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의자
분주했던 여름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온갖 새들과 매미의 울음소리로 시끌벅적했던 들판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여유롭고 한가롭습니다.
가끔 산을 오릅니다. 산의 중턱이나 등성이에 누군가 그곳까지 자재를 운반하여 만들어 놓은 빈 의자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아무 데나 철퍽 주저앉아 쉼을 구가하고 싶은 순간에 예기치 않게 맞닥뜨리는 빈 의자는 위안 그 자체입니다.
의자는 참 흔한 물건 중의 하나입니다. 중세의 바로크 시대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무늬의 의자도 존재하지만 그저 구하기 쉬운 재료로 얼기설기 만들어 놓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의자도 있습니다. 연극의 조연이나 단역처럼 돋보이지 않지만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휴식과 안식을 제공하는 의자는 성자를 닮았습니다.
의자는 때로는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고 직업의 위치를 나타내기도 하고 그저 오랜 세월 기다림 속에서 만남의 장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의자의 만들지만, 의자가 사람을 만들기도 합니다.
의자는 자신을 위하여 일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누군가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하며 비움 속에서 위로와 배려를 침묵으로 실천하고 있으니까요.
우린 가끔 의자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나 자신을 온전히 녹여서 주변과 함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나가는 길손이 앉으면 어떻고, 헤어진 연인을 기다리는 가엾은 여인네가 앉으면 어떻고 삶의 긴 여정 속에서 지팡이를 놓고 쉼을 구가하는 어르신이 앉으면 어떻습니까.
빈 의자처럼 어느 귀퉁이에선가 은자의 침묵 같은 삶을 살아갈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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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 님의 글입니다.
산책로에 벤치를 마련해 놓았더군요. 이런 곳까지 할 정도로 사람 발길이 뜸한 곳까지. 잘 한 일이죠. 거기도 오는 사람은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것보다 더 급히 쓸데가 있을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