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수원에서 부동산 법인을 운용하는 A씨. 법인 명의로 광교신도시 아파트와 주거용 오피스텔 6채를 등록해 세를 주고 있다.
A씨는 최근 고민 끝에 법인 명의 주택들을 가족과 친인척들에게 명의신탁하기로 결정했다. 명의를 이전받은 친인척이 부담해야 하는 취득세와 보유세는 A씨가 대신 내주는 조건이다. A씨는 "올해부터 부동산 법인에 대한 종합부동산세 혜택이 없어지면서 연간 1억원 가까운 종부세를 내게 될 판"이라며 "그렇다고 주택을 처분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편법을 쓰게 된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현 정부 초기 민간임대사업자 활성화 대책을 믿고 퇴직 후 법인까지 만들어 임대용 집을 샀었다.
4일 부동산 전문 변호사들은 "명의신탁을 시도하는 부동산 소유자들이 부쩍 늘고 있다"고 전했다. 명의신탁이란 말 그대로 본인 소유의 부동산을 다른 사람이 소유한 것처럼 등기부상 소유자 이름을 바꾸는 것이다. 부동산 명의신탁은 불법이다. 투기·탈세에 악용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1995년 부동산실명제 도입 이후 종교적 이유나 종중 재산 등의 예외를 제외하면 명의신탁 행위는 인정받지 못한다. 게다가 명의신탁을 하려면 형식적이라도 부동산을 사고파는 절차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취득세와 양도세가 발생한다. 부동산 소유자는 보유세를 낼 것인지 명의신탁을 위해 일시적인 취득세와 양도세 부담을 감내할지 사이에서 저울질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명의신탁을 하는 법인 임대사업자가 늘어나는 이유는 급격히 늘어난 세금을 감당하기 어려워서다. 정부는 지난해 6·17 대책을 통해 법인투자자에 대한 종합부동산세율을 과표수준에 따라 최고 6%까지 올리고 양도세율도 높이기로 결정했다. 법인 소유 주택에 대해 기존에 적용되던 종부세 과세표준 기본공제도 폐지했다.
법인 투자자 B씨 역시 수원에 위치한 법인 소유 아파트 2채 중 1채를 개인 명의로 이전하고, 나머지 한 채는 무주택자인 부모님 명의로 이전했다. B씨는 "전문 부동산 투자를 하려고 법인을 만들었지만 세금 규제가 강화되다 보니 폭탄을 피하기 위해 가족 명의를 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세금을 덜 내기 위해 법을 어기는 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전문가들은 평범하던 사람들마저 탈법으로 내모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납세자들의 부담 능력을 고려치 않은 보유세와 양도세 강화 정책이 주택 보유자들을 불법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법률사무소 자산의 김성호 변호사는 "주택을 계속 갖고 있으려니 보유세가 무섭고, 팔자니 양도세가 부담되도록 세금제도를 바꿔놓았으니 명의신탁 등 불법 행위까지 판을 치고 있다"며 "이념에 매몰된 정치인들이 설익은 정책을 남발한 결과"라고 안타까워했다.
자료원:매일경제 2021. 7.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