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사 (9)
7. 1941년
1941년 1월 7일 17시, 지루해진 소비에트 연방은 독일이 서유럽을 평정할 때까지 안전하게 아시아를 도모하기로 하고, 아프가니스탄을 먼저 공산주의 깃발 아래 두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탄누 투바로부터 군사권을 받음과 동시에 몽골군과 탄누 투바군이 아프가니스탄 접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괴뢰국 군사들의 수준을 생각하여 적군(赤軍) 5개 사단을 딸려 보냈다.
<아프가니스탄으로 Go! Go!>
한편, 1월 9일이 되자 벨기에에서 난전을 치르던 독일이 결국 벨기에를 완전 축출하고 프랑스로 넘어가기 시작하였다. 한동안 늘어져있던 소비에트 군부는 다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독일의 군사 수준을 대충 파악하고 준비하였기 때문에 전쟁이 나면 한순간에 독일로 진군할 수 있으리라는 낙관론이 군 전체에 퍼져 있었다. 군사는 계속 현대화되어갔고, 붉은 군대의 사기는 높았다.
<독일도 프랑스로 Go! Go!>
<결국 레오폴드는 자기 마을(레오폴드빌)의 추장이 되어버렸다.. --;;>
1941년 3월 9일, 독일이 낑낑거리며 프랑스를 점령해나가는 것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스탈린과 연방 정부는, 갑자기 주변국들의 독립보장이 대부분 해제되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영국이 스웨덴이나 터키 등으로부터 발을 뺀 것이다. 심심했던 스탈린은 즉시 터키를 침공할 것을 명령하였고, 독일 국경선에 배치되었던 군대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터키로도 Go! Go!>
그러나 1941년 3월 26일, 독일이 프랑스를 무너뜨리고야 말았다! 사정을 낙관하던 소비에트 정부로서는 크나큰 충격이었다. 최소한 프랑스가 파리에서 한동안 버텨주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 내에 염전사상이 퍼졌는지 삽시간에 항복해버렸다. 북프랑스는 독일령이 되었으며, 남프랑스는 비시에 정부를 두고 페탱이 국가 원수가 되었다.
<뜨악! 말도 안된다!>
소비에트 연방은 터키 침공 계획을 즉각 폐기하였으며,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장기간 보류하기로 하였다. 터키로 이동 중이던 군단들은 모두 원위치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군부는 루마니아가 추축 동맹에 가입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루마니아를 신속하게 점령, 전쟁 발발 시 헝가리를 동부에서 타격하고 독일의 후방으로 파고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으니...
1941년 4월 6일 00시, 독일이 소비에트 연방에 선전포고하였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군부는 술렁였으나, 즉시 대책 수립에 나섰다. 본디 군부가 갖고 있던 방어 전략은 현재의 소-독 국경에서 키예프까지 전략적으로 후퇴하면서 반격하는 방식이었다(가능하면 키예프를 사수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봄에 시작되면서, 동토(凍土)가 풀리기 시작하였다. 동유럽 평원이 모조리 진흙벌이 되는 날에는 군대의 발이 묶여서 꼼짝 없이 당하게 될 판이었다. 여기서 군부는 두 파로 갈리어, 빠르게 철수하여 독일군이 진흙탕에 빠지게 한 후 시간을 벌자는 의견과, 바르샤바로 신속히 나아가서 독일 본토를 쳐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였다. 그러나 토론 결과는 두 의견과 전혀 달리, 터키로 보내던 군대가 돌아올 때까지 현 전선을 유지하며, 기동하기 편해지는 시기까지 병력을 증강하다가 바로 반격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군대는 현 전선 유지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고, 루마니아의 전쟁 불참으로 전쟁이 조금 편해졌으므로 루마니아 국경선의 부대를 모두 독일 방면으로 돌렸다.
<전쟁 발발! 황급히 돌아오는 군대들>
<대조국전쟁이라는 미명 하에 강해지는 붉은 군대>
전쟁 직후부터 이탈리아와 헝가리의 항공기들이 소비에트의 영공을 날아다녔으며, 1941년 4월 26일에는 최초의 육상전투가 벌어졌다. 독일군은 취약점이었던 브레스트리토프스크로 들어왔고, 적군(赤軍)은 한번 밀리면 낮은 기동력 때문에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이에 비엘스크와 코벨에서 루블린으로 협격을 시작하여 브레스트리토프스크의 압력을 줄이기로 하였다. 그리고 이 전투에서, 소비에트 연방은 크게 경악하게 된다. 비록 브레스트리토프스크를 지키기는 하였지만, 루블린 전투에서 2배에 달하는 적군(赤軍)이 독일군을 당해내지 못하고 패배한 것이다. 군부는 독일을 과소평가했음을 인정하고 소-독 국경에서 드네프르 강 사이를 주전장으로 설정, 전략적 퇴각 후 총반격하는 계획을 기본 강령으로 다시 채택한다. 5월 2일에는 룬트슈테트가 지휘하는 8개 사단이 방어선의 또 다른 취약점인 그로드노로 진격해왔으나 비야위스토크에서 반격하였고, 5월 5일에는 보크의 23개 사단이 브레스트리토프스크를 다시 공략한다. 소비에트는 루블린을 역공하였으나, 카이텔 원수에게 막혔을 뿐만 아니라 전차사령부를 이끌던 파블로프 대장이 전사하는 크나큰 손실을 입고, 대장 주코프가 뒤를 잇게 된다.
<최초의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전투. 앞으로 여기서 있을 수 차례 전투의 서곡>
1941년 5월 17일에는 일본과의 불가침조약이 파기되면서 시베리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으나, 일본이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견한 스탈린의 주장이 있었고, 유럽 전선도 정신없었기 때문에 군부에서는 대일 전략을 구상하지 않았다.
5월 내내 브레스트리토프스크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소련군은 힘이 계속 빠졌고, 결국 코벨이 뚫리게 된다. 무언가 획기적인 방안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 다행히 5월 25일, 자주로켓포 여단이 대규모로 창설되어 각 사단에 배치되었고, 덕분에 소련군은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하여 1941년 5월 25일 04시, 르보프와 그로드노에서 대대적인 반격작전이 개시된다...<계속>
<BM-8 카츄샤 로켓포 여단 창설>
<남북부에서 반격 개시. 남부는 코벨 포위를 위한 포석>
첫댓글 독일병력이 꽤 적군요;; 프랑스를 점령한지 얼마 안되서 그런거같습니다.. 이제 우르르 몰려올텐데 -_-ㅋ 현명한 무솔리니가 그리스를 침공하지 아니하여서 발칸작전이 취소된관계로 바르바로사가 일찍 시작된듯하네요.
그리스 침공 안하면 독일이 더 빨리온다는 안습한 상황이...
흠..저도 원래 후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잘 버팁니다..전선이 좁아서 그런가. 아니면 정말 독일군 재배치가 안끝나서?(ㄷㄷㄷ)
아, 그리고 TC 요구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서 죽겠습니다..왜 그런걸까요?
재배치창을 안 봐서 모르겠지만, 아마 비정상적으로 많은 유닛이나 공항 항구가 대기중인가 보네요.
아니 걸어서 가십니까 orz
그런데 너무 독일이 약하면 재미 없으니까 난이도 최대로 해놓고 한번 (그러다가 비터피스 보면?)
베리하드는 능력없어서 GG칩니다 비터피스를 아예 못볼지도..ㄷㄷ
걸어서 가는 것에 놀라 전략적 재배치를 권유해드리려 했으나 TC창을 보고 좌절했습니다. 3440/761 보급 엄청 밀리겠네요.
전략적 재배치는 어떻게 하죠?
음 Ctrl + 마우스 오른쪽클릭(혹은 왼쪽orz)하시면 공군 미션내릴때처럼 미션 어사인창이 뜹니다. 좀더 자세히 임무를 내릴수있도록해주죠. 그중 육군은 Strategic Redeployment가있을겁니다 전략적 재배치고 일시적으로 배치대기창으로 빠졌다가 해당 프로빈스로 배치됩니다. 이과정에서 TC를 좀 차지하긴 합니다만...인프라 안습 유라시아대륙을 두발로 뛰어다니는 것보다야 빠릅니다-_-..참고로 이동이 불가능한 게리롱같은경우는 이작전으로밖에 이동할수밖에 없습니다..(수송함 제외)
혹은 만약 두눈 씻고 찾아봐도 저 미션이 없을땐 '인판트리'테크창의 보급쪽 제일 첫번째 기술을 개발하셨는지 체크하시기바랍니다. 그 기술이 전략재배치미션을 활성화 하기때문이죵.
컨트롤 키를 쓰면 되는 것이었군요. 지금까지 개리슨만 되는줄 알았네요 ㅡㅡㅋ 감사합니다!
보급을 제대로 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