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雞林歷史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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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고도 서라벌 순례 서라벌의 천불동? ㅡ 남산 천동골 천동탑
계림 추천 0 조회 28 26.09.17 02:00 댓글 13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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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9.17 14:32

    첫댓글 동남산 천동골(千洞谷)에 위치한 통일신라시대의 희귀한 이형 석탑인 천동탑(千洞塔)은​일반적인 층층이 쌓아 올린 석탑 양식과 달리, 자연석 돌기둥 표면에 수많은 작은 감실을 쪼아 만든 것이 독특한 특징이다.

  • 26.09.17 15:03

    높이 약 2m, 직경 약 80cm 내외의 자연석 ​돌기둥 표면에 약 100여 개에 달하는 작은 구멍(감실)이 촘촘하게 뚫려 있다.
    ​'천동(千洞)'이라는 골짜기 이름처럼 천 개의 감실(혹은 구멍)을 뚫어 수많은 부처님을 모시거나 소원을 빌었던 만불탑(萬佛塔) 형태의 신앙 유적으로 추정된다.

  • 26.09.17 15:25

    신라 석조 예술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정형화되지 않은 독자적 양식을 보여준다.

  • 26.09.17 15:36

    탑 표면에 수많은 감실(구멍)을 뚫어 만든 이 독특한 석탑의 존재(천 개의 구멍을 가진 탑)로 인해 골짜기 이름 자체가 '천동골(千洞谷)'이라 불리게 되었고, 세월이 흘러 명칭이 정착되면서 "천동골에 있는 천동탑"이라는 공간적 관념으로 인식되게 되었다.

  • 26.09.17 15:37

    ​돌기둥 자체에 불상을 새긴 것이 아니라, 금동(銅)이나 흙(소조), 혹은 아주 작은 돌로 만든 소형 불상(소불)을 따로 제작하여 감실마다 하나씩 넣어 안치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 26.09.17 15:38

    신라 시대에는 개인이나 집안의 염원을 담은 작은 여래상이나 미륵상을 구멍에 넣고 흙이나 회로 접착해 고정하는 방식의 만불탑 신앙이 유행했다.

  • 26.09.17 15:39

    불상 외에도, 각 감실마다 작은 등잔이나 촛불, 혹은 향이나 사리 용기를 안치하는 공양의 공간으로 활용되었을 수 있다.
    ​밤이나 재를 올릴 때 수십 개의 감실마다 불을 밝히면 돌기둥 전체가 수많은 빛으로 채워져 신비로운 장관을 연출했을 것이다.

  • 26.09.17 15:40

    감실 입구 쪽에 불상을 모신 뒤, 비바람에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별도의 작은 문짝이나 목조/금속 틀을 겉에 씌웠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감실 주변의 홈이나 결속 흔적을 통해 소형 불상을 모신 후 정성스럽게 봉안 장치를 덧대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 26.09.17 15:41

    천동탑은 돌로 거대한 층탑을 쌓는 대형 불사 대신, 바위에 많은 감실을 파고 민초들이 저마다 작은 소불이나 등불을 바치며 기도를 올렸던 신라 시대 민간 신앙의 자취로 보는 시각이 많다.

  • 26.09.17 15:42

    그런데 감실 바닥이 평평하지 않고 아래로 흘러내리는 경사면 구조인지라, 일반적인 기물이나 불상을 그냥 놓아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형태적 특징 때문에 학계와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고정 및 봉안 방식을 추정하고 있다.

  • 26.09.17 15:44

    신라 시대 소조상(흙불상)이나 소형 찰흙 불상을 만들 때, 감실의 비스듬한 바닥과 벽면에 점토, 옻칠, 석회, 또는 어교(물고기 풀) 같은 강력한 덮개 및 접착 물질을 바른 뒤 눌러서 붙여 고정하는 방식이다.
    바닥이 매끄럽지 않고 홈이 파여 있는 구조가 오히려 접착 물질과의 결합력을 높여주는 접지면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 26.09.17 15:44

    소형 금동불이나 목조불 뒷면에 족제(발)나 꽂이용 핀(장부)을 만들고, 감실 내부의 미세한 홈이나 균열에 쐐기를 박아 결합하는 방식이다.
    ​경사면을 따라 흘러내리지 않도록 상단이나 내측 벽면에 걸쇠 형태로 얹거나 고정했을 수도 있다.

  • 26.09.17 15:45

    비스듬한 바닥 구멍 자체에 먼저 밀초(밀아)나 흙, 석회 등을 채워 넣어 평평한 밑바닥을 만든 후 그 위에 소형 불상이나 등잔을 올렸을 가능성이다. 세월이 흐르며 이 가공 재료들이 씻겨 나가 지금은 경사진 돌 바닥만 남아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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