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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교근공(遠交近攻)
먼 나라와는 사귀고 가까운 나라는 친다는 뜻으로, 먼 나라와 화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공격하는 수법을 말한다. 중국 전국시대에 범저(范雎)가 진왕(秦王)에게 진언한 외교 정책이다.
遠 : 멀 원(辶/10)
交 : 사귈 교(亠/4)
近 : 가까울 근(辶/4)
攻 : 칠 공(攵/3)
출전 :
사기(史記) 범수채택열전(范睢蔡澤列傳)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
전국시대 위(魏)나라 사람 범수(范睢)는 위나라 중대부 수가(須賈)를 섬겼으나, 오해를 받아 억울하게 목숨을 잃을 뻔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장록(張祿)으로 이름을 고치고 진(秦)나라로 들어갔다.(▶ 애자필보(睚眦必報), 탁발난수(擢髮難數) 참조)
당시 진나라의 소왕(昭王)은 재위 36년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실권을 가지지 못했고, 소왕의 어머니 선태후(宣太后)와 그녀의 동생인 양후(穰侯)와 화양군(華陽君), 그리고 소왕의 동생들인 경양군(涇陽君)과 고릉군(高陵君)이 실권을 쥐고 있었다.
양후는 재상으로 있으면서 국정을 전횡했고, 나머지 세 사람은 번갈아 가며 군사권을 장악했다. 범수는 진나라에서 1년이란 세월을 특별한 일 없이 허송했지만, 소왕의 근심거리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왕의 주변에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었다.
그러던 차에 범수가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당시 양후는 연(燕), 초(楚), 한(韓), 조(趙), 위(魏) 등 다섯 나라와 연합하여 제(齊)를 격파하고 소왕에게 도읍(陶邑)을 봉지로 받았는데, 도읍은 제나라와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하여 양후는 한나라와 위나라를 지나 제나라의 강(剛)과 수(壽)를 쳐서 점령하고 이곳을 봉지로 받아 자신의 세력을 확대할 계획을 세웠다.
범수는 이 소식을 듣고 소왕에게 상서를 올려 이궁(離宮)에서 독대할 기회를 얻었다.(▶ 두구과족(杜口裹足) 참조) 소왕이 범수에게 여러 차례 가르침을 청하자 범수는 비로소 입을 열어 소왕에게 원교근공의 계책을 설명했다.
양후가 한, 위 두 나라를 지나 제나라의 강과 수를 친다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닙니다. 적은 군사로는 제나라를 이길 수 없고, 많은 군사를 보내면 진나라에 해가 됩니다. 신이 왕의 계책을 생각해 보니 군사를 적게 내고 한나라와 위나라의 군사를 동원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이는 의가 아닙니다.
지금 동맹국인 제나라와 친하지 않다고 남의 나라를 넘어가 공격하는 것이 옳겠습니까? 그 계획에는 허점이 많습니다. 지난날 제나라의 민왕(涽王)이 남쪽으로 초나라를 공격하여 군대를 깨뜨리고 장군을 죽여 영토를 천 리나 넓히려고 했지만 제나라는 척촌의 땅도 얻지 못했습니다.
어찌 땅을 얻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겠습니까. 형세가 땅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후들은 제나라가 지치고 왕과 신하 사이가 불화한 것을 보고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크게 깼으므로 장수는 욕을 당하고 군사들은 꺾이고 말았습니다. (…)
그러므로 제나라가 크게 깨진 까닭은 초나라를 쳐 한나라와 위나라를 살찌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른바 적에게 군대를 빌려 주고 도둑에게 양식을 보내 준 것이라 하겠습니다.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것이 낫습니다. 한 치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촌토가 되고, 한 자의 땅을 얻으면 전하의 척지가 됩니다. 지금 이를 버리고 멀리 있는 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故齊所以大破者, 以其伐楚而肥韓魏也. 此所謂借敵兵齎盜糧者也. 王不如遠交而近攻, 得寸則王之寸, 得尺亦王之尺也. 今舍此而遠攻, 不亦繆乎.
소왕은 범수의 계책을 받아들였으며, 범수를 객경으로 삼았다. 그 후 소왕의 신임을 얻은 범수는 재상이 되어 응후(應侯)에 봉해졌고, 그의 원교근공책은 천하 통일을 지향하는 진나라의 국시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사기(史記) 범수채택열전(范睢蔡澤列傳)과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나온다.
원교근공(遠交近攻)
범수(范睡)는 전국시대 전략가다. 위나라 책사이던 그는 제나라와 내통한다는 모함을 받고 진나라로 도망쳤다. 당시 진나라는 소양왕 모후인 선태후의 동생 양후가 재상으로 있으면서 실권을 쥐고 있었다. 그는 제나라를 쳐서 자신의 영지를 넓히려 했다. 소양왕이 범수를 불러 의견을 물었다.
범수가 진언했다. "전하, 멀리 떨어져 있는 제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득책이 아닙니다. 적은 군대로 강국 제나라를 친다 하면 다른 제후들이 비웃을 것입니다. 더구나 두 나라 사이에 있는 한나라와 위나라가 길을 열어 줄지도 의문입니다. 또 설령 쳐서 이긴다 한들 그 땅을 진나라 영토에 편입시킬 방도가 없습니다. 옛날에 위나라가 조나라 길을 빌려 중산을 정벌했지만 정작 그 땅을 손에 넣은 것은 조나라였습니다. 위는 중산과 멀고 조와는 가까운 까닭이지요."
범수의 말에 일리가 있다 여겨 소양왕이 물었다. "그럼 어찌해야 하오."
범수가 답했다. "먼 나라와 친교를 맺고 가까운 나라를 공략하는 원교근공(遠交近攻) 전략이 상책입니다. 한 치의 땅을 얻어도, 한 자의 땅을 얻어도 전하의 땅이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해득실이 이처럼 분명한데 굳이 먼 나라를 치는 건 현책이 아니옵니다."
소양왕은 옳거니 싶었다. 소양왕의 신임을 얻은 범수는 승진을 거듭했고 재상에까지 올랐다. 또한 '먼 나라와 손잡고 가까운 나라를 친다'는 원교근공책은 천하통일을 꿈꾸는 진나라의 국시가 됐다. 전국책이 출처다.
나라와 손잡고 이웃 나라를 치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이 전략의 전부는 아니다. 때로는 이웃 나라와 손잡고 먼 나라를 치는 근교원공(近交遠攻) 전술도 필요하다. 전술은 전황에 맞춘 대응이다.
가까운 곳에든, 뭔 곳에든 적을 두지 마라. 작은 적도 그 이웃과 마음을 모으면 큰 적이 된다. 힘보다는 덕으로 상대를 꺾어라. 그게 진정한 승리다.
원교근공(遠交近攻)
멀리 제휴하고 이웃을 공격하라
遠交近攻 形禁勢格, 利從近取, 害以遠隔, 上火下澤.
멀리 떨어진 나라와 동맹을 맺고 이웃한 나라를 치는 계책이다. 지세의 제한을 받을 때는 이웃한 적을 먼저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고, 멀리 떨어진 적을 치는 것은 불리하다. 이는 불이 위에 있고 연못이 아래에 있어 서로 등지고 노려본다는 뜻을 지닌 '규괘(睽卦)'의 상화하택(上火下澤) 괘상과 취지를 같이한다.
형금세격(形禁勢格)의 형세가 일정한 제한을 받는 경우를 지칭한 것이다. '형(形; 모양 형)'은 지형(地形), '금(禁; 금할 금)'은 제한(制限), '세(勢; 기세 세)'는 형세(形勢), '격(格; 바로잡을 격)'은 장애(障礙)를 말한다.
상하화택(上火下澤)은 위에서는 불이 활활 타고 있고 아래서는 연못물이 출렁이는 양상(樣相)이다. 일시적인 타협이 불가피하다. 원교근공(遠交近攻) 계책은 먼저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와 동맹을 맺는 것이 관건이다. 원교근공은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나온다.
사기(史記) 범수열전(范睢列傳)에도 유사한 내용이 실려 있다. 전국시대 말기 위(魏)나라의 책사 범수(范睢)는 제나라와 내통했다는 무함에 걸려 초주검이 되었으나 진(秦)나라 사신 왕계(王稽)를 좇아 함양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왕계는 함양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궁으로 들어가 진소양왕(秦昭襄王)에게 복명(復命)한 뒤 이같이 말했다. "위나라에 지모가 출중한 천하의 기재를 만났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계란을 쌓아놓은 것 같은 위기의 진나라를 구할 비책이 있으나 이는 글로써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신이 데리고 왔으니 대왕이 한 번 불러 보십시오." 누란지위(累卵之危) 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범수열전(范睢列傳)은 진(秦) 소양왕(昭襄王)이 탐탁지 않게 생각해 범수를 객사에 머물도록 한 뒤 하객(下客)의 대우를 베풀게 했다고 기록해 놓았다.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런 기별이 없었다. 진소양왕은 왜 범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 것일까?
사마천(司馬遷)은 이같이 분석해 놓았다. "당시 진소양왕은 보위에 오른 지 36년이 지났다. 남쪽으로 초(楚)나라를 격파한 데 이어 초회왕이 진나라에서 객사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동쪽으로 제나라를 격파하자 일찍이 칭제(稱帝)한 바 있는 제민왕(齊閔王)은 이를 거두게 되었다. 또 여러 차례 삼진을 곤경에 빠뜨렸다. 그는 종횡가를 크게 꺼렸다. 믿음이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진 소양왕이 잇단 승전으로 인해 커다란 자부심이 있었음을 반증한다. 요즘의 관점으로 보면 무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외교 책략을 꺼렸던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위험했다. 당시 진소양왕은 양후를 포함해 동복동생인 경양군 등 인척들이 왕권을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진시황 재위 때 빚어진 수차례의 반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진나라 세족의 위세는 막강했다. 이들을 철저히 다스리지 않는 한 천하통일 행보는 시작부터 삐걱거릴 수밖에 없었다.
범수는 이런 이치를 꿰고 있었다. 진소양왕이 범수의 왕권 강화책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면 진시황의 천하통일은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을 공산이 컸다.
당시 범수가 진소양왕으로 부터 연락이 오지 않자 적잖이 낙담했다. 진소양왕 36년(기원전 271) 진소양왕의 모후인 선태후(宣太后)의 동생 양후(穰侯)가 제나라의 강(剛)과 수(壽) 땅을 공략해 자신의 영지인 도(陶) 땅을 넓히고자 했다.
이 이야기를 듣고는 곧바로 상소문을 올렸다. "양의(良醫)는 병자의 생사를 미리 알고, 성군은 일의 성패를 미리 헤아립니다. 이익이 있으면 행하고, 해가 있으면 그치고, 의심스러우면 시험해 보면 됩니다. 이는 요, 순, 우, 탕이 다시 태어난다 해도 바꿀 수 없는 원칙입니다. 신이 어리석어 대왕의 마음에 들지 않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신을 천거한 사람이 비천해 들을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잠시 신에게 알현한 시간을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면 당면한 문제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진소양왕이 곧 좌우에 분부했다. "곧 전거(傳車)를 보내 이궁(離宮)으로 모셔오도록 하라."
범수가 이궁에 도착해 보니 아직 진소양왕이 도착하지 않았다. 짐짓 모르는 척하며 비빈과 궁녀들이 왕래하는 영항(永巷)으로 들어갔다. 마침 진소양왕이 비빈의 처소를 거쳐 이궁으로 오다가 범수를 만나게 되었다.
환관들이 대노(大怒)했다. "대왕이 오신다. 어서 썩 나가지 못할까!"
범수가 짐짓 큰소리로 대꾸했다. "진나라에 무슨 군왕이 있는가? 진나라에는 오직 선태후와 양후만 있을 뿐이다."
진소양왕이 이를 듣고 크게 놀랐다. 곧 앞뜰까지 내려와 영접했다. "과인은 선생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자 한 지 오래되었소."
곧 국빈에 대한 예의를 갖추어 가르침을 청했다. "선생은 과인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려 하시오?"
범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대답했다. "아, 예, 예." 진소양왕이 모두 3차례에 걸쳐 거듭 가르침을 청했으나 범수는 계속 같은 말만 했다.
진왕이 정중히 무릎을 꿇고 물었다. "선생은 과인을 가르쳐줄 수 없다는 뜻으로 그러는 것이오?"
범수가 그제야 이같이 대답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제가 듣건대 태공망 여상은 주문왕과 처음 만났을 때 위수의 북쪽 강가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어부의 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주문왕이 한두 마디 말을 나누어보고는 곧바로 그를 태사(太師)로 삼아 함께 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는 여상의 말이 주문왕을 감동시켰기 때문입니다.
주문왕은 여상의 계책에 힘입어 마침내 제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만일 주문왕이 여상을 소홀히 여겼거나 깊은 말을 나누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주문왕과 주무왕이 뛰어났을지라도 결코 왕업을 성취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기려지신입니다. 게다가 대왕과 가까운 사이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제가 진언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대왕의 정사를 바로잡기 위한 것으로 대왕의 육친과 관계된 일입니다. 아직 대왕의 진심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대왕이 3번이나 물을 때까지 대답하지 못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 대왕 앞에서 말하면 내일 주살당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대왕이 실로 저의 진언을 실행에 옮겨주시기만 하면 저로서는 죽음도 근심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대왕은 지금 위로는 태후의 위엄을 두려워하고 아래로는 간신의 태도에 미혹되어 궁중 깊숙한 곳에 머문 채 태자의 교육을 담당한 시녀와 시종의 손길을 떠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에 어느 것이 간사한 것인지조차 분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하다가는 크게는 종묘가 뒤집어지고, 작게는 대왕의 일신이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제가 염려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제가 죽어 진나라가 바로잡힐 수만 있다면 죽는 것이 살아 있는 것보다 더 나을 것입니다."
진소양왕이 부탁했다. "선생은 무슨 말씀을 그리하시는 것이오? 우리 진나라는 멀리 외진 곳에 있고 과인 또한 어리석고 불초한 데도 다행히 선생 같은 분이 와주셨으니 이는 하늘이 과인으로 하여금 선생을 번거롭게 해 종묘를 보존케 하려는 것이오. 과인이 선생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하늘이 선왕을 좋게 여겨 과인을 버리지 않은 것이오. 일의 대소를 막론하고 위로는 태후에 관한 일로부터 아래로는 대신에 관한 일에 이르기까지 원컨대 선생은 과인에게 모두 가르쳐 주고 과인을 추호도 의심치 마십시오."
범수가 말했다. "진나라 군사의 용맹과 많은 거기(車騎)를 가지고 제후를 대적하는 것은 마치 한나라의 명견인 한로(韓盧)를 풀어 절뚝거리는 토끼인 건토(蹇兎)를 사냥하는 것과 같습니다. 진나라가 관문을 닫은 지 15년 동안 감히 산동으로 출병하지 못한 것은 승상 양후의 계책이 충성스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왕은 패왕의 대업을 쉽게 실현할 수 있는 여건을 구비하고 있는데도 지금 정반대로 함곡관을 굳게 닫은 채 감히 산동의 제후국들에게 무위(武威)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소양왕이 부탁했다. "과인의 계책에 어떤 실책이 있는지 말해주시오."
이때 좌우에 숨어서 몰래 엿듣는 사람이 많았다. 범수가 진소양왕 앞으로 몸을 당겨 앉으면서 말했다. "무릇 양후가 한, 위 두 나라를 건너뛰어 제나라의 강과 수 땅을 공격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동원되는 병력이 적으면 제나라에 타격을 줄 수 없고, 많으면 진나라에 손상을 입히게 됩니다. 생각건대 적은 병력을 동원하면서 한, 위 두 나라의 병력을 이용하고자 하는 것은 적절한 계책이 아닙니다. 지금 한, 위 두 나라는 비록 동맹국이라고는 하나 서로 친하지 않은데 그런 동맹국을 건너뛰어 다른 나라를 치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전에 제나라 군신이 화목하지 못하고 백성이 피폐하자 제후들이 합세해 제나라로 쳐들어 갔습니다. 결국 제나라 왕은 욕을 당하고 군사는 여지없이 무너져 천하인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이는 제나라가 멀리 있는 초나라를 치면서 가까이 있는 한, 위 두 나라의 국력을 비대하게 만들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바로 '도적에게 무기를 빌려주고 도둑에게 식량을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왕은 원교근공(遠交近攻)의 계책을 쓰느니만 못합니다. 그리하면 한 치의 땅을 얻어도 대왕의 것이 되고 한 자의 땅을 얻어도 대왕의 것이 됩니다. 지금 이런 계책을 버리고 오히려 정반대로 원공근교(遠攻近交)를 고집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한, 위 두 나라는 중원에 위치해 가히 천하의 중추라고 이를 만합니다. 대왕이 패업을 이루고자 하면 먼저 중원의 이 두 나라를 취해 천하의 중추로 삼은 뒤 초나라와 조나라를 제압해야 합니다.
조나라가 강해지면 초나라가 우리 진나라에 가까이 다가올 것이고 초나라가 강해지면 조나라가 다가올 것입니다. 초나라나 조나라가 진나라에 다가오면 제나라는 틀림없이 진나라를 두려워할 것입니다. 제나라가 두터운 예물로 진나라를 섬기면 한, 위 두 나라는 이내 무력해지고, 이내 천하의 중추를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진소양왕이, "어떻게 하면 위나라와 친해질 수 있는지 가르쳐 주시오."
범수가, "겸손한 언사와 두터운 예물로 대하십시오. 그것도 안 되면 땅을 떼어 선물로 주십시오. 그것마저 안 되면 그때 대군을 동원해 치십시오."
진소양왕이, "참으로 좋은 말이오!" 진소양왕이 곧바로 범수를 객경으로 삼은 뒤 함께 국가대사를 논의했다.
당시 두 사람이 나눈 대화 내용은 범수채택열전(范睢蔡澤列傳)과 자치통감(資治通鑑)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사마천(司馬遷)과 사마광(司馬光) 모두 그만큼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범수가 취한 계책은 그 자신이 분명히 밝혔듯이 원교근공의 계책이었다. 실제로 진소양왕은 이 계책을 이용해 주변의 열국들을 차례로 제압해 나갔다. 원교근공의 계책은 범수가 은퇴한 뒤에 즉위한 진시황 때도 그대로 받아들여져 천하통일의 기본 방략이 되었다.
학계에서는 범수의 원교근공 계책에 대한 반론이 만만치 않다. 반론의 요지인즉 원교근공의 계책은 범수가 주창한 것이 아니라 이미 전국시대 초기 이래 진나라 외교의 기본 원칙이었다는 것이다. 양후가 한, 위 두 나라를 가로질러 제나라의 강과 수 땅을 공략했을 때 이미 강한 비판이 제기되어 있었고, 범수가 이를 언급한 것은 전통적인 원교근공의 외교원칙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설령 기존 외교의 기본 원칙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당시 범수가 이를 진소양왕에게 새삼 깨우쳐준 사실을 결코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아닌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승상 양후가 막강한 위세를 부린 당시 상황에서 진나라 대신 가운데 과연 누가 이를 행할 수 있었을까?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범수는 진소양왕을 설득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았던 것이다.
원교근공(遠交近攻)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에 대한 대안적 모색이 전혀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다. 물론 학술적 차원에서 한민족의 고대사에 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와 연찬사업은 더욱 활발하게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중국의 동북공정은 문명국가로서의 양식을 포기하고 중화민족주의의 야욕을 드러내는 역사절취 행위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을 중국 변방국가에게 적극적으로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학술적 형태로 드러난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관여나 개입 의도가 분명한 정치적 사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도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는 중국의 변방정책의 약한 고리, 즉 중국의 국가통합을 저해하는 원심력으로 작용하는 티베트 또는 대만과의 외교적 관계를 강화시키는 데 있다.
이를테면 '가까운 이웃을 치기 위해 그 나라의 뒤에 있는 국가와 손잡는다'는 원교근공(遠交近攻)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단 두 방향에서 짚어보자.
우선 티베트 망명 정부와의 우호관계를 모색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중관계의 실리적 이해관계 속에서 티베트 망명정부의 수반인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거부해왔던 우리의 입장을 중국의 변방정책과 연계하여 재고할 수 있다. 티베트 망명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 티베트 문제가 중국과 관련된 외교적 사안으로 부각되는 것을 거부해왔다.
티베트는 사실 중국 변방의 가장 취약한 고리로, 강압적인 복속과 한족의 사민정책을 통해 티베트 주민의 자치권 요구는 철저히 외면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의 한반도 관여나 개입 의지 드러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중국 서쪽 변방 티베트의 억압의 역사와 티베트 민중의 호소를 들어야 한다.
또한 대만 문제를 떠올릴 수 있다. 두루 아디시피 대만과 오랜 전통적 우호관계를 끊고 국교를 단절한 것도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 데에 따른 선택이었다. 지금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관여나 개입 의지가 명백한 상황이라면 우리는 이제 대만과의 국교 재개 의지를 공론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하나의 중국' 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심대한 도전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대만 문제가 중국의 통일과 관련된 중국의 문제라면, 한민족의 역사와 한반도는 한민족의 통일과 관련된 정체성과 자주권의 문제라는 점을 상호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우리의 입장은, 우리의 메시지는 중국으로 하여금 그들의 변방인 한반도와 한민족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보다 '절제된' 접근 방식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중국의 여타 변방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인식 지평을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민족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틈바구니에서 어느 한 편에 흡수나 동화되지 않은 채 독자적 문명과 고유한 역사를 간직해왔다. 이는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사례가 아닐 수 없으며 민족적 자긍심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기로에 섰다. 그러나 한반도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어느 한 쪽으로 급격히 편향되는 상황은 피해야 된다. 어느 일방으로 편향되거나 한쪽으로 치닫는 상황은 위험하며 민족사의 미래에 비추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균형추의 역할과 위상을 확립해 나가는 균형 감각이 필요한 때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디로 치닫고 있는가? 19세기 말 러시아의 남진을 막는 방아책(防俄策)으로 조선, 중국, 일본, 미국과의 연합(親中結日聯美)을 주장하였던 조선책략(朝鮮策略)의 시대 상황과는 달리 지금 우리는 특정 국가를 배제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며, 오히려 한반도 주변의 모든 국가와 더욱 깊은 유대와 굳건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할 실정이다.
특히 여기에는 미국과의 유대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면서 중국과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 협력의 토대를 넓혀가는 한편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관여나 간섭을 억제시킬 수 있는 전략적 구상이 요청된다.
21세기에 한국책략(韓國策略)을 다시 쓴다면 그것의 요체는, '우리식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입장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추로서 한반도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있으며 서울과 평양의 민족공조의 방향은 바로 여기에 놓여있다는 인식의 공유가 요망된다.
제23계 원교근공(遠交近攻)
원교근공(遠交近攻)은, 적의 동맹을 나누어서 와해시켜 각개격파하는 것으로, 자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나라와는 교분을 맺고, 이웃 나라를 먼저 공격하는 전략을 말한다.
利從近取, 害以遠隔.
옛 사람들이 말한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책략은 실로 오묘하고 무궁무진하다. 상대의 강약(强弱)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바로 강교약공(强交弱攻)이 된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자기보다 약한 상대들은 각개격파해 나가, 점차적으로 자신을 강하게 하고 실력을 기르며 자기의 위세를 확충해 나간다.
(原文)
形禁勢格, 利從近取, 害以遠隔. 上火下澤.
위치와 형세가 지리적으로 제약을 받을 때는, 가까이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이 자기에게 유리하고, 멀리 있는 적을 공격하는 것은 자기에게 해롭다. 불길은 위로 올라 가고, 소택의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는 법이니 세상 만물의 발전과 변화가 이와 같지 않은 것이 없다.
(譯註)
上火下澤(상화하택)은 주역(周易) 규괘(睽卦)에서 나왔다. 규(睽)는 본래 서로 맞지 않고 위배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 괘의 위의 괘는 離(이)로써 불(火)을 나타내며, 밑의 괘는 兌(태)이니 소택(澤), 즉 물이다. 그래서 물과 불은 서로 상극이며 서로 맞지 않고 위배된다. 따라서 번역을 다시 해 보면, 주역 규괘의 上火下水(상화하수)가 서로 맞지 않는 이치로, 원교근공의 방법을 사용해, 적의 모순을 이용 각개격파한다.
(解說)
이 계(計)는 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서 나왔다. "대왕께서는 멀리 있는 나라와는 교분을 맺고 가까이 있는 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 하면, 한 뼘의 땅을 얻어도 바로 대왕의 땅이 되고, 한 자의 땅을 얻어도 그 역시 바로 대왕의 땅이 되옵니다."
원교근공(遠交近攻)은, 적의 동맹을 나누어서 와해시켜 각개격파하는 것으로, 자국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나라와는 교분을 맺고, 이웃 나라를 먼저 공격하는 전략을 말한다. 군사 목표를 달성하려는 기도가 지리적 조건에 의해 제한을 받아 달성하기 어렵다면, 먼저 가까이 있는 적을 공격해서 취해야 하고, 가까운 적을 넘어 자기로부터 멀리 떨어진 적을 공격하러 가서는 안 된다.
적들이 손을 잡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백방으로 계책을 써서 적들을 갈라서 각개격파해야 한다. 가까이 있는 적을 없앤 후에는, 원교(遠交)의 관계에 있던 국가들이 다시 새로운 공격 대상이 된다. 원교(遠交)의 목적은, 실제에 있어서는, 적을 너무 많이 만드는 것을 피하기 위해 채택하는 외교상의 기만책이다.
(생활에서의 활용)
○ 36계와 군사-범저(范雎)의 헌책(献策)
역사상에 있어서,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를 처리할 때에는, 지리적인 위치와 이익의 가깝고 먼 정도에 따라 제각기 다른 정책을 써야할 필요가 있다. 지리적으로 비교적 멀고 이해 충돌이 비교적 적은 국가에 대해서는 원교(遠交)의 관계를 유지하는게 좋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이해 충돌이 비교적 큰 국가는, 먼저 공격하는게 좋다. 이렇게 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것은 물론, 멀리 있는 적을 멸망시키기 위한 유리한 조건을 조성할 수 있게 된다.
위(魏)나라 사람 범저가 진(秦)나라에 유세하러 와서 진 소왕(昭王)을 만났다. 진 소왕이 범저에게 부국강병의 계책을 묻자, 범저는 당당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현재의 7국(진시황이 천하 통일하기 전의 시대로써, 秦, 趙, 魏, 韓, 燕, 楚, 齊를 말한다) 중에서 최강대국은 바로 진(秦)나라입니다. 진나라는 비옥한 들이 천리요, 무장한 군대가 백만에 달하며, 국경선의 지세가 험하니, 공격하러 나가는데 유리하고, 물러나 지키기 좋은 까닭에 천하를 통일하는 것은 별 힘을 들일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오나, 최근 대왕께서 승상 위염(魏冉)의 말을 믿고서 가벼이 군사를 일으켜 제(齊)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제가 보기에는 진나라의 앞길을 망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범저는 다시 말했다. "한(韓), 위(魏) 두 나라를 넘어 가 제(齊)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승리를 한다고 하더라도 대왕께서는 어떻게 획득한 땅을 진(秦)나라에 연결시키시렵니까? 이전, 제나라 왕이 한(韓), 위(魏) 양국을 넘어 초(楚)나라를 공격해 천리의 땅을 점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제나라는 한 뼘의 땅도 챙기지 못하고 한, 위 두 나라가 나눠 가졌습니다. 그 이유는 제나라는 초나라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한, 위 두 나라는 초나라에서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대왕께서는 마땅히 원교근공의 책략을 채택하셔야 할 것입니다."
진소왕은 그의 말에 빠져 들어, 다시 물었다. "원교근공이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
범저가 대답했다. "원교근공이란 멀리 떨어 진나라와는 맹약을 맺어 적대국을 줄이고, 가까이 있는 나라는 다잡아서 공격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한 뼘의 땅을 얻어도 대왕의 땅이 되고, 한 자의 땅을 얻어도 바로 대왕의 영토가 되는 것입니다. 한(韓), 위(魏)를 쳐 부신 후에 연(燕), 조(趙)를 치고, 연(燕), 조(趙) 이후에 다시 제(齊)와 초(楚)를 치십시오. 대왕께서 이러한 계책을 따라 실행하신다면 몇 년 지나지 않아 반드시 6국을 합병하시고 천하를 통일하게 될 것입니다."
범저의 말을 들은 진 소왕은 가슴이 확 뚤리는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과인은 이제부터 선생의 말만 듣겠소!"
진 소왕은 즉각 범저를 객경(客卿)으로 모시고, 범저의 원교근공 책략에 따라 제나라를 치러 갔던 병력을 철수 시키고 이웃한 위나라를 공격했다. 이 후, 진나라는 이웃 나라들의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되었는데 이로서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하는 견실한 기초를 닦았던 것이다.
○ 36계와 비즈니스-앰커, GE를 이기다
시장 마케팅에 원교근공의 계(計)를 사용하는 것은 다음과 같이 원용될 수 있다. 가까이 있는 시장을 개척하거나 가까이 있는 상대와 경쟁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 멀리 있는 시장을 개척하거나 멀리 있는 상대와 경쟁하게 되면 불리한 점이 많다. 상황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하기 위해서는 멀리 있는 상대와는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연합하는게 좋다.
미국 전기 산업계의 GE와 웨스팅하우스, 그리고 사세가 그리 크지 않은 앰커회사가 모두 새로운 저철규소강편을 연구하였는데 결과는 앰커회사의 승리였다. 이것은 앰커회사가 정보의 수집 관리를 중시한 결과였다.
그들은 초저철절전 규소강편을 연구하던 중, GE와 웨스팅하우스 역시 같은 종류의 제품을 연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구 저 반대편의 일본철강 역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최선진 기술인 레이저광선 처리 기술을 사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앰커는 상황을 분석해 본 결과, 자기의 실력만으로 독자적으로 계속 연구한다면, GE와 웨스팅하우스에 뒤질 가능성이 매우 크고 따라서 위험도 크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합작으로 연구를 계속한다면 파트너의 선정이 매우 중요했다. GE나 웨스팅하우스와 손을 잡는 것은 근친교배(近親交配)와 같은 것으로 연구 과정을 반드시 앞당길 수 있다는 보증이 없었을 뿐 아니라, 이후 미국 시장을 그와 함께 나누어야 하는 부담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일어나고 있는 일본 회사를 고려하는게 필요했다. 일본 회사와 합작하게 되면, 잡종교배(雜種交配)이니, 생명력이 왕성하고, 연구 과정도 앞당길 수 있으며, 장래의 시장도 태평양을 경계로 하는 만큼 훨씬 더 커지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앰커는 일본철강을 합작 파트너로 선정했는데, 그 결과 당초 예정 보다 반년을 앞당겨 연구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앰커의 원교근공(遠交近攻) 책은 마침내 GE와 웨스팅하우스 같은 막강한 상대를 이기게 하였고, 그래서 현대 전기의 고급기술이 요구하는 전기 재료에 대한 요청사항을 충족시킬 수 있게 되었다.
○ 36계와 처세-가게 주인과 고객의 대화
대화 중의 사소한 정보라도 놓지지 않으면 생각지 않은 큰 수확을 얻을 수 있다. 즉, 상대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고, 상대의 관점을 이용하여 정으로 감동시킬 수도 있게 된다. 나아가, 장기적 관점에서의 이익을 이유로 목전의 조그만 이익을 버리게 하는 등등, 이 모든 것이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전술적 운용을 보이지 않게 활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후버 케인은 미국의 유명한 협상 전문가였다. 어느 날, 그는 캠코더 한 대와 리모컨이 달린 TV 수상기를 한 대 사려고 시내 어느 가전용품점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그가 사려는 상품의 시장 상황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어떻게 해야 자기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면서도 가격을 바가지 쓰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케인은 우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상점 내 상황들을 관찰하고 이해한 다음에 기회를 봐서 일을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상점 내 손님이 없이 조용해 져 자기 혼자만 남았을 때, 그는 지나 가는 듯이 상점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얘기하는 중에 케인은 가볍게 주인에게 캠코더에 관해서 성능이 어떠한지 물었다.
그러자 주인은 사용법 등에 관해서 설명해 주면서, 아무 생각없이 "상업 센터가 개업하기 전에 직원 한 사람이 와서 두 세대를 사 갔는데 요즈음은 아무도 오지 않네요."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케인은 즉각 물었다. "만약에 그들이 두 대 이상 사 가면, 큰 상점과 마찬가지로 디스카운트를 해 줍니까?" "당연하지요. 많이 사 가면 사 갈수록 가격을 깎아 줍니다."
그때서야 케인은 캠코더를 사고 싶다는 것과 주인에게 한 대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주인은 열정적으로 그에게 추천했다. "RCA 가 가장 훌륭한 선택입니다. 우리 가게는 이 것 한 대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케인은 주인이 그에게 사용법을 알려 주는 것을 보고는, 진지하게 말했다. "나는 주인 아저씨를 믿습니다. 당신이 추천한 이 것이 가장 좋은 모델이라는 것을 내가 믿는 것과 같이, 가격도 역시 정당할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나는 값을 가지고 당신하고 옥신각신 흥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격이 공정하다면 바로 돈을 치루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인은 기뻐서 얘기했다. "저는 당신이 성실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케인은 지나 가듯이 말했다. "나는 당신을 잘 이해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다른 가게도 가보아서 한 번 돌아 보아야 좋은 줄 잘 알지만, 당신이 제시하는 가격을 흥정하지 않겠습니다."
주인은 이때 종이에 가격을 적고는 케인에게는 보여 주지 않았다. "나는 당신도 합리적인 이윤을 얻고, 나도 합리적인 가격을 얻기를 바랍니다."
케인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요, 만약 이 리모컨 TV 수상기도 같이 사게 되면 총액에서 다시 디스카운트가 가능합니까?" "패키지 딜이군요?" "그렇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합산을 좀 하겠습니다."
그가 케인에게 총액을 제시하려 할 때, 케인은 다시 대담하게 제의했다. "조금 전에 요즈음 자금 조달 문제를 얘기하셨기에 하는 말인데요, 원래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외상이 아니라 현금으로 지불할까 합니다. 그러면 도움이 됩니까?" "당연하지요. 그렇게 하시면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되죠. 특히 요즈음에는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 또 총액을 고쳐 썼다. "좋습니다. 총액을 보여 주십시오. 바로 현금으로 지불하겠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적정한 가격으로 거래를 마쳤다. 상점 주인은 케인을 위해 TV 수상기를 설치 해 주었을 뿐 아니라 캠코더 삼각 다리도 증정하였다. 그 이후, 케인과 주인은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다.
▶️ 遠(멀 원)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袁(원)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袁(원)은 뜻을 나타내는 옷 의(衣)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止(지; 발)를 바탕으로 哀(애, 원)이 합(合)하여 옷이 치렁치렁한 모양이나 옷이 길다는 뜻과, 책받침(辶)部는 움직이는 일에서 나아가는 일의 길게 하다, 길다, 멀어지다, 멀다 등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遠자는 '멀다'나 '심오하다', '오래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遠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袁(옷 길 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袁자는 옷깃이 넉넉한 옷을 표현한 것으로 '옷이 크다'라는 뜻이 있다. 遠자는 이렇게 옷깃이 넓다는 뜻을 가진 袁자를 응용한 글자로 옷깃이 늘어져 있듯이 길이 매우 '멀다'라는 뜻을 표현했다. 그래서 遠자는 '(길이)멀다'나 '멀어지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세월이)오래되다'나 '심오하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그래서 遠(원)은 ①멀다 ②심오(深奧)하다, 깊다 ③많다 ④세월이 오래되다 ⑤멀리하다, 멀어지다 ⑥소원(疏遠)하다 ⑦내쫓다, 추방하다 ⑧싫어하다 ⑨어긋나다 ⑩먼 데 ⑪선조(先祖)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오랠 구(久), 미륵 미(彌), 멀 유(悠), 길 영(永), 멀 하(遐), 멀 요(遙), 멀 료/요(遼), 길 장(長),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가까울 근(近)이다. 용례로는 멀고 가까움을 원근(遠近), 시간이나 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원격(遠隔), 먼 곳으로 싸우러 가는 것을 원정(遠征), 먼 데 것은 잘 보이고 가까운 데 것은 잘 보이지 않는 시력을 원시(遠視),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넓은 바다를 원양(遠洋), 멀리 가서 놂을 원유(遠遊), 중심으로 부터 멀어져 감을 원심(遠心), 아득한 먼 시대를 원대(遠代), 멀리 바라다 봄을 원망(遠望),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교외를 원교(遠郊),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신상을 생각함을 원념(遠念), 장면을 넓게 찍은 영화 필름 또는 사진 따위를 먼 곳에서 넓게 찍는 일을 원사(遠寫), 길고 오랜 세월로 앞으로 오래도록 변함없이 계속됨 또는 어떤 상태가 끝없이 이어짐을 영원(永遠), 공간적으로 까마득히 멂 또는 시간적으로 먼 훗날에나 가능한 상태에 있음 곧 현재나 당장에는 불가능한 상태에 있음을 요원(遙遠), 지내는 사이가 두텁지 않고 버성김 또는 서먹서먹함을 소원(疏遠), 멀고 높음 또는 고상하고 원대함을 고원(高遠), 동떨어지게 멂을 격원(隔遠), 한없이 멀고 넓음을 광원(廣遠), 몹시 오래 됨을 구원(久遠), 이어져 내려온 시간이 오램을 면원(綿遠), 거리가 멀지 아니함 또는 닥칠 시일이 오래지 아니함을 불원(不遠), 아주 아득하게 오램을 창원(蒼遠), 멀리 바라봄을 망원(望遠), 눈이 미치지 않은 만큼 까마득하게 멂을 묘원(渺遠),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데의 불을 끄는 데는 쓸모가 없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멀리 있는 것은 급할 때에 소용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원수근화(遠水近火), 먼 데 있는 친척은 가까운 이웃만 못함을 이르는 말을 원족근린(遠族近隣), 먼 나라와 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쳐서 점차로 영토를 넓힘을 일컫는 말을 원교근공(遠交近攻), 화를 멀리하고 복을 불러 들임을 일컫는 말을 원화소복(遠禍召福), 먼 곳에 있어서 올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원막치지(遠莫致之), 파랗게 그린 먼 산 같은 눈썹이라는 뜻으로 미인의 눈썹을 형용해 이르는 말을 원산미(遠山眉), 공경하되 가까이하지는 아니함 또는 겉으로는 공경하는 체하면서 속으로는 꺼리어 멀리함을 일컫는 말을 경이원지(敬而遠之), 날은 저물었는데 갈 길은 멀다는 뜻으로 이미 늙어 앞으로 목적한 것을 쉽게 달성하기 어렵다는 말을 일모도원(日暮途遠), 천 리 길도 멀다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먼길인데도 개의치 않고 열심히 달려감을 이르는 말을 불원천리(不遠千里), 앞으로 갈 길이 아득히 멀다는 뜻으로 목적하는 바에 이르기에는 아직도 남은 일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전도요원(前途遙遠),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온다는 뜻으로 뜻을 같이하는 친구가 먼 데서 찾아오는 기쁨을 이르는 말을 유붕원래(有朋遠來) 등에 쓰인다.
▶️ 交(사귈 교)는 ❶상형문자로 䢒(교)는 동자(同字)이다. 사람의 종아리가 교차해 있는 모양을 본뜬 글자이다. 이 글자에서 咬(교; 씹다), 絞(교; 묶다), 校(교; 학교) 등의 글자가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交자는 '사귀다'나 '교제하다', '엇갈리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交자는 亠(돼지해머리 두)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돼지머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交자는 다리를 꼬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交자의 갑골문을 보면 양다리를 꼬고 앉은 사람이 그려져 있었다. 交자는 이렇게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사람을 그려 '엇갈리다'나 '교차하다'라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交(교)는 ①사귀다, 교제하다 ②오고 가다 ③주고 받다, 바꾸다 ④인접(隣接)하다, 서로 맞대다 ⑤엇걸리다 ⑥맡기다 7넘기다, 건네다 ⑧내다, 제출하다 ⑨섞이다, 교차하다 ⑩성교하다, 교배하다 ⑪되다, 도래하다 ⑫임무를 마치고 보고하다 ⑬교제(交際), 우정(友情) ⑭벗, 친구(親舊), 동무 ⑮무역(貿易), 거래(去來), 흥정 ⑯서로, 상호(相互) ⑰곤두박질, 공중제비 ⑱옷깃 ⑲일제히, 동시에, 함께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서로 번갈아 드는 사람 또는 그 일을 교대(交代), 통신을 주고 받음을 교신(交信), 2개 이상의 선상의 것이 한 곳에서 마주치는 것을 교차(交叉), 암수 양성의 교접을 교미(交尾), 다른 종류의 암수의 배합을 교배(交配), 벗을 사귐 또는 친구와 교제함을 교우(交友), 섞어 합함을 교합(交合), 서로 맞붙어 싸움을 교전(交戰), 서로 바꿈을 교환(交換), 서로 물건을 사고 팔아 바꿈을 교역(交易), 자리나 역할 따위를 다른 사람 또는 다른 것과 바꿈을 교체(交替), 서로 주고 받음을 교류(交流), 일을 이루기 위하여 서로 의논함을 교섭(交涉), 막힘이 없이 서로 오가는 일을 교통(交通), 서로 사귀어 왕래함을 교유(交遊), 서로서로 어우러져서 뒤섞임을 교잡(交雜), 사귀어 담박하기가 물과 같다는 뜻으로 군자의 교제를 이르는 말을 교담여수(交淡如水), 벗을 사귐에 신의로써 사귐을 일컫는 말을 교우이신(交友以信), 사귄 지는 오래지 않으나 서로 심중을 털어놓고 이야기함을 이르는 말을 교천언심(交淺言深), 벗을 사귈 때에는 서로가 분에 맞는 사람끼리 사귀어야 함을 이르는 말을 교우투분(交友投分), 옛날 중국의 관중과 포숙처럼 친구 사이가 다정함을 이르는 말로 친구 사이의 매우 다정하고 허물없는 교제를 이르는 말을 관포지교(管鮑之交), 단단하기가 황금과 같고 아름답기가 난초 향기와 같은 사귐이라는 뜻으로 두 사람간에 서로 마음이 맞고 교분이 두터워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 나갈 만큼 우정이 깊은 사귐을 이르는 말을 금란지교(金蘭之交), 물과 물고기의 사귐이란 뜻으로 임금과 신하 또는 부부 사이처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이르는 말을 수어지교(水魚之交), 목을 벨 수 있는 벗이라는 뜻으로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벗을 일컫는 말을 문경지교(刎頸之交), 쇠라도 자를 수 있는 굳고 단단한 사귐이란 뜻으로 친구의 정의가 매우 두터움을 이르는 말을 단금지교(斷金之交), 지초와 난초 같은 향기로운 사귐이라는 뜻으로 벗 사이의 고상한 교제를 이르는 말을 지란지교(芝蘭之交), 맑은 물의 사귐이라는 뜻으로 담박하고 변함없는 우정이나 교양이 있는 군자의 교제를 이르는 말을 담수지교(淡水之交), 시장과 길거리에서 이루어지는 교제라는 뜻으로 이익이 있으면 서로 합하고 이익이 없으면 헤어지는 시정의 장사꾼과 같은 교제를 이르는 말을 시도지교(市道之交), 금석의 사귐이라는 뜻으로 쇠와 돌처럼 변함없는 굳은 사귐을 이르는 말을 금석지교(金石之交), 아교와 옻의 사귐이라는 뜻으로 매우 친밀한 사귐을 이르는 말을 교칠지교(膠漆之交) 등에 쓰인다.
▶️ 近(가까울 근, 어조사 기)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책받침(辶=辵; 쉬엄쉬엄 가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斤(근)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斤(근)은 나무를 베는 도끼로 일부를 잘라내다, 구분 짓는 일을 뜻한다. 물건의 주위를 구분하는 일에서 그 주위, 가깝다, 가까이, 가까워진다는 뜻을 나타낸다. ❷회의문자로 近자는 '가깝다'나 '비슷하다', '근처'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近자는 辶(쉬엄쉬엄 갈 착)자와 斤(도끼 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斤자는 '도끼를 그린 것이다. 여기에 辶자가 결합한 近자는 길을 나누듯이 거리를 줄인다는 뜻을 표현하고 있다. 다만 지금의 近자는 거리의 짧음 뿐만 아니라 사람 관계에서의 친분이나 시간의 가까움을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近(근, 기)은 셈을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서 그 아래의 말이 나타내는 수량(數量)이나 시간(時間) 따위에 거의 가까움을 나타내는 말로 ①가깝다 ②닮다, 비슷하다 ③천박하다, 생각이 얕다 ④가까이하다, 친하게 지내다 ⑤사랑하다, 총애하다 ⑥알다 ⑦근처(近處) ⑧곁, 가까운 곳 ⑨가까이 지내는 사람 ⑩근친(近親), 일가(一家), 집안, 친척(親戚) ⑪요사이, 요즘 ⑫가까이, 가까운 데서 그리고 ⓐ어조사(語助辭)(기)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멀 원(遠)이다. 용례로는 가까운 곳을 근처(近處), 육지에 가까운 바다를 근해(近海), 가까운 데 것은 잘 보아도 먼 데 것은 잘못 보는 눈을 근시(近視), 가까운 곳을 근방(近方), 물체를 똑똑하게 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점을 근점(近點), 가까운 요즈음이나 요사이를 근래(近來), 요사이나 요즈음을 근자(近者), 가까이 닿음이나 아주 가까움을 근접(近接), 가까운 지난날의 세상을 근세(近世), 도시에 가까운 주변을 근교(近郊), 최근의 형편을 근황(近況), 아주 비슷함이나 거의 같음을 근사(近似), 촌수가 가까운 일가를 근친(近親), 장소나 위치가 가장 가까움을 최근(最近), 거리 상으로 가까운 이웃을 인근(隣近), 가까이 닿음을 접근(接近), 곁의 가까운 곳이나 가까이 친한 사람을 측근(側近), 어떠한 곳을 중심으로 하여 그에 가까운 곳을 부근(附近), 멀고 가까움을 원근(遠近), 정분이 친하고 가까움을 친근(親近), 흔히 보고 들을 수 있을 만큼 알기 쉽고 실생활에 가까움을 비근(卑近),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는 뜻으로 나쁜 사람을 가까이하면 그 버릇에 물들기 쉽다는 말을 이르는 말을 근묵자흑(近墨者黑), 붉은빛에 가까이 하면 반드시 붉게 된다는 뜻으로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근주자적(近朱者赤), 부근에 있는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먼 곳의 사람들이 흠모하여 모여든다는 뜻으로 덕이 널리 미침을 이르는 말을 근열원래(近悅遠來), 가까운 곳에서 불이 나 손해는 입지 않았으나 근심을 끼쳐 미안하다는 인사를 일컫는 말을 근화사례(近火謝禮), 가까운 곳에서는 근심하고 먼 곳에서는 염려함을 이르는 말을 근우원려(近憂遠慮), 촌수가 가까운 일가끼리 간음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근친상간(近親相姦), 먼 데 있는 물은 가까운 데의 불을 끄는 데는 쓸모가 없다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멀리 있는 것은 급할 때에 소용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원수근화(遠水近火), 먼 나라와 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쳐서 점차로 영토를 넓힘으로 중국 전국시대에 범저가 진왕에게 진언한 외교 정책을 일컫는 말을 원교근공(遠交近攻),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을 이르는 말을 법원권근(法遠拳近), 말은 알아듣기 쉬우나 내용은 깊고 오묘함을 일컫는 말을 언근지원(言近旨遠) 등에 쓰인다.
▶️ 攻(칠 공)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등글월문(攵=攴; 일을 하다, 회초리로 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工(공)으로 이루어졌다. 무기(武器)를 들고 치다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攻자는 '치다'나 '때리다', '공격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攻자는 工(장인 공)자와 攵(칠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工자는 땅을 단단하게 다지는 도구인 '달구'를 그린 것이다. 攻자는 이렇게 땅을 세차게 내리치는 도구를 그린 工자에 攵자를 결합한 것으로 무언가를 세차게 공격한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본래 攵자에 '때리다'라는 뜻이 있기는 하지만 攻자는 이보다 더 거세게 공격하는 것을 뜻하기 위해 만들어진 글자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攻(공)은 ①치다, 때리다 ②책망하다 ③닦다 ④거세(去勢)하다 ⑤공격하다 ⑥굳다 ⑦다스리다 ⑧불까다 ⑨짓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칠 벌(伐), 칠 타(打), 칠 고(拷), 칠 당(撞), 칠 박(撲), 칠 격(擊), 칠 토(討), 칠 력(轢), 두드릴 고(敲), 쇠몽치 추(椎), 망치 퇴(槌), 때릴 구(毆),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지킬 수(守), 막을 방(防)이다. 용례로는 나아가 적을 침을 공격(攻擊), 공격하는 태세나 그 힘을 공세(攻勢), 공격과 방어를 공방(攻防), 남의 잘못을 논란하고 공격함을 공박(攻駁), 공격하여 약탈함을 공략(攻掠), 공격과 수비를 공수(攻守), 옥을 갊 또는 지덕을 닦음을 공옥(攻玉), 공격하여 싸움을 공전(攻戰), 공격하여 정벌함을 공벌(攻伐), 공격하여 달려듦을 공습(攻襲), 에워싸고 공격함을 공위(攻圍), 자기의 부족한 점을 시정하기 위하여 온 힘을 기울이는 일을 공궐(攻闕), 학문 같은 것을 연구함을 공구(攻究), 한 가지 부문을 전문적으로 하는 연구를 전공(專攻), 침입하여 공격함을 침공(侵攻), 양쪽으로 끼고 공격하는 것을 협공(挾攻), 세찬 공격을 강공(强攻), 공격을 받다가 역으로 맞받아 하는 공격을 역공(逆攻), 어떤 사물을 과학적으로 분석 관찰하는 일을 연공(硏攻), 갑자기 적을 쳐들어 감을 습공(襲攻), 시간을 버티면서 느릿느릿 공격함을 지공(遲攻), 병이나 병균이 몸의 겉으로 나타나지 아니하고 속으로 퍼짐을 내공(內攻), 부지런히 학문을 닦음을 근공(勤攻), 옥을 가는 데 돌로 한다는 뜻으로 천한 물건으로 귀한 것을 만듦을 이르는 말을 공옥이석(攻玉以石), 상대의 마음을 공략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말을 일컫는 말을 공심위상(攻心爲上), 공격하기 어려워 좀처럼 함락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난공불락(難攻不落), 먼 나라와 친하고 가까운 나라를 쳐서 점차로 영토를 넓힘으로 중국 전국시대에 범저가 진왕에게 진언한 외교 정책을 일컫는 말을 원교근공(遠交近攻), 독으로써 독을 친다는 뜻으로 악을 누르는데 다른 악을 이용함을 이르는 말을 이독공독(以毒攻毒), 남의 신상에 관한 일을 들어 비난함을 이르는 말을 인신공격(人身攻擊), 자기의 결점을 생각지 않고 남의 잘못을 비난함을 이르는 말을 이단공단(以短攻短), 물결이 밀려왔다가 밀려가듯이 한 공격 대상에 대하여 단속적으로 하는 공격을 이르는 말을 파상공격(波狀攻擊)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