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시대의 우리들은 어떻게든 구주 예수님을 믿지 않고서는 구원에 참예케 될 수가 없고, 하나님 아버지께서 응답하시는 기도 한 번에 있어서라도 반드시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구약의 때에도, 게다가 아래 본문에서와 같은 아벨의 때에도 시간과 공간들,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내 힘과 의, 세상적인 능력과 방식들이 아닌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구주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구원에 참예케 될 수가 없는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기도 응답 한 번도 불가능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데..
아래 본문에서 아벨이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 드린 양의 첫 새끼와 기름은 다름 아닌 그러한 구주 예수님과 직결되는 것이고, 바로 그 예수님에 있어서의 예표와 모형과 그림자들, 약속과 계시와 상징들 중에 하나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부연하면 모든 인생들은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가 깨어졌고, 단절케 된 것이며, 본질적으로는 말씀을 잃어버린 것이고, 영적으로는 진노와 저주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노예 상태에 빠지게 된 것으로 어떤 식으로든 구주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그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도 없는 것이고, 구원에 참예케 될 수는 더더욱 없는 것인데..
그에 있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오늘날의 우리들이 오신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고, 바로 그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고 간구하면서 응답과 열납이 가능할 수 있게 하신 것이듯이 구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시기 전인 구약의 믿음의 선배들과 권속들에 있어서는 아담과 하와 때부터 구주 예수님에 대해 미리 보이시고 안내하시며 연결될 수 있게 하신 창세기 3장에서의 여자의 후손에 대한 계시를 위시해서 여러 모양의 피 제사와 희생 제물들, 특히 유월절 어린 양과 모세를 통한 장대 위의 놋뱀, 뿐만 아니라 모세의 지팡이, 반석, 회막, 지성소, 성전, 제사장, 사사, 선지자, 살렘 왕 멜기세덱, 제사장과 선지자 역할을 했던 믿음의 선조들 등을 통해 말 그대로 오실 메시야를 믿고 의지함과 함께 실제로 오늘날의 우리들과 동일하게 구원에 참예케 될 수 있게 하신 것일 뿐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들이 순간순간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덧입어 죄악들과 싸우고 범한 죄악들에서는 최대한 빨리 자복하며 참회하고 돌이키며 다른 그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말씀을 사모하고 가까이함으로 인한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이 될 수 있게 하신 것과 근본적으로는 동일하게 될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과 시대들, 공간과 나라들을 뛰어 넘어 그 정도로까지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구원이 가능할 수 있는 이유와 근거는 조금도 복잡할 수 없는 것으로 바로 그러한 예수님께서는 성자 하나님, 곧 말 그대로 진정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바꾸어 말하면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시고 온 우주보다도 더 크시며 영원보다도 더 작으실 수 없는 성자 하나님이시자 구원자이시며 중보자이시고, 특히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우리 인생들과 하나님 아버지 사이에 있어 길과 통로와 접점 등과 같은 위치와 역할과 권한의 구주로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이 세상에서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 다 치르심과 함께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두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으로 인한 구원이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심지어는 상상하는 것보다도 더욱 더 강력한 것이고, 그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며, 전적으로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러한 구원의 일들에 있어 단 하나, 단 한 번일지라도 구주 예수님 단독이실 수는 없는 것으로 근원적으로는 철저하게 우리 인생들이 이 세상에서, 또한 세상 끝 날과 부활과 영생에 이르기까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영원에 이르기까지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완벽하게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의 역사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인데..
곧,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 상 모든 주권과 통치와 섭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와 같은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 하나하나마다 상상도 못할 사랑과 은혜와 능력으로 창세 전부터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예정하시며 준비하시고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며 성취해 나가심으로 인해 가능할 수 있는 것이며 애초부터 시작될 수 있었던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이고, 직접적, 현실적,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그 목숨값으로 다 이루신 구원의 일들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 정말 하나하나 모두 다 누리고 경험하며 나타나고 성취되어 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실상 아래 본문에서의 가인은 따지고 보면 자신의 힘과 세상적인 능력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간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반면 아벨은 오늘날의 우리들이 날마다 순간마다 그 이름을 의지하고 있고 그의 십자가를 붙잡고 있는 예수님을 그와 같은 방법과 통로로 마찬가지로 사모하고 의지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고 간구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사실상 다시 한 번 강조하면 원론적으로 어떤 식으로든 그러한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그 어떤 시대에서든 하나님 아버지로 인한 긍휼과 은혜, 사함과 나음, 응답과 열납 등과 같은 일종의 구원의 일들에 참예하고 얻으며 누릴 수 있는 다른 구원의 길과 통로와 접점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것이며, 아울러 무엇보다 오늘날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어디서든, 그 어떠한 때에라도, 더군다나 심히 편리하게 구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큰 복이자 능력이고 특권인지 말로는 다 표현 못할 정도인 것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창세기4:3~5)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5년 2월 10일(월)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