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두근두근 우왕좌왕 교실 이야기
송명원 글_『교실의 온도』 출간
산골 작은 학교에 발령을 받은 초임교사가 선배 교사, 학부모,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이야기. 그들로부터 전해 받은 배움을 통해 교사로서 조금씩 성장하고 단단해져가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화려하지 않지만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법한 추억 같은 잔잔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그동안 소홀히 했던 교육과 삶의 또 다른 모습을 돌아보고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목차
작가의 말_처음처럼
1. 나의 첫 사택
2. 교실의 온도
3. 방학
4. 그들에게서 배운다.
5. 고마워요, 선상님!
6. 교문 밖에 서 보니
7. 확 때려치우고 싶을 때, 아직은 없다.
8. 나의 키다리 아저씨 아니, 키다리 편집장님
9. 아이
10. 선생님 되길 잘했지?
11. 교생이라는 말
추천의 글_뭔가 다르다
출판사 리뷰
송명원 작가의 두 번째 교단 에세이-
작가이자 산골 학교 교사인 송명원의 두근두근 우왕좌왕 교실 이야기
전작 교단 에세이 『너희들의 봄이 궁금하다』에 이어 이번에도 작가의 글에 제자 김누리 작가가 그림을 더했다. 이 두 사람의 환상의 조합을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교육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초보 교사가 어느 날, 신규 발령을 받고 산골 작은 학교에 뚝 떨어졌다. 처음 만난 같은 학교 선생님들은 예전 어릴 적 담임 선생님들처럼 무섭고, 주위 환경은 낯설기만 하다. 집을 구하지 못해 학교 창고로 쓰이던 옛날 전등불도 들어오지 않는 낡은 사택에서 잠자리를 해결하는 등 외롭고 불편한 생활을 시작한다.
신규 교사 특유의 열정으로 아이들에게 다가가려 하나 매번 실수와 실패의 반복이다. 하지만 거기서 좌절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던 중 잠시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주위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응원하고 있음을 느낀다.
드러내 놓지는 않지만 작은 행동으로 또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선생님들이 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신규 교사의 자존감을 한껏 치켜세워 주셨던 학생의 할머니, 학부모,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후원해 준 얼굴도 모르는 키다리 아저씨(아줌마)들, 잊고 있었던 첫 마음을 다시 선물해 준 교생 선생님, 쓰라린 실패의 경험을 미리 경고(?)해 준 작가의 자녀들까지 많은 사람들의 가르침을 몸으로 익히고 배워가며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산 삶의 시간들과 느낌을 특유의 겸허한 문체로 담담히 적고 있다.
수많은 실수와 실패를 이미 경험했음에도 여전히 되풀이하는 어리바리한 교사이지만 더이상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나름의 교육철학으로 단단해져 가는 작가이자 교사의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볼 수 있다.
작가 스스로 밝혔듯이 ‘개똥철학’인 자신만의 교육철학이 묻어난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교육의 참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실패와 실수에서 영글어가는 열매를 가꾸듯 자신의 마음가짐을 가꿔가며 오늘도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가르치고 배우며 생활하는 모습을 잔잔하고 따스한 말로 전하고 있다.
작가의 말
‘처음처럼’
제가 참 좋아하는 말이에요. 처음 이 말을 본 후부터 제 머릿속에서 함께하는 말이에요. 그냥 좋았어요. 처음이라는 말은 떠올리기만 해도 뭔가가 느껴지거든요. 가슴 두근거리는 설렘, 내일에 대한 기대, 우왕좌왕하며 했던 실수, 다 좋아요. 아침에 일어날 때,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날 때, 자동차를 운전할 때, 음식을 만들 때 저는 이 말을 떠올려요. 그러면 반복되는 비슷한 일상임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달라져요.
우리 같이 떠올려 봐요. 새 운동화를 처음 신은 날 기억나나요? 흙이 묻지 않을까 깨끗한 곳으로만 다녔어요. 뒷부분이 구겨질까봐 조심해서 신고 벗었죠. 마치 큰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끼고 아꼈어요. 처음 자동차를 운전할 때는 어땠나요? 안전벨트는 꼭 맸어요. 규정 속도 지켰지요. 누가 차선을 바꾸면 양보해줬어요.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했어요.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겪은 처음들을 떠올려봤어요. 다양한 처음들이 저와 함께했어요. 행복했던 처음도 있고요. 어설펐던 처음도 있어요. 부끄러웠던 처음도 있고, 힘들었던 처음도 있어요. 이런 처음들이 모여 지금의 제가 되었어요. 다 소중한 처음들이에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겠어요. 새 신을 신고 학교에 가던 그날로 돌아가야겠어요. 초등학교 교사가 되어 아이들 앞에 처음으로 섰던 그때 첫 마음으로 돌아가야겠어요. 첫째 아이, 둘째 아이, 셋째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의 마음으로 돌아가야겠어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여러분만의 다양한 처음과 첫 마음을 떠올려 보셨으면 해요. 바쁜 생활 속에서, 지루하고 고단한 삶 속에서 그때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를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만난 나랑 잠깐 마주보며 미소 한번 지어보길 바랄게요.
겨울방학 일주일 전 교실에서
송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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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영화 때문이었다. 강원도 산골 분교에서 근무하게 된 김봉두가 허름하고 좁은 사택방에서 혼자 화투치면서 뒹굴던 모습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봉화로 발령받기 일 년 전 쯤에 본 영화 〈선생 김봉두〉. 시골 교사들은 다 저렇게 생활하나보다 했다. 영화 속 김봉두의 생활이 나름 멋져보였다. 영화도 영화였지만 개인적 취향의 문제였을 수도 있었다. 이상하게 나는 80년대식 생활에 마음이 종종 끌린다. 초등학교 교사로 지내셨던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 우리 가족은 산골 학교 여기저기를 옮겨 다녔고, 딱 김봉두가 지낸 곳과 비슷한 사택에서 생활 했었다. 그 곳에서 나는 자랐다. 2004년 봉화라는 곳에 신규발령을 받았다. 2월 말 나의 첫 학교인 도촌초등학교에 인사를 하러 가서 지낼 곳을 알아봤다. 주위에는 산과 논 밖에 없었다. 영주 시내와 봉화읍까지는 각각 차로 15분 거리. 딱 중간지점에 학교가 있었다. 당시에 나는 운전을 하지 않았다. 영주와 봉화를 다니는 버스가 30분 간격으로 자주 있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영주나 봉화에 집을 구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같이 가신 부모님께서 교감 선생님께 물어보셨다.
“혹시 사택은 없나요?”
70년대에 지어진 아주 오래된 앞 교사(校舍)와 90년대에 지어진 뒷 교사(校舍) 사이 좁은 공간에 작은 사택이 하나 있었다. 선생 김봉두가 생활했던 바로 그런 곳. 잘 열리지도 않고 빛바랜 녹색 페인트칠이 툭툭 떨어진 미닫이 나무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래된 곰팡이 냄새가 훅 풍겨왔다. 한쪽 귀퉁이 시멘트 바닥엔 찌그러진 세수대야 하나와 낮은 수도가 있었다. 다행히 온수는 나왔다. 옆에는 시도 때도 없이 작동을 멈추는 낡은 보일러가 있었고, 양 옆으로 방이 하나씩 있었다. 오른쪽은 학교 주무관님이 작업할 때 옷을 갈아입거나 일하다 쉬는 방이었고, 왼쪽은 창고로 사용하는 방이었다. 크기는 두 평 정도. 교감 선생님께서 창고방의 문을 여셨다.
“방도 좁고 좀(삭제) 어수선하지만 쓰신다고 하면 도배는 새로 해 드리겠습니다.”
방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둘러만 봤다. 굳이 들어갈 필요도 들어갈 수도 없었다. 워낙 좁아서 어른 네 명이 서 있기도 부족한 크기였다.(누우면 머리끝과 발끝이 벽에 닿았다) 후~ 하는 한숨과 함께 선생 김봉두가 떠올랐다.
‘그래 한번 생활해보자. 어릴 때도 이런 곳에서 자랐는데 뭐. ’
현실은 서글펐다. 3월 1일 새 학기가 시작하는 전 날. 짐을 옮겨준 부모님은 대구로 가시며 걱정하셨다. 혼자 남게 된 사택에서의 첫날! 해가 지고 어두워졌다. 불 켤 곳을 찾다가 알았다. 장판과 도배는 깔끔하게 되었지만 형광등이 없다는 걸. 다행히 학교 주위에는 집이 한 채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찾아가 대뜸 형광등 하나만 달라고 말하는 게 어려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찾아간 곳은 다행히 학교에서 일하시는 주무관님 집이었다. 주무관님이 차를 몰고 읍내에 가서 형광등을 사 오셨다. 겨울이라 해는 금방 졌고, 어둠이 내려앉고도 한 시간이 더 지났을 무렵 드디어 방 안이 환해졌다.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제껏 살면서 낯선 곳에, 그것도 혼자, 이렇게 조용하게 있어본 적이 없었다. 새로 산 텔레비전은 아무리 틀어도 화면이 나오지 않았다. 그저(삭제) 치지지지직 소리만 났다. 몇 번 하다가 포기하고 라디오를 틀었다. 다행히 라디오에서는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9시가 채 되지 않았지만 이불을 폈다.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 아차! 사택 안에는 화장실이 없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깜깜한 학교 건물을 돌아가야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옛이야기에 나올법한 오래된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십 년 넘게 사용을 하지 않고 방치된 곳으로 전등도 없었다. 결국 학교 화단에다 볼일을 보고는 얼른 들어와 문을 꼭꼭 잠궜다. 다시 자리에 누웠다. ‘누가 가라고 등을 떠민 것도 아니고 왜 이런 산골에 지원을 해서 이 고생을 하는지…….’
사택에서의 내 생활은 지금 생각해도 스스로에게 연민이 느껴지는 일의 연속이었다. 4시 30분 퇴근한 후 사택에 들어가면 문을 걸어 잠그고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4월이 되고 해가 조금씩 길어지면서 텅 빈 운동장을 혼자 걷곤 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후엔 운동장에 나와서 운동 겸 매일 산책을 하고, 어떤 날은 조회대에 누워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미친 듯이 노래도 불렀다.
--- 「나의 첫 사택」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