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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때로 내게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그녀의 말하는 태도나 외모, 그리고 그녀의 집안 풍경과 남편과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묘한 사람이라는 느낌은 언제나 나를 따라다녔다.
오늘 아침 신문들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그녀가 어제쯤 방송 출연을 하여 딸과 아들, 그리고 남편과 관련된 이야기 나눈 것을 접하게 되었다. 나도 예전에 제목은 기억나지 않으나 그녀의 집안 구석 구석 찍은 사진과 간단하게나마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선물 받은 적이 있었다. 그 이후 얼마되지 않아 방송출연을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그녀의 살림살이나 집꾸밈을 보면서 왠지 그녀의 정서가 불안해 보이는 느낌을 받았다. 왠지 그녀는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행복을 확인받고 싶어하는 지독한 컴플렉스를 가진 듯 보였다. 굳이 온 집안을 뒤엎어가며 시장엘 드나들며 천을 사들이고 물건마다 자신의 이름을 수 놓은 그녀의 소품들이 그녀의 집안에서만이 아닌 세상 밖으로 나옴을 보면서 나는 그녀의 강요받은 행복질(?)에 대한 처절한 책임감을 수행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나같이 세상물정에 조금은 어두운 사람이 계산해 봐도 그녀가 살림에 투자하는 비용이나 온갖 집기들은 소박하고 모던한 취향은 결코 아니었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자연스럽게 비쳐지는 자연주의 살림법은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내 아이들이 아주 어릴 적 일인데 어느 날 오전 가까운 친구들과 우리 집에서 커피 한잔을 하면서 나누었던 이야기가 갑자기 떠 올랐다. 이야기인즉슨, 서정희씨가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자신이 갖고 싶어하던 피아노를 구입한 이야기였다. 그 피아노를 구입하기 위하여 그녀는 몇 개월을 그 가게를 드나들며 피아노 값을 깎고 또 깎았더니 결국 그 피아노샵의 주인이 버럭 화를 내며 본전도 되지 않는 가격에 피아노를 팔더라고.... 그래서 그녀는 피아노를 자기 딸의 몫으로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기양양한 자랑을 하더라고.... 그 이야기를 하면서 내 친구는 치를 떨었다. 정말 예쁘고 상냥해 뵈는 그녀가 한 일이 너무 무섭고 징그럽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직접 그 장면을 본 것은 아니지만 무던한 내친구의 말이 결코 과장되거나 감정적인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그녀의 이름을 듣게 될 때 피아노를 떠 올렸다.
그런 그녀는 적절하게 때 맞춰 이사도 잘 하고, 이사를 할 때 마다 집을 꾸미고 그 집안꾸밈은 이상하게도 항상 우리들에게까지 몇 줄 기삿거리로 다가 오는 것이다. 그녀가 일찌감치 아이들 둘을 미국으로 유학 보냈을 때, 그것만은 부럽다는 이웃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자랑스러운 아이들이 잘 성장해감을 우리는 거의 강제로 알게 되었고 (매스컴의 영향으로), 또 집안 대소사까지 귀에 들려온다.
나는 개인적으로 아무런 사감이 없다. 그러나 이젠 좀 식상하기도 하고, 그녀의 입에서 나와 전해지는 아들의 토익점수나 딸의 결혼장면들까지 미주알 고주알 세상을 향해 까발리는 그녀가 가볍다는 생각이 든다. 자식이 귀할수록, 잘 커갈수록 조금만 더 겸손해졌다면 참 보기 좋은 풍경이 될 것 같다는 생각, 아들의 토익점수가 기록된 성적표까지 들고 나와 방송을 통해 공개했다는 것은 나도 듣기가 민망하다. 내 아이들이 만약 이 철없는 엄마가 그런 짓을 했다면 길길이 뛰며 만류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왠지 그들은 온 가족이 합심하여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건재함과 행복하게 지냄을 공표하는 것 같다. 별 관심도 갖지 않은 내게까지 그 일이 내가 보고자 하는 신문들을 통해 활자화되어 의도하지 않게 알게 됨에 대한 짜증도 조금은 난다.
한 가지 그녀가 감동스러운 것도 있다. 남편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와 사랑 (사실인지는 모르나) 을 보낸다는 것은 같은 여자로서도 보기 좋은 것이다. 오랜 세월 함께 지내다보면 그의 장점보다는 왠지 맘에 들 드는 구석만 보이며, 존경이라는 생각보다는 애처러움과 불쌍함, 그리고 가끔씩 불쑥 불쑥 튀어나오는 잔소리만 늘어가는 것이 오랜 부부의 일상이라 여기는 우리 세대들에게 그녀가 보여 준 남편을 향한 무한존경과 사랑은 가히 감동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말없이 조용히 자신의 자랑스러운 모든 것을 그녀의 주님께 은밀히 감사하며 세상을 향해 소탈하고 푸근한 이웃으로 다가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 |
첫댓글 어떤 과시도 아무 문제가 없지요 나의 과시욕을 볼수 있는 거울이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