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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Stages
초기 단계
Thinking back over my forty-three years of active association, I have no doubt that the almost unquestioning submission found among Jehovah’s Witnesses develops gradually. I have no hesitation in saying that I gained considerable knowledge of the Scriptures from my active association with the Witness organization, far more than I had previously.29 At the same time, I eventually came to realize that the organization itself brought people along only to a certain point. It brought them, at times, from Biblical “illiteracy” to what might be called a “second- or third-grade level.” They learned how to locate specific texts in the Bible, received some knowledge of Biblical history, and read for themselves certain fundamental teachings directly in the Scriptures and for many this was not only helpful but very impressive. If there is any one thing I am grateful for as regards my forty years of full-time service as a Witness, it is that at least I did turn the attention of some persons to the Bible who previously knew little or nothing about it. In this particular aspect the work of Jehovah’s Witnesses merits commendation and the failure of many religious denominations to build up interest in the Bible merits concern. In directing people to God’s Word as found in the Scriptures, Jehovah’s Witnesses perform a helpful service. 43년간의 활동적인 조직과의 연합을 돌이켜 보면, 여호와의 증인 가운데에서 조직에 대한 복종심이 점차 강조되어 온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나는 증인 조직과 활동적으로 연합함으로써 내가 이전에 가졌던 성경에 대한 지식보다 훨씬 더 많은 지식을 얻었다고 주저없이 말할 수 있다. 29 동시에, 조직은 사람들을 성서에 대한 지식의 특정 지점까지만 데려왔다는 것을 결국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그들을 성서에 대한 "문맹" 단계에서 "2단계나 3단계 수준"으로 높여 주는 역할을 간혹 담당했었다. 사람들은 성경에 있는 특정한 본문들을 찾는 방법을 배웠고, 성경 역사에 대한 약간의 지식을 얻었으며, 성경에서 어떤 근본적인 가르침을 직접 읽게 되었으며, 이것은 그들에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매우 인상적이었다. 내가 40여년 동안 증인으로 활동한 것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있다면, 적어도 전에는 그것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거나 전혀 알지 못했던 몇몇 사람들의 관심을 성경에 돌렸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별한 측면에서는 여호와의 증인의 업적이 표창을 받을만하며 많은 기독교 교파들이 성경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것은 꾸중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성경에 나온 대로 사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는 데 있어서 여호와의 증인은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고 있다. If only that initial direction were held to and built upon in what follows—but there is where the problem rests. 만약 이러한 초기 방향이 유지되고, 계속하여 가르침에 기초한 믿음이 세움을 받는다면, 문제점은 다른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After this initial raising of their level of knowledge, the vast majority of persons enter onto a plateau. The longer they associate the more organizational teachings take preeminence over actual study and meditation on the Scriptures themselves. As a result, many, perhaps most Witnesses, after twenty, thirty or forty years of association know relatively little more about the Bible than they did after their first year or so of association. They are left as children, with great dependence on the “mother” organization, and a feeling of insecurity without its direction of their thinking and lives. Their spiritual growth stagnates—unless they themselves go beyond the Society’s “program” and by personal effort gain greater knowledge and understanding of Scripture. As a result of letting the organization act as their conscience for them, their spiritual strength is in some respects less in later life than it was in their early period of association. They may endure hardships, even sacrifice, to be loyal to the organization and thus may give the appearance of spiritual fortitude. But they do not have the strength to make genuinely personal decisions of conscience and accept the consequences of those decisions. 여호와의 증인들의 경우, 초기의 지식수준이 상승한 후에, 고원과 같은 정체기로 들어간다. 그들이 더 오래 연합할수록 성서 자체에 대한 실제의 가르침에 있어서 개인연구와 명상보다 조직의 가르침이 훨씬 더 뛰어나다는 것을 의무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 결과, 아마도 20년, 30년, 40년 간의 연합한 후라 하더라도, 대부분의 증인들은 첫 해나 그후 몇해 동안 얻은 성경 지식보다 성경에 대해 비교적 거의 더 알지 못한다. 그들은 '어머니'에 비유되는 조직에 크게 의존할 뿐이며, 그들 자신의 사고와 삶의 방향으로는 마치 어린이와 같은 상태로 불안감을 느끼면서, 조직에 의존하여 성장이 머물게 된다. 그들의 영적 성장은 침체된다. ㅡ 그들 스스로 협회의 "프로그램"을 넘어서고 개인적인 노력으로 성경에 대한 더 큰 지식과 이해를 얻지 못한다면 ㅡ 조직이 그들을 위한 양심의 역할을 대신한 결과, 그들의 영적 힘은 어떤 면에서는 연합의 초기 시절보다 약화된다. 그들은 조직에 충성하기 위해 고난, 심지어 희생도 견뎌낼 수 있고, 따라서 강인한 영적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순수한 개인적 양심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며 그 결정의 결과를 받아들일만한 힘을 확신할 수 없게 된다. Initially I was attracted by the appeal to reasoning made by many Watch Tower publications. Since these publications were often designed to encourage people of other religions to reexamine and reevaluate, even to question, the validity of their religion’s teachings, it was imperative that these publications stress the need to think for oneself, to do independent thinking. People in the beginning are regularly encouraged not to believe teachings without first testing them thoroughly according to Scripture. But the testing is restricted almost entirely to the individual’s previously held beliefs, and only certain of these are targeted for testing. Such teachings as the inherent immortality of the human soul, the belief in a hell of literal fire and physical torment or similar points are the focus of much of the “testing.” The argumentation is generally quite well developed on these points. Because of this the person is often sufficiently impressed that, as other presentations of teachings follow, he or she inclines to accept these more or less on trust, without requiring the same evidence. 처음에는 나도 워치타워 출판물들이 만든 많은 추리에 매력을 느꼈다. 이러한 출판물들은 종종 다른 종교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종교의 가르침의 타당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기 위해 재점검하고 재평가하도록 고안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출판물들은 반드시 스스로 생각하고 독립적인 사고를 할 필요성을 강조해야 했다. 성서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초기에 성경에 따라 먼저 철저히 시험하지 않고서는 가르침을 믿지 말도록 반복적으로 권함을 받는다. 그러나 그 시험의 대상은 거의 전적으로 연구생 개인이 이전에 가지고 있던 교리적 관념에 제한되며, 이것들 중 오직 특정한 것만이 시험의 대상이 된다. 인간의 영혼에 내재된 불멸성, 문자 그대로의 지옥에 대한 믿음, 육체적 고통 또는 이와 유사한 점들과 같은 가르침들이 '시험'의 초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워치타워의 논증이 꽤 잘 발달되어 있다. 이 시험을 거친 때문에 그 사람은 다른 특수 가르침을 제시하더라도, 증거를 요구하지 않고 워치타워 조직에 대한 신뢰심으로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Remarkably, most Witnesses are so impressed by these initially targeted teachings about the soul’s mortality, hell’s being synonymous with the grave or the death state, and similar points that they think and speak of them as “the basic doctrines” of the Scriptures, teachings forming the principal criteria for identifying the one, true religion. 대부분의 증인들이 영혼의 멸성, 지옥이 무덤이나 죽음의 상태와 동의어가 되는 것, 그리고 이와 비슷한 점들에 매우 감명을 받아, 그것들을 성경의 "기본 교리"로 생각하고 언급하며, 하나뿐인 참 종교를 식별하기 위한 주요 기준을 형성하는 가르침들이라는데 매우 인상적이었음은 주목할 만하다. Yet one cannot find in the Bible even one chapter devoted to a discussion of such subjects. It is not that people in Bible times did not have beliefs about the immortality of the soul, or a place of torment for the wicked. Most races and religions did. But the Bible writers were not inspired to make discussion or refutation of these the prominent, fundamental subjects of their writings. The texts and statements that do relate to them are only incidental to the discussion of other topics. 그러나 그런 주제에 대하여 토론이 일어나는 내용을 성경에서 한 장도 찾아볼 수 없다. 성서시대 사람들이 영혼의 불멸, 즉 악인을 위한 고통의 장소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대부분의 인종과 종교는 그러한 것을 믿었다. 그러나 성서 필자들은 이런 두드러지고 근본적인 주제들에 대한 토론이나 반박을 기술하는 곳은 성서 어디에도 없다. 그점과 관련된 성서 본문과 내용은 다른 주제에 대해 논의하면서 일어나는 부수적인 점일 뿐이다. The average Witness, then, may feel quite well equipped to discuss the soul or hellfire but feel quite lost if asked to discuss, for example, Paul’s letter to the Romans and its forceful arguments regarding salvation by faith, not by works. Aside from a certain set of “proof texts” used in support of principal Witness teachings, the majority of members would find great difficulty in discussing intelligently most of the apostolic letters. 그렇다면 증인들은 보통 영혼이나 지옥불에 대해 토론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느낄 수도 있는 한편, 예를 들어 바울이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행위가 아니라 믿음에 의한 구원에 관한 강력한 주장을 토론하도록 요청받으면 상당히 헤멘다는 감을 받는다. 증인의 주요 가르침을 지지하는 데 사용되는 특정한 일련의 "골자 성구"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증인들은 사도의 편지 내용을 토론하는 데 있어서 지적인 어려움을 크게 겪을 것이다. |
Catechistical Approach
교리 문답식 접근
While “personal study” is often encouraged, that study is carefully programmed. Witnesses are expected to read specific Watch Tower publications in preparation for the five weekly meetings. Although one of these meetings includes a reading of one or more chapters of the Bible, this represents only a minor portion of the total assigned material.30 Focus is on the organization’s own publications rather than the Scriptures themselves. The meetings where the assigned material is discussed are themselves also thoroughly programmed, with no open discussion provided for. They are largely questionand-answer sessions, with the questions already prepared by the organization and the answers set forth in the assigned publication. This is a “catechistical” approach which does not encourage genuine mental effort or frank discussion but merely the repeating (even if in one’s own words) of the thinking of the headquarters organization. Actually, in almost every meeting I have attended a large percentage of those participating read their response to the question word for word directly from the assigned publication. "개인 연구"는 자주 장려되지만, 그 연구의 방식은 조심스럽게 짜여있다. 증인들은 주 5회 집회에 대비해 구체적인 워치타워 출판물을 미리 읽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집회들은 성경 한두 장 이상에 대해 읽기를 포함하지만, 이는 전체 할당된 자료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30 성서 자체보다는 조직 자체의 출판물에 초점을 맞춘다. 배정된 자료가 논의되는 집회 자체도 철저히 프로그램화되어 공개 토론이 제공되지 않는다. 이들은 대부분 질의응답 방식의 토론으로, 조직에서 이미 준비한 질문과 배정된 출판물에 제시된 답변이 있다. 이것은 순수한 지적 노력이나 솔직한 토론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 본부의 생각을 반복적으로 주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교리 문답식' 접근법이다. 사실, 내가 참석한 거의 모든 집회에서 대부분의 답변자들은 주어진 출판물로부터 인쇄된 그대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직접 읽었을 뿐이다. Aside from this rigid programming, another reason there is seldom any raising of serious questions is, as the Watchtower and Awake! articles quoted point out, that most people find “thinking is hard labor.”31 Most are willing for others to do their thinking for them, though, as again those articles observe, they ‘like to believe that they are doing their own thinking’ and to believe that what they adopt as truth has come through their use of their mental powers.32 The information contained in the Society’s publications is presented with great positiveness and few feel inclined to question its rightness or put forth the mental effort to test its arguments. 이러한 경직된 집회 방식을 제외하더라도, 이런 점에서 좀처럼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파수대와 깨어라! 기사의 인용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은 힘든 노동"이기 때문이다.31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대신 하기를 기꺼이 원하지만, 앞의 기사들에서 관찰했듯이, 그들은 자신이 생각했다고 믿고 싶어하며 그들이 진리로 채택한 것이 그들의 정신력의 사용을 통해 이루어졌다고 믿고 싶어한다.32 협회의 출판물에 포함된 정보는 매우 긍정적이라 믿으며, 그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주장을 검증하기 위한 지적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So, while questions are permissible, the questioner is always expected to accept whatever answer is provided from the organization’s publications. The individual should allow himself to be “readjusted” by what the publication says. For one to state that the publication’s answer is frankly not satisfying, that the argument does not appear to be sound, that human reasoning and interpretation seem to be superimposed on Scripture, is to lay oneself open to possible labeling as “self-willed,” “lacking in humility,” “presumptuous.” Doubts are deemed a lack of faith, evidence of spiritual weakness, a prideful spirit, a leaning toward apostasy. 따라서 질문은 허용되지만 질문자는 항상 조직의 출판물에서 제공되는 답변에 대해 모두 수용해야 한다. 개인은 출판물이 알려주는 방식에 의해 "읽혀"지도록 해야 한다. 출판물의 내용이 솔직히 만족스럽지 못하며, 주장이 건전해 보이지 않는다거나, 인간의 추리와 해석이 성경에 덧붙여진 것으로 보인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것은, '고집이 세고', '겸손이 부족하며', '건방지다'라는 인상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출판물의 내용을 의심하는 것은 믿음의 결여, 영적 나약함의 증거, 자만심, 배교 쪽으로 기울어진 것으로 간주된다. True, there is periodic acknowledgement in the publications that the writers are, after all, “imperfect men,” and that the organization has “never claimed to be infallible.” In actual practice it works out quite differently. One finds out that this only applies to the past, not to the present. While the organization must recognize that it has changed a considerable number of its past teachings—which makes it evident that they were in error—it does not feel moved to modesty by those errors, so as to remind its readers that what it now says may also suffer due to that same imperfection. To the contrary, Jehovah’s Witnesses are called on to take whatever is currently taught as if it were infallible. In effect they are told, “You should accept everything published as absolute truth until such time as we may tell you it isn’t.” This is, purely and simply, mind control. In all this, the Watch Tower organization is not engaging in something new or distinctive. It is simply following a pattern, one common in the past and in the present. 출판물에서 필자들도 결국 '불완전한 사람들'이라는 것과, 조직이 "완전무결하다고 주장한 적이 없다"는 인정을 주기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상황에서는 그것은 꽤 다르게 이루어진다. 그러한 불완전함과 완전무결치 못함은 현재가 아니고 과거에만 적용시키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 조직은 과거의 가르침 중 상당 부분을 변경시켰다는 것을 인식한다면ㅡ이는 그들이 잘못했다는 것이 명백한 것으로서ㅡ그러한 오류를 겸손하게 인정해야 하며 지금 주장하는 것 또한 그와 같은 동일한 불완전함 때문에 잘못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야 한다. 그럼에도 조직은 반대로 여호와의 증인들은 현재 조직이 가르치고 있는 모든 것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요구한다. 실제로 그들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변경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때가 될 때까지, 여러분은 출판된 모든 것을 절대적인 진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완벽히 마인드 컨트롤이다. 이 마인드 콘트롤이라는 면에서, 워치타워 조직은 세상의 방식과 전혀 새롭거나 독특한 것으로 구별되어 있지 않다. 조직은 과거와 현재에 공통적인 패턴을 단순히 따르고 있을 뿐이다. |
Intellectual Intimidation
지적 으름장
To achieve this surrender of one’s thought processes, congregation members are constantly presented with the organization’s claims of divine backing and authority, of the “faithful and discreet slave.” As but one example, the June 15, 1964, Watchtower on page 365 stated: 이러한 사고 과정에 굴복시키기 위해 회중 성원들은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에 대한 신성한 지지와 권위에 대한 조직의 주장을 받아들이도록 끊임없이 요구받는다. 하나의 예를 든다면, 파수대 1964년 6월 15일 365면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였다: |
As Jehovah revealed his truths by means of the first-century Christian congregation so he does today by means of the present-day Christian congregation. Through this agency he is having carried out prophesying on an intensified and unparalleled scale. All this activity is not an accident. Jehovah is the one behind all of it. 여호와께서 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을 통해 진리를 밝히셨듯이 오늘날 그분은 현재의 그리스도인 회중을 통해 진리를 밝히신다. 이 대리기구를 통해 그분은 더욱 강화되고 비할 데 없는 규모로 예언을 하고 계신다. 이 모든 활동은 우연이 아니다. 여호와께서 이 모든 것을 위하여 일하신다. |
We understand that God “revealed his truths” at the time of the first-century congregation by divine inspiration, by divine communication and direction to the apostles and others, with the result of inspired speech and writings that are as true today as they were nineteen hundred years ago. To say that “so he does today by means of the present day Christian congregation” is, for all practical purposes, to claim divine inspiration. Jehovah is made responsible for “all of it” and what servant of God would want to resist Him? As former traveling overseer Ron Frye observed: 우리는 1900년 전, 하나님께서 1세기 회중들에게 신성한 영감에 의해, 사도들과 제자들을 통하여 신성한 소통과 지시를 내리신 것처럼,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같은 영감을 받은 참된 말씀과 기록의 결과로 "그분의 진리를 밝히셨다"고 이해한다. "그래서 그분께서 오늘날 그리스도인 회중들에게 진리를 밝히신다"는 말은, 실제적으로 모든 의미에서,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데, 하나님의 어떤 종이 감히 하나님을 거역하겠는가? 전 여행하는 감독자인 론 프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The Society doesn’t claim to be inspired, but it speaks with the same degree of authority as though it was and is, and they demand that they be taken at face value as though they are inspired, not even permitting people to question, or to have doubts or reservations about anything they teach. Then they beg off from responsibility when something has to be changed or corrected or some prophecy goes unfulfilled. 협회는 영감을 받았다고 주장하지는 않지만, 마치 영감을 받은 것과 같은 정도의 권위를 가지고 말하고,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거나, 그들이 가르치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의심하거나 유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들이 영감을 받은 것처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질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어떤 것이 바뀌거나 수정되어야 하거나 어떤 예언이 달성되지 못할 때 책임을 회피한다. |
In place of “inspired” information, the publications regularly speak of the organization as uniquely possessing “revealed” truth. On this, Frye comments: 출판물에서 "영감받은" 소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대신, 워치타워 조직이 "밝혀진" 진리를 유일무이하게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언급한다. 이에 대해 프리에는 이렇게 말한다: |
The use of the term “revealed” as opposed to claiming inspiration is merely a matter of semantics—a distinction that represents no difference—and is only called upon to explain away changes, contradictions and disappointments. If you take the view that they are merely a group of religious men, sincere but not especially guided divinely, then their experiences make sense, because it illustrates the human factor—miscalculations and cultishness and so on. But, on the other hand, to argue that Jehovah is behind all of this, then it doesn’t make sense. 영감 받았다라는 주장과는 다르게 "밝혀진"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의미론적인 문제일 뿐ㅡ차이점을 나타내지 않는 구별이다ㅡ변경, 모순, 실망감을 없애기 위해 사용되었을 뿐이다. 그들이 단순히 종교적인 사람들의 집단일 뿐이어서, 성실하지만 특별히 신적 인도를 받지는 않는다는 관점을 받아들인다면, 그들의 경험이 의미를 발생신킨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적인 요소 ㅡ 틀린 연대 계산과 컬트적 요소 등ㅡ을 잘 덮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일의 배후에 있다고, 말이 되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다. |
The concept of “revealed truth” is employed repeatedly. If it is revealed, who revealed it? The claim is that God did. How then can it be anything other than inspired, infallible? The contrast, however, between the revelation of truth to the apostles and others in the first century as compared with the history of shifting, fluctuating teachings of the Watch Tower organization in modern times, is enormous. '밝혀진 진리'라는 개념은 출판물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다. 밝혀진다면 누가 밝혔는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영감을 받았다는 것 외에, 어떤 다른 주장이 될 수 있는가? 그러나 현대의 워치타워 조직의 변화하고 요동치는 가르침의 역사와 비교했을 때 1세기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진리가 계시된 것은 엄청난 대조를 이룬다. |
The Office of Divine Prophet
신성한 예언의 직분
By somewhat similar shading of expressions, the organization states that it does not make original prophecies, that it merely proclaims those already found in Scripture.33 This, of course, is not in full harmony with the facts, since in the past it has published predictions centered on certain dates nowhere mentioned in Scripture. Nonetheless, this presentation enables it to claim prophetic office while at the same time exempting itself from the responsibility and accountability that rightly accompany that office. After quoting God’s words to the rebellious people of Ezekiel’s time that they would “certainly know also that a prophet himself happened to be in the midst of them,” the book “The Nations Shall Know that I Am Jehovah,” written by Fred Franz and published in 1971, makes these points (page 70): 다소 비슷한 논점의 표현으로써, 조직은 독창적 예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성서에서 나와 있는 예언만을 해설한다고 진술한다.33 물론 이것이 사실과 일치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것은 불과 수십년전만 하더라도 성경에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특정 시기를 중심으로 예측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예언적 발표는 예언적인 직분을 주장함과 동시에 그 직분에 수반되는 책임으로부터 자신을 면제해 줄 수 있다. 프레드 프란츠가 집필하고 1971년에 출간한 <열국은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70면)은 에스겔 시대의 반항적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한 뒤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
33이와 병행하여, 그것은 에스겔 시대의 백성들과 동일한 형태의 종교적 사람들에게 보내진 현대의 에스겔 반열의 힘든 임무였다. 이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증인들을 그리스도교국이 어떻게 보든지 관계없이 그때는 반드시 도래하며 그것은 곧 오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교국을 형성하고 있는 자들은 실로 여호와의 "예언자"가 그들 가운데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
Later, on page 292, the book takes the matter much farther, saying:
이 내용에 이어 292면에서는 이 문제를 심지어 이렇게 부연한다:
36우리는 이런 사람들과 같은 우유부단하고 응답없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된다. 너무 늦기 전에 그들 가운데 그리스도인 정통 예언자 반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며, 성서의 소식에 대해 "인간의 말이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살전2:13) 에스겔 반열이 충실하게 전한 소식에 관해 여호와께서는 "이는 반드시 실현된다"라고 적극적으로 선언하십니다. 그분은 그 예언이 실현될 때까지 결정하지 않은 채 기다리는 자들이 "또한 예언자가 그들 가운데 있음을 친히 입증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임"(겔33:33)을 맹세코 단언하십니다. 그러나 알게 되더라도 때가 너무 늦어 구원을 받지 못함은 그들의 마음과 삶의 방식이 변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37 여호와께서 우리 세대내에 순수한 예언자를 일으킬 수 있으며, 일으켰다는 사실을 끝까지 망설이고 의심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리스도교국과 나머지 큰 바벨론에 임할 "큰 환란"이 빠르게 다가오는 가운데서 아무도 필요한 하나님의 승인과 보호를 받지 못할 것임은 확실합니다. |
Thus, the “faithful and discreet slave class” is called the “Ezekiel class” (as also the “Jeremiah class,” the “Elijah class”— used as applying to them for the period before and up to Judge Rutherford’s death in 1942, and the “Elisha class”—considered as applying from and after that event).34 The book says that Jehovah “has raised up a genuine ‘prophet’ within our generation.” What servant of God would not feel compelled to heed the words of such a “genuine prophet” of God? In fact the quoted material warns of dire results to any who hesitate and have doubts and therefore fail to accept what this “prophet” says. 따라서 "에스겔 반열"로 불리는 "충실하고 슬기한 종 반열"은("예레미야 반열", "엘리야 반열"로도 불리며,ㅡ 1942년 러더포드 판사가 사망하기 이전과 이후의 기간 동안 그들에게 적용할 때 사용되었으며, "엘리사 반열"ㅡ이는 러드포드 판사 사망 이후에 적용된 것으로 생각된다.)34 이 책은 여호와께서 "우리 세대 내에 순수한 '예언자'를 일으켜 세웠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어떤 종이 그런 하나님의 "진정한 예언자"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을 수 있을까? 사실 인용된 자료는 예언자의 말에 망설이고 의심하는 모든 사람에게 끔찍한 결과를 경고하는 것으로 보아서 이 "예언자"가 말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Frequently quoted is the text at Amos 3:7, which reads: 자주 인용되는 본문은 아모스 3:7이며, 다음과 같다: |
The Sovereign Lord Jehovah will not do a thing unless he has revealed his confidential matter to his servants the prophets. 주권자인 주 여호와는 자신의 내밀한 일을 자신의 종인 예언자들에게 밝혀 주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다. |
What is there said of the prophets is arbitrarily transferred over to modern times, and Witnesses are told that the Scriptures’ “prophetic meaning is made known to us through the ‘faithful and discreet slave,’ that group of anointed Christians whom the Master, Jesus, is using now,” and that “Jehovah provides his loyal servants with advance knowledge about this system’s end.”35 Examples of this “advance knowledge” may be found in various Watchtower articles of the 1970s and 1980s (see footnote).36 These utilize news reports current at the time as evidence that “events leading to [Babylon the Great’s] destruction already are under way, . . . yes, right now [in 1980], events are taking place that are preparing the way for that execution” (with “militarized political powers,” “radical elements of the U.N.,” pointed to as the imminent destroyers), and that the “rumblings of that approaching confrontation are to be heard often in the news of the day.” In support, quotations were made as to Communist hostility toward religion. This was a “persistent, obvious sign.” The “dropping of the waters” of the river Euphrates that preceded ancient Babylon’s destruction was said to be having a modern fulfillment through a dropping of people’s support for the world’s religions and particularly Christendom. The “overall trend” was stated to be “unmistakable” and, again, news items of the day were presented as “the writing on the wall” evidencing that this impending destruction would occur “very soon.” Now, in the 2000s, the world picture has altered dramatically, communist animosity to religion has dissipated (with the demise of—not world religion—but of communism itself seeming possible) and there is an indication of a resurgence of religious interest in a large section of the globe. Yet Witnesses were assured that the predictions made on the basis of then-current news reports were all evidences of God’s revealing his “confidential matters” to a modern-day prophet organization and that all Witnesses had greater reason to go out boldly and confidently to proclaim this “advance knowledge” from God. 예언자들에 대해 언급된 내용은, 임의로 현대적 성취로 옮겨지며, 증인들은 주인인 예수께서 지금 사용하고 계시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성경'의 예언적 의미를 듣게된다. '여호와께서 충성스런 자신의 종들에게 이 제도의 끝에 관한 지식을 앞서 제공하신다고 한다.35 이러한 "앞선 지식"의 예는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여러 파수대 기사(각주 참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36 이들은 당시 뉴스보도를 증거로 사용하였는데, "이미 [큰 바벨론]의 파멸로 이어지는 사건들이 진행 중인데, 그렇습니다, 지금 [1980년], 그 집행을 위한 길이 준비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군사화된 정치세력화", "유엔의 급진적 요소들"은 임박한 멸망의 도구로 지적한 증거물로 활용되었다.), 그리고 "그 다가오는 대결의 웅성거림이 그날의 뉴스에서 자주 오르게 될 것입니다." 이를 지지하기 위해, 종교에 대한 공산당의 적대감에 대한 인용구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지속적이고 분명한 신호"였다. 고대 바빌론이 멸망하기 전 유프라테스 강의 '말라버림'은 세계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국에 대한 사람들의 지지가 떨어짐으로써 현대적인 성취감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세상의 "전반적인 경향"은 "틀림없는" 마지막 때의 추세라고 기술되었다, 다시 말하면, 그날의 뉴스 항목은 "뚜렷한 제목"으로 제시되어 이 세상의 임박한 멸망이 "매우 가까이" 일어날 증거인 것처럼 제시했다. 현재, 2000년대에, 세상의 모습은 극적으로 변했고, 종교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반감은 사라졌다(세계 종교가 아닌 오히려 실현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공산주의 그 자체가 소멸됨으로써) 그리고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종교적 관심이 다시 살아날 조짐이 있다. 그러나 증인들은 당시의 뉴스 보도에 근거하여 이루어진 예언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현대판 예언자 조직에 자신의 '비밀에 속한 문제들'을 밝히셨다는 증거들이며, 모든 증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이 '앞선 지식'을 선포하기 위해 담대하고 자신 있게 나가야 할 더 큰 이유가 있다고 확신했다. Anyone reading the Bible can see that God’s prophets were never inspired to speak a mixture of truth and error, their statements needed no “later editions” that are corrected to wipe out or cover over false reasonings. Where then is there any true parallel? The organization seeks to robe itself in the awesome role of a prophet of God and claim the deference that such a prophetic office merits. Yet it disclaims the responsibility for accuracy that goes with the office. If confronted with God’s words at Deuteronomy 18:20-22 about such prophetic accuracy, it presumes to set this aside as not applying to it in its role of a “genuine prophet,” and “authentic prophet class.” By what right does it do so? Does merely saying, “Well, we’re all imperfect,” excuse the organization from having that Biblical standard of a genuine prophet applied? It asks its adherents to disregard its past trail, which is strewn with unfulfilled predictions and now-rejected erroneous interpretations, and to continue to put near reverential trust in what it publishes, granting it the dignity and honor and credence due a prophet of God. Instead of feeling humbled by the clear evidence of its erratic, zigzagging course, it becomes more strident in its claims, more dogmatic as to its pronouncements. Is this the course of a “genuine prophet” of God? 성경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예언자들이 진리와 오류가 뒤섞인 말을 하도록 영감을 받은 적이 없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들의 진술은 잘못된 이치를 지우거나 덮기 위해 고쳐지는 "후기 개정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진정한 평행점은 어디 있을까? 조직은 하나님의 예언자라는 놀라운 역할로 스스로를 보호하려 하고 그러한 예언적인 직분에 합당한 존중을 사람들로부터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조직은 직분에 부여되는 정확성에 대한 책임을 부인한다. 만약 조직이 예언적 정확성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인 신명기 18:20-22에 마주친다면, 조직은 이 말씀을 '진정한 예언자' 또는 '진정한 예언자 반열'의 역할에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비켜 나가려 한다. 조직이 무슨 권한으로 그렇게 하는가? 단지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불완전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조직에 성경의 진정한 예언자 기준을 적용하는 것에 대한 변명인가? 조직은 추종자들에게 성취되지 않은 연대 예언과 현재 거부되고 있는 과거의 잘못된 해석이 산재해 있는 행적을 무시하고, 계속해서 조직이 출판하는 내용에 경건한 신뢰를 두도록 요청하며, 조직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존엄과 명예와 신임을 요구한다. 조직의 변칙적이고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행로에 대한 명확한 증거에 겸손함으로 고개를 숙이는 대신에, 조직은 주장이 더욱 엄격해지고, 조직이 선언한 것에 대해 더욱 독단적이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정한 예언자'의 길인가? |
29 This is true even though I was born of parents who were already Witnesses.
29 이미 증인이었던 부모에게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사실이다.
30 As perhaps at least some indication of the degree of the relative importance given to
the Bible itself, if there are young children enrolled in the Theocratic School, often their
assignment is to do this Bible reading.
30 아마 성경 자체에 주어진 상대적 중요성의 정도를 적어도 어느 정도 나타내어야 하므로,
신권 학교에 입학한 어린 아이들이 있다면, 종종 그들의 임무는 이 성경 읽기를 하는 것이다.
31 Awake!, August 22, 1978, page 3.
31 깨어라! 1978년 8월 22일, 3면
32 The Watchtower, June 15, 1956, page 360.
32 파수대 1956년 6월 15일 360면
33 The original Greek term for “prophesy” does have the basic sense of simply
“to proclaim” or “tell forth” and may or may not include prediction.
33 "예언하다"에 대한 그리스어의 원래 의미는 예언의 포함여부에 관계없이 "선포하다",
"말해버리다" 라는 기본적 의미를 지닌다
34 See the book “Let Your Name Be Sanctified,” pages 334-337.
The book Revelation— Its Grand Climax At Hand!, page 166, speaks in similar vein of
the “fiery judgment messages” proclaimed by Watch Tower representatives in the
1914-1918 period as being “foreshadowed by the prophetic work of Moses and Elijah.”
Despite this, those “fiery judgment messages” are today not deemed sufficiently
important by the organization to maintain them even in print.
34 <당신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소서> 334-337면을 참고하라.
<요한계시록ㅡ그 웅대한 절정은 다가왔다> 166면에서, 1914-1918년 워치타워 대표들이
"모세와 엘리야의 예언에 의해 전영된" "맹렬한 심판의 소식"과 비슷한 맥락으로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맹렬한 심판의 소식"은 오늘날 인쇄물로 유지될 만큼 충분히 중요한
것으로 조직에서 간주되지 않는다.
35 The Watchtower, July 1, 1984, pages 8, 9.
35 파수대 1984년 6월 1일 8, 9면
36 See the Watchtower, July 1, 1984, pages 9-12; October 15, 1980, pages 17-23;
January 15, 1977, pages 40-44.
36 파수대 1984년 6월 1일 9-12면; 1980년 15일 17:23면; 1977년 1월 15일 40-44면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