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해설]
아이즈 와이드 셧
강인한
황금빛 침묵의 마우스피스
입에 물고 지금부터 아무 말 하지 마십시오.
눈을 가렸으니 내 오른쪽 어깨를 붙잡고 따라오십시오.
옆에는 비탈이며 개울이 있으니 조심하세요.
여기 풍찻간 속 비밀층계로 자, 내려갑니다.
갈색의 굵다란 바게트, 아니 사뮈엘 베케트 식으로
언어에 구멍을 뚫는 작업은 마냥 즐겁지요.
옷은 모두 여기 벗어놓고 박쥐 마스크를 쓰고
맨살에 붉은 망토를 걸치세요.
낼모레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검찰총장이 되실 분이시여,
여고생 코스프레를 각별히 좋아하시는 고상한 취향
인정해드릴게요. 검은고양이 마스크의 파트너
혹시 아시더라도 하체를 제외하곤 알은체하면 안 돼요.
쉬잇, 드디어 분홍빛 안개가 피어오르고
무대에 제3막이 올랐어요.
다음엔 고객님 차례입니다.
자기 성기에 입이 닿지 않아 차라리 새우가 되고 싶은 남자와
자신의 유두에 혀를 대고 자웅동체 달팽이 체위가 가능해진 여자가
뱀처럼 엉키기 전 빨리 준비하세요,
나보코프인지 나부콘지 분간하기 어려운 롤리타가 둘
히브리합창단의 노예가 셋,
우리 대머리 회장님이 전율하시는 2대 3 파티지요.
이제 벗으세요, 아니 마스크 말고
망토를 벗고 달려가세요, 눈썹을 날리며
몰약을 바른 알몸으로 날렵한 그레이하운드처럼
언어에 구멍을 뚫는 굵다란 바게트처럼, 아니아니 베케트처럼.
당연히 누리셔야죠,
선택 받은 1퍼센트의 특권을.
..........................................................................................................................................................................
평소에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영화 미학 면에서 혁신적이며 완벽주의자인 미국의 스탠리 큐브릭(1928~1999) 감독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옛날 영화가 돼버린 스파르타쿠스(1960), 로리타(1962), 아이즈 와이드 셧(1999) 등을 그가 만들었지요.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쓴 소설을 영화화한 〈로리타〉나 아르투어 슈니츨러의 소설『꿈 이야기』를 각색한 〈아이즈 와이드 셧〉. 영어 실력이 빈약한 저로서는 한참 만에 아이즈 와이드 오픈이 ‘크게 부릅뜬 눈’임을 알게 되면서 아이즈 와이드 셧이라는 낯선 조어가 ‘질끈 감은 눈’이라는 걸 깨치게 됐습니다. 즉 아이즈 와이드 셧은 목불인견의 못 볼 것을 보게 된 그런 눈일 터입니다.
젊은 신혼 부부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만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로 인해서 두 사람 사이가 소원해졌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결국 둘은 헤어졌지만.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도 이 영화의 내용을 모방하여 신분 높은 남성과 아름다운 여인들이 가면을 쓰고 비밀스런 장소에서 영화에서처럼 야릇한 음주와 쾌락의 향연을 벌인 일이 세상에 알려져 떠들썩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돈 많은 건설업자가 유망한 검사장 한 사람에게 그와 같은 융숭한 성 접대를 하고 그게 피해 여성의 고발로 이어져 검찰총장 물망에 올랐던 이가 결국 낙마를 한 이야기. 씹기 좋아할 만한 소재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껌 씹듯 씹고 또 씹다가 뱉을 만한 이야기.
과거에도 이승만 정부 시절 유력한 라이벌이며 진보적 대통령 후보였던 조봉암 선생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에 처한 일부터 시작하여, 박정희 군사정부 때에는 말도 안 되는 갖가지 간첩조작 사실과 무고한 사람들에게 인혁당이라고 둘러씌워 억울하게 사형시킨 일이며 자살한 사람 유서를 대신 썼다고 조작한 사실, 최근엔 시청 직원 한 사람을 간첩으로 조작하여 몰아간 사실 등 주로 비민주적 정권이 온갖 정치적 악행을 합법화함에 앞장세운 게 검찰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세간에 검찰을 견찰(개)이라고까지 비아냥거리는 말이 나돌았을까요. 그리고 의롭지 못한 검찰은 사사로운 영달을 위해 주구답게 불의에 복무함을 결코 주저하거나 사양하지 않아 온 게 관행이었습니다.
고기는 씹어야 맛이고, 말은 해야 맛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화에서처럼 근사하게 놀아난 그 검찰을 시로 형상화해보기로 하였습니다. 이럴 때에는 뒤죽박죽 중언부언의 뼈 있는 요설이 오래오래 감칠맛이 있습니다. 유사한 음운을 이용한 언어유희가 퍽은 효과적일 터. 몽둥이처럼 길고도 굵다란 갈색 바게트는 과장된 남성 성기를 연상케 하기 쉽습니다. 바게트와 발음이 비슷한 부조리 극〈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뮤엘 베케트.
'이면에 숨은 것'을 보거나 듣기 위해서는 '언어에 구멍을 뚫어야 한다'고 베케트는 말하곤 했다.
—나탈리 레제,『사뮈엘 베케트의 말 없는 삶』(김예령 번역) 에서.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은 바로 말을 통해서, (틀에 박히고 규범적인) 말들 사이에서입니다. 시멘트 같은 그 언어의 껍질을 드릴로 구멍을 뚫어야 그 속에 웅크리고 있는 진실, 진정성이 자유롭게 흘러나올 수 있다는 베케트의 주장입니다. 우스꽝스런 상상으로 언어에 구멍을 뚫는 것처럼 바게트에, 쾌락에 구멍을 뚫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이 미성년과의 성애를 다룬 영화 〈로리타〉를 만들었다는 건 이 시를 쓴 다음 그것도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입니다. 우연의 일치, 바로 신의 한 수입니다. 아울러 러시아 태생의 작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유사한 발음인 〈나부코〉가 떠오릅니다. 이는 베르디가 작곡한 오페라입니다. 성서에서 가져온 오페라〈나부코〉의 제3막 2장 “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달고(Va, pensiero, sull'ali dorate)”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이 삼엄하고 비장한 합창곡은 듣는 이를 전율케 합니다.
이 시가 굳이 난해하게 느껴졌을지라도 ‘낼모레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검찰총장이 되실 분이시여’ 한 행의 열쇠로 주제에 충분히 가깝게 접근할 수 있으리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 시를 다 쓰고 난 다음 나는 혼자 흥겨워 노래라도 부르고 싶어졌습니다. 바게트/ 베케트, 나보코프/ 나부코 등 소소한 언어유희로 인해 풍자의 칼날을 감춘 재밌는 시로 독자가 만날 수 있다면 다행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