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책소개
전 미국의 대학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21세기 최고의 신약성서 개론서
『신약성서-초기 그리스도교 문헌 역사 서설』은 우리 시대의 가장 신뢰받는 성서학자 중 한 명인 바트 어만이 쓴 신약성서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 초기 문헌에 대한 개론서이다. 1994년 초판이 발간된 이래 현재까지 개정 7판이 나올 정도로 이 책은 전 미국의 대학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21세기 최고의 신약성서 입문서’로서 꾸준히 호평을 받고 있다.
신약성서는 서양 문명의 역사에서 다른 어떤 책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중요성을 지닌 책이다. 역사적으로도 성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베스트셀러지만 탈종교의 시대인 21세기 현재도 미국에서만 한 해에 2,500만 부의 성서가 판매되고 있다. 신약성서는 종교, 역사, 이데올로기, 세계관에서 서양의 핵심에 놓여 있는 단 하나의 텍스트다. 신약성서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세계사의 과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바트 어만은 이 중요한 텍스트가 예수 사후 약 350년 뒤에 그리스도교의 정경으로 자리 잡기까지의 역사와 신약성서를 이루는 27권의 책에 대한 개괄적인 소개를 그리스-로마 시대의 문화와 역사, 전승사, 20세기 최고의 고고학적 발견 사해문서와 나그함마디 문서를 통해 알려진 다양한 그리스도교 운동의 실체를 파고들면서 소개한다.
신약성서를 최대한 당시의 맥락에 위치시키는 방법으로 편집 비평적 방법, 비교 분석 방법, 장르 비평 방법, 사회-역사적 방법 등을 적용해 네 복음서의 특징을 면밀히 검토하고 성서 저자들의 서술에서 그들의 관심사와 거기에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는 초기 그리스도교 운동이 처했던 역사적 상황들을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을 기반으로 최대한 실체에 가깝게 복원하려 한다. 유대교 종말론의 전통에 이어지는 예수의 가르침의 요소들과 그것이 어떻게 예수의 부활에 대한 믿음을 중심으로 그리스도교라는 새로운 종교로 성장해나갔는지를 하나의 장대한 드라마로 묘사해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저자는 신약성서 27권의 책이 각 저자의 독자적인 예수 이해와 발생한 문제들과 그들의 과제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복음서들이 전하는 서로 화해될 수 없는 예수의 생애에 대한 관점과 사실의 차이는 역사적 맥락과 저자들이 강조하고자 한 예수의 면모를 분명히 인식해야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총 5천 매가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이 책은 신약성서라는 텍스트를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가장 기초적인 안내서에 불과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이 신약성서에 대해 종교적 텍스트를 넘어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우리의 삶을 규정한 텍스트로서 흥미를 가지게 된다면 책은 그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저자 소개
바트 어만
미국의 신약성서 학자. 신약성서, 역사적 예수, 초기 그리스도교의 기원과 발전을 다룬 30권 이상의 책을 집필했으며 그중 다수의 책이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그의 책은 전 세계 27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성서The Bible』, 『신약성서 입문A Brief Introduction to the New Testament』, 『신약성서-초기 그리스도교 문헌 역사 서설The New Testament-A Historica Introduction to the Early Christian Writings』, 『신약성서 이후After the New Testament』 등의 저서는 미국 전역의 대학에서 종교학과 신학의 교재로 쓰이고 있는데 특히 『신약성서-초기 그리스도교 문헌 역사 서설』은 1997년 출간되자마자 폭발적인 호평을 얻고 현재 일곱 번째 개정판이 나와 있을 정도로 미국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신약성서 교과서이다. 신실한 복음주의자였던 어만은 십대 때 성서가 성령의 영감으로 쓰였다고 굳게 믿었고, 신의 말씀인 성서에 대한 열정은 코이네 그리스어와 텍스트 비평 연구로 그를 이끌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목회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우등magna cum laude으로 취득했고 20세기를 대표하는 신약성서 학자인 브루스 메츠거 교수 밑에서 신약성서 본문 비평, 신약 정경의 발전, 신약 외경을 연구했다. 그러나 프린스턴 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신약성서의 복음서들 간에 도저히 조화되거나 조정될 수 없는 모순과 불일치들이 있다는 것과 수천 개의 신약성서 사본 중 똑같은 사본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왜 신은 성서의 본문을 보존하는 수고를 하지 않고 필사가들이 그것을 변경하도록 허용했는지 회의가 들었다. 그가 쓴 수많은 책들에는 신실한 종교인으로서 가졌던 신앙에 대한 의문과 그 내적인 투쟁의 과정이 깊게 새겨져 있다. 성서에 대한 회의 이후로도 자유주의 그리스도교인으로서 15년 동안 성공회에 머물렀지만 악과 고통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다루면서 현재는 불가지론적 무신론자로 자처하고 있다. 어만은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성서 비평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고 신약성서라는 텍스트의 광범위한 배경을 특유의 명쾌한 논지로 명확하게 그려내는 탁월한 저술가로 압도적인 대중의 지지를 얻고 있다. 2009년 J. W. 포프 "탐구 정신" 교육상, 1993년 UNC 학부생 교육상, 1994년 필립 및 루스 헤틀만 예술 및 학문적 성취상, 보우먼 및 고든 그레이 우수 교육상을 수상했고 현재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의 제임스 그레이 종교학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대중 강연과 논쟁적인 토론, 언론 기고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저서로 『성경 왜곡의 역사Misquoting Jesus』 『예수 왜곡의 역사Jesus, Interrupted』 『고통, 인간의 문제인가 신의 문제인가God’s Problem』 『위조된 복음서Forged』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How Jesus Became God』 『기독교는 어떻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는가The Triumph of Christianity』 『두렵고 황홀한 역사Heaven and Hell』 『아마겟돈Amageddon』 등이 있다.
📜 목차
추천사
역자 서문
제7판 서문
서론 왜 신약성서를 연구해야 하는가?
01장 신약성서란 무엇인가?
여록 1 몇 가지 추가적인 성찰: 역사학자와 신앙인
02장 원본 신약성서는 존재하는가?
포토에세이 1 신약성서의 고대 필사본
03장 초기 그리스도교 전승의 그리스-로마 세계
04장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이 살던 유대 세계
05장 구전 전승에서 기록된 복음서로
여록 2 몇 가지 추가적인 성찰: 복음서들의 저자들
06장 예수, 고난받는 하느님의
07장 공관복음서 문제와 그 해석의 중요성
08장 예수, 유대인 메시아
09장 예수, 세상의 구원자
10장 예수, 하늘에서 보내진 사람
여록 3 이데올로기 비평의 방법들
11장 요한의 예수에서 영지주의의 그리스도로
12장 다른 관점에서 본 예수
13장 역사적 예수: 자료, 문제 및 방법들
여록 4 역사가와 기적의 문제
14장 맥락 속의 예수
포토에세이 2 예수와 복음서들의 물질세계
15장 예수, 종말론적 예언자
16장 예수에서 복음서로
17장 루카의 두 번째 책
여록 5 루카-사도행전의 저자와 그의 독자들
18장 사도 바울로의 삶과 선교
19장 바울로와 그의 사도로서의 선교
20장 바울로와 그의 교회들의 위기
21장 바울로의 복음서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
포토에세이 3 바울로 시대의 도시와 길들
22장 전승들은 유실되는가?
23장 사도 이후
24장 바울로의 여성 동역자들에서 목회자들에 의해 위협받는 여성들로
25장 그리스도교인들과 유대인들
여록 6 디지털 성서
26장 그리스도교인들과 이교도들
27장 그리스도교인들과 그리스도교인들
28장 그리스도교인들과 우주
용어 사전
참고 문헌
📖 책 속으로
처음부터 그의 어머니는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천사가 나타나 그녀의 아들이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신성한 존재임을 알려주었다..... 소년은 이미 어렸을 때 영적인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인식되었다. 전문가들과 그가 벌인 토론은 종교적인 모든 것에 관한 그의 우월한 지식을 보여주었다. 성인이 된 그는 사람들이 무엇을 입어야 할지, 무엇을 먹어야 할지 등 현세의 물질적인 것에 대한 걱정을 버려야 한다고, 대신 자신들의 영원한 영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선언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의 가르침과 흠잡을 데 없는 인격에 놀라워하는 수많은 제자들이 그의 주위에 모였다. 그들은 그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신의 아들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고, 악령을 쫓아내고, 죽은 사람들을 일으킬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그에게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말년에 그의 적들은 그를 비난했고, 그를 국가에 대한 범죄자로 로마 당국의 재판에 회부시켰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는 그의 헌신적인 추종자들을 버리지 않았다. 어떤 이는 그가 천국으로 올라갔다고 주장했고, 어떤 이는 그가 살아서 그들에게 나타났다고 말했으며, 또 어떤 이는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그를 만졌고, 죽음이 그를 구속할 수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많은 그의 추종자들이 이 사람에 대한 복음을 전하면서 그가 말하고 행한 것을 다시 세상에 전했다. 이 설명들 중 일부는 책들로 기록되어 제국 전역으로 퍼졌다.
하지만 내 생각에 당신은 그 책들을 읽어본 적이 없을 것 같다. 아니, 사실 나는, 당신이 이런 기적을 일으키던 “신의 아들”의 이름조차 들어봤을 것 같지 않다. 지금 내가 언급하고 있는 사람은 1세기에 살았던 로마 신들의 숭배자였고 위대한 신피타고라스학파의 스승이자 이교도 성인인 티아나의 아폴로니오스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예수에 대해 말해지던 초기 전승들 ―그에게 가닿을 수 있는 유일한 길 ―을 연구하고 싶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그리스-로마 세계의 원래 맥락에 배치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예수에 대한 이야기는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졌고, 신적인 존재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이해한 예수는 지금 우리의 생각과는 달랐을지도 모른다. 고대의 사람들에게는 이 이야기들이 상식적인 의미를 지녔을지도 모른다.
일부 현대 그리스도교인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가르침을 본래의 맥락에서 떼어내 마치 최근 북미의 어딘가에서 전해진 것처럼 적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자들이 한 가지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이 있다면 예수가 1세기 유대인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유대인 부모에게서 태어나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유대인들의 신을 숭배하고, 유대인들의 성서를 배우고, 유대인들의 관습을 지키고, 유대인들의 선생이 되어 유대인 무리에게 설교했다. 그는 자신이 유대 왕이라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처형당했다.
초기 복음서의 저자들은 그들이 서술한 사건들의 목격자였던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어딘가에서 그 이야기들을 들었을 것이다. 실제로, 그들 중 한 명은 그가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 이전에 쓰인 기록들을 읽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루카 1:1-4) 대부분의 신약 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예수가 실제로 말하고 행한 것에 대한 진정한 역사적 사실들을 수집, 보존하는 것 외에도 이 저자들은 그 과정에서 수정되거나 심지어 지어낸 이야기들을 서술했을 가능성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바뀐 이야기들을 복음서가 적어도 일부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은 순수한 추측만은 아니다. 사실 우리는 복음서 자체에 이런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예수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말해지는 과정에서 바뀌었거나 지어졌다는 증거는 복음서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들에서도 찾을 수 있다. 많은 경우 같은 이야기들이 복음서들에 반복해서 나타나지만 그 이야기들은 중요한 방식으로 서로 다르다. 때로는 이러한 차이는 단순히 강조점의 차이를 나타내지만 때로는 양립할 수 없는 모순을 나타내기도 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그 차이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이든 아니든 간에 그것들은 종종 예수에 대한 중요한 생각을 전달하려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의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요한의 기록이 상대적으로 늦게 이루어졌으므로 그것이 서술하는 사건들과 요한의 복음서 사이에 더 많은 세월이 흘렀고 더 많은 이야기꾼들이 개입했을 것이다. 때문에 요한의 복음서가 전체적으로 덜 정확할 것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요한, 또는 그의 출처가 예수의 죽음에 관한 세부 사항을 왜 바꾸었을지에 관해 흥미로운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요한의 복음서는 예수가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느님의 어린 양”으로 나타나는 유일한 복음서이다. 실제로, 예수는 그 복음서가 시작될 때 그의 선구자인 세례 요한에 의해 그렇게 불렸다.(1:29; 1:36 참고) 이 네 번째 복음서에서 예수의 죽음은, 첫 번째 유월절 동안 희생된 양이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의 구원을 상징한 것처럼, 하느님의 구원을 상징한다. 아마도 요한(혹은 그의 출처)은 이 신학적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예수가 죽은 날과 시간을 바꾸었을 것이다. 이 복음서에서 예수는 그가 하느님의 어린 양임을 보여주기 위해 유월절 양과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죽는다.
이 결론은 복음서에 대한 우리의 조사에 몇 가지 심오한 함축을 지닌다. 첫 번째는 복음서가 초기 그리스도교 문학의 일부인 것과 관련이 있다. 그들이 이어받은 이야기들이 나름의 주장을 담고 있었던 것처럼, 복음서 저자들 자신들도 예수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일관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각 복음서 작성자들은 모두 하고 싶은 주장들이 있었고 그것들은 항상 같은 내용은 아니었을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에 관한 마르코의 주장은 요한의 주장과 달랐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말로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은, 각 저자들이 모두 같은 말을 하려고 한다고 가정하기보다는 각자 자신의 말을 하도록 허락하는 것이다. 우리는 각각의 이야기가 무엇을 강조하는지 연구할 필요가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마르코 복음서의 결론에 큰 실망과 당혹감을 느껴왔다. 예수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제자들이 듣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이야기가 끝날 수 있지? 분명 그 여인들은 누군가에게 말을 했을 거야. 초기 교회에서 이 복음서를 수기로 복사하던 사람들은 결말 부분에 너무 화가 나서 그들 스스로 글을 더했다.(Box 2.2 참고) 그들은 제자들에게 나타난 예수의 모습을 묘사하는 구절 열두 개를 추가했다. 그러나 현대의 학자들은 모두 이 결말을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2장 참고) 어떤 사람들은 그 복음의 마지막 부분이 어떤 이유로 분실되었다고 가정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하지만 그것은 복음서들이 두루마리 대신에 분리된 페이지들에 쓰였다는 이상한 주장을 하게 만든다.)
마태오의 독자들은 종종 텍스트 자체에 제시되지 않은 관점을 가져와 마태오의 엄격한 명령을 부드럽게 만듦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해왔다. 예를 들어, 예수는 사람들이 스스로 완전한 죄인이라는 것, 그래서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신의 은총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도록 만들기 위해 아무도 지킬 수 없는 이상적인 기준을 세워놓은 것임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예수의 가르침의 요점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고 싶어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 된다. 이 해석의 문제는 토라의 저자들은 사람들이 탐심을 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마태오의 복음서 속의 예수는 인간들이 분노나 정욕을 억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루카는 죽음의 고통에 처한 예수를 매우 다르게 묘사한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러 가는 길에서 침묵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를 위해 우는 여인들에게 돌아서서 “예루살렘의 여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라”(루카 23:28)라고 말한다. 예수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에 대해 괴로워하기보다는 이 여인들의 운명을 더 염려한다. 이런 자신감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걱정은 나머지 이야기의 여러 부분에서도 펼쳐진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도 침묵하기보다는 자신을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23:34)라고 용서를 구한다.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동안 예수는 옆 십자가에 못 박힌 범죄자들 중 한 명과 지적인 대화를 나눈다.
나는 제4복음서에서 발견되는 주제들이 항상 내부적으로 일관성이 있지는 않다는 점을 암시해왔다. 즉, 요한의 복음서에는 하나의 관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다른 관점들이 혼재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이 책의 자료들에 대해 알아본 것을 감안하면 이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저자는 앞서 다른 저자들이 쓴 이야기들을 이용했고, 그들 저자들은 저마다 예수와 그가 한 말과 행동의 의미에 대해 자신들만의 시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다양한 자료들을 채택함으로써 요한의 복음서의 저자는 예수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을 책에 들여왔다.
이 통찰의 한 가지 실제적인 함의는 만약 우리가 누군가의 말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가 말하는 맥락 안에서 그 말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은 구두 커뮤니케이션뿐만 아니라 서면 커뮤니케이션에도 적용된다. 그러나 고대 문헌의 경우 우리는 단어들이 쓰였던 역사적 맥락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얻기 힘들다. 따라서 텍스트가 생성된 맥락을 이해하려면 텍스트 뒤에 있는 상황을 재구성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본문을 해석하기 위해 맥락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70년 동안 학자들은 영지주의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느냐의 문제를 두고 열띤 논쟁을 벌여왔다. 이러한 논쟁들은 영지주의를 기술하거나 영지주의자들에 의해 쓰인 고대 자료들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약 100년 전까지만 해도 영지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유일한 자료들은 2세기, 3세기, 4세기 원정통파 교부들의 글이었는데 그들은 철저하게 영지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요한의 편지들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적대적인 입장의 공격을 기초로 해서 어떤 집단의 신념과 활동을 재구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음을 살펴보았다. 영지주의에 있어 이런 문제는 훨씬 더 심각하다.
이 신약성서들은 역사가에게 어느 정도 믿을 만한 자료이며, 역사적 예수에 대한 질문에 어떻게 답변할 수 있을까? 이 질문들에 대한 해답은 우리가 앞에서 이 문서들을 문학적인 텍스트로 분석한 것으로부터 추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신약 복음서가 예수의 생전이나 그 직후에 쓰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가장 초기에 쓰인 복음서인 마르코의 복음서는 서기 65년경 그리고 가장 늦게 쓰인 요한의 복음서는 아마도 서기 95년경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들은 대략적인 날짜일 뿐이지만 사실상 모든 학자들이 사실로 받아들인다. 따라서, 현존하는 복음서들 중에서 가장 일찍 쓰인 것들은 그들이 서술하는 사건 이후 35년에서 65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우리 시대로 설명을 하자면 에드 설리번(독자들이 이 사람이 누구인지 잘 모른다면 그것은 나의 예를 더욱 적절한 것으로 만든다)이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또는 해리 트루먼에 대한 기록을 올해 처음 가지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작가들은 모두 예수가 누구이며 그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관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관점은 그들이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게다가 각 작가는 이전의 문헌 자료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들을 물려받았고 이런 자료들도 각자 나름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예수에 대해 기록이 쓰이기 전에도 그에 대한 이야기들은 다양한 이유로 ―예수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그를 믿도록 사람들을 설득하고, 그와 하느님과의 관계를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그가 히브리 성서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보여주기 위해, 그의 추종자들에게 그의 말이 불러올 수 있는 희망을 북돋기 위해 ― 예수의 이야기를 하던 그리스도교인들 사이에 오랜 세월 동안 구전으로 떠돌았다. 구전되면서 그 이야기들은 당면한 목적에 맞게 바뀌었다. 그것들은 글로 옮겨지면서 더 많이 수정되었고 나중에 편집되면서 또 수정되었다. 이 견해는 단순히 학구적인 상상력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것에 대한 증거를 가지고 있다.
예수를 종말론자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가 다른 모든 유대인 종말론자들이 하던 말과 행동을 반복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예수가 그의 생애 동안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르치고 행했는지를 알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전반적인 메시지가 종말론적이라는 점을 아는 것은 그에 대한 전승의 다른 측면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예들은 예수가 준 삶의 지침, 즉 그의 윤리는 종말론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건강한 사회를 위한 원칙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오해하는 것이다. 예수는 사람들이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쳤지만 그들이 행복하고 생산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돕고 싶거나 사람들이 서로를 대할 때 사랑이 근저에 있지 않다면 사회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사람들이 미래에 어떻게 서로 지내야 하는지에 관심을 가진 윤리 교사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예수에게 종말은 자기 세대 안에 일어날 일이었다. 그에게 있어 윤리적인 행동에 대한 동기는 사람의 아들이 이끌어올 왕국의 도래가 가까웠다는 것의 인식이다
이론적으로 말하면, 모든 종교와 철학 운동은 기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몇 가지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그것이 예수의 사역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예수의 언행이 없었다면 그를 바탕으로 하는 종교는 없었을 것이다. 동시에, 그리스도교는 전통적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지지하는 종교 그 이상이었다. 실제로 예수가 종말론적 예언자였다면 그의 뒤를 이어 나타난 그리스도교는 그가 선포한 것과는 다소 다른 종교의 모습을 보인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그리스도교는 죄를 대속하기 위한 예수의 죽음과 죽은 자들로부터의 그의 부활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둔 종교이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가 갈릴래아와 유대의 유대인들에게 전한 종교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학자들이 수년 동안 사용해온 표현을 사용하자면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종교religion of Jesus(그 자신이 직접 선포한 종교)라기보다는 예수에 관한 종교religion about Jesus(그의 죽음과 부활에 바탕을 둔 종교)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로의 설교들의 일부 목적은 그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 됨으로써 유대교를 조금도 위태롭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목적은 로마 제국과 관련한 그의 입장과 관계가 있다. 그의 적들은 그가 반드시 처형되어야 할 위험한 존재라고 주장한다. 예상하겠지만 루카는 의견이 다르다. 실제로, 그의 이야기는 복음서에서 예수가 그랬던 것처럼 바울로가 어떤 잘못도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바울로 자신이 변증 연설에서 선언하듯이, 그는 로마의 법을 위반하지도 않았고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문제는 바울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그에게 반대하여 소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생길 뿐이다.
나의 입장은 사도행전이 역사적인 바울로에 대해 알려주는 것은 루카의 복음서가 역사적인 예수에 대해 말하는 것만큼 믿을 만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언제 종말이 도래할 것인가에 대한 자신의 신학적 관점을 반영하기 위해 루카가 예수의 말을 수정하거나 예수의 수난과 관련된 몇몇 전승들을 비슷하게 바꾸었듯이 사도행전에 나온 바울로의 언행도 수정되었다. 따라서 사도행전은 루카가 바울로를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지만 바울로 자신이 실제로 말하고 행한 것에 대해서는 별로 말해주는 것이 없다.
다른 차이점들은 더 중요하다. 예를 들어, 바울로는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예수를 환상 중에 만나 그를 믿게 된 후, 사도들과 상의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갈라 1:15-18) 이것은 그에게 중요한 문제였는데, 그는 갈라티아인들에게 그의 복음의 메시지가 예루살렘에 있는 예수의 추종자들(원제자들과 그들 주변의 교회)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예수 자신에게서 직접 온 것임을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요점은 자신이 예수에게서 받은 메시지를 훼손하지 않았다는 것, 그의 복음은 사람의 개입 없이 바로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이다. 물론, 사도행전도 바울로의 개종에 대한 그 나름의 이야기를 제공하지만 그곳에서는 바울로가 갈라티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행동들을 한다. 그는 개종한 지 며칠 만에 바로 예루살렘으로 가서 사도들을 만난다.(사도 9:10-30)
코린토스 교회는 행복한 곳이 아니었던 것 같다. 바울로는 그리스도와 함께 높아진 지위를 누리자고 주장하면서도 내분을 일삼고 부도덕하고 추잡한 신도들의 행동을 용인하는 공동체를 보았다. 우리는 바울로의 분노와 불신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짓을 하는 당신들이 천상의 삶을 살고 있다고? 이런 당신들이?’라는 듯한 그의 걱정도 느껴진다. 이곳은 그의 선교 사역에서 주요한 교회였지만 그의 복음 메시지의 기본적인 의도에서 빗나가고 있었다. 그는 코린토스 교회 신도들을 친구로 대했지만(예: 편지의 서문과 말미 참고) 중요한 문제에 대해 그들 중 많은 사람들과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그의 편지를 받은 후에도 그들의 상황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바울로에게 이것은 절대적인 모욕이었다. 그것은 하느님 앞에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있다는 것을 시사했고 그것은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동의한 내용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바울로에게는 유대인과 이방인은 하느님 앞에서 동등한 위치에 있었고 유대인의 우월성을 암시하는 어떠한 시도도 복음을 훼손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베드로 쪽의 주장을 전혀 들을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갈등의 결과를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사건에 대한 바울로의 설명은 이 편지가 궁극적으로 다루고 있는 문제, 즉 바울로의 복음 메시지와 유대 율법의 관계를 보여주기 때문에 중요하다.(갈라 2:15)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유대 율법의 관계는 바울로가 일생 동안 천착했던 문제이다. 실제로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그가 다루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질문들 중 하나였는데,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의 존재가 율법의 완성이라고 가르치는 한편 외부인들이 보기에 유대인들을 유대인으로 만드는 율법의 측면들을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행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 질문은 바울로가 자신의 복음 때문에 다루어야 했던 더 큰 문제들 ―예를 들면, 하느님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유일한 구원의 수단으로 삼음으로써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저버렸는지 그리고 그 결과 항상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되겠다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신의 없고 믿을 만하지 못한 존재임을 드러냈는지 등의 문제들 ―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중요했다.
하지만 예수가 사회혁명을 추구하지는 않았을지라도 당시로서는 그의 메시지가 혁명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특히, 우리는 예수가 그의 추종자들에게 곧 올 사람의 아들을 기대하며 그의 왕국의 이상을 지금 즉시 실천하라고 촉구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의 설교 사역에 동행한 남녀들 사이에서는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첫걸음으로서가 아니라 곧 다가올 새로운 세상에 대한 준비로 어떤 형태의 평등이 행해졌을지도 모른다. 예수가 살아 있을 때 그를 따랐던 여성들의 위치가 그의 사후에 교회 내 여성의 지위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인 사도 바울로의 교회들에서 여성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처럼 보였던 이유일 수 있다.
비록 그리스도교의 창시자가 유대교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유대교 신자들을 자신의 제자들로 뽑았던 유대인이었음에도, 제자들에게 유대인들을 그들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가르쳤음에도, 그리고 비록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신학을 발전시키고 윤리의 체계를 세우고 유대교에 뿌리를 둔 기본적인 세계관을 계속 지닌 채 하느님이 유대 민족에게 주었다고 믿었던 성서에 비추어 자신들을 이해했음에도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때로는 유대인들에 대한 폭력적인 반대까지 포함해, 유대교 뿌리에서 벗어나는 길을 걸어왔다. 세상에서 자신들을 정의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그리스도교인들은 유대인들의 역사, 종교 그리고 유대인들과의 관계조차 부인하게 되었다. 그런 부인의 비극적인 결과들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