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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글 임니다.
518재단의 상황 일지에 파란글로 적은것이 공감이되서.........
http://www.518.org 518기념재단에서 제공하는 상황일지입니다.
평화적 시위를 하고 있는데
진압군이 잔혹하게 시민들을 잡아죽이고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무기를 들고 싸웠으며
무자비한 진압으로 많은 민간인이 죽었다는 인식이 일반적으로 퍼져있습니다.
518을 잣대로
6.25는 물론 대한민국 현대사를 좌익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꼴이 대한민국에 만연하고 있습니다.
5.18의 진상은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 선동꾼들이 죽음으로 몬 시민들이 진정으로 명예회복될 수 있습니다.
빨갱이 선동에 의한 폭동이라는 생각이 있는한 희생자들 중엔 억울한 누명을 쓰는 분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빨갱이 선동꾼과 무고한 시민을 가릴 수 있는 5.18의 진상규명은
어쩌면 박근혜씨가 대통령이 되는 날이나 가능할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어용언론과 좌익세력이 판을 치는한 그런 날은 오지 않을겁니다.
518을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면 반미감정으로 인해 6.25, 베트남 전쟁까지 정의 편에 서서 싸운 사람들은 전범이요 민족의 반역자가 되고
김일성 등 공산주의자들, 진정한 반민족 세력이 득세할지도 모릅니다.
다음 상황일지는 518을 이용해 보수애국세력을 몰아부치는 자들의 주장이 의심스러움을 보여줍니다.
5월 17일 (토요일, 맑음)
#21시 40분 : 비상국무회의, 비상계엄 전국확대 의결
#23시 00분 : 민주인사, 복적생, 학생운동 지도부 등 예비검속
#24시 00분 : 비상계엄 전국확대, 광주시내 각 대학에 계엄군 진주 및 학생 연행
5월 18일 (일요일, 맑음)
#9시 40분 : 계엄군에 의해 전남대생 50여명이 교문 앞에서 등교 저지 당함.
#10시 00분 : 학생들이 "계엄해제하라" "휴교령 철폐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항의시위
#10시 15분 : 곤봉을 휘두르는 공수부대원들의 진압으로 학생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짐.
*시위해산하라고 해서 고분고분 해산하는데 곤봉을 괜히 휘두릅니까? 80년대 폭력시위를 보면 각목,쇠파이프,화염병,돌로 무자비하게 합니다. 진압을 "과잉"으로 하지 않을 수 없죠. 이 때 학생이 숫적으로 많고 곤봉을 휘두르지 않으면 곤봉을 빼앗기고 부대원들이 오히려 포박당하는 일이 생겨야 합니까?
#10시 20분 : "금남로로 가자"는 구호와 함께 학생들이 금남로로 이동하기 시작
#15시 40분 : 유동 3거리에 공수부대가 등장하면서 진압작전 감행
#19시 02분 : 계엄사령부, 광주지방 통행금지시간이 저녁 9시로 앞당겨졌다고 발표
*이 때까지 한 명도 죽지 않은 것 같습니다.
5월 19일 (월요일, 오후부터 비)
#3시 00분 : 증파된 11여단 병력, 광주역 도착
#9시 30분 : 시민들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탄압에 맞서 임동, 누문동 파출소 방화
*왜 두 곳의 파출소를 방화합니까? 무자비한 탄압은 어느정도가 무자비한 것이고 왜 그렇게 탄압해야 했는지는 설명이 없네요. 잔악한 수식어는 모두 계엄군에 갖다 붙이고 시위대에는 좋은 수식어만 갖다 붙이는 것은 이 "악랄한 개새끼와 이 귀여운 강아지와 어느게 이쁘죠?"라고 묻는 것과 마찬가지로서 MBC, 한겨레 따위의 선동보도방식은 될지언정 판단에 도움이 되는 객관적인 게 못됩니다.
#10시 00분 : 시민들 수가 점차 불어나면서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원들과 투석전 전개
* 돌도 맞으면 크게 다칩니다. 석기 시대 때 돌로 사냥을 했습니다. 더구나 다수의 사람들이 던지는 돌은 부상과 공포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합니다.
#14시 40분 : 조선대로 철수했던 공수부대가 다시 투입되어 무리한 진압작전 전개
*왜 철수했겠습니까? 오줌누러 갔나요? 쫒겨갔다가 이전 방식으로는 진압할 수 없으니 강하게 나간 것이죠. 그걸 또 무리한 진압작전이라고 한 것이고. 뭐가 무리한 것인지요. 무리하게 할 수밖에 없어 그랬다면 무리한 게 아니라 그 상황에 "맞는" 방법인 것이죠. 무리한 방법을 썼다는 것만으로 죄가 되는 게 아니죠. 시위도 폭력적으로밖에 할 수 없었다고요? 그럼 어느 한편만 무리했다고 욕하면 안되죠.
#15시 00분 : 시내 기관장 및 유지들, 회의를 갖고 시위 진압을 완화하도록 건의
#16시 30분 : 계림파출소 근처에서 조대부고생 김영찬이 계엄군의 총에의해 부상
#20시 00분 : 수만명의 시민들 "전두환 타도" 외침.
* 이제 총에 부상 당한게 나오는 군요. 총에 죽은 사람은 5월19일까진 없었던 거군요.
5월 20일 (화요일, 오전에 약간의 비)
#8시 00분 : 고등학교 휴교조치
#10시 20분 : 카톨릭센터 앞에서 남녀 30여명이 속옷만 입힌 채 심하게 구타당함. 공수부대와 시민간의 공방전 계속
* 내부반에서도 심한 구타가 있던 시절이었고, 투석전을 전개하는 정도에 군인들도 많이 화가 났겠죠. 남녀 30여명이 그 전에 어떤 자세로 진압에 불응했는지가 안 나와 있네요.
#18시 40분 : 금남로에서 200여대의 택시가 전조등을 켜고 경적을 울리며 차량시위를 벌이자 시위대 분위기 고조
#20시 10분 : 시민들이 도청을 향해 금남로, 충장로, 노동청 방면에서 공수부대, 경찰과 대치
#21시 05분 : 노동청쪽에서 시위대 버스가 경찰저지선으로 돌진하여 경찰 4명 사망
* 이제 4명이 사망했는데 시위대가 경찰을 죽인 게 먼저군요. 사람을 버스로 밀면 사람이 죽는다는 건 어린애도 아는 사실인데 이런 짓을 하다니.
#21시 50분 : 광주MBC건물 방화
* 방송국은 자기들이 거짓말하지 않고 선전을 한다면 가장 좋은 선전 수단인데 왜 불을 지릅니까? 방송국이 한두푼짜리 건물도 아니고 국가재산일텐데 통신과 방송을 마비하려는 짓이 테러분자들이 도시를 혼란에 빠뜨리려는 수작과 다를 게 없지요.
방송은 실시간으로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보여줘야하는데 아직 이날까지 죽은 사람은 경찰4명이고 그것도 시위대가 죽였습니다.
선동꾼들은 공수부대가 사람들을 마구 죽인다고 거짓말을 하고 싶은데 정말 그랬다면 방송화면으로 생생하게 광주뿐 아니라 전남도민, 더 나아가 다른 지역까지 보여줄 수 있었을텐데 왜 방송국을 불질렀을까요.
도로를 점거하고도 시위하는데 방송국은 방어하기도 더 좋은데 왜 그 좋은 수단을 불지르죠.
이건 그들이 거짓말로 선동할 작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찌라시를 통해 사건의 전후관계를 거꾸로 선전하면 시위대가 무장을 하고 달려들어 진압군이 총을 쏘았어도, 총을 쏘았기 때문에 시위대가 무장을 한 것으로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 아직 아무도 죽은 일도 없는데 수 십명이 진압군에 살해되었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흥분한 사람들과 충돌이 나면 정말로 수십명이 죽고 이제 그 사진까지 실어서 그 사진이 전에 선동한 것이 정말임을 입중하는 걸로 둔갑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어느 곳에서 진압군이 시민을 죽이고 있습니다라고 방송으로 거짓말을 하려해도 그 곳 사는 주민들이 그게 거짓임을 금새 알아채릴테니 그럴 수가 없죠.
찌라시로 시각을 표시하지 않으면 그 동네 사람조차도 그랬나 안그랬나 알기 어렵고, 다른 유언비어에 영향받아 그랬을 거라고 그냥 믿어 버릴 수 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도 처녀 가슴을 대검으로 도려냈다는 둥, 임산부 배를 갈랐다는 둥 끔찍한 유언비어를 들었습니다. 그런 사진을 본적은 없지만 그런 사진이 있다해도 불순 분자가 이미 죽은 시체니까 자기들 대의명분에 도움되게 시신을 훼손하여 사진을 찍었을 수도 있을 겁니다.
#23시 00분 : 광주역 광장에서 계엄군의 발포로 시민 2명 사망
*계엄군이 심심해서 지나가던 엿장수 아저씨나 새한테 모이주던 할머니를 쏘아 죽였을까요?
그 시민이란 사람 두명은 무슨 일을 하다 발포 대상이 되었을까요? 오인사격을 당했다면 왜 오인을 당했을까요?
5월 21일 (수요일, 맑음)
#0시 35분 : 노동청 방면에서 군중 2만여명이 계엄군과 공방전 전개
#2시 18분 : 시외전화 두절
#4시 00분 : 시민들이 광주역 광장에서 시체 2구를 리어카에 싣고 금 남로에 등장
* 아마 위에서 사살된 2명인가 보군요. 그리고 선동꾼이든 불순분자든 모두 "시민"이라고 합니다. 물론 선동꾼이 시체를 싣고가면 따라붙은 시민들이 있었겠지만요. 그리고 왜 시체를 금남로에 가져옵니까. 시민들을 흥분시켜 더큰 충돌을 야기하려는 속셈이겠죠.
#4시 30분 : 광주KBS건물 방화
* 방송국을 두 곳 모두 불질렀군요.
#8시 00분 : 시위대, 광주공업단지 입구에서 20사단 병력과 충돌
#10시 15분 : 실탄 지급받은 공수부대원 맨 앞으로 교체
#10시 19분 : 광주세무서건물 전소
*세무서 건물도 불지르고, 뭐하자는 겁니까. 국가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것입니까?
#11시 10분 : 대형헬기, 도청광장에 도착
#12시 59분 :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몰고 온 장갑차 1대 도청광장으로 기습 진출
*버스로 밀어도 4명 죽였는데 이젠 장갑차로 밀면 더 많이 죽일 수 있겠군요.
#13시 00분 : 도청 스피커에서 애국가 울려 퍼지면서 공수부대 사격 시작
* 이런 상황에서 어디에 왜 사격했는지, 장갑차에 사격을 했는지.
#13시 20분 : 청년들이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의 집중사격을 받고 계속 쓰러짐
* 오로지 "청년"이군요. 맞습니다. 교도소에 가보세요. 살인자, 강도, 강간범 그들도 모두 "청년", "40대", "50대 아저씨"입니다. 그 청년들이 무슨 일을 시도했고, 공수부대는 거기서 왜 그럴수밖에 없었나 하는 설명은 없습니다. 그냥 군인들이 "청년"을 쏘아 죽인겁니다. 나쁜 군인이라는거죠.
#14시 15분 : 도지사, 경찰헬기에서 시위해산 종용하는 설득 방송
#14시 35분 : 시민들이 아시아자동차공장에서 군용트럭, 장갑차 수십대 획득
* 군용트럭, 장갑차를 "획득"했군요. 훔친것도 아니고 돈을 주고 샀나보네요. 아니면 사장이 가지라고 선물로 주었나보네요. 군용 트럭, 장갑차 수십대의 위력은 어떨까요?
버스 한대가 4명을 죽였으니 잘하면 수백명의 "나쁜" 군인들을 죽일 수 있겠군요.
#14시 40분 : 시민들이 지원동의 탄약고에서 TNT 입수
* TNT로 불꽃놀이하려나? 아니면 무기로 쓰려고 그러나. 이런 상황이라면 발포할 수밖에.
#15시 48분 : 공수부대원들이 주요빌딩 옥상에서 시위대를 향해 조준사격
* 사격을 하면 조준해서 쏘지 그량 막 쏘나? "조준"이란 말로 잔인함을 강조하는군요.
#16시 00분 : 화순, 나주지역에서 무기 획득한 시위대들이 도청 앞에서 시가전 전개
* 시간전까지 전개하였는데 1995년 7월 공식통계에 죽은 민간인 수가 154명에 그친 것은 불행중 큰 다행입니다.
#16시 43분 : 학생들, 전남대병원 옥상에 기관총(LMG) 2대 설치
* 기관총을 설치했으면 이미 갈때까지 간것입니다. 학생이니 시위대란 말보다는 폭도가 어울리죠.
#17시 30분 : 공수부대, 도청에서 조선대학교로 철수
* 공수부대가 철수할 수 밖에 없을만큼이면 "학생"이라고 그 학생이 갖는 약함이나 피해자란 생각은 버려야 할듯.
5월 22일 (목요일, 맑음)
#9시 00분 : 도청광장과 금남로에 시민들 집결
#10시 30분 : 군용헬기 공중선회하며 "폭도들에게 알린다"는 내용의 전단 살포
#11시 25분 : 적십자병원 헌혈차와 시위대 지프가 돌아다니며 헌혈 호소
#12시 00분 : 도청 옥상의 태극기가 검은 리본과 함께 반기 게양
#13시 30분 : 시민수습위 대표 8명이 상무대 계엄분소 방문, 7개항의 수습안 전달
#15시 08분 : 서울서 대학생 5백여명 광주 도착, 환영식 거행
* 아직 광주를 외부와 차단하지 못했군요. 대학생, 80년대 이들 대학생은 각목과 쇠파이프와 화염병으로 무장한 세력이었습니다.
#15시 58분 : 시체 18구를 도청광장에 안치한 채 시민대회 개최
* 선동꾼들은 사태를 극한대립으로 몰고갈려는데만 몰두한겁니다. 충돌이 나서 무고한 시민, 선동당한 시민들이 죽거나 말거나. 만약에 죽으면 그건 모두 군인들 책임으로 돌리면 되니 요즘 뭐 잘못했다고 하면 야당책임으로 미루는 세력들과 공통점이 있죠.
#17시 18분 : 수습위 대표, 상무대 방문결과 보고
#17시 40분 : 도청광장에 시체 23구 도착
* 더욱 많이 모았네요. 31구의 시체로 사람들을 분노하게 선동해서 그 수십배의 희생자가 발생하길 바랬겠죠. 그 31구의 시체가 공원에서 산책나왔는데 갑자기 군인들이 괜히 잡아죽인 "시민"들의 시체는 아닐듯 한데.
#21시 30분 : 박충훈 신임국무총리, "광주는 치안 부재상태"라고 방송
5월 23일 (금요일, 맑고 한때 흐림)
#8시 00분 : 학생들, 시민들에게 청소 협조 호소
#10시 00분 : 시민 5만여명이 도청광장에서 집회
*반지의 제왕을 보면 1만명 정도만 되도 새카만 숫자입니다. 분노로 타오르는 군중 5만.
#10시 15분 : 학생수습위 자체 특공대 조직하여 총기 회수작업 시작
#11시 45분 : 도청과 광장주변에 사망자 명단과 인상착의 벽보 게시
#13시 00분 : 지원동 주남마을 앞에서 공수부대가 소형버스에 총격, 17명 사망
* 소형버스에 누가 타고 있었는지, 일부러 민간인 죽이는 게 목적이라 총을 쏘았는지 그런 것은 없습니다.
#15시 00분 : 제1차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계엄사의 '경고문'전단이 시내전역에 살포
#19시 40분 : 최초 석방자 33명 도청광장에 도착
5월 24일 (토요일, 오후에 비)
#13시 20분 : 공수부대, 원제마을 저수지에서 수영하던 소년들에게 사격
* 공수부대원이 소년들에게 왜 총을 쏘지요? 정말 이상하네. 그리고 이게 광주사태와 무슨 상관이라고? 소년들을 쏠만큼 군인들이 악마라는 거겠죠.
죽은 민간인들이 정말 군인들 손에 죽은 것인지, 불순분자들이 시민들을 흥분시키려고 고의로 죽인 것인지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는 상황이었는지. 몇 년전에는 북한군이 홍콩에서 국군전투복을 많이 샀다는 소식도 있는데. 당시에도 국군복장을 하고 시민들에게 국군을 욕먹일 짓을 일부러 한 자들이 없었는지.
#14시 20분 : 송암동에서 공수부대와 전교사부대간의 오인 총격전 발생
* 이것만 봐도 군인들 역시 극도로 긴장하고 흥분해 있었음을 알 수 있음.
#14시 50분 : 제2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5월 25일 (일요일, 비)
#11시 00분 : 김수환 추기경의 메시지와 광주항쟁 구호대책비 1천만원 전달
* 김수환추기경이 "여러분 잘하고 있소. 더 가열차게 투쟁하시오. 당신들이 정의요"라고 했을까요 아니면 "더큰 희생이 나지 않도록 한발짝씩 물러나 시위를 그만하십시오"라고 했을까요. 위로겸 구호대책비 1천만원을 준것 역시 더하라고 준건 아닐 것입니다.
그의 메시지와 성금이 도착할 수 있었던 것은 불순분자들은 사태를 키우고 싶었겠지만 군대는 사태를 수습하길 바랬기 때문에 허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15시 00분 : 제3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17시 00분 : 재야 민주인사들, 김성용 신부의 4개항 수습안에 대해 만장일치 채택
#21시 10분 : 학생수습대책위원들, 범죄발생 예방과 식량공급 청소문제등 논의
* 그런데 윤상원이란 자는 왜 3000명의 죄수가 수감되었다는 교도소를 공격했을까요? 교도소에 착한 민주투사들만 있어서일까요? 그건 계엄사의 날조일까요? 날조가 아니란 증거는 민주화사적지로 교도소앞도 정한걸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5월 26일 (월요일, 아침 한때 비)
#5시 20분 : 계엄군, 화정동 쪽에서 농촌진흥원 앞까지 진출
#8시 00분 : 시민수습대책위원들, 계엄군의 시내진입 저지를 위해 죽음의 행진 감행
* 총을 가진 계엄군에게 나 죽여라하고 행진한 것인지. 앞에 훔친 군용트럭, TNT, 장갑차, 기관총은 어디가고 왠 "죽음의 행진"? 계엄군에게 시민에게 발포하게 해서 더 선동하려고 한듯.
#10시 00분 : 제4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14시 00분 : 학생수습위원회, 광주시장에게 생필품 보급 등 8개항 요구
#15시 00분 : 제5차 민주수호 범시민 궐기대회 개최
#17시 00분 : 학생수습위원회 대변인 외신기자들에게 광주상황 브리핑
#19시 10분 : 시민군, "계엄군이 오늘밤 침공할 가능성이 크다"고 공식 발표 어린 학생과 여성들을 귀가조치 시킴.
#24시 00분 : 시내전화 일제히 두절
5월 27일 (화요일, 맑음)
#3시 00분 :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 시내로 진입하기 시작. "계엄군이 쳐들어옵니다. 시민여러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라는 여성의 애절한 시내 가두방송
* 오죽하면 탱크를 동원할 수밖에 없었겠는지.
#4시 00분 : 도청 주변 완전 포위, 금남로에서 시가전 전개
* 시가전을 할거면서 시민들에게 도와다라면 총알받이 되어 달라는 거였나? 후세인이 민간인 거주지역, 학교에 방공포대설치하고 민간인 죽으면 그 피해 미군이 냈다고 뒤집어 씌우는 수법을 쓴 것처럼 하려했나 봅니다.
#4시 10분 : 계엄군 특공대, 도청 안에 있던 시민군들에게 사격
* 시민군은 총을 쏘지 않았나? 왜 계속 군대가 쏜 얘기만 하냐구요.
#5시 10분 : 계엄군, 도청을 비롯한 시내전역 장악하고 진압작전 종료
#6시 00분 : 계엄군, 시민들에게 거리로 나오지 말라고 선무 방송
*시민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라 생각합니다. 거리로 나오라고 한 선동꾼들과 차이가 이점이죠.
#7시 00분 : 공수부대, 20사단 병력에 도청 인계
#8시 50분 : 시내전화 통화 재개
위에서 보다시피 광주사태는 광주뿐 아니라 전남지역에까지, 그리고 서울의 대학생, 전국에 그 영향이 미친 것입니다.
그 상황을 진압군이 빠르고 성공적으로 진압하지 못했을 때는 더 많은 시민이 죽거나 다쳤을 겁니다.
쿠데타는 폭력이며 헌법 위반이지만 헌법도 국가가 있을 때나 의미 있는 것입니다.
국가를 구하기 위해 임시로 헌법을 정지시킬 수밖에 없었는지는 쿠데타 세력만이 알 수도 없고, 지금의 우리만이 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역사상 혼란할 때 세계 여러나라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1026에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하고 세 김씨가 정쟁을 한 것이 건전한 민주적 과정인지 혼란인지 그것도 판단하기 나름입니다.
광주사태가 민주화운동인지 여수순천 사건, 43사태같은 폭력사태인지 그것도 보기 나름일 수도 있습니다. 좌익친북세력은 그걸 민주화운동이라고 할것이고 보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공식적으로 한편의 소리밖에 듣거나 말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518을 기준으로 625를 포함 그 전후 현대사가 거꾸로 뒤집히고 있다는 것은 심히 우려할 일입니다.
그래서 비공식으로라도 짚고 넘어갈 것은 짚고 넘어가고 더 많은 것을 알아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18을 기준으로 반미하고 그게 625에까지 연장되고, 미래에까지 연장됩니다. 5공인물은 친일파못지않게 지탄대상이 되었습니다. 518을 바로잡지 않는한 보수가 설자리는 점점 줄어들것입니다.
의회가 합법적 절차에 의해 내린 탄핵 결정도 의회 쿠데타라며 몰아갔습니다. 촛불들고 나온 세력은 정의고 아닌 세력은 부패한 수구인듯 매도했습니다.
과연 그런가요?
518도 그게 민주화항쟁이라고 못박고 지난 십수년을 선전해 왔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올바른 사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반민주꼴통으로 매도해 왔습니다.
과연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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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새겨읽을 만한 내용이 풍부하군요. 우선 첫번째 파란줄에 보충 설명을 달자면 그때는(5월 18일 10시경) 공수부대원들에게 아직 곤봉이 없었습니다. 문교부의 휴교령 집행을 위해 전국 각 대학 정문 앞에 7명씩 배치되었었는데, 부동자세로 서있었습니다. 난동자들이 던지는 돌이 날라와도 근무 중에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부동자세로 서있었습니다.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두동자세로 서있었던 7명이 돌을 던지는 200명보다 강했다는 주장은 억지입니다. 공수부대원들 얼굴이 돌을 맞고 함몰되었다 하니 그 상처가, 그 아픔이 얼마나 컸을까요.
518사태잘모르지만 518측의상황일지와 그에대한 파란글의 설명을보니...파란글의 보충설명이 일리있네요.. 냉철한객관적 시각으로 조명해야 한다고생각...파란보충설명을 읽고나니 탈북군인의 주장이 아주 신빙성높다는 생각이듭니다
네, 두번째 줄 파란글에 대한 보충 설명으로 김대중 진영의 광주향토사단 사단장 정웅 소장이 7공수 2개 대대에 폭동 진압 명령을 내린 시간은 15시 40분이 아니라, 16시 30분이었습니다. 물론, 그날 18일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글에 대한 보충 설명으로 <5월 19일 #9시 30분 : 시민들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탄압에 맞서 임동, 누문동 파출소 방화>에서 5월 18일 이미 여섯 개의 파출서에 방화한 사실은 빼놓았군요. 5월 19일에는 세무소에도 방화하였으며, 방송국들에 방화하기 시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