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잡록-권오복
◈ 본관은 예천이며 자는 향지이며, 호는 수헌이다.
문장이 맑고 건실하며 필법에 힘이 있었다. 성종 병오년 사마시와, 같은 해의 병과에 잇달아 장원하여 당시의 동료들이 추종하며 중하게 여기었다. 김일손과 막역한 교우이기에 연산군 무오년에 사화가 일어나자 김일손과 함께 죽었다. 벼슬은 홍문관 교리에 이르렀고, 문집이 있어서 전한다.
◈ 흉악하고 망극한 변을 만나, 사형에 쓰는 도구가 앞에 있어도 굳게 버티고 어지러운 모습이 없이 조용히 죽임을 당하였으니, 그 의기와 절개의 굳셈은 천성임을 어찌하랴. 아! 만사가 끝났고 구원은 닫혔다. 홀로 그 기침과 침의 작은 방울과 정하게 빛나서 발해 내는 것이 하늘에 비치면 북두성을 쏘고, 땅에 던지면 쇳소리를 내는 것은 오히려 전형을 방불하게 남기고 무궁한 먼 생각을 붙였다. 책 가운데의 여러 작품은 하나하나가 마음의 깊은 속에서 흘러 나와서 정성스럽게 임금을 그리워하고 나라를 걱정하는 깊은 생각과 간절하게 어버이를 그리워하고 아우를 생각하는 절실한 심정이 있다. 한 조각 정성이 어구 곁에 섞여 엉키었으니, 저 무도한 그릇된 형벌이 또한 어찌 백세에 없어지지 않고 흘러 내려가는 꽃다운 이름을 끊을 수 있으랴. 교리로서 어버이를 공양하려고 외직을 요청하여 야성에 나왔는데, 원이 된 지 3년 만에 잡혀 가서 나이 겨우 32에 죽었다. 그 글의 문채가 매우 맑고 기격이 삼엄하니, 글을 보는 사람이 스스로 마땅히 알 것이다. 〈소고집서〉
◈ 우리 성종이 인재를 아끼고 기르며 풍절(풍도와 기절)을 격려하여, 선비의 잘나고 뛰어난 사람이 많이 아울러 나왔으니 성대하다고 하겠는데, 액운의 기회를 만나 한 번 패하여 땅에 떨어지니 비교하건대 봄바람이 바야흐로 이르러 초목이 무성하다가 갑자기 얼음ㆍ서리의 참혹함과 비바람의 재앙을 만나서 부서지고 꺾어진 것 같아서 쓸쓸히 남은 것이 없으니, 또 매우 슬픈 일이다. 집에 간직한 유고가 거의 다 흩어져 없어졌는데, 달성부 수령[달성부백] 권후(후는 지방 수령이라는 뜻) 아무개는 바로 수헌 선생의 종손으로 곧 뜻을 다하여 모아서 재 나무로 판을 새기고 또 당시의 죄적을 뒤에 붙였으니, 백년 뒤에 수헌의 문장과 기절을 사라지는 데에 이르지 않게 한 것은 아무개의 힘이다. -서애(유성룡의 호)의 무오당적 발문
◈ 선비의 삶은 그 평생에 세운 것이 어떠한가일 뿐이며, 오래 살고 일찍 죽고 재앙을 입고 복 받은 것은 말할 만한 것이 못 된다. 만약 이 유고가 세상에서 없어지지 않는다면 향지의 이름이 천지간에 길이 보존되리니, 이는 충분히 향지의 불행을 위안하리라. -강혼의 발문
◈ 갑인년 겨울에 성종이 돌아가셨는데, 병진년에 시를 지었는데,
어쩌면 이렇게도 상기가 번개 치듯 빠를까
선릉(성종의 능)에 소나무의 달빛이 정히 거칠고 쓸쓸한데
하늘가에 통곡하는 외로운 신하의 눈물
하물며 동료와 떨어져서 흰옷으로 가는 것이랴
하였다. 탁영자에게 붙인시
◈ 병진년 11월 6일 기유날 밤 꿈에 천사(중국 사신)가 우리나라에 왔는데, 따라온 사람 가운데 점치는 종이 있었는데, 어머니의 사주조화를 물었더니, 점쟁이가,
“마땅히 1백 20세를 사실 것입니다.”
하여, 깨어서 미칠 듯 좋아하고, 벽 위에 써서 기록했다. 아! 병진년은 바로 어머님의 나신 해인데 병진년에 이런 꿈이 있음은 어찌 신과 사람이 모르는 가운데에 잠잠히 돕는 것이 아니랴. 또 시편을 지어서 오래 사시도록 비는 도움으로 하였다. -문집의 주
◈ 수헌이 야성으로 부임하려 할 적에 이목이 시를 지어 주기를,
지방관이 되기를 요청한 것은 단지 어버이를 위함일세
옥당의 학사는 귀양으로 이 세상에 내려온 신선이었네
10년 동안 요순 같은 임금과 그 혜택을 받은 백성을 이루려던 계획
충분히 남쪽 고을의 봄을 이루리라
하였다. -본집
◈ 예전에 창려는 나이 40에 머리가 희고, 이충은 나이 40에 수염과 머리가 반이나 희고, 안회는 나이 29에 머리가 희고, 범진은 40일 사이에 수염과 머리가 다 희어졌다지만, 내 나이가 그 몇 군자보다 못하고 또 그 몇 군자가 학문을 좋아하는 버릇과 시국을 걱정하는 근심을 따르지 못하는데, 검은 머리가 날로 희어지니, 어버이와 이별하고 나라를 떠나 오랜 세월을 나그네가 되어서 곤궁하고 몹시 울적하여 마음에 흔들려 나를 재촉하여 일찍 머리 희게 함은 옛사람이 이른바, 백발이 사람을 속여 짐짓짐짓 생긴다는 것이 아닌가. -백발을 읊은 글의 서문
◈ 일전에 내려 주신 아름다운 시편을 상자에 보관하여 보배인 수주처럼 여겼더니, 한 번 본 뒤에 문득 잃어 자취가 없으니 아마도 귀신이 빼앗아 갔나 봅니다. 요사이 흥 보내는 일이 반드시 많으시리니, 먼저 보여준 시를 아울러 꼭 써서 보여 주시어, 저를 흥기시킴이 어떻습니까. 또 이 못난 사람의 초고를 본래 차마 보실 것은 못 되지만, 다행히 얼핏 보시고 하나하나 고쳐 주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옛사람에 소군이 한 글자를 내려 준 것을 스스로 다행히 여긴다는 자가 있었는데, 하물며 내 나쁜 시의 글자와 뜻을 아직 퇴고하지 못한 것에 있어서이겠습니까. -김계운(계운은 일손의 자)에게 올린 시의 서문
◈ 9월 어느 날 밤 자리에서 간재의 시에 차운하기를,
밤비는 쓸쓸히 내리고
싸늘한 등불 밝게 빛나는데
서풍이 불어 잎이 다 떨어지니
가을소리 들리는 곳이 없네
하였다. -본집
◈ 손순효가 서읍령에 올라서 파괴령이라고 고쳐 불렀는데, 수헌이 시를 지어 이르기를,
탐천이 반드시 은지를 그르치지는 않았으니
이름 글자를 가지고 무지한 사람 놀래 주지 마오
구구히 파괴한다는 것 도리어 괴상하구려
읍령에는 모름지기 타루비를 새기게 할 것일세
하였다. 《동국여지승람》
◈ 수헌이 지은 시고(시고)를 가지고 김탁영(금탁영 김일손의 호)에게 고쳐 주기를 구할 적에 시를 지어 보내기를,
뱀을 그려 발을 붙였으니 졸렬한 것 꺼리지 마시고
바람 같은 도끼 잡고서 코등의 흙을 깎아 주시오
하여서, 탁영이 글로 답하여 이르기를,
“나에게 바람 같은 도끼가 없으니
어떻게 향지의 흙을 깎겠소.”
하였다. -본집
◈ 한 수재가 수헌에게 《시학대성》을 빌려 달라고 하였더니, 수헌이 시로써 보내어 이르기를,
건안(동한의 헌제의 연호)과 육대(중국 남조의 여섯 나라)는 문장의 수풀이지만
만약 성인의 문하에 비한다면 참으로 개미의 무덤일세
주공 공자의 문장이 해와 달같이 걸렸으니
한우 천 권은 장독 덮기에 알맞네
하였다. -본집
◈ 천계 연간에 어떤 사람이 상을 만나서 과천 땅에 산소를 정하였는데, 곁에 옛 무덤이 있었으니 바로 수헌공의 산소였다. 일을 시작한 지 며칠 되어 그 아들 한 사람을 시켜 일을 감독하게 하였는데 일이 끝날 적에 잘못하여 무덤 앞의 섬돌 몇 조각을 뽑았더니, 그날 밤 꿈에 붉은 도포를 입은 점잖은 이가 옛 무덤으로부터 나왔는데 노여운 빛이 있는 듯하였다. 그 사람이 얼떨결에 그 앞에 절하고 성명을 물었더니, 점잖은 이가 답하기를,
“나는 바로 한림 권 아무개이다.”
하고, 이어서 옛 무덤을 가리키며,
“저것이 내 집인데, 요사이 일꾼들이 내 집에 올라가 밟고 내 섬돌을 캐어 뽑아서, 나로 하여금 불안하게 하거늘, 자네가 어찌하여 꾸짖어 금하지 않았는가?”
하니, 그 사람이 역시 선비이기에, 본래 공의 사적을 알고 있으므로,
“공이 바로, ‘항우가 오강을 건너지 않는다.’란 부를 지은 분이 아닙니까?”
하니, 점잖은 이가
“그렇다.”
하자, 그 사람이 ‘예예’ 하면서 물러났다. 놀라 깨어보니 온몸에 땀이 흘렀다. 이튿날 몸소 옛 무덤 앞에 가서 그 섬돌 몇 조각이 과연 뽑힌 것을 보고 크게 기이하게 여기고, 곧 일꾼을 시켜 도로 빠진 곳을 고치고, 글을 지어 제사 지내면서, 이르기를,
“철인(명철한 사람)의 정한 신령이 한 줌 흙에 의지하여 백 년 뒤에도 능히 사람을 감동시키니, 이러한 것은 죽었어도 죽지 않았다고 할 것이다.”
하였다. 을축년 가을에 진사 이발곤 씨가 성균관에 있었는데, 함께 성균관에 있던 서울에 사는 사람이 이런 일을 전하였으며, 상을 만났다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의 사촌이라고 하였다.
<재편집: 오솔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