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 공중화장실에서 대본 연습을 한다는 본인의 인터뷰를 보고 아들의 독립을 허락한 엄마의 품을 떠나 산 지 어언 반년이다.
원체 대화가 없는 집인데, 훌륭하지 않은 대사로 그 고요를 깨는 것이 어색하여 공중화장실로 향했더랬다. 늘 검정색 외투를 입고 뉴욕 양키스 야구모자를 뒤집어 쓰고 어린이 놀이터 화장실 대변칸에 앉아 대사를 주저리 주저리 읊는다. 그러곤 머리도 식힐 겸 잠시 밖에 나와 아름답게 비가 내리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담배 한 대를 피우면, 씨씨티비를 지켜보던 경비 아저씨가 몽둥이를 들고 찾아온다.
“거 누구요.”
“주민인데요.”
“몇 동 사는데!”
“128동!”
“처음 보는데!”
“나도 아저씨 처음 보는데!”
자칫 아동 성범죄자로 몰릴 뻔한 상황에서 주민등록증을 보여주고 무사히 사건을 타결하고 생면부지 경비 아저씨랑 절친 먹음.
아무튼 그 이후 오피스텔을 하나 얻어 나온 지 벌써 반 년이 되었다는 거다. 20㎡(6평) 남짓한 공간에서 밥도 해먹고, 빨래도 직접 하고, 설거지도 하고, 온통 혼자다. 물론 좋은 점도 있다. 엄마가 빨래하면 옷에서 냄새가 나는데 내가 빨래하면 옷에서 섬유유연제 냄새가 난다. 냉장고에 좋아하는 콜라를 한 박스 사다 넣을 수도 있고, 저녁에 치킨을 사다 먹을 때 1.5리터 콜라를 같이 시켜서 냉장고에 넣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다. 대사 연습을 해도 보는 사람이 없고, 노래를 불러도 듣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노래 실력이 한 단계 상승했다는 건 비밀이다.
…
엄마가 보고 싶다.라는 느낌을 받은 게 사실 처음이다. 집 떠나 산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도 그 느낌이 이전과 다르다. 6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이지만 그사이 병치레를 두 번이나 했고, 한 번은 너무 아파 의사가 아닌 엄마를 찾아갔으며 엄마는 나를 의사에게 데려갔다. 나 혼자도 할 줄 아는 게 많다는 것을 알았고, 할 줄 아는 것들이 얼마나 귀찮은 것인지 알았으며, 이것의 배의 배의 배를 엄마는 혼자 할 줄 안다는 것도 알았고, 그것이 존경스러웠고, 마음이 조금 아프기도 했다. 엄마에겐 일터가 있는데, 집에 돌아오면 그 집도 일터였다.
최근에 엄마가 본인과 싸우고 방에 들어가서 운 적이 있다. 요즘 자주 울길래 갱년기 약을 사다주려고 알아보다가 아버지한테 여쭤봤더니 갱년기는 진작에 끝났고 그냥 너 새끼 때문에 우는 거니까 엄마한테 잘하라고 했다.
아무튼 엄마가 울면서 그랬다. 당신 팔자가 외할머니랑 똑같아서 이렇게 힘든 거라고. 외할머니도 불쌍하고 당신도 불쌍하다고 막 우는데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미안해서 덩달아 눈물이 나더라는 거다. 왜 거기서 엄마가 갱년긴가라고 생각이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엄마는 그렇게 하염없이 울었다.
…
며칠 전, 엄마의 엄마가 돌아가셨다. 3개월간 해오던 영화 촬영을 마치고 기분 좋게 매니저와 고기를 굽고 있는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정민아, 뭐하니?”
“나 밥 먹어. 왜?”
“밖이니?”
“밖이야. 왜.”
“그래, 방금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 너도 한번 와봐야지.”
엄마는 당신 엄마가 죽었는데 아들의 눈치를 봤다. 미안했다. 시팔. 내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생각에 화도 조금 났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보단 엄마가 걱정돼서 달려간 홍성의 장례식장에는 아직 가족들이 많이 와 있지 않았다. 엄마는 울지 않았다. 이상했다. 왜 울지 않지. 마음 정리가 벌써 된 건가. 원래 어른은 그런 건가. 생각이 드는 중에 이모들이 도착했다.
“엄마, 엄마 미안해” 하면서 우는 청주이모였다. 계속해서 “엄마, 엄마 미안해”라고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엄마의 다리가 풀렸다.
“언니가 뭐가 미안해. 엄마, 엄마.”
할머니의 넷째, 다섯째, 그리고 막내딸은 그렇게 울었다.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변변한 사진도 없어 영정 사진이라고 하기엔 옹색한 그 사진에 대고 세 딸은 계속 미안하다며 울었다.
엄마의 엄마도 많이 힘들었겠지 싶었다. 어쩌면 우리 엄마보다 더 힘들었겠지. 자식들 데리고 전쟁도 피해야 했을 테고, 그렇게 파괴된 국가에서 자식을 길렀어야 했을 테고, 군사독재 국가에서 한정된 자유 안에 살았어야 하는 그 상황에서 엄마의 엄마는 엄마를 위해서 많은 걸 바쳤겠지 싶었다. 엄마는 미안했을 거다. 영정사진에 대고 미안하다고 하는 엄마의 마음은 진심이었을 거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미안한 내 마음도 진심이었을 테고, 그 마음을 이젠 좀 덜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미안할 짓 좀 그만 하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이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목이 쉬어서 말을 못한다. 얼마나 울었으면. 저승으로 가신 엄마의 엄마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다. 이승에 남겨진 우리 엄마는 이제 그만 울었으면 좋겠다. 적어도 이제 내 눈치는 그만 좀 보셨으면 좋겠다.
미안해! 엄마.
출처 : 톱클래스 홈페이지
http://topclass.chosun.com/board/view.asp?catecode=J&tnu=201501100022
첫댓글 역시 다르다
멋있다
와..글 너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