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스승의 날 / 최미숙
지난 4일 목요일 저녁부터 목이 따끔거리고 머리가 지끈지끈하더니 밤새 못 잘 정도로 아팠다. 다음 날이 연휴라 금요일 하루 쉬면 괜찮겠지 싶었는데 별 차도가 없었다. 토요일 순천만생태문화교육원에서 기초 학력 연수가 있어 감기이기를 바라며 아침 일찍 병원에 갔다. 양성반응이 나왔다. 또 확진이다. ‘밤새 안녕’이라더니 졸지에 병자가 되어 일주일 동안 감옥살이를 했다.
7일이 어떻게 지난 줄도 모르게 가고 15일(월요일) 출근 날이다. 일주일을 쉬고 나니 학교 갈 마음에 날아갈 것 같다. 쉬고 있으니 우울하고 처진다. 역시 활동을 해야 했다. 날씨까지 화창하다. 학교에 들어서니 학부모 대표들이 현관 앞에 서 있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스승의 날’이라며 출근하는 선생님에게 카네이션 한 송이와 예쁜 꽃이 새겨진 백설기 떡 한 개씩을 나눠 줬다. 그러고 보니 내년 2월이 정년이니 올해가 42년 교직 생활 마지막으로 맞는‘스승의 날’이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입구에 빨간 카펫을 깔고 양쪽 벽에 풍선과 장식품까지 붙였다. 전체 선생님 이름을 새긴 사각 현수막을 걸어 사진 찍을 수 있도록 자리도 마련해 놓았다. 오전 여섯 시부터 나와서 준비했다고 한다. 아직도 이런 정성을 보이는 마음이 고마웠다.
3층으로 올라가니 복도가 웅성웅성하다. 아마 아이들도 행사를 준비한 모양이다. 나를 발견한 6학년 몇몇 학생이 “선생님 몸은 괜찮으세요?”라며 묻는다.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기특했다. 교실 문을 열었다. 더운 공기가 확 풍긴다. 일주일을 비워서 그런지 오늘따라 더 정겹다. 운동장을 내다봤다. 아직은 덜 자란 천연 잔디에서 아이들이 공을 찬다. 내년 이 시간에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오후가 되자 졸업생들이 들이닥친다. ‘스승의 날’이라며 단축 수업을 했다고 한다. 장난치며 수업을 방해했던 남학생들도 제법 어른스러워졌다. 공손하고 으젓하게 인사한다. 담임이 다른 학교로 옮겼다며 서운해한 아이도 있었다. 가만히 보니 빈손으로 온 아이가 없다. 아마 용돈을 모았을 성싶다. 그 마음이 예쁘다. 몇몇은“선생님, 저 기억하세요?”라며 수석실로 들어온다. 아무리 그래도 작년에 가르쳤는데 모를까. “선생님이 열심히 가르쳐 주신 덕분에 중학생 돼서 책 많이 읽어요.”라고 말한다. 줄글을 읽기 싫어하는 4, 5, 6학년 아이에게 1, 2학기 책 한 권씩 읽히느라 나름 애를 많이 썼다. 그 노력을 아나 보다. 흐뭇했다. 아침에 공부하러 오는 아이 주려고 사둔 하리보(젤리) 두 개씩을 집어 줬더니 고맙다며 좋아한다. ‘그래, 너희는 컸다고 하겠지만 아직 내 눈에는 예쁘기만 한 아이야.’
스승의 날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한때는 책상 위에 선물이 한가득 쌓인 시절도 있었다. 매년 방송에서 담임 선생님 선물 준비 때문에 학부모들이 부담스러워한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불편했다. 2016년 ‘김영란법’시행 이후 선물을 받지 않는다고 공지하는 학교까지 생겼다. 이제는 그런 문화가 사라져 다행이다.
밖에서 보면 교직이 아직은 좋은 직업이다. 교사를 질투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현장은 예전과는 다르다. 과거보다 힘든 아이가 많아졌고 학부모의 요구도 참 다양하다. 선생님들이 해야 할 일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아지기도 했다. 우리야 근무 환경은 좋지 않았지만 선생님을 최고로 존중해 주는 정이 넘치는 시절에 근무해 자부심을 느끼며 다녔다. 하지만 지금은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도 조심해야 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8일까지 전국 교원 6751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 조사를 한 결과 교직에 만족하냐는 질문에 ‘그런다’는 답은 23.6%로 10명 중 2명에 그쳤다고 한다. 2006년 이후 최저치다. 특히 ‘다시 태어나도 교직을 선택하겠냐?’는 질문에 긍정하는 대답은 20%로 다섯 명 중 한 명꼴이란다. 격세지감이다.
고학년 수업이 끝나고 조용해질 즈음 5학년 아이가 수석실 문을 두드린다. 평소에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아이인데 편지하나를 내민다. 지금 읽는 책 〈샬롯의 거미줄〉이 재미있어 수업 시간이 기다려진다며 좋은 책으로 수업해 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또 한 번 감동이다. 다른 무엇보다 큰 선물을 받았다. 책 읽기 싫어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낸 줄 알았더니 나름 다 느끼고 있었다. 고맙다며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또 작년에 글쓰기를 같이 했던 남학생이 동생에게 꽃 한 송이와 편지를 전해 왔다. 본인이 쓴 글이 매번 대표 작품으로 뽑힌다며 잘 지도해 줘서 고맙고 올해가 가기 전에 꼭 찾아온다고 했다. 책상 한쪽에 두고 몇 번을 꺼내 읽었다.
이런 소소한 행복도 올해로 마지막이다. 근무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시간이 더 빨리 간다. 아무리 교직이 힘들어진다는 소식이 들려도 이렇게 진심을 알아주는 아이가 있어 힘이 솟고 아직은 할 만하다. “얘들아!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