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란이라고 하면, 북방의 '이민족' 또는 '촌놈'의 집단으로 알려져 있는 '오랑캐'로 알려져 있습니다. 과연 이들이 그렇게 비 문명적이며 미개한 집단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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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란족은 그들만의 거란 문자가 있었습니다.
거란어를 표기한 문자. 《요사(遼史)》 <본기(本紀)>에 의하면, 대자(大字)와 소자(小字)가 있는데, 대자는 920년에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에 의해 제정되었고, 소자는 924년에서 925년에 태조의 아우 질랄(迭剌)이 터키어를 사용하는 위구르인들로부터 배운 문자를 토대로 해서 만들었다 한다. 대자는 표의문자, 소자는 불완전한 음성문자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도종애책(道宗哀冊)》이나 《도종선의황후애책(道宗宣懿皇后哀冊)》 등은 거란문자로 쓰인 것으로서 대자와 소자를 병용하였다. 거란문자를 분석해보면 200여 개가 되는데, 각국 학자가 해독을 시도하였으나 아직 완전 해독하지는 못하였다. 소련 과학아카데미·과학기술정보연구소와 민족학연구소가 공동으로 전산기에 의한 해독을 시도한 바 있다.
2) 거란은 또한 Kitai로 불린 민족입니다.
~거란은 북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민족으로부터 키타이(Kitai)라는 명칭으로 불렸는데, 이것이 후에 차이나로 와전되어서 중국을 지칭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영어의 <Cathay(중국)>가 그것이다. 거란은 한인(漢人)을 지배하여 한문화(漢文化)에 접하게 되었으나~
<참고 : 야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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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미개한 이 종족이 갑자기 900년 이후에 문자를 가지게 되었을까요? 누군가 이들을 도와준 것이 아닐까요? 현재도 그렇지만, 문자라는 것을 새롭게 만든다는 것은 '고도의 지식인 그룹'이 있었다는 반증입니다. 과연 그들은 누구일까요?
만약, 거란의 중심지가 현재의 '우크라이나 지역'이라면, 서양의 문헌에서도 이와 필적할 만한 문헌적 근거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일단 결론을 뒤로 미루고 다음의 문헌을 주의 깊게 함께 보셨으면 합니다.
<참고: 야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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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은 집단은 1) 덴마크계, 2) 노르웨이계, 3) 스웨덴계가 있습니다. 1)+2)는 프랑스와 영국으로 진출한 세력입니다. 이중 3)번을 집중해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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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에 진출한 것은 주로 스웨덴계이며 그들은 7세기부터 발트해 동쪽 연안으로 진출하고 9세기에는 북러시아의 라도가호수 주변에 정착하여, 드네프르강과 흑해를 건너 비잔틴제국과, 또 볼가강을 따라 카스피해를 건너 이슬람교국과 주로 교역을 하였다. 1112년 무렵, 키예프에서 편찬된 《원초연대기(原初年代記)》에 의하면, 862년 루시(스웨덴인을 가리키는 핀어가 와전된 것)의 수장 류리크는 슬라브인들에게 초빙되어 노브고로트공국을 건설하였고, 그의 부하인 올레크는 882년에 천도하여 드네프르강 중류에 키예프공국을 건설하였다. 10세기에 루시인은 비잔틴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로 원정을 하여 여러 가지 상업특권을 제국령 내에서 획득하였는데, 두 나라 사이에 맺어진 912년·945년의 통상조약에 서명한 루시인 이름을 비교하면 그들의 급속한 슬라브화의 과정이 판명된다. 그러나 키예프 여러 공작과 올라프 1세·올라프 2세 등 북유럽 여러 왕의 친연관계는 이후에도 유지되었다. 이 시대 키예프와 콘스탄티노플에서 용병 또는 황제의 친위대로서 용맹을 떨친 북유럽인을 바랴크라고 하는데 노르웨이의 하랄 3세가 유명하다. 그들을 통해 그리스정교와 비잔틴문화가 러시아와 북유럽에 전해졌다. 한편 9세기 무렵 노브고로트에서 볼가강 중류의 도시 불가르의 큰 시장으로 나아갔고, 게다가 카스피해까지 내려가서 아랍인과 교역관계를 유지한 사람도 있었는데 그들은 9∼10세기 중엽까지 북러시아와 스웨덴에 아랍은화를 대량으로 유입시켜서 아랍인들은 그들을 루시상인이라고 하였다.
<참고:야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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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2년 루시의 수장이 슬라브인들에게 초빙되어 '노브고로트공국' -> 이후, 드네프르강의 '키예프공국'이 우르라이나의 키예프공국이들어섭니다. 해당시기는 가란인들이 거란의 문자를 가지게 되며, 문명의 중흥을 이루어가는 전성기로 볼 수 있습니다.
* 요의 탄생: ~당의 말기 거란의 수장인 야율아보기가 거란부족을 통일하여 제외에 올라 '요'를 세운것이 907년입니다.~
* 고려의 탄생: ~신라 말에 송악(松嶽;지금의 開城)의 호족(豪族) 왕건(王建)이 태봉(泰封)의 왕인 궁예(弓裔)의 부하로 있다가, 918년 민심을 잃은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워 연호를 천수(天授)라 하였다.~
서쪽의 요나라와 고려가 거의 동시에 탄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갑자기 동시대에 이들의 국가가 탄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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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말부터 11세기 후반 사이에 해상에서 유럽 각지에 침입한 북게르만민족(노르만인)의 별칭. <바이킹>은 영어식 발음이므로 관용적으로 쓰이지만 <비킹>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덴마크계·노르웨이계·스웨덴계로 나뉜다. 이 민족의 이동은 그 무렵 유럽에 침공한 마자르인과 이슬람교도 아랍인과 함께 제2의 민족이동이라고도 한다.<참고: 야후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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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시기는 <북해제국>을 이룬 바이킹이 남으로 이동하던 시기와 맞물려 일치합니다.
바로, 징기스칸에게 멸망한 '금나라'에게 무너졌던, 당시 우크라이나의 '키예프'공국의 주축의 세력은 동남쪽으로 이동한 바이킹의 세력이었던 것입니다. 이들 스웨덴계 바이킹족들은 흑해, 볼가강, 카스피해를 넘어 아랍의 상인들과도 교류를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루살렘을 공격한 유럽의 십자군원정의 주축세력이 이들 바이킹족의 후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그만큼 군사적, 문화적으로 특정 집단을 이끌 수 있는 역량이 갖추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이들, 발해인들의 후예가 바로 거란족에게 문자를 만들어준 '지식인 그룹'이며, 해당시기 중앙아시아 고려를 위협하고, 한때 개성을 점령하였떤 거란의 본모습이 아닐까 사료됩니다. 만약 바이킹이 발해인들이었다면, 발해의 '남경남해부'는 초기 저의 예상대로 카스피해 북서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바이킹 족들이 패망한 고구려의 후예들, 발해,이며, 북방을 지배하였던 <북해제국>의 '바이킹'들이 아닐까요?
첫댓글 거란은 돌궐과 매우 가깝습니다. 돌궐은 발칸반도에서 현 터어키까지이고, 중앙아시아 투르키스탄까지입니다. 우크라이나를 거란족의 서료 지역으로 추정하는 이유입니다. 물론 우크라이나는 거란=서료라는 것은 근거가 약한 추정입니다.
돌궐이면 터키를 뜻하고, 현재의 아나톨리아 반도가 아닌, 그리스와 불가리아 지역에 위치한 기록도 발견됩니다... 바로 오른쪽의 거란과 상당히 가깝습니다...
해당지역은 '고트족(게르만족)'이 존재했던 지역입니다. <2세기 중엽 이후에 고트족은 다시 흑해 북쪽 연안으로 이동하여 동고트족은 드네프르강 하구를 중심으로 서고트족은 다뉴브강 하구 북안(北岸) 일대에 정주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1500년대까지 존재하였습니다. <크림반도 동안(東岸)의 이른바 크림고트인(人)만은 1475년 오스만제국에 의해 정복될 때까지 독립을 지켰다. >... 이들의 지역을 아래의 글에서 여진의 서쪽부근인 거란이 있던 곳으로 설명했습니다...
동양의 사서와 서양의 사서를 함께 비교분석할 수 있는 중요한 포인트가 바로 '거란'입니다.. 카스피해 부근 여진의 존재로 부터 흑해윗쪽 이들 거란이 해당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강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벌써 여러가지 문헌으로부터, 터키(돌궐), 여진(청), 고려의 위치가 거의 가려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동서양 역사의 핵심을 움켜쥐고 있는 거란의 위치가 '확정'된다면, '고구려-당'설은 다시한번 재고되어야 할 부분이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