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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그리스도
많은 제자들을 거느린 예수는
AD 30년의 파스카 축제날 무렵에 십자가형을 선고 받고 예루살렘에서 숨을 거두었지만,
이후 제자들이 부활한 예수의 발현을 체험하였으며, 세상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선포하였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2. 위상
기독교를 비롯하여 전 세계 인류 역사와 사상과 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평가된다.
지역적, 문명적으로 그 정도에 차이는 크긴 하지만,
그걸 감안함에도 모든 현대의 문화권에서 예수가 미친 영향은 매우 거대하다.
특히 서구 문명권에서는 그 근간을 이룬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
단순히 종교적 관점으로 보면,
탄생 이후 2000년이 넘은 지금 전 세계 인구의 약 3분의 1인 25억 명 정도가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이다(2015년 기준).
또한 종교적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당대 강대국이었던
로마 제국이 4세기부터 기독교를 국교로 지정한 이래로
유럽은 기독교 국가로서 정체를 가졌기 때문에 문화, 언어, 미술, 음악, 문학
심지어는 이념, 사상, 정치 등에도 예수와 성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간단한 예시로 유럽계 혹은 기독교계 국가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름 대부분이 성경 기반이라는 점을 상기해보자.
그리고 그 유럽의 기독교 문명은 제국주의 시대 이래 말 그대로 지구 곳곳을 정복하여
전 세계 문명을 서양화시킴으로써 그 영향력을 퍼트렸다.
한국에도 직간접적으로 그 영향을 받았는데 와 닿지 않는다면 지금 날짜부터 확인해보자.
이슬람교도 일반적으로는 기독교와 철천지 원수로 생각되기 쉬우나 역시 상당한 영향을 끼쳤고,
무슬림들도 삼위일체는 인정하지 않으나 예수를 예언자로 여기고 있다.
이슬람교에서 예수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서는 예수(이슬람) 문서 참조.
사회-문화적 관점에서는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가 세계에 폭발적으로 퍼지게 된 원인이다.
비록 역사적 예수는 대체로 유다인을 대상으로 활동하였지만,
비유다인들에게 파격적으로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의 죽음 이후 교회는 예수의 가르침을 적극적으로 이방인들에게 전파하였다.
성경에서 묘사되는 바에 따르면 동정녀 마리아를 어머니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목수 나자렛의 요셉을 양부로 둔 인물.
한편 예수를 순수한 신화적 인물로 보고 실존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주장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예수가 실존했다는 것이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다만 예수의 실존 여부와 별도로
예수의 실제 행적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현대 관점에서는 유대교와 기독교가 구분되며 기독교의 창시자는 예수로 간주되지만,
예수 본인은 구약성경이 고백하는 신앙과는 완전히 구분되는 종교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초기 제자들과 복음사가들은 예수의 행적을 '율법을 완전케 하려 했다'고 해석했다.
(마태복음 5장 17절) 때문에 초기 신자들은 자신의 무리들을 혈통적 의미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믿음으로 뭉친 '참 이스라엘'로 보았다.
즉, 초기 기독교 및 현대까지 이어진 오늘날 기독교의 해석에 의해서는,
예수의 가르침(기독교)은 서기 1세기의 신생 종교가 아니라 원래부터 있어왔던 '참 유대교'에 해당한다.
심지어 예수는 창조주의 위격으로서 유대교를 창시한 자로 해석된다.
당연하지만 이거 때문에 유대인들과 갈등을 벌인 것.
3. 이름
그의 이름은 본래 예슈아(יֵשׁוּעַ) 또는 예호슈아(יְהוֹשֻׁעַ)라는 흔한 유대인 이름이었다.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 말고는 딱히 다른 사람 언급할 필요가 없어서 언급이 적을 뿐,
신약 성경을 자세히 보면 동명이인도 있을 정도다.
이것은 구약의 지도자(혹 지휘자) 중의 한 명인 여호수아가 어원이다.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구원해 주신다'.
신약 성경이 그리스어로 쓰였기 때문에 이에수스(Ἰησοῦς)라는 그리스 느낌의 이름으로 변형되었다.
그리스 문자에는 숫자가 할당되어 있는데,
Ἰησοῦς는 각각 10, 8, 200, 70, 400, 200을 상징해, 합치면 888이 된다.
한국어 이름인 예수는
대항해시대 선교 활동을 펼친 가톨릭 제사장들이 사용한 라틴어 성경의 Iesus에서 유래한 것이다.
Iesus가 라틴어 명사의 6개 격변화 중 4개에서
Iesu로 변해 이 형태를 한자로 옮기며 예수로 옮겨졌을 것으로 보인다.
여러 유럽 언어에서 Jesus로 적는 것은 본래 라틴어 발음상 I와 J가 차이가 적어 섞여 쓰이다
J 형태로 다른 유럽어에 전파되어 이후 각 언어식으로 발음
(영어는 지저스, 독일어는 예주스, 스페인어는 헤수스 등)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스도'(Χριστός)는 메시아(מָשִׁיחַ, mashíakh)라는 히브리어의 그리스어 번역이며,
그 뜻은 '기름 부음을 받은 자(the anointed)'.
고대 이스라엘의 전승에서 기름 부음의 의식은 크게 3가지 경우로,
특정인을 지명하는 경우에 해당이 된다.
왕, 대제사장 -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의 제사 의식의 주관자, 그리고 선지자 - 혹은 선견자, 예언자 - 이다.
신약성경 전체를 관통하여 예수는 이 3가지의 소임 각각에 대한 정체성을 동시에 띄고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즉, 예수는 신약성경 내에서 이스라엘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왕, 대제사장, 예언자라는
이스라엘 민족 내부의 매우 중요한 소임을 통합적이고 최종적으로 부여받은 유일한 존재로 통용된다.
예를 들어 왕의 소임을 보면, 이는 그 머리 위에 기름을 붓는 대관식에서 비롯된 것인데,
기름 부음을 받는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 전통은 사울에게서 시작하여 다윗 때 확립된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메시아는 다윗처럼 이민족을 물리치고
팔레스타인에 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는 지도자를 의미했다.
나자렛 출신이라는 의미로 나자렛 또는 나사렛 예수라고도 불린다.
공동번역성서와 가톨릭 번역에서는 '나자렛'을, 대부분의 개신교 계열 번역에서는 '나사렛'을 사용한다.
예수가 살던 시절 라틴어로는 예수스 나자레누스(Iesus Nazarenus).
이에 대해 유대인에 풍습에 의거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는데,
유대인이 성(姓)을 구별하는 방법이 2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누구의 아들 누구 의 방식인데,
한 예로 예수의 12제자(혹 사도)중에 야고보라 칭하는(이름하는) 자가 둘이 있는데
이들은 각각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있다.
둘째로, 지명을 이용한 성인데 예수와 관련된 시몬으로써
첫째는 예수의 수제자이며 베드로(혹 게바/케바)라고도 불리는 갈릴래아(게넷사렛) 베드로가 있고,
예수가 십자가를 드는 것을 도와 준 퀴레네 시몬이 있다.
다만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예수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으며
마리아와 나자렛의 성 요셉이 예수를 낳은 후
헤로데 대왕의 마수를 피해 베들레헴을 떠나 이집트로 피신해 있다가
그가 죽은 뒤 돌아와 정착한 곳이 나자렛이라고 되어 있다.
이 이야기의 진위에 대해서는 후술되는 탄생 문단 참고.
그 밖에 '임마누엘'(עִמָּנוּאֵל)이라고도 지칭되었다.
뜻은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다'.
마태의 복음에서 예수가 처녀에게서 탄생한다는 것을 예언하는 말을
구약 이사야 7장 14절에서 인용하고 있다.
이사야의 예언은 당대 유다 왕국 왕인 아하즈(기원전 736~716 재위)에게 메시아 강림을 전한 것이다.
성경 해석 과정의 예언 성취에는 부분 성취와 반복 성취가 있는데,
이는 아하즈 왕 시대에 실제로 임마누엘이라는 아이가 태어나 예표가 되었고,
예수의 탄생으로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십자가형을 받아 죽을 때의 예수의 죄명은
바로 로마 제국에 반역하는 민족 지도자라는 의미인 '유대인의 왕'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 제국 총독의 직접적인 통치하에 있었고,
사형을 내릴 수 있는 기관도 총독부여서, 사형 제도가 제한되어 있었다.
따라서 사형에 처해질 만큼의 죄는 무자비한 살인이나, 쿠데타 정도가 되지 않고서는 사형을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예수는 당연히 살인한 적이 없기 때문에 예수를 쿠데타를 한 정치범으로 몰아서 처형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명패를 십자가 머리에 붙이고 형을 받았다.
때문에 가톨릭과 정교회에서 성물로 여기는 예수의 십자고상 등에는
'IESVS NAZARENVS REX IVDÆORVM(나자렛 사람 예수, 유다인의 왕)'의 머릿글자인 'INRI'를 흔히 볼 수있다.
4. 각 종교에서 보는 예수
기독교에 의하면 온 인류의 구세주(메시아)이자
성부(聖父), 성령(聖靈)과 다른 위격(페르소나)이되
본질(essence) 및 본성(nature)은 같은 자로, 그의 실체(substance)는 신이다.
기독교의 입장에선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만들어진 책의 진(眞) 주인공이며
책의 전반부 자체가 이 사람의 등장에 대한 복선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100% 거짓 없는 신이면서
또한 100% 거짓 없는 인간이며, 창조되지 않은 자,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한 자이다.
그는 창조주임에도 피조물들을 위하여 스스로 제물이 되어 죽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핵심 교리인 삼위일체론. 물론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초기 기독교 종파도 있었지만 일찍이 사라졌다.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기독교 종파들은,
서방의 가톨릭이든, 동방의 정교회이든, 이집트의 콥트 교회이든, 에티오피아 정교회이든,
네스토리우스파의 후예인 아시리아 동방교회이든 간에 구체적인 해석은 갈릴지언정,
삼위일체의 기본 개념, 즉 세 페르소나가 한 실체를 이룬다는 교리는 공유한다.
또한 이 기본 개념에 대한 정의도 콘스탄티누스 1세때 나온 것이라 늦은 감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엄밀한 정의가 늦게 나왔다는 뜻이지, 삼위일체 개념 자체가 갑툭튀한 것은 아니다.
복음서에는 예수가 성부와 동질성을 가진다고 해석될 구절이 많았고, 반대로 구분을 암시하는 듯한 구절도 많았다.
여기서 양극단을 우선 쳐내고, 그리스 철학을 통해
복음서의 고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려고 한 결과물이 지금의 삼위일체 정의이다.
이슬람에서는, 24번째(마지막 예언자 이전 최후)의 신성을 가지지 않은,
신도 신의 아들도 아닌 인간인 위대한 예언자로 묘사된다.
쿠란에 따르면 예수는 다만 특별히 죄가 없는 인간이며, '하늘로 승천하였다'라고 하지만
이슬람교에선 이를 신이 영광스럽게 했다고 해석한다.
이슬람에서 예수는 무함마드와 같은 급의 위대한 예언자로 존경 받지만
결정적으로 기독교와 다른 점은 예수의 신성을 부정한다는 점.
이슬람에 의하면 신에게는 부모도 아들도 없고 딸도 없다.
그리고 유대교에서는 거짓된 예언자로 간주한다.
타나크(히브리 성서) 신명기에 '거짓 예언자'에 대한 묘사가 있다.
세속적 의미에서 세상을 평정하고 유대인들을 구원할
구세주로서 메시아를 기대하는 유대인들 사이에선 이단 중의 이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다만 과거의 경우 유대인들에게서의 예수는 그저 사기꾼 정도로 여겨졌으나,
현대에는 사정이 조금 나아져서 개혁에 실패한 젊은 사상가 혹은 랍비로 보는 경향이 생겼고,
심지어 예수를 본받는 랍비 및 메시아주의 유대교 분파도 있다.
실제로 예수를 유대교에 도전한 혁명가로 볼 수 있지만,
살인, 간음, 이혼, 맹세, '귀에는 귀, 눈에는 눈'을 가리키는 유대교의 모세율법에 대해서
예수가 새로운 해석과 명령을 제시하므로
타나크(히브리 성서)의 율법을 철폐하지 않으면서도(율법의 연속성) 율법을 완성한다고 본다.
하지만 여전히 이스라엘 현지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차별이 매우 심하고,
예수에 대해 그나마 긍정적인 해석을 하는 유대인들도 예수를 메시아로는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단, 메시아주의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교리 하나 때문에 메시아주의 유대인들은 스스로 유대인을 자처함에도 불구하고
유대교에서나 기독교에서나 둘 다 기독교에 더 가까운 존재들로 생각하고 있다.
바하이 신앙에서는 예수를 인정하나, 하나님의 아들로는 인정하지 않고 예언자이자 현시자로 정의한다.
이는 이슬람의 관점과 동일하다.
그가 신약을 전한 것도 인정하며, 십자가에서 죽은 것과 부활, 그가 행한 기적들도 인정한다.
다신교인 힌두교에서 예수는 에아사(Easa) 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칼리 유가가 3000살이 되던 해 후나에서 태어났으며,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예수를 신의 아들로 인정하며, 유대 민족의 메시아로 인정하고 있다.
힌두교 내에서 예수에 대한 관점은 다양하며,
어떤 이들은 예수를 수 많은 신 중 하나로 숭배하기도 하지만 일부는
그저 인간으로서 신의 아들일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4.1. 기독교적 관점에서 본 예수의 정체
기독교는 탄생 시점에는 일단 예수를 메시아, 그리스도로 보았다.
하지만 이조차 기존 유대교의 메시아 관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유대교의 메시아는 세속적인 군주,
정확하게는 '유대 민족을 이끌 정치적인 지도자
혹은, 압제받는 유대 민족을 정치적으로 해방시킬 영웅' 이었는데,
기독교에서는 세상의 종말 때 이 세상을 심판할 구세주의 개념으로 바라본 것.
이 때문에 초기부터 정통 유대교 신학과 마찰이 있었고,
사도 바오로에 의해 헬레니즘 세계에 기독교가 퍼질 때는 신의 아들이라는 개념이
기존 그리스 신화에서 흔히 나오는 반인반신과 혼동이 되어 또 마찰이 있었다.
심지어 지금도 반기독교에서 언급되는 떡밥인
"예수는 마리아와 로마 병사 사이에서 난 사생아다." 따위의 패드립 역시 그때에 생긴 주장이다.
어쨌건 그에 따라 기독교는 유대교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다구리(?)를 맞았고,
예수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받았다.
이를 희랍 철학적 언어를 사용하여 설명한 것이 바로 삼위일체론이다.
기독교에 의하면 온 인류의 구세주이자 성부, 성령과 다른 위격(persona)이되
본질(essence) 및 본성(nature)은 같은 자로, 그의 실체(substance)는 하나님이다.
기독교에서 묘사하는 예수는 100% 거짓 없는 하나님이면서 또한 거짓 없는 인간이며,
창조되지 않은 자,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한 자이다.
그는 창조주임에도 피조물들을 위하여 스스로 제물이 되어 죽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삼위일체론.
물론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초기 기독교 종파들도 있었지만, 이들은 일찍이 사라졌다.
말씀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외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영광이었다. 그분에게는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였다.
요한의 복음서 1장 1-14절.
그리스도 예수는 하나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 2장 6-8절.
기독교적 관점에서 예수의 정체를 유추하는데 도움이 되는 글은 요한 복음서이다.
요한 복음서는 예수는 한처음에 하나님과 같이 있었다는 말로 시작한다.
그리고 바로 다음 문장에서 예수는 하나님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말씀이 육신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라는 말로, 예수가 인간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요한 복음서의 이 구절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100% 인간이면서 또한 100% 하나님이라고 본다.
또한 예수가 하나님이면, 기독교가 어째서
유일신교가 되냐는 의문이 나오자 삼위일체론으로 이것을 설명했다.
즉 성부는 하나님이고, 예수도 하나님이며, 성령도 하나님이지만,
성부 = 예수 = 성령은 아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것이다.
특히 다음 구절들을 보면 이 뜻은 더 명확해진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있는 나다.” 하고 대답하시고,
이어서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 '있는 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여라.”
God replied to Moses: I am who I am. Then he added:
This is what you will tell the Israelites: I AM has sent me to you.
출애굽기(탈출기) 3장 14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정녕 내가 나임을 믿지 않으면, 너희는 자기 죄 속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누구요?”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처음부터 내가 너희에게 말해 오지 않았느냐?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을 들어 올린 뒤에야 내가 나임을 깨달을 뿐만 아니라,
내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만 말한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두지 않으신다.
내가 언제나 그분 마음에 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많은 사람이 그분을 믿었다.
요한의 복음서 8장 23-30절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아브라함이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다.”
Jesus said to them, “Amen, amen, I say to you, before Abraham came to be, I AM.”
요한 복음서 8장 58절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에서 고백하는 초월자를 뜻하는 말인 야훼는,
'나는 있다', '나는 나다' 등의 뜻이며 영어로 하면 'I AM'이 된다.
그런데 인용한 구절들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 I AM으로 소개하는 독특한 방식을 통해 자신을 야훼라고 드러냈다.
문제는 이 교리는 인간의 논리로는 이해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는 점이며,
초기 기독교의 분열은 대부분 이 문제 때문에 일어났다.
이거 때문에 초대교회에서 아리우스파, 네스토리우스파, 오리엔트 정교회 등이 떨어져 나갔으며,
급기야 초대교회 자체가 서방교회과 동방교회로 찢어져 버렸다.
성경의 텍스트에서도 예수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성경 텍스트의 그리스도론은 '한 줄 요약' 식으로 과격하게 요약되지 않고,
여러 설명들이 마치 칼케돈 신경에서처럼 긴장 관계를 이루며 예수를 논한다.
성경에 의하면 예수는 예언자이지만 예언자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고,
메시아이지만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며,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사람의 아들이며,
모세의 역할과 하나님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하나님의 모습을 지녔으나 종의 모습을 취한,
하나님과 함께 있는 하나님, 한 분이신 주님이다.
한편 같은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인 유대교와 이슬람에서는
바로 이 삼위일체론 때문에, 기독교를 다신교라고 디스한다.
기독교의 삼위일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삼위일체론 문서를 참고해 보자.
4.1.1. 혈통
성경에 따르면, 즉 마태 복음서 1장에서 기록된 예수의 계보에 따르면
예수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이라고 나온다.
루카 복음서 마찬가지로 예수를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이라 주장하며 계보를 서술했지만,
마태 복음서의 족보와는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4.1.2. 구약
흔히 예수가 구약의 율법을 폐지하였다고 표현되지만, 이 표현에는 상당한 주의가 필요하다.
예수 자신은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 마태의 복음서 5장 17절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가 보는 구약의 율법은,
예수가 폐지한 것이 아니라 완성한 것이다.
또한 같은 원리로, 신약은 구약을 폐지하지 않는다.
그 때에 예수께서 "너희는 어리석기도 하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그렇게도 믿기가 어려우냐?
그리스도는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그런 고난을 겪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하시며
모세의 율법서와 모든 예언서를 비롯하여 성서 전체에서 당신에 관한 기사를 들어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말했거니와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나를 두고 한 말씀은 반드시 다 이루어져야 한다." 하시고
성서를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며
"성서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였다.
누가 24장 25-27절, 44-46절(공동번역)
오히려 율법을 포함한 구약 성경은
예수를 그리스도교적으로 해석하는 근거로 사용되었지,
폐기되고 사라져야 할 무언가로 여겨지지 않았다.
그리스도교가 자신의 바탕으로서 이스라엘의 성경을 필요로 했다는 것은,
신약성경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실제로 찾아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그리고 그분을 통한 하나님의 종말론적 역사役事에 관한 소식을 이해시키기 위해,
거듭 책―이스라엘의 성경―을 자구대로 인용하거나 관련 제재(題材)들을 들여온다.
'율법과 예언서'는 신약성경의 그리스도 증언을 해석하고 정당화해 주는 지평이다. ……
교회가 이스라엘 성경을 자기 성경의 첫째 부분으로 삼은 것은 강령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스라엘 성경의 문서들은 이론의 여지 없는 계시 주장을 담고 있다.
그래서 예수 제자들은 자신들의 예수 선포에 범주적 전달 가능성, 설득력,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그 문서들을 되잡았다.
신약성경 문서들이 이스라엘 성경에 터하여 쓰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성경 독해의 해석학적 단초는 분명해진다.
신약성경은 이스라엘 성경(또는 그냥 구약성경)의 빛 안에서 읽혀야 한다.
자주 인용되는 고대 교회의 성서학자요 번역자인 히에로니무스의 말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를,
'구약성경을 알고 또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교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살짝 바꿔 말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