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민 스님을 힌두교의 영원한 아트만 설을 따르는 상론자(常論者, 常見)로 취급하는 강병균 교수,
그는 진화론을 따르는 단멸론자(斷滅論者, 斷見)를 대변하고 있음을 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혜민 스님은 다음과 같은 놀랄만한 발언을 했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했다. “아무리 실체가 없다 생각해도 그 생각을 하는 ‘자신’이라는 실체는 항시 존재합니다.” 이것은 정확히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이다: 현대 과학계와 철학계가 폐기처분한 지 오래된 이론이다. 혜민 스님의 전생이 데카르트가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이다.
이 발언이 문제인 것은 이것이 전형적인 유아론(有我論)이라는 점이다. 현대 뇌과학에 의하면 보고 듣고 맡는 것은 빛·공기입자·물질입자와 감각기관과 뇌신경계의 상호작용일 뿐이다.//
강병균에 의하면 혜민은 생각하는 자신[자아]이 있고, 그 자신은 항상 존재한다고 했으니 상견이 된다.
그렇게 말하는 강병균은 혜민이 말하는 [자아]는 없고, 뇌과학 연구 결과를 알고 있는 [자]는 인정하고 있음을 본다.
항상하는 [자아]는 없다고 하면서, 그런 것을 아는 [자]는 이 생[現生] 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단견이라 한다.
불교는 단견이나 상견이 아닌 중도라는 사실은 혜민은 물론 강병균도 알고 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병균처럼 단멸론인 단견에 빠지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곧 일체를 아는 자인 자아는 있지만, 그 자아가 윤회하거나 항상한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고 경험할 수 없다' 는 앎[識]에서 기인한다.
단멸론자인 강병균은 이렇게 말한다.
현대 뇌과학에 의하면 보고 듣고 맡는 것은 빛·공기입자·물질입자와 감각기관과 뇌신경계의 상호작용일 뿐이다.//
를 보면..
그는 3사화합촉작용을
외부에 있는 5경인 감각 대상[공기입자 물질입자]과 5근의 결합 그리고 그것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나]라고 여기는 의근[뇌신경계]의 상호작용으로 설명한다.
만일 일체를 경험하여 아는 게 강병균이 설명하듯 저것 뿐이라면.. 자아는 그렇게 받아들인 일체를 아는 자이니 단견이 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 더 그의 글을 보자.
예를 들어, 우리가 사과를 볼 때, 뇌 안에는 그 어디에도 우리가 보는 사과의 색깔과 모양은 존재하지 않는다.
뇌를 열고 살펴보아도 사과의 붉은색과 둥근 모양은 보이지 않는다.
색깔과 모양은 생체전기가 만들어내는 전기화학적인 신호일 뿐이다.
이는 DVD 안에는, 0과 1로 이루어진 암호만 있을 뿐이지, 색깔과 모양이 없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이처럼 색깔과 모양이란, 따라서 보는 것이란 ‘감각대상과 감각기관과 뇌신경계’ 3자의 상호작용일 뿐이다. 심지어 ‘생각’조차도 그렇다//
저 글을 보면서 1수4견(1水4見)을 연상해 보면..
하나의 물을 보면서 누구는 보석으로, 또 누구는 불로, 누구는 집으로 누구는 물이라고 각기 다르게 보는 것은 각자의 뇌작용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인 우리는 그것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물[水]이나 사과라고 모두가 비슷하게 인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의 DNA가 같기 때문이요, DNA가 같은 것은 자기를 낳아준 부모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때 내가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이유가 특별히 없다고 볼 때 단멸론이 된다.
그런데 3사화합작용을 보면..
6외입처는 외부에 있는 대상이 아닌 마음에 들어와 있는 대상의 이름이고,
6내입처도 그냥 감각기능이 아닌 마음에 생겨 있는 감각기능의 이름임을 알 수 있다.
만일 6내외입처가 세인이 알듯이 6근, 6경이라면 세존이 굳이 6근6경을 놔두고 6내외입처[12처]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련만.. 똑똑하다는 남방 불교 학인이나 강병균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6근경은 6내외입처[12처]로 알고 있다.
그러나 세전이 가르치는 6내외입처는 세간에서 알고 있는 6근6경이 아니다.
6경은 6근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이고,
6외입처는 대상으로 여겨지는 게 마음에 들아와 있는 것을 칭한다.
눈 그림을 보면..
외부에 있는 나무를 눈의 수정체가 보아 망막에 상이 맺히면 그것을 읽는 것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실은 망막에 맺힌 상의 이미지를 만들면
그것을 나무가 있는 곳으로 투사해
이미지대로 외부에 나무가 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런 즉 보고 듣고 맡고 만지는 접촉은 나와 외부에 있는 대상이 접촉하는 게 아니라..
마음에 들어와 있는 6내입처와 6외입처가 접촉하면서 생기는 게 된다.
따라서 삶이란 곧 접촉이라 하겠는데..
접촉은 대상으로 여겨지는 6외입처와 주체로 여겨지는 6내입처가 만나는 것이라면..
그 둘[12처]이 만나는 장소인 마음은 항상하는 게 아니든 기든 이미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 말이다.
그 뿐 아니다.
접촉이 일어나려면 대상 역시 이미 있어야만 한다.
(사진에서 보듯 나무라는 이미지가 생기려면 외부에 그런 이미지가 생기는 게 있어야만 한다)
이렇게 마음과 대상이 3사화합촉이 일어나기 전에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세간에서 알듯이 마음이라는 자아와 대상이란 세계가 이미 있다는 것이 아니냐 말이다.
서양에서 칸트라는 철학자가 [물자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3사화합촉에서 6외입처를 생각하고 만든 조아라고 보면 틀림없다. 칸트는 우리가 아는 일체는 1수4견에서 4견 가운데 하나인 인간이 인식하는 물(세계)일 뿐, 처음에 나오는 1수는 인간은 알 수 없다고 보았다.
그것을 강 교수는
(인간이 사과나 나무로 아는) 색깔과 모양이란, 따라서 보는 것이란 ‘감각대상과 감각기관과 뇌신경계’ 3자의 상호작용일 뿐이다. //
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는 강 교수도 '우리가 인식하는 대로 외부에 존재하는 사과 등 일체를 인식할 뿐'이라고 의심없이 받아들인다..^^
즉 다시 그의 글을 보면..
당신은, 식물과 동물이 같은 조상으로부터, 즉 하나의 단세포로부터 출발한 형제지간이라고 하면 믿을 것인가? 진드기 같은 동물이 식물로부터 유전자를 훔쳐 광합성장치를 만들어 광합성을 할 수 있는 것은, 식물과 동물의 유전자 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이다.//
라고 강병균은 말을 하는데..
저 말 속에 나오는 식물, 동물, 진드기. 유전자.. 이런 것들이 외부에 그럴 모습으로 실재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강병균 마음에서 상호작용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알고 있으면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기에 상견과 단견의 공통점은..
둘 다 외부에 일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둘을 부정하는 중도는 무엇인가?..
바로~~~
바로~~~~~
우리가 아는 일체는 12처 작용인 3사화합촉에 의해 생긴 것으로 외부에 실재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알아..
선과 교의 조화를 몰라 말씀드린것이 아니랍니다. 토론은 교리면 교리 선이면 선 통일하여 대화를 나누어야 합일점을 찾습니다. 앞서 첫댓글을 보면 복사해오지 않겠습니다만 한분은 교리로 말하고 한분은 선으로 말하여 서로 이야기가 걷도는 걸 발견합니다. 한분은 일체는 12처라 하는데 한분은 일체는 '무' 이러면 서로 대화가 되겠습니까? 이런 의미로 상대글을 잘보고 교로 말할것인지 선으로 말할것인지 구분하라는 의미오니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위의 여자가 이쁘지 않게 보이는것은 동양여자가 아니니까 나는 동양 여자가 더 좋와요. 미국 여자들 터프해서 미국 남자들이 동양 여자 많이 찾아요 화장이 너무 짖은것도 싫고 ,, 평법하게 생각하고 해석하면 답이 나와요 그래서 불교 교리가 현실성이 없어요. 인도의 난해한 형이상학, 그게 문제예요.
눈꽃님은 이곳의 자존심을 건드려서가 아니라 분란의 조짐이 보여 당분간 활동중지 되었습니다. 이분은 오래전 여러 아디로 토론장에서 무척 분란을 일으켜 3번 강퇴되었는데 (그때 서로의 상처가 컸습니다) 이번에 또 분란의 조짐이 보여 상처받을 수 있기에 잠시 활동중지 시킨 것이오니 좀더 성숙한 토론매너를 가지고 돌아 오시길 기대합니다. 활동중지는 강퇴와 다르므로 언제나 복구가 가능합니다.
@雲窓
저는 '눈꽃'이 아닙니다
눈꽃님이 강퇴되었나요?
저는 강퇴되기 전에 제발로 나가겠습니다
@효진
효진님 하시는 말씀들,
아마 저를 지칭하시는 것 같은데요. 저위에 글들도요
찬찬히 잘 읽었습니다
()
@장마 누가 그래요 장마님을 눈꽃님이라고? 그런적 없는데요.. .
눈꽃님을 강퇴 시켰다면 갑질이 심한것 아니요? 그만한 일로 강퇴 시킨다면 이거 겁나서 말이나 제대로 할수 있겠소.
@雲窓 아버지가 한 말에 아들이 대답을 하는데..
그 아들 말에 제3자가 질문을 하면..
아버지의 말과는 관계가 없는게 되남??..^^
아니지. 그 아버지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껄..
내가 하는 말에 참견하지 말라고!..
이 본문을 누가 올린 것인가?..
본문이 있는 글에 있는 댓글에 댓글을 달았으면..
본문에 대한 댓글이 아닌가?..
이거 상대할 수 어거지를 하는 자군.
@효진 아! 그래요 ᆞ^-
알겠소 . 효진 갑질님
그렇다면 앞으로 저가 올린 글에도 어떤 댓글도 달지는 않겠군요ᆞ 그런가요?
@효진 그대가 이부지란 말이요 .. .개도 다 웃겠다.. 하하하~
@雲窓 그대가 이부지란 말이요 .//운창
내가 아부지라면 눈꽃이 아들넘이 되겠네?..
이해하는 수준하고는.. 비유도 몰라요..
그러니까 자기는 효진글에 댓글단 적이 없다고 뻔뻔하게 말하는 거겠지만..
정말 이해력이 그래도 되나?..
불교를 운운하기 전에 국어 공부를 빡. 세게 해야할 것 같아요. 댁은..
선과 교의 조화를 몰라 말씀드린것이 아니랍니다. 토론은 교리면 교리 선이면 선 통일하여 대화를 나누어야 합일점을 찾습니다. 앞서 첫댓글을 보면 복사해오지 않겠습니다만 한분은 교리로 말하고 한분은 선으로 말하여 서로 이야기가 걷도는 걸 발견합니다. 한분은 일체는 12처라 하는데 한분은 일체는 '무' 이러면 서로 대화가 되겠습니까?
이런 의미로 상대글을 잘보고 교로 말할것인지 선으로 말할것인지 구분하라는 의미오니 오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보태자면 이곳은 교리를 지향하는 곳이라는 것이고요.
덧붙여 눈꽃님의 질문은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질 않으니 답변을 얻어내지 못한거라 봅니다. 달라이라마를 본 서양인은 달라이라마가 아무말을 하지 않아도 눈물이 났다 합니다. 선지식이란 말도 아껴서 사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 댓글 단 사람들 모두 참 모습은 없다?
그러므로 원글 댓글은 모두 참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뭐가 어쨋다는건지?
원글에서 '내가 저 여인에게 빠지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그림의 떡 이니까,,
쉽게 생각하면 간단한데,,
접촉이 없어도 눈으로 보이는것도 접촉이지요
상상도 머리 속의 접촉이고 상상으로 쓰인 시 소설이 더 유명,
보이지 않는 정신도 6감에 들어 갑니다 , 쉽게 생각하세요
불교적 해석 보다는
철학, 정신의학 심리학에서 보아야 정상적 해석 ,,
불교적 해석 문제 있어요
나는 다시태어나도 ㅎ ㅈ 같은 사람하고는 절대 안살아요 피곤해요,
불교를 지식을위해 만든 종교로 착각하는 사람,
저런 사람에게 자비기 있을까요?
데레사 수녀의 1/50 만이라도 보여진다면 따뜻한 사람
탁발을한다면 맛없는 음식을 주는 집에는 어려운 불교용어로 욕을 할 사람,
불교 교리는 그런데 쓰라는게 아닌데,,
무식해도 평범한 사람이 좋다.
위의 여자가 이쁘지 않게 보이는것은 동양여자가 아니니까
나는 동양 여자가 더 좋와요. 미국 여자들 터프해서 미국 남자들이 동양 여자 많이 찾아요
화장이 너무 짖은것도 싫고 ,, 평법하게 생각하고 해석하면 답이 나와요
그래서 불교 교리가 현실성이 없어요.
인도의 난해한 형이상학, 그게 문제예요.
솔직히 명님 말이 눈꽃 글보다 훨~ 낫군요!..^^
왜인가?..
명님은 범부 입장에서 자기 견해를 분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눈꽃 글을 보시죠..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밝혀지고 있나요?..
그러면서 그는 말합니다 그것도 못봐!
무슨 스타일인지 보이지 않습니까?..하하하^^
여기 댓글 단 사람들 모두 참 모습은 없다?
그러므로 원글 댓글은 모두 참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뭐가 어쨋다는건지? //명
언제 효진이 모든 사람의 참모습이 없다고 했습니까?..
단 명님이 위에서 설명한 그것은 참모습이 아니라고 하면서..
참모습은 무상이요 무아라고 분명히 말했지요.
그렇게 말하는 게 보이지 않았다면.. 효진이 잘 못 설명한 것이지만..
엉뚱한 분란이 일어날까봐 섹시한 여자 사진을..누구는 역겨운 여자라 하지만.. 올렸지만
실은 이것을 올리려 했어요.
그리고 섹시하게 보이는지?.. 역겨워 보이는지?..
저 여인의 참모습은 무엇인가?..
눈꽃님은 이곳의 자존심을 건드려서가 아니라 분란의 조짐이 보여 당분간 활동중지 되었습니다.
이분은 오래전 여러 아디로 토론장에서 무척 분란을 일으켜 3번 강퇴되었는데 (그때 서로의 상처가 컸습니다) 이번에 또 분란의 조짐이 보여 상처받을 수 있기에 잠시 활동중지 시킨 것이오니 좀더 성숙한 토론매너를 가지고 돌아 오시길 기대합니다. 활동중지는 강퇴와 다르므로 언제나 복구가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