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굴라님의 앞면 사진은 섶다리 ~~~영월 주천 쌍섶다리를 찾아서.......
<<< 아래의 글은 여행을 떠나기전에 검색한 내용 입니다 >>>>>
[영월주천 쌍섶다리] 정담이 오가고 풍류가 흐른다
매서운 강바람과 싸락눈이 밤새 불꺼진 들창을 흔들더니 주천강 쌍섶다리가
하얀 솜이불을 뒤집어 쓴 채 눈부신 설국의 아침을 맞는다.
갈대섬 찻집의 굴뚝에선 파르스름한 연기가 한줄기 추억처럼 피어 오르고,
강 건너 미루나무 꼭대기에 둥지를 튼 까치는 다래산을 휘감은 안개 속으로
아침 산책을 떠난다.
시리도록 하얀 발자국이 새겨질 때마다 쌍섶다리가 출렁출렁 춤을 춘다.
주천강 평창강 서강 동강 남한강….
단종의 한과 김삿갓의 풍류가 흐르는 영월엔 유난히 강이 많다.
강은 산굽이를 돌 때마다 한반도 지형을 닮은 선암마을과 선돌 등
그림같은 절경을 빚는다. 그리고 강을 중심으로 마을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강 건너 이웃이 그리운 영월 사람들은 찬이슬이 내리면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섶다리를 놓아 겨우내 장도 보고 마실도 다녔다.
소백산 끝자락인 금산과 태백산 줄기인 태봉산,그리고 치악산 가지인 망산에
아늑하게 둘러싸인 주천도 인근의 판운리처럼 섶다리가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지금은 시멘트 다리에 밀려 사라졌지만 조선시대엔 주천강과 지류를 건너는
섶다리가 수도 없이 많았다고 한다.
최근 70m 길이의 쌍섶다리가 복원된 섶다리의 고장 주천으로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쌍섶다리가 첫선을 보인 때는 300여년 전인 1699년. 숙종은 원주에 부임하는
강원 관찰사에게 영월 장릉(단종의 묘)을 참배토록 했다.
그러나 관찰사를 태운 사인교로는 외섶다리를 건널 수 없어 주천강을 사이에 둔
주천리와 신일리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섶다리를 하나씩 놓았다고 한다.
이 후 쌍섶다리 놓기가 한동안 민속놀이로 이어지다가 명맥이 끊겼고
작년 12월21일 마을주민과 이 고장 출신의 기업인 최계경(41·계경목장 대표)씨가
고향사랑하는 마음을 모아 쌍섶다리를 재현했다고 한다.
숙종 때의 쌍섶다리는 빙허루 아래 배터거리인 술샘 부근에 세워졌었다.
주천(酒泉)이란 지명도 양반이 가면 약주가 나오고 천민이 가면 탁주가 나왔다는
술샘에서 유래됐다.
눈내리는 날 쌍섶다리가 걸린 풍경은 한폭의 동양화처럼 고즈넉하다.
성긴 판자를 얼기설기 엮어 만든 초가집과 발갛게 말라버린 갈대숲,
그리고 나목의 미루나무가 쌍섶다리와 함께 운치를 더한다.
지나던 길에 들른 듯 동심의 나그네가 출렁거리는 쌍섶다리를 거닐며 하얀 발자국을
새기는 풍경도 동양화의 한부분처럼 전혀 어색하지 않다.
‘…//장릉 알현 귀한 길의
/강원감사 그 행차가
//에헤라 쌍다리요
/편안히 건너도록
//감사다리 놓아주세
/에헤라 쌍다리요
//…/감사행차 쌍다리나
/이불속에 쌍다리나
//에헤라 쌍다리요
/쌍다리는 일반이라
//…’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영월 주천의 ‘쌍다리 민요’다.
주천 사람들은 섶다리를 놓을 때 단종의 넋을 위로하고 성을 묘사하는 노동요를 불렀다.
출렁거리는 쌍섶다리에서 쌍다리 민요를 읊조려보면 주천 사람들의 해학과 재치에
절로 미소가 흐른다.
쌍섶다리 서단은 갈대와 버드나무가 울창한 2만∼3만평 규모의 갈대섬이다.
동네 개구쟁이들이 미역을 감고 투망을 던지던 갈대섬 서쪽의 보(洑)는 강이 얼어붙자
썰매장으로 변했다. 언손을 호호 녹여가며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빛바랜 앨범속의 한 장면을 발견한다.
영월 주천 쌍섶다리.
그곳에 가면 잃어버린 옛날의 기억을 초가 찻집의 주전자에서 끓어오르는 하얀
김처럼 되살아난다.]
[떠난길에서] 맛을 파는 식당
“부부싸움 한 날에는 ‘죄송합니다’란 팻말 걸어놓고 식당문을 닫습니다. 왜냐구요?
아무래도 기분이 언짢으면 음식맛이 싱겁거나 짜지기 때문이지요. 뿐만 아니라
얼굴이 굳어져 손님들에게 불친절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잖아요. 결혼 초창기엔
식당 문닫는 날이 많았는데 요즘은 거의 없습니다. 부부싸움을 할수록 영업을 못해
손해보니까 서로 참게 되더라구요.”(‘콩깍지밥상’ 정장교씨)
“식당영업 19년 동안 남은 것은 손님들의 방명록밖에 없어. 강원도 토속음식인
꼴두국수와 올창묵을 맛있게 먹었다고 적어놓은 글들을 보면 절로 힘이 나. 여기봐!
도시 아이들도 정말 맛있게 먹었다고 하잖아. 글쎄. 빛바랜 노트가 수십권은 넘을거야.
노트를 볼 때마다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들어야 겠다는 각오를 하게 돼. 방명록이
채찍인 셈이지.”(‘신일식당’ 임덕자 할머니)
“마음에 드는 돌이 있으면 명함 꽂아 놓고 가세요.
예쁜 받침대를 만들어 함께 보내드릴께요. 비록 값나가는 수석은 아니지만 주천강에서
천렵을 할 때마다 하나씩 모았어요. 돌 받침대를 일일이 깎을 수는 없어 노인정의
어른들에게 용돈 드리고 부탁하지요. 그리고 주천으로 여행오면 전화주세요.
제가 모시고 다니며 주천의 속살을 안내해 드릴께요.”(‘퉁가리’ 박상준씨)
영월 주천은 아직 관광객들의 손때가 묻지 않아서 그런지 자연은 물론 그곳에 둥지를
튼 사람들도 소박합니다. 식당의 규모나 시설도 도시나 유명 관광지의 대형식당에
비할 바 못되지만 손맛과 후덕한 인심만은 요즘말로 ‘짱’이었습니다.
부부싸움하면 손맛이 우러나지 않는다며 아예 식당문을 닫아버리는 정장교씨의 우직함과
맛있게 먹었다는 방명록을 채찍삼아 토속음식 지키기에 정성을 다하는 임덕자 할머니의
장인정신,그리고 식당 손님에게 관광 도우미까지 자청한 박상준씨의 친절은 잔잔한
감동이었습니다.
잃어버린 고향의 맛과 정을 느껴보고 싶다면 여행 오가는 길에 영월 주천의
허름한 식당들을 찾아 보십시오.
[여행메모]
◇어떻게 가나=중앙고속도로 신림 나들목에서 88번 지방도를 타고 20분쯤 달리면
영월 주천이다. 쌍섶다리는 주천2교에서 하류쪽으로 200m 거리에 있다.
한반도지형으로 유명한 선암마을과 소나기재의 선돌,단종의 무덤인 장릉도 주천에서 가깝다.
주천강의 모습을 한눈에 보려면 망산의 빙허루나 수주면의 요선정에 올라야 한다.
특히 요선정 아래 주천강엔 욕조처럼 생긴 구멍이 수십개나 패인 너럭바위가 눈길을 끈다.
운학계곡과 엄둔계곡,그리고 법흥계곡의 설경도 운치 있다.
◇먹을 거리=영월 주천엔 값싸고 맛있는 토속음식점이 많다. 옛 가재도구로 장식한 ‘
주천묵집(033-372-3800)’은 도토리묵밥과 메밀묵밥,묵무침 전문점으로 조밥이 따라나오는
묵밥이 별미. ‘콩깎지밥상(033-372-9434)’은 직접 만든 두부로 두부전골 모두부 비지장
두부구이 등을 내놓는다. 손님들에게 무료로 콩비지도 나눠준다. 주천 시외버스터미널 옆의
‘퉁가리(033-372-0277)’에 가면 주천강에서 잡은 모래무지 등 토종 민물고기를 튀겨
양념장을 얹어 낸 도리뱅뱅이를 맛볼 수 있다. ‘무릉송어장횟집(033-372-8388)’의
산천어회와 송어회는 입에 넣자 마자 살살 녹는다. 주인 부부가 1급수에서만 자라는
산천어와 송어를 직접 양식한다. 배터거리 인근의 ‘갈마식당(033-372-8813)’은 냄새를
없앤 흑염소 전골과 수육으로,‘복미집(033-372-8282)’은 다슬기전골로 유명하다.
주천초등학교 앞의 신일식당(033-372-7743)은 메밀로 만든 꼴두국수와 옥수수로 만든
올창묵이 맛있다.
영월= 박강섭기자의 글을 옮깁니다
첫댓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우리 동네 앞 시내에도 겨울이면 섶다리가 놓여졌지요. 그런데 홍수에 떠내려가면 그 추운 겨울에 냇물을 건너야 했는데 아랫 종라리가 트고 아파서 밤마다 쩔쩔메며 '멘소리담'이란 연고를 바르던 생각이 납니다. 귀한 자료,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