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너른 식탁 / 송덕희
무등산 사랑 환경 대학을 다녔다. 작년 8월 말부터 3개월 과정으로 133시간을 이수했다. 광주 시민으로서 어머니와 같은 무등산에 대해 몰랐던 걸 많이 배웠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봉사 단체에 들어갔다. 후배들 공부하는 데 참석하고 수시로 활동을 한다. 옛길, 역사길, 무돌길 등을 걷거나 환경 보호 캠페인을 하고 쓰레기를 줍는다. 우리 동기 20여 명은 그때마다 서로 도와준다. 가끔 번개팅을 하다보니 금세 가까워졌다. 직장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회인을 만나는 일은 새로운 경험이다. 하는 일이 제각각이라 살아가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무엇보다 같이 먹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다.
일흔 살이 넘은 유 선생은 창호를 설치하는 일도 거뜬하단다. 키가 커 겅중거리며 산을 오르고 다람쥐같이 빠르다. 특이하게 매번 바다에서 방금 건져 온 듯한 싱싱한 해산물을 배낭에 넣어온다. 새벽 댓바람에 남광주 시장으로 달려가서 사 온단다. 해삼과 멍게를 봉지 가득 가져올 때도 있고, 큼직한 연어 횟감을 보냉 가방에 담아오기도 한다. 힘이 달려 헉헉거리다가도 먹을 걸 생각하면 기운이 난다. 도시락을 펼치기 전부터 등산용 도마와 칼을 꺼내 능숙하게 손질한다. 그의 빠른 손놀림에 감탄하며 입맛을 다신다. 순식간에 쓱쓱 썰어서 접시에 올리고 초고추장과 겨자소스를 곁들인다. 한 입 먹을 때마다 상큼한 바다 향이 퍼진다. 산에서 회를 먹다니! 참 고마운 유 선생 덕분에 신선한 경험을 한다.
진 씨 언니는 판매 사원으로 25년을 일하다 1년 전에 퇴직했다. 연꽃처럼 맑고 수수해서 별명이 연꽃님이다. 음식 솜씨가 좋아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몰린다. 코다리조림 맛은 단연 최고다. 비릿하고 값 싼 명태가 고급스러운 요리가 된다. 나도 해 보겠다고 알려 달랐더니 새롭고 놀라운 방법을 설명한다. 시장에서 살이 탱글탱글한 반건조 된 걸 사 와서 선풍기 바람으로 말린단다. 덜 마르면 잘 부서지고 너무 두면 질겨서 그 정도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한다. 진 요리사의 감으로만 알 수 있는 비법이라나? 무를 바닥에 깔고 양념장을 끼얹어 조린다. 어느 정도 익으면 토막 낸 코다리를 올려 무가 누글누글할 때까지 익혀야 맛이 밴단다. 커다란 찬통에 가득 담아 와서 나눠준다. 쫄깃하고 달짝지근하다. 맨입으로 먹어도 짜거나 싱겁지 않아 자꾸 젓가락질하게 된다. 멸치꽈리고추볶음은 또 어떤가? 중간 크기로 골라 프라이팬에 볶아서 비린 맛을 없애는 게 중요하단다. 매운맛이 나는 꽈리고추와 어슷하게 썬 마늘에 간장과 물을 약간 넣고 자작자작하게 끓인다. 국물과 함께 한 숟가락씩 떠서 비벼 먹는다. 매콤하고 짭조름해서 식욕을 자극한다. 재료가 궁합이 잘 맞으면 입이 즐겁다. 산을 오르면서 땀으로 흘린 염분이 제대로 채워진다. 고맙다고 말하면, 맛있게 먹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단다. 그냥 신나서 한다고. 부엌에서 얼마나 종종거리며 준비했을지 가늠해 본다. 그런데 또 은근히 기대한다.
나는 콩나물 김칫국을 끓여 간다. 냉장고에 보관해 둔 신 김치가 맛 좋으면 별다른 솜씨가 없어도 괜찮다. 콩나물은 줄기가 가는 걸 넣는다. 뚜껑을 닫아 한소끔 끓여 비린 맛을 없앤다. 마지막에 곰삭은 김치 국물 한 국자를 넣으면 삼삼하게 간이 맞다. 멸치나 달걀 푼 걸로 감칠맛을 내도 좋다. 식으면 맛이 덜하다. 팔팔 끓여서 보온병에 담아 가면 서너 시간이 흘러도 김이 모락모락 난다. 개인 컵에다 덜어서 호호 불어 가며 마신다. 아삭아삭 씹히는 콩나물과 새콤한 김치 맛이 개운하다. 게걸스레 먹었던 음식들이 식도에서 한 방에 쭉 내려간 듯 하다. 아직은 찬바람이 부는 산등성이에서 몸도 마음도 뜨듯하고 여유롭다.
서 여사는 그릇 도매업을 한다. 호탕하게 잘 웃고 추진력도 좋다. 동기 6명을 함평에 있는 전원주택으로 초대했다. 봉사 활동을 야무지게 끝내고 시골길을 달려갔다. 헌 집을 고쳐서 주말에 쉴 수 있게 해 놓았다며 기대는 하지 말란다. 정작 들어가 보니 온갖 살림 도구가 빼곡하다. 화장실과 부엌은 수리했지만, 크게 구조 변경을 하지 않은 옛날 집 그대로다. 뒤쪽으로 텃밭이 넓고 머위 순이 지천으로 올라왔다. 대숲이 빙 둘러쳐져 있어 정감을 자아낸다. 집 구경도 식후경이라며 뒷밭으로 가란다. 봄 햇살을 받아 여리게 자란 상추와 자줏빛 도는 머윗잎를 뜯었다. 작은 개울가에 자라는 미나리도 조금 벴다. 개양귀비를 먹는단다. 봄에 나는 새순은 모두 약이 된다나? 순식간에 바구니가 채워졌다. 부엌에서는 알이 밴 주꾸미 네댓 마리를 데치고, 양파와 부추 다지는 소리가 경쾌하다. 양념장을 뚝딱 만들어 상에 올리니 금세 풍성해졌다. 봄이 그대로 옮아앉았다. 향긋한 채소에 구운 삼겹살을 싸서 야무지게 욱여넣었다.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게다.
무등산에 가면 그전에 안 보이던 쓰레기가 잘 띈다. 허리를 숙여 주으며, 앙증맞게 피어난 야생화에 눈을 맞춘다. 언제나 포근하게 안아 주는 산이 있어 좋다. 동기들과 어울리며, 사는 재미를 알아간다. 부지런히 걸으면서 다리에 힘도 생겼다. 그런데 웬일일까? 몸무게는 1.5 킬로그램이나 늘었다. 맛나게 먹은 게 다 살로 가나 보다. 어쩔 수 없다. 당분간은 아주 너른 식탁에 차려진 먹을거리를 즐길 수 밖에.
첫댓글 와! 정말 좋은 일 하시네요. 부지런히 걸으시니 살도 금방 빠지실 겁니다. 좋은 뜻을 지닌 사람들끼리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면 참 맛있겠어요. 잘 읽었습니다.
살이 빠질까요? 맛나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말, 맞나요? 호호호
잘 읽어주셔서 고마워요.
산 정상에서 먹는 음식은 꿀맛일 것 같습니다. 글 고맙습니다.
다들 맛난거 싸와서 나눠 먹으니 뭔들 맛이 없겠나 싶어요.
선생님, 글이 생생한데 깔끔하기까지 합니다.
잘 읽혀요.
음식이 눈에 왔다갔다 합니다.
선영님, 댓글로 힘을 주시는군요. 님처럼 쉽게 쓰고 싶군요. 고마워요.
주변에 음식 잘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입이 즐겁겠네요.
의미 있는 활동을 하며 좋은 시간 보내시네요.
응원합니다.
밥 먹는 재미로 산에 갑니다. 하하하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음식 솜씨로 복을 짓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응원, 고맙습니다.
음식 이야기는 '리틀포레스트' 보는 것 같고. 다 읽고나니 인품이 보여요.
송선생님, 표현은 참 간결하고 정확합니다. 인품 보인다니 좀 부끄럽긴 하네요.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숨쉬고 사는 환경을 지키는 일을 하시는 선생님과 동기분들의 너른 식탁에 올려진 넓고 깊은 마음을 잘 들여다 봤습니다. 선생님의 너른 식탁처럼 글도 단정하고 따뜻합니다. 잘 먹었습니다.
잘 먹었다는 감상평이 저를 기쁘게 하는군요. 음식 솜씨 좋은 동기분들 덕분에 만나면 배가 부릅니다. 봉사 활동도 더 잘 되고요. 하하하.
좋은 일도 하고 맛난 음식도 나누며 사니 부러울 게 없겠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산에 가면 뭐든 다 맛있나 봅니다. 맛난 음식이 먼저가 되고 있네요. 하하하.
제목이 너무 좋아요. 산에서 먹는 회, 상상만으로도 너무 맛있을 거 같아요. 특별한 요리사 친구들이 많아 좋으시겠어요.
다들 맛나게 먹고 웃습니다. 요즘은 도시락 싸는 것도 즐겁네요. 제목처럼 풍성한 식탁이 차려집니다.
읽으면서 단락마다 군침을 삼켰습니다. 현직에 있으면서 그런 봉사 활동도 하시고 대단하십니다.
시작한지 얼마 안 됐는데 먹는 것에 더 눈이 돌아가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