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버님 인골(人骨)이 아픈 사람에게 그렇게도 좋대요.”
무서웠다. 흉측스럽고 흉물스런 생각에 정신이 몽롱해진다. 누가 어떻게 사람의 뼈를 구할 수가 있단 말인가. 씨알머리없는 소리에 귀를 털어 막고 싶었다. 그러나 망자의 뼈가 불치의 병에 좋다는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비록 의학적 근거가 없는 낭설이라 할지라도 나날이 꺼져 가는 생명을 보고 못 들은 척 수수방관할 수가 없었다. 현대 의학이 발달하여도 손을 쓸 수 없는 소 세포 암(small cell cancer), 피가 끓는 청춘이었기에 암세포는 더욱더 빠른 속도로 번져만 가는데.
인골을 구할 수 있는 곳은 오직 화장 막, 뿐이라는 생각에 급박한 심정으로 진동 화장 막으로 차를 몰았다. 마산을 관통하여 진동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저만치에서 속세의 모진 세월을 불태우는 듯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누구의 시신일까, 마지막 작별을 고하는 흐느낌이 ‘이이고 아이고’ 간헐적으로 들려온다.
어떻게 하면 사람의 뼈를 구할 수 있을까. 엄두가 나질 않는다. 정신이 멍하여 한동안 차에서 내릴 수가 없다. 마음을 단단히 추스르고 주위를 살핀다. 그때였다. 화장 막 입구 쪽에 조그만 수퍼마켓이 눈에 쏙 들어온다. 그래, 저기야. 큰기침으로 긴장을 풀고 슈퍼로 들어갔다. 음료수를 하나 사서 마시며 주인아주머니에게 통사정을, 했다. “제발 좀 구해 주십시요. 죽어가는 사람 살려주십시오.”라고.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사람의 뼛가루를 구할 수 없느냐고, 어렵게 부탁하는데 너무 쉽게 대답한다. “돈을 좀 줘야 하는데요,”
슈퍼 아주머니가 어딘가에 전화를, 한다. 마음을, 조이고 있으려니 화장 막 안쪽에서 풍채가 좋은 중년 남자가 까만 비닐봉지를 흔들며 어슬렁어슬렁 걸어오고 있다. 말 한마디 없이 비닐봉지를 아주머니에게 툭 던져 주고는 화장 막 안으로 쑥 들어간다.
인골이었다. 아직 온기가 살아있다. 이름 모를 혼령에 대한 섬뜩한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눈을 질끈 감고 차 트렁크에 던져 실었다. 초봄이었는데도 식은땀이 흐른다. 나는 불쌍한 영혼을 훔쳐 가는 공범자. 혼백이 살아나 ‘너 이놈, 내려놓지 못할까.’ 하는 것, 같아 등골이 오싹해진다. 어차피 한 줌의 재로 귀천할 몸일진대 당신의 뼛가루가 명약으로 쓰여 진다면 그것은 엄청난 적선이 아니겠는가 하고 마음을 고쳐먹었더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다.
안면이 있는 약방에서 약봉지를 구하고 뼛조각을 가루를 내어 감기약처럼 포장을, 했다. 인골이라고 하면 먹지 않을 테니까. 어릴 적부터 나를 무척이나 따랐던 그는 그것이 명약인 양 아무런 의심도 없이 잘 먹는다. 삶의 애착이었던가, 이를 지켜보는 가족들의 마음은 더욱 아팠다. 그런데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간장을 서늘케 했다. 그날 밤 그의 꿈속에 사람의 뼛가루가 온 동산에 하얗게 깔려 있었다고 한다. 듣는 순간 머리가 쭈뼛 선다. 이름 모를 영혼이 꿈속에 나타났을까. 도무지 풀 수 없는 미스터리다. 온갖 해몽이 꼬리를 문다. 나의 성의를 보아서라도 씻은 듯이 나아 툭툭 털고 일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몇 날이 지나도 병세는 차도를 보이지 않는다. 대책 없는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모두가 하늘만 쳐다본다. 숨결은 날이 갈수록 사위어만 가는데…….
극한으로 몰리면 출구가, 안보이고 귀가 얇아진다. 얇은 귓불을 타고 들려오는 온갖 민간요법은 구세주 같았다. 초량 뒷골목에 있는 어느 사설 의원이 못된 병을 잘 고친다는 소문에 나보다 훨씬 무거운 그를 업고 삼층 계단을 올라갔다. 사경을 헤매 이면서도 “삼촌, 무겁지예.”하며 나를 살핀다. 그럴수록 내 마음은 더욱 아팠다. 화장실 간다고 하여 부축하였으나 일도 보기 전에 그만 땅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는 여자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이었다. 명문대를 나와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스타 선생님은 그렇게 몹쓸 병에 걸려 생사를 넘나들고 있었다. 입시지옥 시절에 고3 담임을 수년간 연달아 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심한 스트레스 압축에 코피를 쏟더니 결국, 악성 암세포의 침범을 이겨내지 못하고 내 곁을 떠나갔다. 향년 32세.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 여고생 제자들의 조문 행렬은 통곡의 바다였으며 영결식에 도열한 골목집 아낙네들의 눈물은 한탄강이었다. 며칠 뒤 KBS 방송을 통한 제자의 추모편지를 아나운서가 낭독할 때에는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읽지를 못했다. 못다 한 생명에 대한, 애달픔이 전파를 타고 흘러 애청자들의 심금을 울린다.
감천 고갯마루 복음병원 암 병실, 객사를 면하기 위해 그는 이승의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엠블런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나는 병실에 남아 그의 사물을 챙겼다. 복받쳐 오르는 설움을 참지 못해 엉엉 울었던 기억은 지금도 가슴을 아리게 한다. 사랑으로 감싸주고 정성으로 아껴온 장조카. 그는 32세 꽃다운 나이에 남아있는 모두의 가슴에 그리움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갔다. 너와 내가 함께한 시간, 아픔이야 많았지만, 숙질간의 뜨거웠던 정을 나누었던 순간들이 한없이 그립구나. 그 옛날 시골 숙부님이 약주 한잔, 하시면 나를 껴안고 “숙질(叔姪)은 동근출(同根出)이요.”라고 하시던 그 말씀이 아직도 귓전을 맴돈다.
“삼촌 무겁지예, 삼촌만 믿어예.” 살아생전 너의 음성이 아련하게 들려온다. 네가 내 곁을 떠나간 지도 어언간 30년 세월, 제삿날이면 환하게 웃고 있는 너의 영정사진 앞에서 한없는 그리움에 젖는다. 함께 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혈육의 정이 목이, 메인다. 숙질은 동근출, 너와 나는 한 뿌리니까…….
첫댓글 급하면 누구나 주변의 근거 없는 소문에 귀가 솔깃해 진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제 곧 추석 명절 입니다. 즐급게 잘 보내시고 가을바람 살랑이거던 좋은 작품 많이 쓰시기를 기대합니다.
찾아주심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