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일 목요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학자 기념 ( 요한 1,19-28)
이분은 내 뒤에 오시는 분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소개하고 있다. 요한 세례자는 즈카르야의 아들로 제사장직을 이을 수 있는 혈통이었음에도 그 직분과는 거리가 먼 광야에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과 행동을 보고 혹시나 그가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 그리스도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또한 요한 세례자에게는 그의 제자들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성서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을 때에 자기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고 역사의 뒤로 사라지는 그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인간적으로 자신의 위엄과 힘을 군중들의 힘을 빌어 나타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본능적인 모습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메시아로 생각하면서 따를 수 있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자신의 사명에 충실한 면을 보여줍니다. 복음의 주인공인 세례자 요한에 대해 묵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에게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이 찾아오지요. 예수님께도 유다인들은 사람을 보냈지만, 예루살렘의 지체 높은 사람인 사제와 레위인이 아니라 종들과 헤로데 당원들을 보냈습니다.
이렇게 지체 높은 사람이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리고 요한에게 “당신은 누구요?”라고 물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어쩌면 그들은 정답을 정해놓고서 요한을 찾아온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아니라 요한을 그리스도로 결정한 것입니다.
우선 예수님은 보잘것없는 집안 출신이었지요. 그러나 요한은 대사제의 아들로 좋은 가문 출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들과 먹고 마시는 일에 자주 했지만, 요한은 광야에서 혹독한 수련을 거치면서 세상을 향해서 힘차게 외쳤습니다.
따라서 이들에게 “맞소. 내가 그리스도요.”라고 말했다면 모두가 요한을 그리스도로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리스도가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모든 유다인들이 간절히 기다려온 그리스도로 인정받을 수도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세속적인 것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기에 “아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하느님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자기만을 드러내다 보면 하느님을 보려는 마음 자체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겸손했기에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었고, 끝까지 하느님을 증거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
이 겸손을 우리 안에 간직해야 합니다. 이것이 요한 사도의 말씀처럼 주님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1요한 2,27 참조)
우리는 과연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요한이 보여준 세속적인 것이 아닌 하느님의 뜻에 충실히 따르는 그의 성실성을 본받아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