같은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지나친 간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역자들은 주께서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능력과 특별한 사명이 있을 터이므로 성경교사나 선배라고 해서 그 사역자의 목회관을 간섭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안수 받는 형제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좋지 않은 부분이 있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그를 부르시고 택하셨다면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그 순서를 맡은 그 형제를 좋은 성경교사로서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그는 성경에 대한 지식도 풍부하고 설교도 잘합니다. 그의 인터넷설교는 여러 나라에 퍼져있는 동포 성도들에게 인기가 대단합니다. 우리나라 안에서 그의 인터넷 설교를 듣고 성경을 공부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형제를 초청하여 성경사경회도 자주했습니다. 금년에도 그 형제를 좋아하는 인터넷 성도들의 중심으로 약 120명이 모여 사경회를 마친 뒤에 대구말씀침례교회의 안수례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인데 안수 받은 형제가 그 형제에게 성경을 배우고 그 형제의 권유로 목자가 없이 인터넷 설교를 듣던 한 무리의 목자로 추천하여 사역의 길을 가게 되었고 그 형제의 권유로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배우고 목회의 길을 인도받던 그가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되면서부터 처음 모습과는 너무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여 성경교사와 추천자로서 크나큰 실망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기가 가르치고 권고하고 추천한 사람이 성경을 배울 때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크게 실망하여 그 자리에서 격한 반응을 보였던 것입니다.
그렇더라도 그가 그 형제의 목회관 까지 간섭하는 건 지나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를 사역자로 부르신 분은 주님이시므로 주께서 그 형제에게 주신 특별한 사명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안수 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종이지 성경교사의 종은 아닙니다.
또한 성경교사로서, 목자로 추천한 사람으로서 모든 것을 책임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을 가르치고 권면하고 추천한데까지로 만족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는 일 외에 더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낳은 자식도 내 기대와 내 맘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 자리엔 그 교회의 생성과정을 전혀 모르는 저와 친교회 목회자들이 많이 참석하였는데 모두들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영문을 몰라 많이 놀랐습니다. 자신은 마땅히 할 말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 교회 생성과정과 그의 생각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교회의 시작과 성장과정을 잘 모르는 저는 그 형제의 마음의 생각을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저는 그 형제에게 이 구절을 묵상해보라 말하고 싶었습니다. (고전 10:23)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적법하나 모든 것이 적절하지는 아니하며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적법하나 모든 것이 세워 주지는 아니하나니] 그 형제의 생각이 옳았을 지라도 때와 장소에는 맞지 않았다고 봅니다.
저는 오늘 모든 일에서 지나치게 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서 있는 줄로 생각하면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하셨습니다.(고전10:12) 주님은 고전10:24, [아무도 자기 것을 구하지 말고 각각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 하셨고 빌2:3-4, [아무 일도 다툼이나 허영심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생각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며 4) 각 사람이 자기 일들만 돌아보지 말고 각 사람이 남의 일들도 돌아보라.]하셨습니다.
지나침이 무엇인지, 과도함이 무엇인지, 즉 “과유불급(過猶不及)”의 뜻이 무엇인지를 주님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중에 잠시 겨자씨 비유를 살펴보겠습니다.
겨자는 채소로 먹는 식물입니다. 그 겨자씨는 모든 씨들보다 아주 작습니다. 그 작은 씨가 땅에 심겨지면 싹이 나고 자라서 사람들에게 채소로 먹을 음식이 됩니다. 그런데 정도를 지나쳐서 너무 자라게 되면 나무가 되고 더 이상 채소로 먹을 수 없고 그 나무 가지들엔 공중의 새들이 깃들이게 됩니다.
마13:31-32, [그분께서 다른 비유를 들어 그들에게 이르시되, 하늘의 왕국은 마치 어떤 사람이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린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라. 32) 그것은 참으로 모든 씨들 중의 가장 작은 것이지만 자란 뒤에는 채소들 가운데 가장 커서 나무가 되므로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것의 가지들에 깃들이느니라. 하시니라.]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공중의 날짐승들은 사악한 자(마13:19), 마귀(눅8:12), 사탄(막4:15)으로 설명합니다. 채소가 지나치게 자라서 나무가 되면 먹을 수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해를 입힙니다. 채소가 자라 나무가 되면 그 가지들에 사악한 자와 마귀와 사탄이 깃들입니다. 이는 기독교를 사칭한 캐톨릭과 같습니다.
“지나치다.” 란 무슨 뜻입니까?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지나갔다는 말입니다. 정도를 넘어섰다는 말입니다. 멈춰야 할 곳에서 멈추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적당히 해야 할 것을 넘어섰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제일가는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은 타락한 뒤 자신을 뒤돌아보면서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고백하며 기록한 전도서 말씀을 보겠습니다.
(전 7:16~17) 『지나치게 의롭게 되지도 말고 스스로 지나치게 지혜롭게 되지도 말라. 네가 어찌하여 너 자신을 파멸시키려 하느냐? 17) 너는 지나치게 사악하게 되지도 말고 어리석게 되지도 말라. 네가 어찌하여 네 때가 오기도 전에 죽으려 하느냐?』 모자라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게 적당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양념을 적당하게 한 것입니다.
지나치게 의로워도 안 됩니다. 지나치게 지혜로워도 안 됩니다. 지나치게 지식이 많아도 안 됩니다. 지나치게 사악해서도 안 됩니다. 지나치게 어리석어도 안 됩니다. 모든 것이 지나치면 자신을 빨리 죽이게 됩니다. 지나친 것은 죽음을 재촉하는 것입니다. 적당해야 합니다. 그러니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목사 안수식에서 한 순서를 맡았던 그 형제는 그 축복된 행사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불편을 주었고 안수 받은 형제와 그 교회 지체들에게는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지극히 성경적인 합당한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은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바로잡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가 안수 받는 형제에게 권면이나 지적할 말이 있었다면 행사 전에 미리 말하든지, 개인적으로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성령의 열매 중에 온유와 절제도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면 자신도 멸망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실족하게 합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온유하지 못하면 상처를 줍니다. 부디 여러분들은 지나치지 않는, 절제할 줄 아는 지혜로 온유한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과유불급은 해악이며 지나치면 돌이키기 어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