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9.
갈1:11-24
바울은 유대교를 다른 사람보다 더욱 지나치게 믿어 전통에 열심이었고 교회를 박해하고 멸하려던 사람이었다. 예수께서 그런 그를 부르시고 이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도로 세우셨다. 그의 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셨을 때 그는 혈육과 의논하지 않았고 사도들을 만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도 가지 않았다. 아라비아 광야에서 3년 동안 주님과 사귐의 시간을 가진 후 베드로와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사도를 만났을 뿐 다른 사도들을 만난 적이 없다. 보름 정도 예루살렘에 머문 후 핍박 때문에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베드로와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은 바울의 이름은 들어서 알고 있지만 얼굴을 보지 못했고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유대에서 온 ‘어떤 사람들’은 어쩌면 예루살렘 교회 성도가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바울이 누구입니까? 우리는 베드로를 비롯해서 다른 사도들은 이름도 얼굴도 알지만, 그는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네요.’
‘여러분, 그가 사도라고 하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우리가 사도들에게 배운 복음은 정통입니다. 그는 누구에게서 복음을 배웠다고 하던가요?’
수군거리는 사람들의 말에 바울은 단호하게 말한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이 아니로다’
제자들 혹은 동역자들 앞에서 부정당하고 배척당하는 아픔은 고통을 넘어 고독과 비참함일 것이다.
바울이 그러했고 누구보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다.
사람의 말은 상황과 형편에 따라 바뀌고 해석을 달리 할 수 있으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복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없어져도 복음은 오롯이 남아 구원받기로 작정 된 하나님의 사람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오늘도 건져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