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2절
창세기의 저자는 모든 성도들이 아는 것 처럼 모세일 수도 있지만,
일부 신학자들은 엄격한 의미에서는 저자를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창조 , 홍수에 관한 승고대 근동지역과 이집트의 창조 신화 등,
많은 나라에서 서로 비슷한 내용들이 있기 때일 수 있고 그런 내용들을 인용했다고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저자라면 출애굽후인 1404년 전후가 될 수 있습니다.
주석가들은 종종 “천지”라는 구절이 완벽하게 질서정연한 우주를 나타낸다고 주장합니다.
이 구절이 보통 그러한 뜻을 나타내긴 하지만.
여기서는 질서 있는 조직화라기보다는 우주 전체를 나타냅니다.
쉬타델만(S delmann, Hebrew Conception of the World, 27) 에 따르면,
에레츠(땅)라는 용어는 하늘이나 지하계 (또는 저 승)라는 곳과 반대 되는 의미로서,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라고 생각되는 전 지역을 의미합니다.
“혼돈하고 공허하며"는 “형태가 없고 공허한”을 의미합니다.
“황량한"는(토후)는 두 가지 주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헛된 일"(사 29:2 1)이고
다른 하나는 여기서처럼 “혼돈,무질서”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무질서는 창조 사역이 완성되었을 때, 그 특징을 이루는 질서와 정반대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시작되던 순간의 땅은 아직 생명을 지탱할 수 없는 곳이었다.
‘혼돈과 공허는 형태가 없고 비어 있기 때문에
땅에 아직 생명이 없을 뿐만 아니라 생명을 생산할 수 없음을 뜻합니다.
전혀 새롭거나 산뜻한 질서의 모습이 아니라, 무질서의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한순간에 완벽하게 창조 사역을 끝내지 않으시고
한동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게 버려 두셨냐는 의문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혼돈과 공허가 먼저 있게 하시고
이것들을 질서와 순서로 변화시켜 가심이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논리로 생각한다면 천지창조도 6일 동안 하지 말고 한순간에 하셨어야 할 것입니다.
창조 과정과 방식은 하나님의 고유 권한이고 온전한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알기 이전에는 모두 마음과 영혼이 텅 빈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인간이라면
마음과 영혼에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 이시라는 인식이 확실하게 새겨져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서야만 하나님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마음과 영혼에 하나님에 대해 명확하게 새겨 주셨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하나님이 나의 인생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
인간의 마음과 영혼에 하늘의 진리를 채워 주셨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예수님을 깊이 만나지 않고는
마음과 영혼이 텅 빈 상태로 살아갑니다.
항상 공허하고 혼돈같이 자신의 정체성을 알지 못해서 형체가 있는 듯 하지만 형체가 없이 비어 있는 듯한
인생을 살아 갑니다.
때로는 깊은 수렁 속에서 허부적 거리는 모습도 나타납니다.
인간의 텅 빈 마음과 영혼의 공간에 하늘의 진리를 차곡 차곡 채워 주셔서 허무한 인생이 되지 않게 하시고,
싸구려 인생이 되지 않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맺어진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부인 분신과 같은 존재로 인정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공허했던 우리 인생을 하늘의 빛으로, 사랑으로 채워 주셔서
살아 가게 해 주신 분이라는 것과
예수님이 영원한 우리의 구원자이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