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는 유익한 자가 되었다.(9월 4일 낮 예배 설교)
빌레몬서1:1-22(신약 351)
빌레몬서는 25절 밖에 안되는 짧은 성경입니다. 성경에 있는데 조금은 무심하게 지나치기 쉬운 성경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빌레몬서에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빌레몬이란 분의 이름이 등장을 하는데 빌레몬이란 분은 바울의 제자인 에바브라의 전도를 받아서 예수님을 믿게 된 분으로 골로새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던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 사도는 이분에 대해서 매우 우호적으로 표현을 한 것으로 보아서 모범적인 지도자였던 것 같습니다.
빌레몬은 골로새 교회에서 매우 부유하게 사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유하면서고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는 분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본이 되는 분이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오네시모라는 분인데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집에서 노예로 살던 분이었는데 어느날 몰래 탈출을 해서 로마로 도망을 갔습니다. 바울 사도가 로마 감옥에 있을 때 이 분을 만났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서 아마도 로마에서도 나쁜 짓을 해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거기서 바울을 만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감옥에서 나은 아들이라고 한 것은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한데 감옥에 있을 때 그 감옥에 들어온 죄수였거나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는 자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지고 그래서 감옥에 있는 바울을 섬기는 일을 하던 사람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전에는 무익하였다고 하는 것으로 볼 때 오네시모는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로마 감옥에 있던 바울을 만나서 완전히 변화된 신실한 그리스도인 되었습니다. 특히 감옥에 있던 바울을 열심히 섬겼습니다.
바울은 그가 골로새 지역의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 친 노예였던 것을 알고 빌레몬에게 돌려 보내면서 부탁을 하는 그런 내용이 오늘 본문의 이야기입니다. 교부들의 기록에 의하면 오네시모는 나중에 에베소의 감독이 되었고 도미티안 황제의 박해 때에 순교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레몬에게 오네시모에 대한 부탁의 편지를 쓰면서 그는 과거에는 무익한 존재였지만 지금은 너와 나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오네시모라는 분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를 보여주신 분입니다.
과거에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노예였지만 빌레몬의 돈을 훔쳐서 도망간 것으로 보입니다. 빌레몬에게 있어 오네시모는 쓸모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로마 감옥에서 바울을 만나서 예수님을 영접한 다음에는 바울의 사역에 필요한 사람이 되었고 바울의 표현대로라면 빌레몬에게도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쓸모없는 사람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영접한 뒤에는 누구에게나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나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전에는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믿은 다음에는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답게 세상을 향해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세상에 유익을 주는 참빛교회로 세워갑시다. 오늘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서 “이제는 유익한 자가 되었다.”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동역자인 빌레몬
빌레몬서는 바울 사도가 빌레몬이란 분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레몬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빌레몬을 동역자라고 묘사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빌레몬에게 동역자란 표현을 한 것은
빌레몬의 집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1-2절을 보면
1:1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1:2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바울 사도는 빌레몬에 대해서 우리의 사랑 받는자요, 동역자라고 묘사를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빌레몬에서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라고 묘사한 것은 빌레몬이 신실한 믿음의 사랑으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었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빌레몬을 동역자라고 묘사하면서 그의 집에 있는 교회에게 문안한다고 했는데 이 말은 빌레몬의 집에 골로새 교회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바울 사도가 골로새 교회에게 쓴 편지가 골로새서인데 골로새 교회는 바울 사도가 세운 교회가 아니라 바울의 제자인 에바브라가 세웠습니다.
바울이 직접 개척하지는 않았지만 에바브라를 통해서 개척을 하고 그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바울이 빌레몬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골로새 교회의 중요한 인물들의 이름을 언급한 것입니다. 압비아, 아킵보 에바브라는 골로새 교회의 중요한 인물들입니다.
중요한 것은 골로새 교회가 빌레몬의 집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은 빌레몬을 동역자라고 묘사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는 규모가 큰 집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집에서 예배를 드리게 했고 그렇게 해서 교회들이 세워졌는데 빌레몬의 집에서 골로새 교회가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으로 동역자라고 묘사하면서 빌레몬이 행한 일 즉 주 예수와 모든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믿음에 대해서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3-5절까지를 보면
1: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1:4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1:5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들어서 알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빌레몬이 행한 일들에 대해서 들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빌레몬이 예수님에 대해서 모든 성도들에게 대해서 사랑과 믿음이 있었다고 들었다는 말을 해석함에 있어서
주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 대한 빌레몬이 진실된 사랑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기록한 그대로 해석을 하면 빌레몬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의 열정이 있었고 또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열정이 있었고 성도들에 대해서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사랑과 교회 공동체에서 하나 된 믿음이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빌레몬에 대해서 들었을 때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모든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충만함을 알았고 그렇기 때문에 빌레몬에게 동역자란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빌레몬이 행한 일들로 말미암아 성도들이 평안을 얻었다고 기록했습니다. 6-7절을 보면
1:6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1:7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받았노라”
빌레몬은 자기 집에서 교회를 시작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충만했고 또한 성도들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충만했을 뿐만 아니라 빌레몬이 성도들과 믿음의 교제를 나누었고 많은 성도들이 빌레몬으로 인해서 평안을 누렸다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의 마음이 빌레몬으로 인해서 평안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빌레몬이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베풀어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빌레몬은 성도들을 향해서 진정한 사랑을 베푸는 사람이었고 그로 인해서 많은 성도들이 위로를 받았고 또한 그의 사랑의 섬김으로 인해서 교회 공동체가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사랑으로 섬기고 헌신함으로 우리가 속한 교회 공동체가 위로를 얻고 평안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빌레몬처럼 서로 섬기고 위로하고 사랑을 베풀어 줌으로 함께 평안하게 세워져 가는 교회 공동체를 세워갑시다.
2. 오네시모를 위한 간구
바울은 빌레몬에서 편지를 쓰면서 목적을 가지고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빌레몬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할 일이 있어서 편지를 썼는데 오네시모라는 분을 위해서 부탁하는 편지를 썼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위해서 부탁하면서
네게 명령할 수도 있으나 사랑으로 간구한다고 말했습니다. 8-9절을 보면
1: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1: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바울은 빌레몬을 동역자라로 말하면서 빌레몬이 행한 사랑에 대해서 칭찬을 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은 오네시모를 위해서 부탁하기 위해서 먼저 빌레몬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이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이야기 하면서 내가 사도이고 골로새 교회도 내 제자가 세운 교회이고 하니까 나는 너에게 명령할 수도 있지만 나는 너를 동역자로 대하고 있고, 또한 골로새 교회의 지도자로 인정하기 때문에 명령을 하기 보다는 너의 사랑에 호소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어떤 마음으로 서로 섬겨야 하는지를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동역자로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내 의견을 일방적으로 주장하거나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는 공동체로 세워져 가야 할 줄 믿습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네 승낙이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12-14절까지를 보면
1: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빌레몬에게 부탁하는 것은 오네시모를 바울 곁에서 일하게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바울은 오네시모의 주인인 빌레몬의 허락이 없이는 그 일을 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오네시모가 바울의 사역을 위해서 꼭 필요하지만 빌레몬의 허락 없이는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존중하고 그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그가 자원해서 오네시모를 자기를 위해서 보내주길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하든지 자원하는 것을 기뻐 받으십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것 보다는 무엇이든 자원해서 기쁨으로 헌신하고 자원해서 봉사하는 것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이번 항존직 후보로 자원해서 등록하시고 자원해서 장로님으로 안수집사님으로 권사님으로 헌신하고 봉사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직분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것보다 즐겁게 기쁘게 자원해서 지원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영접하되 나를 영접하는 것 같이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16-17절을 보면
1:16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1: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바울은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 나온 오네시모를 다시 돌려보내면서 과거에는 오네시모가 종이었지만 이제는 과거처럼 종으로 대하지 말고 주 안에서 사랑받는 형제로 인정해 줄 것을 부탁하면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안다면 오네시모가 돌아갈 때 나를 영접하는 것처럼 대해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오네시모는 하찮은 종이었다면 지금은 주님을 위해서 그리고 바울의 선교를 위해서 귀하게 사용받는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이 되었으니 육신의 신분으로는 여전히 종의 신분이겠지만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꾼으로 인정해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과거에 종이란 신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이 들어오고 나서 주인과 종의 관계지만 주인이 예수님을 믿고, 종도 예수님을 믿게 된 경우에 신분을 뛰어넘어서 종을 교회의 직분자로 세워주고 목회자로 세워준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분은 주인은 집사님이고 종은 장로님으로 세워주는 경우들도 있어서 주인이 종인 장로님을 깍듯하게 예우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입니다. 세상의 신분과는 상관없이 믿음 안에서 한님 나라를 위해서 서로의 직분을 인정하고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3. 변화된 오네시모(전엔 무익하나 지금은 너와 나에게 유익하다.)
바울은 과거의 오네시모와 지금 변화된 오네시모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오네시모가 과거에는 종으로 살다가 주인 집에서 몰래 도망쳐 나온 못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변화된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는데 오네시모가 그렇게 된 것을 설명하면서
갇힌 중에 나은 아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10절을 보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종으로 골로새에서 로마로 도망을 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로마에서 감옥에 갇힌 바울을 만났습니다.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을 때 만났다는 것은 오네시모도 감옥에 갇힌 죄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을 갔는데 로마에서 어떤 죄로 잡혔는지 모르지만 죄를 지어서 감옥에 갇혔던 것 같습니다.
감옥에서 오네시모는 바울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바울을 만나서 예수님을 믿게 된 오네시모는 바울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봉사를 했습니다. 바울을 섬기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일하는 신실한 주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삶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변화된 그리스도인으로 신실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오네시모를 옥중에서 나은 아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오늘날 교정 선교회가 그 역할을 하면서 죄를 지어서 갇힌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변화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고 변화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감옥에서 나은 아들이라고 말하고 그는 이제 나의 신복이라고 말했습니다. 12-13절을 다시 보면
1: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바울은 오네시모가 감옥에서 만나서 예수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나의 심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심복’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스플랑크나’인데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내장’이나 ‘핵심’을 의미하기도 하고 여기서는 ‘마음’을 뜻하며 동시에 ‘바울 자신’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된 것입니다.
바울이 심복이라고 말한 것의 원어적 의미는 그는 나의 마음이고 그가 곧 나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오네시모는 바울 자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현대어 성경은 심복이란 단어를 “내 분신” 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공동번역은 “내 심장” 이라고 번역했습니다. 12절을 공동번역으로 보면 “나는 그를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그것은 내 심장을 떼어 보내는 셈입니다.” 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표현대로라면 오네시모는 바울을 위해서 돕는 역할 정도가 아니라 바울의 분신 같은 존재로 복음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그는 종이었고 감옥에 만난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내 분신과 같이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죄인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주님의 귀한 일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작은 예수로 예수님의 분신과 같은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는 성도로 살아가야 합니다.
전에는 무익했으나 이제는 유익한 존재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11절을 보면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서 도망갔을 뿐만 아니라 도망가기 전에도 유익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무익한 오네시모의 개종 전후의 변화 상태를 나타내기 위해서 ‘무익하였으나’(아크레스톤)와 ‘유익하므로’(유크레스톤)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이 두 단어는 비슷한 음을 가졌으나 정반대의 뜻을 나타내고 있어 오네시모의 변화 상태를 언어적으로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많은 연구자들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의 재정을 담당한 노예였는데 자기가 관리하던 상당히 많은 돈을 훔쳐서 도망을 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8절에 보면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이 말은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금전적인 피해를 입혔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돈을 훔쳐서 달아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무익한 즉 큰 손해만 입힌 나쁜 종이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그랬던 오네시모가 바울을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한 다음에는 유익한 사람이 되었는데 바울에게는 분신 같은 존재이고 바울의 사역을 돕는 일을 하는 바울을 섬기는 자로서 유익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빌레몬에게는 어떤 유익을 주는 사람일까를 생각해 보면 골로새 교회와 빌레몬이 바울의 사역을 도울 마음이 있었는데 여러 사정상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오네시모가 대신 할 수 있기 때문에 빌레몬에게 유익하다고 말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19절에서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이란 표현을 했습니다.
19절에 ‘빚진’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소페일레이스’는 18절에 언급한 ‘오페일로’(빚지다)와 ‘프로스’(더하여)의 합성 동사입니다. 여기서 ‘프로스’는 빌레몬이 바울에게 진 빚이, 바울이 오네시모로 인해서 빌레몬에게 갚겠다고한 빚보다 더 큰 빚이란 의미입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네가 나에게 진 빚에 비하면 오네시모의 빚은 작은 것이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것은 바울이 빌레몬에게 영적인 아버지로서 영적인 빚을 진 것이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빌레몬이 영적으로 바울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바울에게 빚진 자인데 오네시모가 바울을 위해서 헌신하도록 허락하면 네가 나에게 진 영적인 빚을 갚은 것이기에 너에게도 유익한 것이라고 말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오네시모와 같이 무익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그리고 가정과 사업체와 직장과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유익한 사람이 되었음을 믿습니다.
무익한 과거의 내가 아닌 예수님을 만나 모두에게 유익을 주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