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펼쳐놓은 것은 아닐까? 성도님들이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보통일은 아닐거야.>
꾼은 은근히 걱정되었다. 동생과 농사지은 산밑 밭 삼천평의 풀을 다스리느라 일꾼을 열명씩이나 사서 이틀동안 김맨 것을 보며 오천여평은 상당히 넓다는 생각에 걱정을 하곤 했다.
<아냐. 나에게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무기가 있어. 이번에야말로 호밀농사법으로 편한 농사를 지어보는 거야. 게으른 농사꾼 이야기에서 이영문님은 혼자서 몇만평의 농사를 즐긴다잖아. 나라고 그거 못할리 없지.>
약한 마음이 들때마다 며칠 전 꾼이 도서관에서 대출해온 책을 읽었다. <미치면 미치고 안 미치면 못 미친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일에 미치도록 몰입하면 이루어지고 몰입하지 못하면 이루지 못한다. 빌 게이츠는 컴퓨터에 미쳐 컴퓨터 황제가 되었고, 스필버그는 영화에 미쳐 쥬라기 공원, ET 같은 불후의 작품을 만들었으며, 박찬호는 야구에 미쳐 세계적인 선수가 되었고, 36세에 일본 갑부가 된 재일 동포 손정의는 인터넷에 미쳐 인터넷왕이 되었으며, 이창호는 바둑에 미쳐 바둑왕이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꾼은 이 대목에 메모를 적어넣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끼를 최대한으로 발휘하면 성공한다. 음악에 미치면 음악가가 되고, 미술에 미치면 미술가가 되며 과학에 미치면 과학자가 된다. 공부에 미쳐버린 학생은 공부가 즐겁고 인생이 행복하지만 공부가 싫은 학생은 공부가 고통이고 삶이 지옥이다.
사람은 자기 일에 미쳐야 성공한다. 학생은 공부에 미쳐야 하고, 선생은 가르치는 일에 미쳐야 하고, 예술가는 예술 창작에 미쳐야 하고, 정치가는 정치에 미쳐야 하고, 농부는 농사일에 미쳐야 한다.>
꾼은 책읽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소설책이든, 수필이든, 농사서적이든, 동화책, 심지어 만화책일 지라도 그것을 쓴 이의 세계에 동화되었고 감탄하기도 잘 했다. 우와, 이햐, 허어 이런 감탄사를 연발하였고 도서관에서 대출해 온 책인데도 자기 책인 모양 줄을 찌익 긋거나 중요대목이 많으면 접어놓기도 하는 등 나쁜 습관이 있었다. 그러다가 괜찮은 대목은 베끼기도 하고 두세 번 읽다보면 약속기일을 놓쳐 대출제한에도 걸리기도 했다. 한 곳에 대출제한이 걸리면 다른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기도 했다.
<내가 사는 곳에 공공도서관이 두 개나 되어 다행스런 일이군.>
띠리링
“형 마늘을 심으려는데 마늘종자 좀 알아봐 줘.”
“그거야 농사꾼인 네가 더 잘 알지 않냐?”
“내 주위에 심은 마늘이 너무 잘아서 안되겠어.”
“알았다. 오버.”
꾼은 어느 면에서 보면 만물박사였다. 책을 좋아했고 인터넷 검색도 적절히 활용하여 어느 지방에 특산물이 뭐라는 것도 대충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마늘은 서산마늘이 굵고 좋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씨마늘은 누가 취급하는지 알지 못했다. 서산마늘이라고 구했다가 논마늘을 구입하면 큰 일일 수밖에 없었다.
띠리링
“풋내기님 안녕하세요? 저 꾼입니다.”
“꾼이군요 반가워요. 요즘은 왜 놀러 안 와요?”
“당장 내일 놀러가겠습니다.”
“꼭 동부인해서 오세요.”
풋내기님은 전화할 때마다 꾼을 반겼다. 나이가 일흔이 넘었지만 꾼과 함께 교회에 함께 다니면서 친해진 후로 전화만 하면 놀러 오라는 게 인사였다. 젊은 시절에는 건축일을 주로 했다고 하는데 횡성 귀농 3년차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풋내기님의 집에 찾아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듣기로는 안산에서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다고 하기도 하고 멀리 서울이나 제주에서도 온다고 했다.
보통사람 같으면 칠십이 넘으면 등이 휘어 꾸부정했는데 풋내기님은 자세가 휘어지지 않았다. 여름철 오이작업 할 때는 아침저녁으로 일하고 밤에는 선별작업하느라 잠이 부족해서인지 내외분 모두 까칠하게 말랐으나 선선한 바람이 불고 타작을 마치면 혈색이 도는 아름다운 노인이 되어 있었다.
나이답지 않게 왕성한 농사활동을 하는 것을 보며 꾼은 풋내기님이 통뼈라고 생각했다. 통뼈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닌 것이다. 뼈가 가늘고 약하면 힘을 쓰지 못하지만 굵고 튼튼하면 나이가 들어서도 힘든 일을 곧잘 소화해 낸다.
“씨마늘을 구하려고 하는데 어디서 사야 하지요?”
“씨를 사려면 임계마늘이 좋지요. 씨마늘은 고랭지에서 생산한 것이라야 병이 없고 종자가 좋아요. 정선 임계 5일장에 가면 좋은 마늘 구할 수 있어요.”
“꾼님 이 컴퓨터가 말을 안들어 속상해요. 좀 봐 줘요.”
꾼이 방문할 때 약간 손볼 수 있는 것은 컴퓨터 밖에 없다. 아예 전원이 안 들어오거나 부팅이 안되는 것은 볼 줄 모르지만 프로그램이 서로 얽혀서 에러나는 경우는 꾼이 조금 손보면 잘 돌아가는 편이었다. 그러나 꾼은 풋내기님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받아내었다. 귀농 삼년차였지만 웬만한 농사지식은 걸어다니는 사전이라 할 만큼 많이 알고 있었다.
꾼이 컴퓨터를 대략 손보고 B카페에 접속한 순간 대단한 사건을 발견했다.
귀농지 소개 게시판에서 대단한 것을 발견했다.
<홍천 서석에 밭 육천평 임대합니다.>
꾼의 눈이 휘둥그래지는 사건이었다.
43부에 계속합니다.
첫댓글 43부 기대!!!오늘도 행복하세요~
이용자님 애독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