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을 구속할 이유 없다.」 서울지법 유창훈의 판결이다. 이 판결대로면 이재명의 하수인이라고 할 공범 24명의 구속은 부당한 것이 된다. 유창훈의 편향된 정치판결이다.
구속적부심은 심문(審問) 전 이미 기각하기로 작정해 있었고 피고인 이재명도 사전에 알고 재판에 나갔다. 24일간의 단식을 막 끝낸 사람으로선 너무 멀쩡하고 편안한 이재명이었다. 이재명이 기각을 안 시간은 언제였을까? 그것이 우리의 의문이다.
단식 쇼, 민주당 국회의원과 개딸의 기각 판결 탄원서 제출 등 「기각으로 가는 길」을 위한 연출은 참 기민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현재론 「유창훈」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일이다.
이재명은 전과 4범이고 성남시장이 된 후 저지른 부패도 문 정권 때 드러난 것들이다. 대통령 후보가 된 것이 상식 밖인데 선거에서 떨어지고도 송영길이 의원직을 사퇴해 열어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가 당선하고 당 대표가 되고 그걸 방패로 구속을 피하고 있다.
시장을 하고 도지사를 했다지만 기억할만한 실적은 없다. 민주당에서 활동한 이력도 거의 없다. 성남시장에 출마하기 위해 운동권에서 민주당에 들어갔을 뿐 당 활동으로 자란 것도 아니다. 그런데 민주당이 이재명의 포로가 되어 있다. 신기하지 않은가? 해답은 이재명이 아니라 좌파 조직에서 찾아야 한다.
민주당을 콘트롤하는 지휘부가 있다. 민주당만이 아니라 남한의 종북좌파 전체를 조종하고 통제하는 지휘부다. 그 지휘부가 있어 종북 단체들이 하나로 뭉쳐 행동한다. 이재명을 밀고 가는 지휘부, 그곳에서 통제하는 정당과 단체 그리고 이른바 세포들의 규모는 얼마쯤일까?
이번 “이재명 구속기각”에서 본 것처럼 재판소는 좌파 판사 세상이다. 그 중엔 김일성 장학생도 있겠지만 그걸 가릴 길이 현재로선 없다.
김일성 장학생 기르기는 남쪽의 4·19 후 준비를 시작해 70년대 중반부터 공작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판사만이 아니다. 남한 각계의 모든 분야에 침투할 장학생을 김일성이 길렀다. 그렇지만 거대한 공작금이 길러낸 김일성 장학생이 엄청 많다는 것 말고는 알 길이 없다.
이들, 장학생들, 그리고 80년대 대학에서 길러진 ‘386주사파’는 지금 남한의 중심부를 차지해있다. 문 정권 5년에 경찰 장악도 끝냈고 국정원까지도 침투해 있다니 무섭다고 할 사태다.
종북의 전위(前衛)는 민노총일까. 민노총 공무원노조 한노총 등 소위 노동조합의 수백만이 종북세력의 폭력이다. 전교조와 언론노조는 좌파의 첨병(尖兵)이다. 참여연대, 환경단체 등 수천의 시민단체도 있다. 특이한 또 하나는 프락치라는 이름의 세포다. 주사파 세포들은 국힘당 등 우파 정당과 단체 심지어 윤 대통령의 대통령실에도 침투해 있다.
주사파는 기업들의 금고를 제 금고로 해 자라고 이제는 세금까지 타내는 권력의 실세로 커져, 갖가지 산하 조직도 거느리고 있다.
어느 미디어는 “백화점에 진열된 제품보다 많고 다양한 정부 보조금 내역을 보면 한국에 시민단체가 1만5000곳이나 되고, 고용부에 등록된 소위 사회적 기업도 문 정부 5년간 두 배로 늘어 상장기업보다 천 개가 더 많은 3500곳이 넘는다”고 보도했다. 문제는 이들의 거의 다가 주사파 하부 조직이라는 점이다.
주사파는 주민센터에 까지 손길을 넓혀 이런저런 모임을 만들고 이제는 주민총회라는 것까지 추진하는 등 세금으로 저들 조직을 넓히는 공작에 끝이 안 보인다.
지난 9월 조선일보가 ‘런던에서 온 평양 여자’라는 회고록을 낸 오혜선을 인터뷰해 보도했는데 2000개 넘는 댓글의 다수가 吳씨의 탈북을 ‘”조국에 대한 배신“이라 비난하는 글이었단다. 김정일의 나라를 ’조국‘으로 아는 사람들이 남한에도 이렇게 많은 것이 주사파 ’40년 공작‘의 결과인가.
민주당 위에 민노총이 있고 그 민노총 위에 조선노동당이 있다. 당연히 이 거대한 반대한민국 세력을 김정은의 공작원, 시진핑의 스파이도 받히고 있다. ’좌파 지휘부‘와 김정은은?
최악의 후진국이던 땅, 자유인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공산당의 침략전쟁을 막아내고 불과 50년에 선진국과 나란히 하는 기적의 나라로 키웠다. 그런데 주류(主流)의 자리를 김정은 주사파에 넘기다니….
가장 큰 책임은 정치니, 오늘은 정치로만 좁히고 그 추적도 소위 3김시대로 건너뛰자.
1993년 김영삼이 대통령에 오른 뒤 대선 자금에서 어리석음을 범했다. 소위 노태우 비자금 사건 때 김영삼 대통령은 그 시절 관례였던 기업의 정치헌금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정직하고 당당한 길을 갔어야 했다. 그런데 비굴하게도 참여연대 등의 압력에 굴복해 자신의 정치자금을 묻는 대가로 5·18을 민주화운동 중 으뜸의 것으로 하는데 동의했다. 이것은 남한의 김일성 세력인 주사파에게 적화 공작의 활로를 넓혀 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김대중에 정권을 헌납해 대한민국 정권을 주사파에 넘기고 물러났다.
1998년 대통령이 된 김대중은 IMF 구제금융을 빌미로 기업을 손안에 넣었다. 그는 이 권력을 대한민국이 아니라 북의 괴뢰를 위해 활용하는 빗나간 길을 갔다.
백성은 굶주려 아사하고 군은 훈련조차 못해 궤멸 일보 전이던 김정일 정권을 김대중은 현대그룹을 내세워 햇볕정책이라는 미명으로 달러화를 퍼부어 구제하고 핵 개발의 자금마저 제공했다.
제주 4·3폭동을 통일운동으로 포장하는 것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을,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친일·독재로 모략하고 훼손하는 북의 정치공작과 선동도 뒤따랐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고 이회창이 연속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면서 한나라당은 패배주의에 찌들었다. 이회창이 스카웃한 민변 출신의 오세훈 등 강남 좌파들이 새 질서를 내걸고, 386 민노총 기자들과 연합해 당의 얼굴로 나서더니, 남경필 원희룡 등의 소위 ‘남원정 팀’으로 자라며 한나라당이 한때는 보수였던 것처럼 패배의 책임을 보수 노선에 씌워 ”보수로는 안 된다“고 노래했다.
그들은 주사파의 남한적화를 막아서기는커녕 김대중을 계승한 노무현의 길을 졸졸 따라갔다. 보수 궤멸의 길은 여기가 그 출발점이고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주사파 앞잡이로 나선 것은 주사파 추종(追從)의 절정(絶頂)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추석 직전 신문 인터뷰에서 도중하차 당한 오욕(汚辱)을 ”내 책임“이라며 국민에 사죄했다. 죄를 조작한 불법 탄핵임을 이제는 누구나 알게 되었지만, 원망도 분노도 드러내지 않았다. 탄핵 음모 못잖게 거기 동조하고 앞장선 악랄하고 야비한 내부의 배신에도 감정을 묻었다. 윤 대통령의 등장을 우파 집권이라며 환영했다. 대통령 지낸 자의 의연(毅然)함을 잃지 않았고 우파 대단결의 길도 터주었다.
이제 국힘당은 체제수호에 손을 놓고 주사파에 졸졸 따라다닌 30년의 소위 웰빙, ”오욕의 웰빙“을 접고 조선(朝鮮)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정당으로 가는 길을 약속하고 행동할 시간이다.
이승만이 열어간 대한민국 보수의 첫걸음은 애국(愛國)이다. 노비 근성을 씻고, 책임을 아는 자유인이면서 전통을 존중하고, 내가 물려받은 나라보다 더 나은 나라를 만들고 가기 위해 헌신하는 것이 한국 보수의 기본이다.
간결하게 정리하자.
● 김정은이라는 악(惡)의 권력을 없애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정치도 ”상식의 정치“ ”다수결의 민주제도“는 회복되지 않는다. 박근혜 탄핵이, 문재인이 김정은의 부하 대통령이 되어 다스린 5년이, 이것을 확인 또 확인했다.
남북 주사파는 탄핵 성공과 함께 혁명 결행 단계로 들어섰다. 이 길은 결코 돌아설 수 없는 길이다.
●정치·정치인이- 한국의 기업인, 세계와 경쟁하며 국제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인의 수준에 이르지 않고는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은 여기서 멎는다.
●마거릿 대처는 말했다.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은 나는 합의를 원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것이 나의 믿음이다. 당신도 이것을 믿으면 함께 가자“고 했다.
윤석렬 대통령도 대통령실에, 장관들에게 이 말을 했다. 지난 8월의 국회의원 연찬회 인사 연설도 이 말이다.
●총선 대책으로, 해야 할 일 중 하나를 첨가한다. 김기현 대표는 이번 임기로 국회의원을 마감하라. 국힘당 지도부는 어제의 실패가 가르치는 바에 따라,- 달라지고 보다 나아지는 내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