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고통에 대해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인권침해와 인간고통을 ‘부인(否認, denial)’과 ‘시인(是認, acknowledgement)’ 이라는 틀로 이해하고 진단하는 스탠티 코언의 이론틀을 통해 우리는 공간적 거리를 초월하여 타인의 고통에 같은 인간으로서 분노하면서 “어떤 행동이든 일단 할”수 있고(Do something), 또 그래야만 한다.” 스탠리 코언의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의 머리말이다. 경산코발트광산 사건을 국가폭력이라는 진단에서 사회적 재난으로 규정하는 논문을 준비하면서 코언의 글을 자주 읽게 된다. “인간고통”이라고 쓰여있지만 ‘타인의 고통’이라고 읽혔다.
『타인의 고통』에서 손택은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리고 이런 일은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거다. 나는 아프지 않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나는 전쟁터에 있지 않다. 와 같은 사실을 알고 있다는 안도감을 통해 사람들은 타인의 시련, 그것도 쉽게 자신과의 일체감을 느낄만한 타인의 시련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 하는 듯하다(수잔 손택, 150).” 과연 그럴까? 타인의 고통을 애초부터 ‘인지하지 않기로’ 마음 먹어서 그 사실이 지각되지 않는 것(코언, 27)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언제부터 타인의 고통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2017년 석사학위 연구계획서를 읽게 되었다. “얼마 전 영화 택시운전사(2017)를 보며 한참을 울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밥을 나누어 먹는 주먹밥을 나누어 주는 그 손길이 고와서 그 고운 손에 피가 흐르는 그 모습이 아팠고 또 하나는 ‘그 자리에 제가 있었다면’ 하는 그 가정 속에서 두려워서 울었다. 국가라는 것이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일도 서슴지 않고 그 과정을 무시하고 왜곡하고” 라고 적혀있었다. 그것이 나의 늦은 공부의 시작이었다.
석사 공부를 시작하고 지역의 마을지 작업을 했는데 구술생애사 작업을 하던 어르신이 “내가 한국전쟁 때 우리 뒤산에서 경찰이 총을 쏘는 모습을 봤어”라는 한 마디로 시작하여 지역의 보도연맹원 학살을 구술사적 방법으로 논문을 쓰게 되었다. 그 후 사람들은 나에게 “보도연맹원 학살의 피해자가 아닌데 이런 연구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질문을 하였다. 대답은 “마을지 작업을 하면서 들었던 어르신의 두려움 가득한 마음을 누르며 했던 그 말을 들은 것에 대한 책임감”이라고 말하였다.
그러다가 아버지에게 석사논문을 보내드리고 전화를 받았다. 평소 긴 통화를 하지 않으셨는데 그날 따라 아버지가 고향인 보성에서 9살 때 살던 곳에서 소개령에 의해 피난 나온 이야기를 하셨다. 여순항쟁의 피해자였던 것이다. 얼마 후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과연 ‘타인과 나는 떨어져 있는가?’ ‘타인의 고통은 타인만의 고통일까.’ 논문을 준비하면서 맴도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