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질 무렵에 한석규를 만났다. 그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긴 머리가 목 뒤로 흘러내렸고, 이마엔 순한 아기처럼 땀이 맺혔고, 입술은 희미하게 웃었다. 한석규는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어릴 적 큰성하고 초록물고기를 잡으러 가던 꿈…’ 아름다운 영화의 꿈, 석양이 지고 만월이 뜰 때까지 <보그>와 한석규가 나눈 꿈결 같은 이야기. Photographed by Chae Woo Ryong
한때 ‘배우’를 넘어 한국 영화를 움직이는 산업이자 이데올로기였던 한 남자가, 지금 내 앞에서 순한 잠에 빠져 있다. 긴 머리가 목 뒤로 흘러내렸고, 이마엔 아기처럼 땀이 맺혔고, 입술은 희미하게 웃고 있다. 로비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긴 의자에 누워 있는 한석규의 착한 수면 주위를 나는 가만가만 걸어 다녔다. 영화는 대부분 밤샘 촬영이고 짬이 날 때마다 이렇게 조각잠을 자둘 수밖에.
전주 소리문화 회관은 내일 있을 영화 <주홍글씨>의 촬영 현장 공개를 앞두고 분주하다. 엘리트 형사인 기훈(한석규)과 그의 아내(엄지원), 그의 정부(이은주)가 첼로 연주회장에서 맞닥뜨리는 감정적으로 미묘한 장면. 사진작가와 나는 석양이 저물기 시작한 광장으로 나와 커피를 마시며 그가 잠이 깨기를 기다렸다. TV에서 얼굴도 잘 비치지 않는 가마꾼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해(<여명의 눈동자>) 주로 등짝만 보이는 단역으로 출연했던 한석규. 드라마 <아들과 딸>의 반듯한 애인상으로 팔리기 시작했고, <서울의 달>의 비열한 제비족 ‘홍식이’로 전국 방방곡곡에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를 울려 퍼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바람둥이로 분한 데뷔작 <닥터봉> 이후 영화에서 열 번째 작업을 마무리 짓고 있다. 이윽고 그가 피로가 걷힌 말간 얼굴로 걸어 나와 악수를 청했다. 한석규는 이름조차 적혀 있지 않은 무명의 배우 의자에 앉았다.
“<보그>는 패션지죠? 나랑 처음인 것 같은데….” 모데라토가 빠르기의 기준이라면 안단테에 가까운 속도로 이야기하는 한석규. 내가 <8월의 크리스마스> 때 한번 <보그>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고 정정해주었다. “그랬던가요?” 입 주위에 반원을 만들어내는 특유의 잔잔한 미소. 전성기 시절, 그는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한석규 신드롬’을 방영할 정도로 하나의 현상이었다. 생각해보면 송강호가 <넘버 3>로 이름을 알렸고, 최민식이<쉬리>로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으며, 설경구의 <박하사탕>은 <초록물고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작품이었다. 90년대 이후 빛나는 한국 배우들은 ‘한석규’이기에 가능했던 작품들을 통해 성장했다. 한석규라는 ‘신화’가 무너진 건 3년 만에 출연한 <이중간첩>. 그의 나이 마흔이었다.
“…<이중간첩>은 실패했지요. 관객과 많이 못 만났잖아요. 그래도 나는 한국의 현대사를 다루는 그런 작품을 꼭 해보고 싶었어요. 후회하지 않아요. 왜 일각에서는 저더러 될 만한 작품만 한다고들 그러셨잖아요. 하하.” 한석규는 너무 오랜만의 개인 인터뷰가 조금 어색한 듯 보였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대학에 진학해서 연기를 배웠어요. 직업적으로는 91년도에 MBC에 입사하고부터죠. 단역 생활하다가 드라마 <아들과 딸>을 했고, <서울의 달>을 했고, 영화 <닥터봉>을 처음으로 했어요. 여러 편 주연을 맡고 개런티가 높아지고 선택의 폭이 넓어졌죠.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어요. 더 나빠진 것도 없죠. 사람들이 내게 열광하던 때도 있었고…, 물론 결혼 전이었죠. 달이 차면 기운다는 진리도 있듯이… 어느 때인가부터 무언가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져요. 내가 하는 작업을 통해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도, 그러니까 미래의 관객들에게도 의미 있는 그런 작품을 남겨야겠다는 생각… 그래서 늘 한 작품할 때마다 조심스럽고 그래서 보는 사람들에게는 가탈스럽게 느껴질 테고….”
한석규라는 배우 이전까지는 그의 필로그래피처럼 별 공통점이 없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도 드물었다. 하지만 <초록물고기>는 결국 완성도 높은 문학적인 영화의 가능성을 열었고, <넘버 3>는 통념을 뛰어넘는 유쾌한 스타일의 풍자 영화가 됐고, <접속>은 통신 세대의 새로운 멜로 영화의 등장을 알렸고, <8월의 크리스마스>는 온화한 비극이 되었고, <은행나무 침대>와 <쉬리>는 한국 영화의 산업적 기반을 넓히는 데 일조했다. 정작 한국 영화 르네상스에 일조한 그가 2천년대 르네상스를 즐기고 풍미하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배우에게 중요한 게 이 ‘관(觀)’이에요. 세상을 보는 관, 인생을 보는 관, 연기를 보는 관, 영화를 보는 관, 연기에 국한되지 않은 관이라는 거죠. 그 관이라는 거에 제가 말하고 싶은 모든 게 다 함축되어 있는 것 같아요.” 내가 보기에 그는 배우로서 ‘머무르는’ 한 편의 영화보다, 앞서 가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을 알리는 ‘선구적인’ 작품을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그건 사재를 털어 기금을 마련해 좋은 시나리오를 발굴하려는 노력으로도 이어졌다. 그의 말대로 어쩌면 그에게 새로운 인물, 새로운 연기는 없을 수도 있다. 새로운 소재, 새로운 이야기 속에서 연기할 순 있어도.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는 6회째예요. 글쎄, 영화계에 보탬이 됐나요? 그런 대단한 사명감보다… 워낙 영화는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공동 작업이고 나도 그 중 하나를 한 거죠. 사실 필름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배우일 뿐 그 사람이 제일 중요한 사람은 아니에요. 필름에 제일 멀리 있는 제작부 막내, 연출부 막내… 그런 막동이 친구들이 교통도 통제하고 물건도 나르고 정말 중요한 일을 하거든요. 그냥 영화에 대한 사랑 하나로 요즘도 열흘씩 집에도 못 들어가고 중노동을 하는데. 그런데 이 친구들, 걱정하시는 부모님한테 전화나 제대로 하는지 모르겠네. 필름에 제일 가까운 나보다, 제일 멀리 있는 그 막동이들이 나중에 영화보고 “내가 한 게 참 잘됐구나!” 해야지 “이거 개똥이네”하면 슬퍼지는 거예요.”
현재 그가 연기하고 있는 <주홍글씨>의 기훈은 세 여자를 만나면서 자상하고 부드러운 남편, 열정적인 연인, 공격적이고 치밀한 형사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여태까지 좋은 감독님들과 일했어요. 그렇죠. 참 모두들 괜찮았어요. 그런데 이번 변혁 감독도 궁합이 참 잘 맞아요. 제가 의견을 많이 내는 편이거든요. 배우로서의 정해진 연기 말고도 연출이나 전체적인 아우트라인까지도 같이 고민하고 토론하고 함께 이뤄내고 싶어요. 그런 걸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고 유쾌하게 이해해주니까 고맙죠.”
인터뷰를 하고 있는 그를 단속적으로 현장의 스태프들이 불러냈다. 그럴 때마다 그는 넥타이를 고쳐 매고,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앞발을 탁탁 구르고 두 팔을 으쓱하는 몸짓을 하고, 스르륵 순식간에 배역 속으로 빠져든다. “배우들이 다 그렇겠지만 사람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 좋아요. 특히 <초록물고기>는 사람에 대한 관찰을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인간을 치열하게 탐구할 수 있었달까요. 요번 작품은 좀 나쁜 거예요. 탐욕에 관한 거고 욕심에 관한 거예요. 제가 그런 걸 연기한 적이 없으니까… 이 시대의 이야기, 도시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는 줄담배를 피웠다. 담배가 동이 나서 머뭇거리는 그에게 사진가가 자신의 담배를 꺼내주었다. 음미하듯 깊게 연기를 빨아들인 그가 쑥스러운 듯 연기와 함께 내뱉는다. “이거 내가 말을 참 드럽게 못하네. 허허. 그런데 기자 분이 내 말에 너무 집중을 하시네. 그냥 허공을 맴도는 게 말인데요.” 비가 내리는 신을 위해 멀리서 촬영용 물차가 쏴~ 비를 뿌리고 있다. 영화지를 비롯한 모든 지상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를 거부하고 있는 그이기에 나는 한석규의 한마디 한마디를 음미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홍보팀에서는 이걸 스릴러풍 멜로다, 얘기해요. 어차피 장르라는 것도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가도록 설명하는 거니까. 결국은 사랑 얘기죠. 사랑은 모든 감정을 포함하잖아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폭 넓게 담아낼 수 있으니까 그 감정이 더 매력이 있죠.. <초록물고기> 도 결국은 내가 언젠가는 하고 싶었던 가족 간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죠. 그때 붙여졌던 ‘막동이’가 제 팬클럽 이름이 되기도 했어요.”
빛나는 엔딩 신으로 회자되는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의 공중 전화 신. “큰성, 기억나, 어렸을 때 철교 밑에서 있지도 않은 초록물고기 잡는다면서 뛰어다니다 ‘쓰레빠’ 빠뜨리는 바람에 하루 종일 놀지도 못하고 찾아 다녔잖아.” 사람을 죽이고 큰형에게 전화하는 이 대사는 ‘주어진 상황 속 인물의 일상성의 최대치를 표현하는 것이 목표’였던 한석규 자신이 만들어낸 대사다. 연기를 안 하는 것처럼 연기하는 것, 그런 디테일이야말로 한석규의 트레이드마크. 연기 경험 일천한 틴에이저 스타도 로드매니저가 운전하는 벤을 타고 다니는 시대에, 매니저도 없이 낡은 자동차를 직접 몰고 다니는 한석규. <8월의 크리스마스>때 그를 지켜본 한 스태프는 숙소인 여관에서 빨래도 직접 하더라며, 일상 연기에 강한 이유를 알겠다고 했다.
“이번엔 아주 가증스러운 인물이에요. 관객에게 욕을 실컷 먹다가 한번쯤 동정심이 들도록 한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서울의 달>을 보면 김운경 선생님이 홍식이를 위해 멋들어진 대사 하나를 주셨어요. ‘사람은 다 마음속에 제비 새끼 한 마리씩 키우고 있다’고. 이 영화도 그 제비새끼를 키우고 있는 남자의 이야기겠지요.” 그는 영화를 제외한 그 어떤 부분도 열어보이지 않는다. 그가 정의했듯 그냥 허공을 맴도는 게 말이고, 빙빙 돌고 도는 게 말이라는 놈의 헛된 특성이라는 듯. “후배들한테는 그냥 ‘잘 해라!’ 그래요. 무슨 말이 더 필요있어요? 온몸을 다 바쳐서 하는 배우들이 많아졌고, 그래서 관객들은 예전보다 폭 넓은 경험들을 할 수 있게 됐잖아요.” 그래도 그와 함께했던 90년대의 영화 세상을 음미해 본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강제규 감독은 한석규가 ‘완충지대’가 많은 배우라고 했다. 많은 배우들이 내가 어떻게 튈까를 고민하는데, 한석규는 상대역의 연기를 살리는 고민을 한다. <은행나무 침대>에서는 황장군(신현준)을, <쉬리>에선 박무영(최민식)을 연구하더라는 것. 영화 전체의 균형을 생각하고 스토리에 대한 감성적인 조감도를 갖고 있는 큰배우로서의 한석규의 모습이다. “배우로서 대체로 괜찮은 인생이었어요. 문득…, 가끔씩…, 집에서 내가 출연한 작품들을 볼 때가 있어요. 이제까지 아홉 자식을 낳았는데, 자식을 낳는 심정으로 그런 맘으로 영화를 하거든요. 그런데 그 아홉 자식 다 괜찮았어요. 예쁘고 건강하고 떳떳한 자식 낳으려고 태교도 열심히 했고, 그런데 하나는 사산을 했어요. <소금인형>이 그랬는데… 죽은 아이는 빨리 잊어야죠. 앞으로도 수태 능력이 될 때까지 더 예쁜 자식을 낳을 수 있을 때까지 최상의 몸을 유지하고 최선을 다할 거예요.” 인터뷰 도중에 그는 수줍게 다가온 초등학교 6학년인 ‘김낙중’의 스케이트보드와 중학교 1학년인 ‘조영기’의 모자에 사인을 해주었고, 따뜻한 목소리로 “잘 가라”고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럴 때 정말 행복해요”라고 한석규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극중 그의 부인인 엄지원의 어머니로 나오는 한 중년의 단역 배우는 “여자를 반하게 하는 목소리예요. 실제 보니까 더 좋아요. 죽여요”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나중에 보니 한석규는 중년의 조울증과 엑스트라 일에 관한 그녀의 일상적인 수다를 세심하게 경청해주고 있었다. “사실 배우라는 일이 뒤집어 보면 얼마나 하찮은 일이에요. 때로는 사람들의 삶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하고, …배우라는 일이 그러고 싶지는 않아도, 인간사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어질 때도 있어요. 후미진 곳에서 묵묵히 자원봉사 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더 밝게 하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해는 끼치지 말고 도움이 되는 쪽으로 한 발짝 한 발짝씩 움직이고 싶다고, 저 스스로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그렇게 살자고 생각을 해요.”
현장에서 그와 몇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왜 이제까지 한석규와 함께 영화에 출연한 거의 모든 배우들이-단역부터 주연까지-한 사람도 어설픈 연기를 보이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는 누구도 쉽게 눈치 채지 못할 일상성의 힘으로 그들 모두에게(지나가는 수녀, 이름도 없는 아버지, 상대 여배우… 등등), 지쳐 쓰러질 때까지 자신의 웃음과 설정과 에너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단순히 한 명의 ‘연기자’라기보다 영화 현장과 그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당위성을 마련해주는 보이지 않는 노력들. 그는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노력하라, 노력하고 또 노력하라’라는 말을 아끼는 배우다. “지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스스로 ‘아! 이만하면 다 되었다’라고 느낄 때, 영화 현장을 떠나는 그순간 모든 사람들이 ‘한석규’라는 존재를 싹 잊어버렸으면 좋겠어요. 내 이름 석 자, 배우로서의 존재감… 그 무엇이라도 한 점 흔적 없이…, 기억되기보다 깨끗하게 사라져졌으면 좋겠어요.” 해가 완전히 저물었고 그의 말은 쓸쓸하게 완성되었다.
한때 한석규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이 시대의 변덕스러운 트렌드가 그를 버려서가 아니라, 그저 한석규가 스스로가 정한 신념의 시간표대로 자신에게 열광하던 한 시대를 조용히 흘려보냈다. 결혼을 했고, 세 아이의 아빠가 되었고, 그의 이름을 딴 ‘막동이 시나리오’ 공모가 열리는 신문사에 나타났다. 대중들은 연애의 수순처럼 처음엔 그를 달뜨게 사랑했고, 그 다음엔 간절히 기다렸고, 그 다음엔 분노했고, 그 다음엔 잊어갔고, 마침내 긴 시간이 흐른 뒤 ‘한석규라는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지금, 그렇게 편견 없는 눈으로 자신의 배우 의자를 십자가처럼 손수 등에 짊어지고 걸어가고 있는 한석규라는 한 배우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달은 차면 기운다’는 한석규의 머리 위로 8월의 꽉 찬 만월이 길고 환한 길을 비추고 있었다.
첫댓글 이거 누가 읽을까-_-
저요. 저~~ ㅋㅋㅋ
애프리형!! 꼭 읽겠다고 다짐했지만.. 못읽겟삼 ㅜㅜ 한석규를 별로 안조아하는지라.. 으찌되얐든.. 제일 과대평가받은 배우라고 알려지고.. 빨리 좋은작품으로 다시봤음 조켔어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신 분들은 한석규란 네임밸류가 얼만큼인지 느끼실수 있을거예요 더불어 심은하와 함께요..제 인생의 최고의 영화라서 그런지 전 한석규와 심은하가 언능 다시 만났음 좋겠답니다^^
최민식 인터뷰도 있었죠.이번 달 보그에...최민식씨 기사는 다 읽었는데,이 분 기사는 그냥 넘어갔다는...-_-영화 어떨지 심히 궁금하다는...
이번 영화 잘됐으면 좋겠네요
주홍글씨 기대~~
최민식씨 기사 좋았어요.(역시 딴소리) 저도 아직 이건 읽다 말아버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