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방을 다 놔두고 작은 방 한켠에 곁달린 베란다, 조용한 평화가 곁들여진공간에 나만의 기도방을 만든지 수년째다. 아예 거기서 잠드는 일도 허다하다.
아홉시가 넘은 지금 바라보이는 창가 건너엔 덜 진 달인지 이미 뜬 해인지 모를 것이 아름다운 미련으로 저기 있다. 따스하다.
여기서 새벽도 맞이하고 한밤도 함께 겪으며 불러오는 미래 그리고 불러보는 과거...그 숱한 명암과 흔적들을 소심하게 혼자 정돈하기도 하는 나만의 공간이다. 내일은 걸음도 목소리도 반 옥타브 낮추고 얌전히 지내며 수그러진 나의 에너지를 달랠 작정이다. 저 해인지 달인지를 따라 마주보며...
어딜가나 사람들이 북적대거나 이미 다녀가서 어수선한 세상이지만 가만히 마음만 추려 담아 오래된 골목길에라도 혼자 걸을 때면 밤바람 한 줌 고이 주워담은 듯 설레이기도 행복하기도 하다.
내가 오늘 이렇게 기운이 가라앉은 것은 미안함 탓인가 싶다. 멀리 사는 딸이
체력이 딸리는지 병이 낫다며 전화가 왔었다. 유난스런 손자손녀 두 녀석이 원인이다. 애들 모두 비슷하다고 해도 이 녀석들 둘은 한 뼘 더 유별나다. 문득 내가 어렸던 옛 시절이 또 떠오른다. 청승스럽게 치사스럽게 무엇하러 그깟 애정 구걸을 그토록 했었나 싶은 생각도 또 든다. 아무튼 딸래미가 크게 몸살이 났다는데 마음이 쿵쾅댄다.내 마음만 미안함과 애탐을 주렁주렁 달고 우샤인 볼트 속도로 부산과 양주 사이를 왕복 달리기 한다. 쉼 없이...
내가 벌써 할머니라니 가끔 피식 웃음이 난다. 세월 빠른건 말해 뭣하리요만
내가 사는 곳 도처에서 출렁이는 바다는참으로 감사하다. 바다...세월을 전혀 아는 체도 하지 않는다. 덥거나 말거나 춥거나 말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말거나 입 무거운 관찰자 시점으로 누구든 허용하는 품을 준다.
잠시만 바라봐도 사랑과 냉정의 중간지점인 바다는 친정처럼 따습다가도 그 친정처럼 더러 막막하고 자주 속 얘기를 다 들어주는 품이다. 오늘 유난히 내려앉은 내 기분은 내일 다시 있던 자리로 돌아가주길 기다려본다.
편안한 시간을 갖고 용건 없는 장소에 가서 느리게 자유롭게 남아있는 기억들에 머물며 발길 닿는대로 마음 가는대로혼자 해지도록 걷고 싶다.
예전엔 친구랑 돌아다녔지만 늙어가면서 혼자가 좋다. 마음은 더러 허허롭지만 타인에게 무심해지고 자신에게 관대해지는 고마운 의료보험같은 마음이다.
그래 이제부터 아름다운 자유를 길러 품으며 잉글리드 버그만의 스카프처럼
멋지고 자유로운 노년으로 갈꺼다.
아니 가고있다.^^
첫댓글 수정해서 다시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