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도(Pontius Pilates의 아내 "클라우디아 프로큘라(Claudia Procula)"
주님께서 빌라도의 재판정에 기소되셨을 때 꿈이야기를 통하여 주님을 석방할 것을 권유했다는 기록으로 인해 빌라도의 아내는 성서 속의 의로운 여인 중 한명으로 간주된다. 이 여인의 이름은 클라우디아 프로쿨라(Claudia Procula)로 알려져있다.
클라우디아의 아버지는 후에 황제가 된 티베리우스였고 어머니는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딸 율리아였다. 율리아는 방탕하였고 스캔들을 달고 살았다. 분노한 아우구스투스가 그녀를 로마로부터 추방하고 티베리우스에게 이혼을 허락하였다. 추방되어 있던 동안 그녀는 클라우디아를 낳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티베리우스는 황제가 되고 난 후 클라우디아를 사랑하여 그녀를 자기의 딸로 인정하여 받아들였다. 클라우디아는 A.D. 26년부터 36년까지 유대와 사마리아의 총독을 지낸 빌라도와 결혼하여 50년동안 결혼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H. D. 라고만 알려져 있는 '빌라도의 아내'(1929)라는 책의 저자는 빌라도의 아내가 베로니카라고 불려진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베로니카는 주님이 십자가의 길을 가시다가 넘어지셨을 때에 주님께 물을 드린 여인이라고 알려져왔다.
그녀의 이름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그리 중요한 주제는 아니다. 다만 그녀는 매우 사려깊은 여인이었고, 꿈을 통하여 주님을 만났으며 그 꿈을 현실에 적용하여 이해한 것은 분명하다. 그녀는 주님의 재판에서 유일한 변호인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녀는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보았고,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마음으로 사랑했으며, 종국에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마태복음 27장 19절에 간단히 언급된 바에 의하면 클라우디아가 재판석에 앉아 있던 빌라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무죄한 그 사람에게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오늘 나는 꿈 속에서 그로인해 고통을 당하였어요"(NKJV). 이 짧은 메시지로 인해 클라우디아는 정교회와 콥틱교회 안에서 성자로 불려지고 있다. 교부 오리겐은(Hom., in Mat., xxxv) 후에 클라우디아가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역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2000년 전 유대지역의 모습이다. 빌라도는 이 지역에 들어오면서 로마군단의 독수리 깃발을 성에 내건다. 그러자 율법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유대인들은 그 '우상'을 치워달라며 죽음까지 각오한채 며칠 동안 강력하게 항의한다. 빌라도는 유대사제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전기금을 압수해서 수로 공사를 단행한다.
이런 식의 갈등은 결국 예수의 문제로 터지고 만다. 빌라도가 보기에 예수는 아무런 죄가 없었지만 격분한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라고 아우성이다. 한술 더 떠 예수는 자신의 언행에 대해 아무런 변호도 하지 않는다. 유월절을 맞아서 죄인 한명을 풀어주려고 하자, 유대인들은 모두 젤롯당원인 바라바를 풀어주라고 요구한다.
굳이 빌라도가 아니더라도 이런 곳에서 총독 노릇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수십 년 후에 터진 유대전쟁을 보더라도, 유대인과 로마인 사이의 갈등 폭발은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성난 유대인들 앞에서 본디오 빌라도도 힘없는 희생양으로 전락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가정이겠지만, 빌라도가 아내의 조언을 받아들여서 예수의 재판에 관여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클라우디아는 특유의 예지력으로 예수의 죽음은 이후에 계속될 전쟁과 오해의 시작이 될거라는 사실을 안다. 미래를 예측하면서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그녀를 더욱 절망시킨다.
캐나다에 있는 데리 뮤지엄(Deri Museum)에는 헝가리 화가 미할리 문칵시(Mihaly Munkacsy 1844-1900)의 유화 "빌라도 앞에 선 그리스도" (Christ in front of Pilate)란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 이 명화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최후의 순간을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잘 상기시켜주고 있다. 그림의 타이틀은 "빌라도 앞에 선 그리스도" 이지만 오히려 "그리스도 앞에 선 빌라도"라고 볼 수도 있다. 당시 빌라도가 얼마나 그리스도에 대한 처리 문제로 고심했었던가를 우리는 복음서들을 통하여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 화가 니콜라이 게(Nikolai Ge 1831-1894)가 작품 주제로 삼은 " 진리가 무엇인가?" (What is truth?) 라는 그림처럼 빌라도는 그리스도에게 " 진리가 무엇인가?" 라고 하는 가장 의미심장한 질문을 남겼다. 우리가 믿기로는, 그리스도를 심판했던 빌라도는 어느 날 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참 진리에 대한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만일에 빌라도가 자신의 아내 클라우디아 프로큘라의 말만 들었어도 그의 운명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리라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최후에 폰티우스 빌라도(Pontius Pilates-Pontios Pilatos- 희랍어) 에게 재판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처형되셨다.
빌라도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에 의해 유대지방의 제5대 총독으로 임명되었던 인물이다. 그리고 그의 재임 기간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형을 빌라도에게 요구했다. 4복음서 가운데는 그와 같은 사건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었으며 사도행전 3장 13절과 13장 28절에도 인용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흥미 있는 사실은 빌라도가 그리스도를 재판하던 날 그의 아내가 남편에게 급히 사람을 보내어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마옵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마 27:19)라고 전언했던 사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녀는 단순히 빌라도의 아내로만 성경에 소개되고 있다. 그러나 " 니고데모의 복음" (The Gospel of Nicodemus)이란 외경에 의하면 그녀의 이름은 클라우디아 프로큘라(Claudia Procula)이며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의 손녀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 책에 의하면 그녀는 로마인으로서 유대교로 개종한 당시 상류 계급 인물들 가운데 유력한 한 여인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 여인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던 인물이었었는지 혹은 다만 꿈의 계시를 따른 행동이었는지는 그 동기를 명확히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성경이 빌라도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는 분명한 교훈의 뜻이 있다고 믿는다.
빌라도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라고 하는 하나의 엄숙한 질문을 우리 모두에게 던져주고 있다. 십자가는 당시 흉악한 범죄자들을 처형하는 로마인들의 형틀이었다. 그래서 성경은 십자가에 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다.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갈 3:12).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째서 이 저주의 형틀에 달려야 했을까? 하는 의문을 던져준다. 분명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가 십자가에 달려 처형될 만한 죄를 발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자신의 입으로 여러 번 실토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성난 유대인들에게 이처럼 애원하듯 말했다.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겠노라" (눅 23:14,15,22). 그러나 결국 그는 아내의 청원과 자신의 양심을 거역하고 아무 죄도 없는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처형토록 내어주었다.
예수님의 무죄함을 고백한 사람들은 빌라도뿐만이 아니었다. 가룟유다도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마 27:4)라고 고백했으며, 오른편 강도는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눅 23:41)고 그의 동료 죄수를 책망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 처형을 실제로 지휘했던 로마 백부장은 "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이 사람은 정년 의인이었도다" (눅 23:4)라고 외쳤다. 빌라도의 아내를 비롯하여 이와 같은 여러 사람들의 증언은 의심할 여지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무죄함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결국 십자가를 지셨고 큰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셨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었다. 왜냐하면 흠과 죄가 없는 분이라야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 죄값을 치르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빚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빚을 갚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죄를 위하여 의로운 희생제물이 필요하셨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은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 죄를 삼으셨다" (고후 5:21).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 같은 그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서만 우리들의 죄를 대속하실 수 있다(벧전 1:18-19).
아무리 세월이 오래 흘렀어도 여기 위대한 증인 빌라도의 아내는 여전히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의로운 사람" (Just Man or Righteous Man)이었노라고 증언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