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줄 맨 왼쪽 유정민, 가운데 기둥 오른쪽 김건, 건이 앞 모자 쓴 장연광 그 오른쪽 검은 모자 쓴 형이 이봉모 (35회 등산반장, 나의 형 친한 친구) 바지 앞에 카라비너(Karabiner 등산용 강철 고리)가 달려있다. 암벽 등반 시 벽에 박힌 쇠못에 등산용 줄을 거는 타원형 고리로 국내산이 없고 모두 수입품이라 엄청 비쌌다. 카라비너는 등산가라는 표시이며 이런 비싼 장비를 가지고 있다는 광고 용품이기도 했다.
1960년 2학년 여름방학, 작년에 이어 35회 졸업생 따라 설악산 여행에 참가했다. 2학년은 나와 김건이고 1학년은 장연광이 같이 따라갔다.
1960년에 설악산 등반은 외국으로 나가는 것만큼은 아니겠지만, 참으로 어려운 등반이었다. 모두 다 어려운 살림에서 많은 사람이 힘들어서 가지 않는 미개척 설악산을 경복고등학교 졸업생들이 간다고 연락이 와서 재학생 3명이 따라갔다. 그 당시 등산화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이다. 나와 건이 연광이는 군화를 신었다. 졸업생 형들도 마찬가지이었다. 군화는 대부분 크다. 원래 미군 전용이라 발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제일 작은 것도 크면 속에 솜이나 양말 쪼가리 등을 발가락 앞쪽에 넣고 신었다. 졸업생 형 중에는 신고 다녔던 군화를 신었는데 그만 한 쪽 밑창이 떨어져 끈으로 묶고 다녔던 생각이 난다. 그만큼 산도 험했고 준비도 엉성했다는 이야기이다.
여기 올린 사진들은 등산후 동해안 강릉으로 내려와서 찍었다. 피곤했지만 등반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험한 산을 정복했다는 성취감이 마음속 가득했다.
경포대 사찰 입구, 재학생 셋이 찍는다고 앉았는데 졸업생이 뒤에 앉아 찍었네.
왼쪽 유정민 장연광 김건
뒤는 35회 이봉모 형
해안가에 있는 정자 의상대 앞에서
인물 가운데의 가운데 유정민
앞 왼쪽으로 김건
그 앞에 장연광 맨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해안가에 바짝 붙어있는 암자 암자 안으로 들어가서 마룻바닥 한쪽을 들면 바로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가면서 철썩하는 소리가 보인다. 뒤 서있는 사람 앞에 김건 아래아래 유정민 아래 체크무늬 장연광
첫댓글 1961년도에 설악산 등반을 갔다니 정말 대단합니다. 저의경우 1978년도에 첫 설악산 마등령-백담사 코스를 다녀왔는데 시외버스 타고 속초까지 가는것도 도중에 검문도 여러번 받아가며 힘들었죠. 등산화는 당연히 군화면 감지덕지 였는데 나중에 겁도없이
토왕성폭포 간다고 올라가다가 뒷창이 떨어져서 끈으로 묶고 등반을 포기하고 되돌아 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본문에 1961년이 아니고 1960년이 맞습니다. 제가 잘못 알고 썼습니다. 죄송합니다.
도하 박승대 형이 지적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1961년은 고3때입니다.
2학년때는 4.19가 있었던 1960년이구요.
우와!!! 나의 실수입니다. 맞아요!!!
1961년이 아니고 1960년이 맞습니다. 죄송합니다.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