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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증거(1)
고전 15:1-11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고전 15:1-11 / [그리스도의 부활] 형제들이여, 이제 나는 전에 여러분에게 전해 준 바로 그 복음의 참뜻을 다시 여러분에게 일깨워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복음을 기쁨으로 받아들였고 지금도 굳게 지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신앙이 이 놀라운 복음 위에 바로 서 있다는 증거입니다. 2) 만일 여러분이 이 복음을 처음부터 되는 대로 믿었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 한마음으로 굳게 믿어 왔다면 여러분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3) 나는 먼저 내가 전해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 전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4)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또 예언자들이 말한 대로 사흘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입니다. 5) 그리스도께서는 게바에게 나타나신 후에 다시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습니다. 6) 또 한 번은 500명이 넘는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들 가운데 죽은 사람 몇 명을 빼고 대부분은 아직도 살아있습니다. 7) 그리스도께서는 또 야고보에게 나타나셨고 나중에는 모든 사도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8)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팔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9) 나는 모든 사도 중에서 가장 보잘 것없는 자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던 인물이니 사도라고 불릴 자격도 없습니다. 10) 그나마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신 덕분입니다. 나는 이 자비와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다른 사도들보다 더 열심히 일하였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 일을 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11) 그러므로 가장 열심히 일한 사람이 나든 다른 사람이든, 그것이 누구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여러분에게 복음을 전하였고 여러분이 그것을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장에서 부활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 부활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바울 자신과 열두 제자를 비롯한 수많은 증인들이 있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1-2) 바울은 과거에 고린도의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을 비롯한 복음의 내용을 확실하게 전했습니다. 먼저 그것을 상기시킵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너희가 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1). 고린도의 성도들이 당시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활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생긴 것입니다. 반면에 부활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있는 자들은 여전히 있었고, 이로 인한 논쟁이 교회 안에 생기게 됩니다. 흔들리는 믿음이 논쟁의 불씨가 된 것입니다.
내가 받은 것(3-4) 바울은 자신이 전했던 복음을 간단히 설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3-4). 바울은 이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라고 말합니다(3). 먼저 전했다는 말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선시하는 내용이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복음의 핵심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의 핵심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은 사람입니다(11:23, 갈 1:12). 그리고 바울은 내가 받은 것을 전했다고 말합니다(3). 우리도 받고 알고 믿게 된 복음이 있습니다. 이것이 나를 통해 서로 계속해서 전해져야 합니다.
내게도 보이셨느니라(5-8)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을 논증하기 위해 수많은 증인이 있다고 합니다. 증인들 중에는 여전히 살아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6). 부활이 왜곡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도 증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자신은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아서 맨 나중에 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8). 이것은 교회를 핍박했던 과거의 죄와 연약함을 인정하며 겸손히 고백하는 것입니다(9). 따라서 바울에게는 자신이 증인이 된 것이 너무나도 과분한 은혜인 것입니다.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10-11) 10절에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이 3번이나 반복됩니다. 그만큼 자신이 지금 복음을 전하는 자로 수고하는 것이 놀라운 은혜인 것입니다. 바울은 그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고백합니다(10-11).
적용 : 당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았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화광동진[和光同塵]. 덕과 지혜를 감추어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여러 사람과 어울림을 비유하는 노자<老子>의 말입니다. 자신의 재능과 덕을 드러내기 위해 과장되게 부풀리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재능과 덕을 숨기거나 낮추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과 격 없이 어울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작은 성공에 과거를 쉽게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기에 합당하지 않은 죄인이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설 교 >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장 10절 / 박기완목사
오늘은 우리 교회가 창립 1주년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교회를 개척한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나간 세월들이 어찌나 빠른지 별로 한 것도 없는데 1년이 금새 지났습니다.
당시에는 어려움이요 고통이지만 지나고 보니 추억이었고 경험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힘겹고 어려워서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지나고 보니 어찌나 빠른지 마치 눈 깜짝할 새와 같고, 시위를 떠난 화살과 같습니다.
이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10년, 20년 지나다 보면... 어느새 천국까지 가게 되겠지... 하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언제나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신학생 때부터 교육전도사 생활을 했습니다. 3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대를 다녀왔고 졸업한 후에는 서울에 있는 연희교회에서 3년간 전도사로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우리 교단은 단독 목회의 경험이 있어야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으니까, 경기도 안성에 있는 성산교회에 부임을 해서 그곳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3년 있다가 서울에 있는 성광교회에 부목으로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성광교회에서 7년 동안 부목사로 있다가 성광교회에서 개척교회를 세워 주셔서... 오늘의 이곳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짧은 목회의 연륜이지만 저는 '경험'이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목회자는 자고로 교육전도사도 해보고, 전임 전도사도 해 보고, 단독목회도 해 보고, 또 부목도 해보고, 개척도 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지 해야 할 단계를 다 거쳐야 합니다.
단독목회의 시기를 놓치고 목사 안수를 받는다든지, 부목사의 시기를 건너뛰어서 바로 담임을 하게 된다든지 하는 것은 선교적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단독 목회나, 전도사나, 부목사나, 개척교회 목사나... 무엇이든... 안 해 본 사람은 그 직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없고, 무엇을 해야 되는지 잘 모릅니다. 직접 닥쳐보지 못한 사람은 아무도 그 형편과 사정을 모르는 법입니다.
나중에 선교를 한다고 할 때에도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을 도와주어야 할지를 잘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경험한 사람은 형편과 사정을 이해하게 되고, 실수와 허물도 미루어 짐작이 되고, 용납이 되고, 지금의 형편과 사정에 따라서 도울 수도 있고, 때를 따라 적절히 지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산본이라는 지역은 제게 있어서 전혀 생소한 지역이고 무슨 연고가 있는 것도 아닌데, 하나님께서 이곳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어느 곳에서 개척을 해야 될지... 고민도 많이 하고, 기도하면서 이 지역 저 지역을 둘러보았습니다. 교회서 예정한 기일은 다가오는데, 적합한 장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발에 물집이 생긴 적도 있습니다. 차를 타고 다녀서는 안되어서 직접 발로 걸으면서 다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개척교회 장소를 물색하는 것도 공부였습니다. 모든 것이 다 공부이고, 경험이라 생각하니 감사가 나왔습니다.
장소가 좋으면 에산이 안 맞고, 예산이 맞으면 장소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뜻밖에 이곳으로 인도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말만 개척교회이지 개척교회 같지를 않습니다. 여기 저기 돕는 손길들이 많고 기도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쉽게 쉽게 남들이 어렵다는 개척교회의 시절을 잘 지내고 있음을 볼 때...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요,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들 덕분인줄 알아... 진실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이상하게 가는 곳마다 교회가 부흥하고 좋은 길이 열려 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안되던 상황에서도 제가 부임한 이후로는 이상하게 일이 잘 풀리고, 교회가 점점 부흥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안성에서 단독목회 할 때에는 정말 교회 형편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에 책장을 정리하다가 봉투가 있어서 보니까, 안성에서 목회할 때 받은 사례비 봉투였는데, 15만원을 받았더랬습니다. 교회에 빚만 잔뜩 있고, 재정이 없어서 목회자 사례도 제대로 못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던 교회가 교인들이 늘어나고 안정을 되찾고, 3년만에 교회 땅을 더 확보해서 1,000평이 넘는 교회가 되어서 운동장에서 축구를 해도 될 정도로 넓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후임자가 와서 교회와 사택을 다시 지어서 지금은 아주 큰 교회로 성장하는 중에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집사람이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해서 도움을 주었습니다. 목회는 부부 중에 어느 한 사람이라도 뜻이 안 맞으면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한 마디 불평도 없이 함께 사역해 준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남에게 아쉬운 소리 못하는 성격인데,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사람들이 먼저 와서 도움을 주게 하시고, 또 이리 저리 채워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 외에도 교회에 관심을 가지시고, 기도해 주시고,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신 분들... 정말 말로 다 할 수가 없지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이러한 은혜는 저 한 사람이나 우리 교회만이 해당된 일이 아니고, 지금까지 인생을 사시면서 여러분 모두다 경험한 사실인 줄 믿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지금까지 지내왔으며, 현재도 그 은혜 속에 있고, 또 앞으로도 하나님의 그 은혜와 사랑이 우리를 권고하시고 인도해 주실 줄 확신하며... 주님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누가 제게“성서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저는 요8:29절의 말씀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또 오늘 본문으로 정한 고전15:10절의 말씀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한 절 속에서“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습니다!.”“내게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였습니다!”“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그렇게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을 세 번씩이나 거듭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3번의 '은혜'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세 번의 은혜 중에 첫 번째는 지금까지 지내온 사실들... 과거적인 은혜를 말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현재적인 은혜를, 그리고 세 번째는 앞으로 다가올 미래적인 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1. 기억하라!
그래서 첫째로 생각할 것은 그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지금까지의 일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으니 그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주께서 베푸신 그 은혜를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하나님은 누누히 그 은혜를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구원해 내신 하나님을 기억하라!"(신5:15)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신7:19)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신8:2)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신8:18)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신24:18) 하면서 계속해서 기억하라고 하셨습니다.
신32:7절에서는 옛날을 기억하고,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모른다면 네 아비에게 물어보고 어른들에게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자꾸만 기억하라고 하셨습니까?... 무엇을 기억하라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잊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삼상7:12절에 보면, 사무엘은 미스바와 센 사이에 돌을 세우며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고 했습니다.
과거를 기억하는 것, 그리고 그 은혜를 기념하기 위하여 기념비를 세운 것은 자신의 신앙은 물론이고 후대에까지 그 은혜를 기억시켜서... 자손 대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도록 하려는 교육적인 의미가 담겨있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위대한 발견이요, 복된 발견이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도 은혜를 모르면 배은망덕한 인간이라고 합니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러하거니와 하물며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모른다면 성도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무엘이나 바울이 훌륭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슴속에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도우셨다!" 라는 에벤에셀의 신앙, 에벤에셀의 감격이 있으십니까?.... 그 은혜를 알고, 그 은혜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더욱 더 감사를 드려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고백한 내용들이 무엇입니까?
"'나’라는 존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바요, 그의 은혜로 만들어진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죽이려고 하던 나를 사도로 만드심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다. 나에게 주어진 사도의 특권은 과분한 축복이다. 내가 회개한 것도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내가 복음을 전하고자 수고하게 된 것도 수고할 마음이 생긴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며, 많은 박해 속에서도 견디고 참으며 끝까지 수고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만삭되지 못하여 낳은 자 같다는 겸손한 고백을 할 수 있음도 하나님의 은혜이며,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가치 있는 모든 것... 아니,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렸습니다.
사도 바울의 심령은 속죄의 은혜, 신앙을 주신 은혜, 수고하게 하신 은혜에 대한 감사로 꽉 차 있어....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이 넘치고도 넘쳤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스스로 된 자가 없습니다. 인간의 모든 것, 즉 사람 자체, 사람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좋은 것은 모든 것의 원천이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출3:14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하고 말씀했습니다.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 이는 하나님 한 분만의 특권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존재하는 이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께로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약1:17절 말씀에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했습니다.
시골에서 돼지를 키워 새끼를 내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교회를 다녔지만 욕심이 많은 여인이었습니다. 교회를 다녀서 집사가 되었어도 그 욕심을 버리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그 집의 돼지가 새끼를 많이 낳아서 경사가 났습니다. 목사님께서 심방을 가셨습니다.
목사님이 "집사님, 돼지가 새끼를 몇 마리나 낳았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 여덟 마리 낳았습니다" "아이구! 많이 낳았네요. 기쁘시겠습니다." 하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이 집사님이 말하기를 "뭘요, 옆집 돼지는 열두 마리나 낳았는데요, 뭐!" 하고 불만족스런 모습입니다.
얼마가 지난 후에 다른 돼지가 새끼를 낳았는데 열 네 마리나 낳았습니다. 목사님께서 또 심방을 가셨습니다. "돼지가 새끼를 열 네 마리나 낳았으니 이제 만족하시지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집사님이 하는 말, "열 네 마리가 뭐가 많은가요? 스무 마리 정도면 몰라도..." 하고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다는 모습입니다.
목사님이 참다 못해서 "집사님은 너무 욕심이 많네요. 돼지보다 더 욕심이 많아요!" 하고 말하니까, "아니, 제가 돼지보다 욕심이 많다니요? 어떻게 그런 심한 말씀을…" 하고 말합니다.
목사님이 말하기를 "돼지가 욕심이 많다고 해도 저 구정물 한 통만 먹고 나면 만족해 합니다. 헌데 집사님의 욕심은 끝이 없잖습니까?..." 하고 말하니, 이 집사님은 그제서야 머리를 숙이며 애꿋은 옷자락만 비비 꼬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를 아는 자는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서 언제나 감사할 줄 압니다. 자기보다 높은 사람보다는 언제나 낮은데 처해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항상 만족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그에게 주고 주고 또 주어서, 받고 받고 또 받아도.... 감사는 커녕, 언제나 불만족스럽고 불평만 합니다.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일생을 살면서도 채우지 못하는 갈증 속에서 허덕이다가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여기까지, 우리 교회를 인도하시고... 나와 내 가정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여 진실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보다 못한 사람들, 나보다 못한 가정들, 우리 교회보다 못한 교회들을 돌아볼 줄 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만족하라!
둘째로, 본문이 강조하는 것은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은혜 안에 있으니 받은 바 은혜를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살고 계십니까? 소월 아파트에 사십니까? 다산 아파트에 사십니까? 충무 아파트에 사십니까?.... 아파트에 사십니까?, 단독주택에 사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고, 하나님의 은혜속에 살고 있습니다.
은혜 안에 있다는 이 사실을 알고, 만족하는 사람은 감사만 있고 불평이 없습니다. 자랑하거나 낙심하지도 않습니다. 어떤 시련의 폭풍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속에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언제나 불평과 불만만 늘어 놓습니다.
여러분! 지금은 잘 몰라도 불평이 나오거든 얼른 입을 막고 잠깐만 참으시기 바랍니다. 몇일만 더 참아 보세요.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달을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는 마치 이슬과 같다고 했습니다. 이슬은 아무도 모르게 내립니다. 지나고 보아야 알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무나 은혜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심프슨(A. B. Simpson)은 말하기를 “폭풍우가 몰아 치는 밤에는 이슬이 맺히지 않듯이 하나님의 은혜의 이슬도 요동하는 영혼에게는 내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과 원망으로 자신의 마음을 불과 같이 뜨겁게 속을 부글 부글 태우는 사람에게는 은혜의 이슬은 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불과 물이 한 그릇 속에서 같이 있을 수 없듯이, 은혜를 아는 만족과 은혜를 모르는 불만족은 한 마음 속에서 어울릴 수 없습니다.
만족이 성령께서 주시는 마음이라면 불만족은 마귀가 가져다 주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만족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시116:12절에서“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 속에서 만족하며... 마치 빚을 진 채무자의 심정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까?”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삶도 하나님의 은혜에 언제나 만족했고 은혜 속에서 살고 있음을 항상 감사했습니다(빌4:11).
은혜란, 은혜를 은혜로 받는 자에게만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궁극적인 만족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깨닫고 주의 은혜속에서 참된 만족속에 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이루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경주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행복은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만족하며, 그 은혜 속에서 사는 삶 가운데 행복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지금도 우리의 심령 깊은 곳에서, 우리 삶의 현장에서, 은혜로 함께 하시고 은혜로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와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산본성광교회가 지난 1년을 지내 오면서 시시때때로 필요한 것으로 채워주시고 만족한 은혜로 역사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무조건 감사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살전5:18).
잘 사는 나라 호주에도 가보니까, 우리 한인들이 어떻게 신앙생활하고 있는지... 자기 교회 건물을 가진 교회가 딱 한군데 밖에 없었습니다. 모두들 호주교회를 빌려서 그 사람들 예배 시간을 피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담임목사가 없어서 목회자 한 사람이 여러 곳을 다니면서 예배를 드리는 곳도 수없이 많습니다. 외국이나 국내나 교회마다 형편이 어려운 교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지난 1년동안만 보아도 얼마나 감사한지.... 날씨가 더운 여름에는 에어콘도 사고, 겨울에는 온풍기도 사고, 또 얼마 전에는 교회 차량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개척교회지만 부족한게 없습니다.
또 우리 교회가 좋은 소문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한 사람 한 사람 등록을 하고, 출석하시는 성도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모든 은혜에 대해서 우리 모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3. 보답하라!
셋째로는 받은 바 은혜를 보답하라고 했습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그 은혜에 대해서 보답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할 일입니다. 은혜를 보답하는 것은.... 먼저 내가 사는 길이요, 그것은 곧 복을 받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려고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독자 이삭이라도 아낌없이 하나님 앞에 바쳤습니다. 어떤 계산이나 머뭇거림이 없었습니다. 이삭을 단위에 올려놓고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러한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그의 손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불렀습니다.
아브라함이 대답하니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습니다(창22:11-22:13).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수양을 미리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그 이후로 하나님이 예비하시고 준비하심을 가르켜 "여호와 이레" 라고 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며 믿음으로 살아갈려고 애를 쓰면... 여호와 이레의 주님이 우리의 형편과 사정을 다 아셔서.... 필요한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더 큰 은혜와 축복으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도 주의 은혜에 보답하는 교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이 지역은 물론이요, 온 세계를 향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역사하시기를 간전히 바랍니다.
혹자는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 보다 편협하고 독선적이며, 화해나 타협이 없고, 사회를 향한 구제와 사랑이 약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한 면만 보고 다른 면은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점들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는 집단적이라면 기독교는 개교회적입니다. 다른 종교가 드러내어 놓고 사회봉사를 한다면 기독교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화해가 없고 이해가 없다고 오해하는 것은 오직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행4:12). 본래 빛과 어두움이런 함께 공존할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받은 바 은혜를 감사하며, 앞으로도 주실 은혜를 사모하고, 마음 문을 여는 자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임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택하신 바 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해야 합니다.
감사가 끊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만 됩니다. 은혜를 알고 은혜에 만족하여 살면 은혜로 잘 되는 법입니다.
모쪼록 이 자리에 참여하신 모든 성도들,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온 세계 위에... 지금까지 인도하신 에벤에셀의 하나님... 앞 날에도 여호와 이레로 예비하시며, 여호와 닛시로 승리케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 >
하나님! 우리 교회가 어느덧 1년이 되었습니다. 첫 돌을 맞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마음껏 축복해 주옵소서! 지금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참으로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주님께서 우리 교회를 세우셨고, 지금도 은혜 속에 있게 하시오니, 앞으로도 우리 교회가 주의 뜻을 품고 이 지역사회와 온 세계를 향하여 복음을 널리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죽어가는 영혼들이 살아나며,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여 주옵소서! 교회가 더욱 든든히 서 가게 하시고 몸된 교회를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는 모든 권속들에게도 한령없는 은혜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앞으로 되어질 모든 일들도 주께서 풍성한 은혜로 이끌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지금까지도 은혜로 되었고, 지금도 은혜 안에 있사오니... 앞으로도 주의 은혜로 찬란한 내일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나는 나를 넘었다
고전 15장 10절 / 강문호목사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바울이 이런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바울 사도는 <나의 나 된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가 둘입니다. 나의 나된 것의 앞의 나와 뒤에 나가 있습니다.
앞에 나는 누구이고, 나중에 나는 누구일가요?
앞에 나는 예수 믿기 전에 나입니다.
예수믿기 전에 나는 바리새인입니다. 교만하였습니다.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이라는 말은 최고 큰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의 사울은 바울이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가장 작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바울이 사용하던 손수건만 병자에게 대어도 병이 나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3층천에 갔다 왔습니다. 최고의 영적 체험을 하였습니다.
앞에 나는 사울입니다. 뒤에 나는 바울입니다.
사울이 바울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을 바울은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자기를 넘었습니다.
성경은 자기가 자기를 넘은 사람들의 기록부입니다.
기드온은 농사군이었습니다. 그러나 미디안 강대국을 물리치는 용사가 되었습니다. 농사군 기드온이 용사 기드온이 될 줄은 자기도 몰랐습니다.
자기를 넘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모세도 그렇습니다.
모세는 목자였습니다. 40년 동안 양이나 치던 목자였습니다. 40년이면 이미 목자의 프로급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이가 80이 되었습니다. 목자로 생을 마감할 줄 알았습니다. 자기도 타인도 모두 그렇게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가나안으로 인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40년 동안 애급에서 뿌리 내리고 살던 200만명을 이끌어 내라는 것입니다. 엄청난 명령이었습니다. 모세는 거절하였습니다. 할 수 없다고 4번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강권하셨습니다.
드디어 모세는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자기가 자기를 넘었습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 하였던 사람이 되었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평생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를 잡아 근근히 살아 온 어부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생각지도 못 하였던 일입니다.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 하던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깊은 곳에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베드로는 그렇게 하였습니다.
베드로도 자기가 자기를 넘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여러분이 여러분을 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자기가 자기를 넘은 사람을 세상 사람들은 신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초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불교에서는 자기가 자기를 넘은 사람을 부처라고 부르고 천주교에서는 성인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내가 나를 넘을 수 있을가요?
바울은 한 마디로 말하고 있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고전 15;10)
1. 훈련으로 넘을 수 있습니다.
자기 훈련은 무서운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훈련시킨다는 것은 내가 나를 넘는 놀라운 사건이 됩니다.
훈련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알려 주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성전 시대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다섯 손가락 사이에 펜 4개를 끼웁니다. 그리고 각각 다른 글씨를 쓸 수 있게 하였습니다. 한꺼번에 네 글자씩 써나갔습니다.
놀라운 훈련입니다.
나는 30분이면 책을 한 권 읽어 내려 갑니다. 목욕탕에 가면 책을 한 권씩 읽고 옵니다.
속독 훈련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같은 행동을 21번 반복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몸에 붙은 것을 훈련이라고 합니다. 새벽기도를 21번 하면 습관화됩니다.
예수님도 새벽기도를 하셨는 데 습관을 따라 새벽기도하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좇았더니>(눅 22;39)
나는 중국에서 써커스하는 것을 몇 번 본 적이 있습니다. 자전거 바퀴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잘 탑니다. 무서운 훈련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넘을 수 있습니다.
훈련으로 가능합니다.
우리가 올림픽을 말할 때에는 <흑인 올림픽>이라고 말합니다. 흑인들이 백인들보다 금메달을 많이 얻기 때문입니다. 백인이 흑인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흑인들이 열등감과 한 때문에 열심히 훈련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열성적인 훈련을 백인이 따라갈 수 없습니다.
훈련은 자기를 극복하는 비결입니다.
2. 기도로 넘을 수가 있습니다.
내가 나를 넘을 수 있는 비결이 또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힘을 빌리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빌려다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 기도입니다.
바울은 평생 전도하며 사신 분이십니다.
그는 항상 오라는 곳은 없어도 전도할 곳을 찾았습니다. 전도할 곳을 찾으면 제일 먼저 또 찾은 것은 기도할 처소였습니다.
기도로 시작하고 기도로 사역하다가 기도로 마친 사도가 바울입니다. 기도는 항상 자기를 넘을 수 있게 하여 주었습니다.
기도는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여 주었습니다.
기도는 나를 나 이상으로 만들어 줍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빌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빌립보로 가서 복음을 증거하라고 명하셨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빌립보로 들어 갔습니다.
기도할 곳을 먼저 찾았습니다. 아직 기도하지 못하였습니다. 처음 간 도시였기에 기도처를 찾으러 다니다가 강가에 앉아 있는 여인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루디아가 복음을 받아드렸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복음이 시작되었습니다. 기도도 아직 하지 않았는 데 기도의 응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바울이 되었습니다.
기도는 내가 나를 넘을 수 있는 방법입니다.
덴마트 그룬드비 목사님 이야기입니다.
1807년 영국과 덴마크는 7년 동안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강대국과 오랜 동안 싸우다보니 국력도 다 소멸되고 지칠 대로 지쳐 있었습니다. 제일 큰 아픔은 배고픔의 아픔이었습니다. 이 때 온 국민들과 국회는 차라리 항복하고 영국 식민지로 편하게 먹으며 굶지 말고 살자는 여론이 비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그룬드비 목사님이 국회 의사당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영국의 속국이 되어 사는 것보다 우리 힘을 합하여 한번 일어나 보십시다.>
그 때 국회위원 한 명이 말했습니다.
<7년 전쟁에 모든 물자가 다 탕진되고 빈 털털이가 되었는 데 무엇을 가지고 일어난다는 말입니까?>
이 때 그룬드비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꿈을 가지 십시오. 꿈을 가지면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땅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입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그룬드비 목사님의 외침을 따르면서 덴마크가 선진국가가 되었습니다.
기도는 나를 넘어서게 합니다.
세계에서 제일 부자 록펠러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하나님 품으로 가면서 다 떨어진 사용하던 성경을 록펠러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아들아! 엄마가 너무나 가난하여서 너에게 줄 것은 이것밖에 없구나. 이것을 늘 읽어라. 10가지 삶의 지침을 줄 터이니 잘 지켜라.
1. 하나님을 최고로 섬겨라.
2. 목사님을 하나님의 종으로 알고 섬겨라.
3. 예배시간에는 앞 자리에 앉아라.
4. 오른 쪽 주머니는 십일조 주머니로 알고 하나님을 위한 돈을 넣거라.
5.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여라.
6. 주일 예배는 반드시 본 교회에서 드려라.
7. 아무와도 원수를 맺지 말아라.
8. 남을 도울 수 있는 대로 도와라.
9. 아침밥 먹기 전에는 성경부터 읽어라.
10. 잠들기 전에는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여라.>
록펠러는 그렇게 실천하였습니다. 세계 최고로 일을 많이 한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나를 넘는 길입니다.
3. 성령받으면 넘을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나는 나를 넘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성령은 능력의 영입니다. 그래서 성령께 의지하면 나는 나를 넘을 수 있습니다.
다윗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스라엘 옆에 있던 블레셋에 골리앗 장수가 있었습니다. 누구도 이길 수가 없는 힘있는 장수였습니다. 온 몸을 갑옷으로 감싸고 있었습니다. 보이는 곳이라고는 얼굴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물맷돌로 이마를 정확하게 맞추어 죽였습니다. 골리앗은 급소에 맞아 죽었습니다. 우연일가요? 꼭 맞아 죽어야 할 곳에 맞았습니다. 다윗에게 중요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양을 치면서 늘 풀가에 앉아 수금을 치면서 노래를 하였습니다. 자기도 기분 좋고 양들도 기분좋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7명 형들은 낮잠을 자거나 놀 때 다윗은 돌 던지는 훈련과 수금 타는 훈련을 반복하였습습니다.
후에 그 효력이 역역히 나타났습니다. 사울왕이 아플 때 왕 앞에 가서 수금을 타며 찬송을 불러 주었습니다. 보통 솜씨가 아니었습니다. 사울의 병이 상쾌하게 나았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골리앗 장수가 싸움을 걸어 왔습니다. 누구도 이기지 못 하여 모두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물맷돌 하나 들고 나가 싸웠습니다. 승리하였습니다. 골리앗 이마를 정통으로 맞추었습니다.
훈련은 내가 나를 이기게 합니다.
나 이상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언제나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루에 일곱 번씩 기도하며 자기가 자기를 초월하도록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래서 <새벽에 내가 깨우리로다>라고 가장 많이 말한 사람이 다윗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늘 성령께 의지하였습니다.
그래서 밧세바와 죄를 짓고 나서 회개할 때에도 말했습니다.
<내게 주신 성령만은 거두지 마옵소서!>(시 51;11)
이같이 늘 자기를 훈련시키고 기도하며 성령께 의지하는 사람은 내가 나를 넘을 수 있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초나라와 위나라가 호로국이라는 곳에서 한판 승부를 벌이고 있었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갈라지는 큰 싸움이었습니다. 그런데 호로국은 지형이 아주 위험한 곳이었습니다. 초나라에는 그 유명한 제갈공명이 놀라운 전법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위나라에는 100만 대군을 호령하는 강적 사마의가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제갈공명 전법이 잘 먹혀 들어 갔습니다. 그래서 대군을 협곡으로 유인하여 유황불로 태워 죽이려는 계획이 잘 진행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승리를 앞두고 있는 데 갑자기 소낙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유황불 작전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 때 제갈공명이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대사를 도모하는 것은 인간이 하지만 대사를 성사시키는 것은 하늘이 하신다.>
인간의 훈련과 노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여야 합니다.
4. 사명받으면 넘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를 넘은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사명을 통하여 자기를 넘은 사람들입니다.
그 일을 꼭 하여야 한다고 믿고 나가면 하나님은 할려고 하는 자에게는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삼손은 힘이 센 장수였습니다. 맨 손으로 사자를 찢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기생 들릴라에게 속아서 머리를 깎이고 말았습니다. 독주를 마시고 들릴라 무릎을 베고 자다가 머리칼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삼손은 두 눈이 뽑혔습니다. 그리고 쇠줄로 묶은 후 연자맷돌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서서히 머리털이 자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들의 신 다곤신당에 모였습니다. 자기 나라를 그렇게 괴롭히던 삼손을 다곤신이 잡히게 하여 주신 은혜에 감사드리며 즐기려는 모임이었습니다. 감사예배를 드리려는 중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삼손을 끌어다가 재주를 부리게 하며 승리를 자축하며 즐겼습니다. 다곤신당안에사람들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지붕에만 3,000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정부 고관들이 모두 모여 있었습니다. 아마도 10,000 명 이상이 모여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삼손을 다곤 신당 두 기둥 사이에 세웠습니다. 삼손은 두 기둥 사이에서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삿 16;28)
삼손은 오른 손으로 한 쪽 기둥을 다른 손으로 다른 기둥을 붙들고 속으로 외쳤습니다.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삼손은 있는 힘을 다하여 기둥을 넘어뜨렸습니다.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이 다 죽고 말았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하나님을 할려고 하는 자에게는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사명은 무서운 것입니다. 누구도 사명 가진 사람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어느 유대인 어린아이들이 다니는 국민학교에 폴란드 교사 코르작이라는 이가 있었습니다.아이들은 언제 죽을 지 몰라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유대인 아이들은 자기들을 지극히 사랑하여 주는 코르작 선생님과 있기만 하면 늘 평안함과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자기 생명같이 아이들을 사랑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드디어 운명이 날이 다가 왔습니다. 나치 트럭이 국민학교 교정에 도착하였습니다. 아이들을 실고 가스실로 가려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죽음을 예견한 듯 모두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코르작 선생님은 아이들과 함께 트럭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가스실로 같이 들어갔습니다. 나치들은 코르작을 끌어 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이들을 쓰다듬으며 같이 들어 갔습니다.
<얘들아! 괜찮아! 내가 같이 있단다.>
코르작은 아이들을 끌어 안고 같이 죽어갔습니다. 공포에 떠는 아이들과 같이 죽었습니다. 그는 죽으면서 말했을 것입니다.
<내가 할 일을 다 했다.>
죽기로 작정한 사명자에게는 비상한 힘이 솟구치게 되어 있습니다.
에스더도 그렇습니다.
왕이 부르지 않으면 결코 왕앞으로 갈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을 하만이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에스더는 3일 금식기도를 한 후에 <죽으면 죽으리라>라고 말하면서 왕으로 갔습니다. 만일 왕이 맞아주면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르지도 않았는 데 왜 왔느냐고 말하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비장한 각오로 왕에게 나갔습니다. 자기 백성을 살려야 한다는 사명은 누구도 말릴 수 없는 비상한 힘을 주었습니다.
불이 불꽃으로 유지되는 것처럼 교회는 사명으로 유지되다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어느 분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당신 생애 위에 업무를 던지면 당신은 그 속에 생애를 던지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빵의 재료를 주시면 굽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한다.>
사명은 그 사람을 위대하게 합니다. 사명적인 일을 하려고 할 때에는 무서운 힘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 시카코 신학교 교정에는 그 학교 출신 선교사들 동상이 나란히 서있다고 합니다. 외지에 가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하나님앞에 간 위대한 복음의 사명자들입니다.
그 중에 한 명이 애콰도르에 가서 복음을 전하였던 엘리어트입니다. 그가 28살에 에코도르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원주민들에게 잡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순교당한 그의 시신을 모교 교정으로 가지고 와서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결혼하고 직후에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애도하는 아내 곁으로 가서 위로하면서 말했습니다.
<부인! 세상에 이런 비극이 어디 있습니까?>
그 때 부인이 소리를 지르면서 말했습니다.
<비극이라니요? 복음을 위하여 장렬하게 목숨을 바쳐서 하늘나라에서 큰 상급이 기다리고 있는 데 비극이라니요?>
우리는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면 나를 넘을 수 있습니다.
중국 산동성 출신 병사들이 상해에 주둔했을 때 일어났던 일입니다.
어느 날 개 한 마리가 입에 책장 몇 장을 물고 주둔지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병사들이 쫓아가서 그것을 빼앗았습니다. 성경의 일부분이었습니다. 병사들은 전후가 궁금하여졌습니다. 근처에 마침 기독교 병원이 있었습니다. 병사들은 그 종이쪽지를 가지고 병원으로 들어가서 이 책 원본을 구할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을 환영하며 성경 원본을 주었습니다. 그 결과 그 군대에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성경을 공부하고 싶은 병사들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고포드 선교사를 파송하여 2명을 놓고 성경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군대가 복음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개 입을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개는 개를 넘어 선교사가 되었습니다.
한국의 무디로 불리는 이성봉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만주에서 전도 집회를 갖던 중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집회를 중단하고 고향에 가보십시오. 어머니가 마지막으로 보고싶어 하십니다.>
이 성봉 목사님은 그 때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거룩한 전투에 참가한 주님의 군병이다. 군인이 전투가 벌어지는 전장을 떠날 수는 없다.>
그리고 끝내 집회를 계속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통곡을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명을 지켰습니다. 사명을 가진 사람은 자기가 자기를 넘을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나를 넘었다.>
나는 나를 넘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나는 나를 넘을 수 있을 가요?
1. 훈련으로 넘을 수 있습니다.
2. 기도로 넘을 수가 있습니다.
3. 성령받으면 넘을 수 있습니다.
4. 사명받으면 넘을 수 있습니다.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
고전15장 10절 / 김명혁목사
저는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고백을 저의 고백으로 삼으면서 매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그러면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 10 가지 중에서 첫 번 5가지 은혜에 대해서 40여분 동안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신의주에서 지낸 저의 유아 및 유년 시절”의 추억들을 살펴봅니다. 저는 유아 및 유년 시절에 평안북도 신의주에서 살았습니다. 저의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이 한경직 목사님의 초청으로 1938년부터 신의주 제이교회의 부목사님으로 나중에는 담임 목사님으로 9년 동안 목회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1살 때부터 9살 때까지 신의주에서 살게 되었는데 아기 때부터 한 평생 한경직 목사님의 사랑과 가르침을 받은 것은 너무나 큰 은혜요 축복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장난꾸러기였습니다. 신의주에서 살던 유아 및 유년 시절 동네 친구들을 이곳 저곳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심한 장난을 치곤 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중국 사람들이 가꾸던 토마토 밭에 들어가서 몰래 토마토를 따서 먹으면서 좋아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길가에 조그만 웅덩이를 파고 웅덩이를 종이와 흙으로 덮은 다음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이 웅덩이에 빠지는 것을 보고는 손뼉을 치면서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동네 친구들을 데리고 교회당(신의주 제이교회) 지붕 위와 교회당 맨 꼭대기에 올라가서 놀다가 누가 대변이 마렵다고 하면 저는 대변을 종이에 담아서 멀리 던져 남의 집 지붕 위에 떨어지게 하는 못된 장난까지 쳤습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잔소리나 야단을 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심한 장난꾸러기였는데 심한 장난꾸러기의 기질도 은혜를 받으면 두려움 없이 막 뚫고 나아가는 모험적인 신앙의 기질로 승화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후에 발견하였습니다.
저는 심한 장난을 치면서도 신앙생활은 나름대로 열심히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모든 예배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면서 감동과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유치부 시절 어느 성탄절에 교회에서 알타반 박사에 대한 성극을 공연하는 것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는데 그때 받은 감동을 평생 지니게 되었습니다. 유치부 어린이 시절 제가 들은 “알타반아! 알타반아!” 라고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저는 평생 잊지 못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결국 목회자가 된 후에도 저는 알타반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교회에서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신의주에 있을 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또 하나 있습니다.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은 일제 시대와 공산주의 시대에 자주 감옥에 투옥되어 감옥 생활을 하셨는데 신의주에 있을 때 저는 어머니와 함께 아버지가 갇혀 있던 감옥을 자주 찾아가서 감옥 담장 밖에서 목청을 돋아서 노래를 부르며 “아버지이! 아버지이!” 라고 소리를 지르곤 했습니다. 그때 제가 자주 부르던 노래는 “뜸북 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 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때 우리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라는 노래였습니다. 저는 감옥에 계신 아버지를 보고 싶어하면서 그때부터 예수님을 잘 믿기 위해서는 감옥에도 가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배우게 되었습니다. 사실 아버지는 저에게 잔소리는 고사하고 타이르는 말씀도 별로 하시지 않았습니다. 때때로 저를 칭찬해 주시며 격려하신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신의주와 평양에서 저의 아버지의 목회의 삶과 감옥의 삶을 바라보면서 새벽기도와 주일성수와 순교신앙의 유산을 내 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체 받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아버지는 잔 소리를 하신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특히 어머니께서는 모든 것을 제가 스스로 하도록 저에게 맡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자발적으로 또는 창의적으로 무엇을 하곤 했습니다. 결국 저는 공부도 잘 했고 놀기도 잘 했고 글도 잘 썼는데 글을 잘 쓴다고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칭찬을 받고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부족한 저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아 너무나 컸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저에게 물려주신 믿음과 사랑의 유산이 너무나 귀중했습니다.
두 번째로 “평양에서 지낸 저의 소년 시절”의 추억들을 살펴봅니다. 제가 10살 즉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47년 신의주에서 평양으로 이사 왔습니다.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이 신의주 제이 교회를 사임하시고 평양 서문밖 교회로 부임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공산주의 정부와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히 강량욱 목사와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에 곧 감옥에 투옥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평양 감옥에서 감옥생활을 하시다가 나중에는 평양 외곽에 있는 사동탄광에 투옥되어 중노동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끔 아버지를 면회하러 어머니와 함께 사동탄광을 찾아가곤 했습니다. 남루한 죄수 복을 입으신 아버지를 몇 번 만나 뵈온 기억이 납니다. 저는 아버지로부터 신앙적인 감화를 은은하게 받았습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는 감옥에 가는 고난도 감수해야 한다는 교훈을 말이 아닌 삶으로 전수받았습니다. 제가 평양 제5인민학교를 다닐 때 벌을 서고 정학을 당하면서도 주일성수를 끝까지 고수했던 이유도 바로 아버지로부터 받은 신앙적인 감화와 교훈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평양 서문밖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더욱 더 열심히 했습니다. 평양은 바로 주기철 목사님과 최봉석 목사님께서 1944년 4월 21일과 25일에 순교하신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에게 주일성수와 새벽기도와 순교신앙의 씨앗을 심어주신 분들이 주일학교 선생님들인 이인복, 명선성, 최병목 선생님들이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들의 말씀을 잘 들었는데 선생님들이 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나 다 했습니다. 교회에 와서 유리창을 닦으며 청소를 하라고 하면 청소를 했고, 새벽기도를 하라고 하면 새벽기도를 했고, 주일날 공부를 하지 말고 물건이나 음식을 사지 말라고 하면 공부도 하지 않고 물건이나 음식도 사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들을 수 있는 귀와 순종할 수 있는 마음과 몸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평양 제 오 인민학교(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일요일 날 학교에 등교하라는 명령을 매주 받았지만 2년 동안 일요일 날 학교에 등교한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월요일마다 학교에서 벌을 섰고 때로는 정학을 받았지만 주일날엔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교회에 있으면서 하나님께 정성껏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학교 오후 예배 시간에 누구든지 기도하라고 하면 제일 먼저 제가 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주일 저녁 어른 예배시간에 때때로 제가 나가서 “간증” 또는 “발표”를 하기도 했습니다. 어머니는 누구보다도 저를 가장 많이 사랑했지만 평양에서도 저에게 잔소리를 하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공부를 잘 하라고 또는 신앙생활을 잘 하라고 타이르는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저는 평양에서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고 공부도 잘했습니다. 저는 저를 믿고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주신 어머니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깊은 사랑과 존경을 표합니다. 잔소리보다는 순수한 사랑과 격려가 그 무엇보다 귀하다는 것을 저는 후에 알게 되었습니다. 잔소리를 많이 듣고 자란 어린이들은 자발성이나 창의성보다는 짜증과 불쾌감을 지니고 소극적으로 살아갈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결국 저는 주일을 성수하고 예배를 바로 드리면서 살기 위해 11살 때인 1948년 8월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북에 남겨 두고 38선을 넘어 남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엄청난 일이었는데 제가 스스로 자발적으로 결정한 일이었습니다. 저를 강요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로 이루어진 것을 저는 잘 압니다. 제가 평양을 떠나기 전에 감옥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가서 주일을 바로 지키면서 신앙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 남쪽으로 가겠다고 말했을 때 아버지는 저를 한 참 바라보시다가 그러면 가라고 말씀했습니다. 저를 너무 사랑하시면서 저 없이는 못 살겠다고 늘 말씀하시던 어머니도 울면서 그러면 가라고 말씀했습니다. 저의 모험적인 기질을 잘 아시는 어머니가 제가 떠나기 전 저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이 위험한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저를 믿고 저를 멀리 떠나 보내시는 슬픔과 아픔을 지니신 부모님께 저는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평양을 떠나 기차를 타고 해주로 오면서 이별의 슬픔과 아픔을 가슴에 지니면서도 신앙의 자유를 찾아 하나님을 바로 섬기기 위해서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 좋은 목사님이 되기 위해서 고향을 떠나 미지의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면서 저의 마음을 추스르기도 했습니다. 해주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 날 밤 어른들 5, 6명과 함께 38선을 넘게 되었습니다. 안내원을 따라서 조용 조용히 국경을 넘다가 우리 일행은 국경경비 군인들에게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모두 손을 들고 서지 않으면 총을 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어른들은 모두 손을 들고 섰습니다. 그러나 저는 설 수가 없었습니다. 국경을 넘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혼자서 남쪽을 향해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언덕을 넘고 긴 파 밭을 달리고 목에 차는 강을 건너면서 계속해서 달렸습니다. 저는 조금도 두렵지가 않았습니다. 약간의 스릴까지 느꼈습니다. 아마 3,40분 동안 달린 후 저는 남 조선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11살 때 혼자서 38선을 넘은 사건은 그후 저의 평생의 삶의 성격과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두려움 없이” “모험적으로” “막 뚫고 나아가는” 삶이 저의 삶의 모습이 된 것이었습니다.
저는 남쪽에 와서 어느 작은 초가집에 들어갔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습니다. 어느 젊은이가 저에게 다가와서 어디 가냐고 물었습니다. 서울로 간다고 했더니 어떻게 가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같이 오던 어른들이 모두 잡혀서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이 저를 서울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청년과 함께 기차를 타고 서울까지 왔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저는 화려한 모습에 크게 감탄했습니다. 결국 저는 그 청년의 친절한 안내로 서울 중구 을지로 3가 7번지까지 무사히 올 수가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수년 전부터 서울에 와서 사시던 이모님 집이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이모님을 반갑게 만나게 되었고 이모님 집에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서울에서의 나그네의 삶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후에 나를 서울까지 친절하게 데려다 준 그 청년을 찾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애를 썼지만 결국 찾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 청년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천사” 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선한 목자 되시는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저의 길을 선한 길로 인도하신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랜 후에 저의 한 평생의 길을 한 걸음 한 걸음을 선한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생각과 인도하심을 묵상하면서 다음과 같은 다윗의 고백을 너무너무 좋아하게 되었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찌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시 139:17).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울고 또 울고 또 운 일이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 “서울에서 지낸 저의 소년 시절”의 추억들을 살펴봅니다. 제가 서울에 와서 이모님 집에서 살면서 아무런 어려움도 없었지만 처음 2년 동안 저는 밤마다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리면서 울었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주일을 성수하면서 마음껏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좋았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주일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영락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고 주중에도 모든 예배에 참석하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주일성수는 계속해서 철저하게 했습니다. 영락교회에서 한경직 목사님을 다시 만나게 되어서 너무 반가웠는데 한경직 목사님은 평생 부족한 저를 사랑으로 품어주신 귀한 스승이셨습니다.
저는 서울에 와서 방산국민학교 5학년에 입학하여 2년 동안 공부했는데 저는 공부도 잘했고 운동도 잘해서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고향을 떠난 고아와 나그네로 외로움을 지니고 살았지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당당하게 명랑하게 적극적으로 살았습니다. 사실 오랫동안 학교의 친구들은 제가 부모가 없는 고아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저는 훌륭한 부모가 있는 학생처럼 당당하게 행동했습니다. 학교에 처음 입학했을 때 제가 이북 사투리를 한다고 반 친구들의 놀림을 당한 일이 있기는 했습니다. 어떤 친구가 저를 계속해서 놀려서 제가 그 친구에게 학교 뒷마당에 가서 싸움을 하자고 했습니다. 결국 반 친구들이 학교 뒷마당에 모두 모였습니다. 반 친구들이 보는 가운데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제가 그 친구를 때려눕혔습니다. 제가 이겼습니다. 그 후부터 그 친구는 저를 놀리지 않았고 반 친구들은 저를 더욱더 부러워했습니다. 운동도 잘하고 싸움도 잘하고 공부도 내가 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 반에서 두 명씩 뽑아서 남산에 가서 과학 경연대회를 한 일이 있었는데 제가 뽑혀서 간 일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있어서 평생 신앙생활이 첫째이고 공부는 둘째였는데 저는 공부도 잘 해서 그 당시 들어가기 어렵다고 하던 서울중학교에 어렵지 않게 합격했습니다.
제가 서울에 와서 엉뚱한 일을 하나 한 일이 있었습니다. 중구청에 가서 주민등록을 하는데 구청 직원이 저보고 “본”이 어디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본”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떨결에 내 “본”이 “남양” 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평양에 있을 때 남양 군도에 살던 토인들이 등장하는 만화를 아주 좋아했는데 갑자기 남양군도가 생각나서 나의 본이 “남양” 이라고 대답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제 본은 “김해”인데 저는 평생 “남양” 김씨로 살아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합동신학대학에서 “은퇴 기념논총”을 나에게 증정할 때 “남양 김명혁 목사 은퇴 기념논총” 이라는 제목을 사용했습니다. 제 딸은 “남양” 김씨 가문이 자기 대에서 끊어지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무엇이나 주저주저 하는 대신에 얼떨결에 이리로 저리로 막 달려가곤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서울중학교에 입학해서 공부도 잘 했고 엉뚱한 짓도 잘 했습니다. 어느 날 교실에서 선생님을 바라보면서 내가 두 손을 망원경처럼 둥글게 만들어서 바라보고 있었는데 국어 선생님이 나를 앞으로 나오라고 하더니 “은진 미륵같이 생긴 놈이 그런 짓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 라고 나를 책망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저는 선생님들의 말씀을 잘 들었고 특히 김원규 교장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들었는데, 일찍 일어나서 깨끗하게 부지런하게 책임 지키며 살라는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려고 평생 노력을 했습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저의 평생의 삶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깨끗하게 부지런하게 책임 지키며 사는 것이 저의 삶의 철학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김원규 교장 선생님이 초청해서 말씀을 전하게 하신 변영태 교수님(후에 총리)의 말씀을 들었는데 변영태 교수님은 절약하면서 검소하게 살고 운동을 하면서 건강하게 살라고 권면했습니다. 치약도 절약해서 사용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본래 다른 사람들의 말을 너무 잘 듣는 터라 그렇게 살려고 평생 힘썼는데 저는 평생 절약하면서 검소하게 살게 되었고 지금도 양치할 때 치약을 절약해서 조금씩 사용하곤 합니다.
저는 최근에 저의 삶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처럼 절약하면서 검소하고 소박하게 사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릇 씻은 물도 버리지 않고 화분에 주는 물로 사용하고, 음식을 남기지 않고 다 먹고 먹다 남은 음식을 버리지 않고 냉장고에 두었다가 다시 먹고, 오래 입은 낡은 옷도 버리지 않고 오랫동안 입고, 18년 동안 타고 다니는 아반떼 자동차가 38만 km나 달렸는데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운전하며 달리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10년 동안 전국을 운전하면서 다니는데 3분의 1 이상은 뉴트럴 즉 중립으로 다니면서 휘발유도 절약하고 자동차의 엔진도 쉬게 하고 공해도 줄입니다. 저는 얼마 전에 청주 양성교회에 다녀왔는데 가는 일이 113km인데 60km를 달릴 수 있는 적은 분량의 휘발유를 사용했습니다. 저는 외국 곳곳으로 여행하며 호텔에 묵을 때 며칠 동안은 침대의 이불을 갈지도 말고 청소도 하지 말라는 “청소를 하지 마시오” 라는 푯말을 문밖에 붙여놓곤 합니다. 저는 국내는 물론 외국의 산이나 해변을 거닐 때 항상 커다란 봉투를 가지고 다니면서 쓰레기를 가득 담아서 가지고 와서 쓰레기통에 버리곤 합니다. 저는 평생 절약하면서 검소하게 깨끗하게 살고 있는데 일회용 면도기를 20번 이상 사용하고 있습니다
네 번째로 “대구에서 지낸 나의 소년 시절”의 추억들을 살펴봅니다. 서울에서의 생활은 오래 계속되지 못했습니다. 월남한지 2년 후인 1950년 6월 25일 6.25 전쟁이 일어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인민군들이 탱크를 타고 서울 시내를 지나가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았습니다. 미국 비행기 B 29가 하늘을 나르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되었고 B 29의 폭격도 눈 앞에서 목격했습니다. 제가 들어갈 수도 있었던 방공호가 폭격으로 인해 무너진 것을 눈으로 목격하기도 했고 폭격으로 인해 사람들이 길가에 쓸어지는 것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전쟁의 불행과 전쟁의 비극을 직접 체험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6.25 전쟁으로 인해 서울을 떠나 피난민 대열에 끼어서 남으로 남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이모부님이 서울에서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회사 사장님의 봉고차를 함께 타고 사장님 가족과 우리 가족이 모두 함께 부산까지 내려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만원이 된 기차를 겨우 타고 또는 걷기도 하며 힘들게 피난을 가는데 우리는 자동차를 타고 편하게 갔으니 특별한 대우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부산까지 내려가는 길에서도 폭탄이 터지고 길가에 쓸어지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전쟁은 불행한 것이고 비극적인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부산까지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부산에서 몇 달 동안 피난 생활을 하다가 우리는 대구로 옮겨와서 3년 동안 대구에서 피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구에서 셋방 하나를 얻고 한 방에서 불편한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모님이 시장에 나가서 옷감 장사를 하며 돈을 잘 벌어서 차츰 어려움이 없는 피난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3년 동안 피난 생활을 하면서도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새벽기도는 거의 빠지지 않았고 주일날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교회에 있으면서 예배를 정성껏 드렸고 봉사와 전도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셋 집에서 살았기 때문에 새벽마다 대문을 열고 잠그지도 않고 교회로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문을 열고 나가서 밖에서 대문을 잠그는 방법을 알아내었습니다. 결국 저는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새벽마다 대문을 열고 나가서 밖에서 대문을 잠그고 교회에 가서 마음껏 새벽기도를 드렸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언제나 신앙생활이 첫째였고 공부는 둘째였습니다. 저는 대구에서 처음에는 대구제일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 때 어린이 사역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안성진 목사님이 어린이 사역을 담당하시고 어린이 사역에 관한 모임도 주관하셨는데 저는 그 때부터 안성진 목사님을 평생 사랑하며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구제일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서 여러 친구들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 때 대구에는 SB(Sister/Brother) 즉 누나와 동생을 맺는 것이 유행했는데 대구제일교회에 다니던 누나뻘 되는 주명숙이라는 고등학생이 나하고 누나와 동생을 하자고 했습니다. 저를 귀엽게 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주명숙 누나는 그 때 제가 다니던 영남중학교 교장인 주덕근 교장 선생님의 딸이었습니다. 저는 누나와 친하게 지냈는데 누나는 저를 누나 집에 데려가서 음식도 해 주고 선물도 주고 제 손수건도 빨아주었습니다. 저는 그 때 사과 껍질을 깎는 법을 누나에게서 배웠습니다. 즉 칼로 사과를 톡 친 다음 껍질을 깎는 법을 배웠는데 저는 지금도 그렇게 사과 껍질을 깎곤 합니다.
제가 대구에서 잊지 못할 귀중한 추억은 한국의 무디라고 불리던 이성봉 목사님을 만난 일이었고 이성봉 목사님을 통해서 너무나 깊은 은혜와 감동을 받은 일이었습니다. 그 때 이성봉 목사님이 몇 달에 한 번씩 이 교회 저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셨는데 저는 빠지지 않고 거의 매번 부흥회에 참석해서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저는 이성봉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에 12번은 참석한 것 같았습니다. 그 때는 부흥회가 월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새벽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개학 때는 새벽과 저녁 집회만 참석했지만 방학 때는 오전 집회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은혜를 사모했기 때문에 제가 스스로 참석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된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언제나 신앙생활이 첫째였고 공부는 둘째였습니다. 이성봉 목사님께서 새벽마다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셨고 오전과 저녁 집회 때는 은혜 사모와 성결과 헌신의 메시지를 전하셨습니다. 천로역정 강의는 너무너무 재미있었고 은혜로웠습니다. 때때로 “세상 만사 살피니 참 헛 되구나...” 허사가를 부르시곤 했는데 이성봉 목사님의 목소리가 너무 좋았고 감동도 충만했습니다. 저는 언제나 앞 자리에 앉아서 말씀을 듣곤 했는데, 이성봉 목사님께서 성경 아무데를 찾아서 읽으라고 하시면 저는 성경을 찾지도 않고 즉시 암송해서 읽곤 했습니다. 찾아서 읽으라고 하시는 말씀들을 제가 거의 다 암송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금요일 밤에는 철야기도를 했고 토요일 새벽에는 안수 기도를 받았습니다. 기도 제목이 무엇이냐고 물으시면 “좋은 목사님이 되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후에는 묻지도 않으시고 “너 기도 제목이 좋은 목사님이 되는 거지” 라고 말씀하시면서 안수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12번은 안수 기도를 받은 것 같습니다.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었고 축복된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성봉 목사님으로부터 죄를 고백하는 회개의 삶이 너무너무 귀중한 것을 배우게 되었고 그래서 평생 회개를 힘쓰면서 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한 번은 대구 어느 교회에서 미국에서 온 잘비스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셨는데 한경직 목사님이 통역을 하셨습니다. 저는 부흥회에 참석하면서 은혜를 받고 있었는데 잘비스 목사님이 회개는 혼자서 조용히 할 수도 있지만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앞으로 나와서 공개적으로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아무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먼저 일어나서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회개의 고백을 했습니다. 이성봉 목사님을 통해서 회개의 중요성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무슨 죄를 고백하며 회개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면서 진지하게 회개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들의 말씀과 목사님들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들음과 순종의 은혜를 받은 것 같았습니다. 듣는 귀를 주신 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저에게 베푸신 귀중한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이성봉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한 마디 더 한다. 후에 내가 서울로 돌아와서 종로 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 소리를 들으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 스피커에서 유행가 대신 이성봉 목사님의 허사가의 노래나 천로역정 강의가 흘러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다섯 번째로 “서울에서 지낸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의 추억들을 살펴봅니다. 저는 서울로 올라와서 고등학생과 대학생 시절을 보냈는데 창동교회와 대창교회에 다니면서 김치선 목사님 밑에서 보다 철저한 신앙생활과 봉사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회개와 새벽기도와 은혜사모와 전도의 영적 유산을 계속해서 보물로 물려 받았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한국의 예레미야이셨고 회개운동과 기도운동과 부흥운동의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저는 주일 아침과 저녁과 수요일 저녁은 물론 새벽기도회를 빠지지 않았고 교회에 나와서 예배와 기도를 열심히 드렸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매일 새벽 “성령이여 강림하사 나를 감화하시고 애통하며 회게 할 맘 충만하게 합소서” 찬송을 부르시고 눈물을 흘리시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리셨고,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셨고 그리고 2만 8천 여 동내에 우물을 파게 헤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저는 그때 중구 회현동에서 살았는데 새벽기도를 마친 다음에는 남산에 올라가서 30여분 이상 더 성경을 보며 기도하고 집으로 내려와서는 아침 밥을 먹고 30여분 동안 걸어서 서울 고등학교를 다니곤 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부흥회는 어디든지 따라다녔는데 삼각산 관악산은 물론 대구 주암산 부흥회까지 따라다니곤 했습니다. 주암산 부흥회 때 “피 흘려 사신 교회를 늘 사랑합니다” 라는 찬송을 부르게 되었는데 “피 흘려 사신 교회” 라는 가사에 깊은 감동을 받고 너무 고마워서 울고 또 울었고 “늘 사랑합니다” 라는 가사에 늘 사랑하지 못하는 잘못을 뉘우치면서 울고 또 운 일이 있었습니다. 옆의 사람이 “학생 무슨 슬픈 일이 있어?” 라고 물었지만 저는 대답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울었습니다. 주암산 부흥회에 함께 참석했던 김치선 목사님의 아들 세창군이 저보고 안수 기도를 해 달라고 해서 안수기도를 해준 일도 있었습니다. 교회에서 매년 년 초마다 3일씩 금식 기도를 했는데 저는 빠지지 않고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을 너무너무 존경하며 사랑했고 김치선 목사님의 사랑과 은혜를 너무 많이 쏟아 받았습니다. 한번은 김치선 목사님께서 관악산에 기도원을 짓는데 교인들이 모두 산 아래에서 큰 돌을 열 두 개씩 산 위로 메어 나르라고 말씀했습니다. 어떤 교인들은 귀찮게 생각하고 듣지 않았지만 저는 내 몫으로 큰 돌 열두 개를 나른 다음, 나의 어머니 몫으로 열두 개를 더 날랐고 그리고 나의 아버지 몫으로 열두 개를 더 날랐습니다. 물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주님을 사랑하고 김치선 목사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을 날랐습니다. 저에게 “들을 귀”와 “순종하는 마음”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무엇보다 회개를 강조하시면서 설교 시간에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고백하며 용서를 구하시기도 했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한 죄를 회개했고, 가정을 다스리는 파수꾼을 사명을 다하지 못한 죄를 회개했으며, 부모에게 효도하지 못한 죄도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신사참배의 경력을 인정하며 그 죄의 용서를 구하시기도 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을 너무너무 좋아하고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영혼이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김치선 목사님은 매일 새벽마다 울면서 회개의 기도를 드렸고, 2만 8천 여 동네에 우물을 파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기도를 하셨습니다. 즉 2만 8천 여 동네마다 교회를 세우게 해 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무조건 왕십리로 달려갔습니다. 왕십리 들판에 우물을 파기 위해서였습니다. 토요일과 주일 왕십리 들판에 나가서 서울고등학교 학생의 교복을 입고 찬송을 부르면서 아이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설교를 했습니다. 아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한양공고를 다니던 안흥규라는 학생을 만났는데 함께 전도하고 함께 예배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점점 많이 모여들어서 주일날 들판에서 예배 드리기가 불편했습니다. 근처에 있는 학교의 교실 서너 개를 빌려서 학생들과 함께 주일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고 3때는 공부에 전념하여야 하는데 나는 고 3때 전도와 목회에 전념했습니다. 저에게는 여전히 신앙생활과 봉사생활이 첫째였고 공부는 둘째였습니다. 그런데도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학과에 합격하여 역사를 전공하며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서울대학교 학생의 교복을 입고 열심히 전도와 목회를 계속 했습니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모이기 시작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막을 구해다가 천막을 치고 천막교회를 시작 했습니다. “한양제일교회” 라는 교회 간판을 달았습니다. 아이들 60여명과 어른들 40여명이 모였습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시작한 초라한 개척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어떤 젊은 엄마 교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 한양제일 교회가 제일 좋아요.” 제가 주일 오후 대학생 교복을 입고 노방전도를 하는 것을 어떤 교인이 보고는 “천사가 전도하는 것 같아요” 라는 말도 했습니다. 저는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이 모두가 김치선 목사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사랑과 은혜와 감동과 도전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김치선 목사님과 같은 눈물의 회개와 은혜 사모와 기도와 전도의 목사님을 저의 신앙의 스승님으로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 사모하는 마음과 듣는 귀와 순종할 수 있는 몸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그때 저와 같이 사역하던 안흥규 학생은 나중에 제가 강변교회를 개척해서 목회할 때 함께 사역을 했고 강변교회의 초대 장로가 되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 하나를 더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일 때 여름 어느 날 남대문 네 거리에 있는 기독교 서점에서 “사랑의 원자탄” 이란 책을 사서 들고 내가 새벽기도 후 날마다 올라가서 기도하곤 하던 남산 어느 숲 속으로 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사랑의 원자탄”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울고 또 운 일이 있었습니다. 어쩌면 이런 사람도 있을 수가 있는가? 나병에 걸려있는 아이들이 손양원 목사님과 함께 소풍을 가서 점심을 먹는데 손 목사님이 아이들의 점심을 좀 나누어먹자고 했지만 아이들은 자기들의 나병이 손 목사님에게 전염될 까봐 자기들의 점심을 자기들끼리만 먹고 손양원 목사님에게는 주려고 하지 않았는데 손양원 목사님이 억지로 아이들의 점심을 빼앗아 먹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으로 쏘아서 죽인 원수와 같은 사람을 자기의 양 아들로 삼았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하면서 저는 충격과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 후부터 손양원 목사님은 제가 제일 존경하고 사랑하고 닮고 싶은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여섯 번째로 “서울에서 지낸 대학생 시절”의 추억들을 살펴봅니다. 저는 고 3때 한경직 목사님을 찾아가서 좋은 목사님이 되려면 대학에 가서 무엇을 전공하면서 공부를 하면 좋겠냐고 여쭈었습니다. 한 목사님은 역사를 전공하면서 공부하면 좋다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본래 남의 말을 잘 듣는 터라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던 역사를 전공하기로 작정하고 서울 문리대 사학과에 지원을 했는데 합격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잘한 일인지 모릅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문리대 사학과에서 서양사를 전공하면서 앞으로 신학 연구와 목회 사역을 하는데 필요한 “균형 잡힌” “양면적인” “포용적인” “관용적인” 사고의 틀과 안목을 조금은 마련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 시절 좋은 신앙의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중요하고 보람된 일을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 손봉호 김상복 이형기 이명섭과 같은 좋은 신앙의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보람된 일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1960년 4.19가 일어나던, 정치 사회적으로 혼란한 때에 “우리들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라는 문제를 가지고 문리대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진지하게 논의했습니다. 결론은 “새 생활운동”을 일으키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며칠 동안 사회의 부조리한 실태를 조사한 뒤 문리대 소강당에서 그것을 발표했습니다. 소강당을 가득 메운 학생들에게 밀수입되는 커피와 양담배의 1년 분 금액이 대전시 전체 인구가 1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식량 값과 같다는 조사 내용을 발표하자 학생들이 흥분했습니다. 사회의 부조리도 지적 습니다. 서울대 문리대생 수백 명이 방학이 시작된 6월부터 한 달 동안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다방 공원 시장 극장 댄스 홀 요정 국회 등을 찾아 다니며 “새 생활운동”을 폈습니다. 서울 시내와 외곽 지역의 다방과 극장과 요정과 댄스 홀 등을 찾아 다니면서 커피와 양담배를 마시거나 피우지 말자고 호소했습니다. 매년 커피를 수입하는 비용이 대전 시민들이 일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식 값과 같다는 사실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며 커피를 마시지 않겠다고 말했고 양담배를 건네 주면서 피지 않겠다고 응답했습니다. 산더미만큼 수거된 양담배를 광화문 네거리에 쌓아놓고 애국가를 부르며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나중에 미국 타임스 지에 보도되었습니다. 밤마다 댄스 홀을 찾아가 그곳에서 춤추는 고관들과 유부녀들을 향해 지금이 댄스 홀에서 춤을 출 때냐고 말하면서 춤추기를 자제할 것을 호소했는데 반응이 긍정적이었습니다. 미국 군인들이 있는 댄스 홀에서는 김상복 학생이 영어로 호소를 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4. 19 이후 국회의원들이 군용차를 빼내어 불법으로 “가” 넘버를 달고 다니던 차량 수십 여대를 국회 의사당 앞에서 탈취하여 시청 앞 광장에 집결시키고 불법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모두 불태우겠다고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요정을 찾아가서 술을 마시며 즐기는 정치가들을 질책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새 생활운동”이 다소 과격한 양상을 띄기도 했지만 사회악과 부패를 제거하고 사고와 생활을 바꾸자는 우리들의 동기가 매우 순수했고 비정치적이었기 때문에 그 당시 수많은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고 심지어는 이 호 내무장관을 비롯한 고위 관리들까지 적극적으로 호응했습니다. 서울 시 경찰국장은 “새 생활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학생들에게 점심을 대접하기도 했습니다. “새 생활운동”은 사회 변혁을 내 세웠지만 근본적으로는 윤리 운동이요 신앙 운동이었습니다. “새 생활 운동”이 전국의 모든 대학으로 확산되었고 나중에는 장 면 정부의 “신 생활 운동” 박정희 정부의 “새 마을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고 하겠습니다. “새 생활운동”은 한 평생 우리들의 삶과 사역에도 깊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손봉호 박사는 나중에 기독교 윤리실천운동을 일으키게 되었습니다. 저도 신앙생활을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인 봉사의 삶과 연결시키면서 하는데 최선을 다하게 되었습니다. 젊었을 때 올바른 사회적인 봉사의 일을 하기 위해 시간과 열정을 한 번 쏟아 붇는 일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만 잘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생 시절 군대 생활을 1년 반 동안 했는데 군대 생활을 “즐겁고” “재미있게” 했습니다. 지금은 물론 그 때도 일부 사람들은 군대에 가는 것을 싫어하며 피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평생 힘들고 어려운 일을 싫어하지도 피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모든 어려운 일들을 모험적으로 뚫고 나아가는 것을 즐겼습니다. 대학교 3학년 때 군에 입대하여 1년 6개월 동안 군 생활을 아주 “즐겁게” 했습니다. 논산훈련소에서 타잔처럼 줄을 붙잡고 멀리 공중으로 날아가는 훈련도 받았습니다. 무서워하면서 피하려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본래 타잔 영화를 즐기던 터라 줄을 붙잡고 공중으로 멀리 날아가는 훈련이 매우 재미가 있어서 한 번 타고 또 다시 와서 타곤 했습니다. M1 소총을 쏘는 훈련도 재미가 있었습니다. 저는 무척 재미가 있어서 한 번 쏘고 또 다시 와서 쏘곤 했습니다. 포복 훈련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머리 위에서 총알이 날아가는데 엎드려서 포복하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저는 스릴을 느끼면서 포복훈련을 받았습니다.
결국 저는 논산에서 훈련 받는 것도 그리고 7 사단에 가서 군 생활을 하는 것도 “즐겁고” “재미있게” 했습니다. 논산에서는 물론 7사단에서 군 생활을 할 때 저는 언제나 조그만 성경책을 앞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면서 자주 읽고 기도하면서 신앙생활을 최선을 다해서 했습니다. 성경책을 읽으면서 줄을 치기도 했습니다. 요사이 성경책이 아닌 스마트 폰을 가지고 다니는 데 그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의 방식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풀밭에 잠시 들어 누어 쉴 때에도 앞 주머니 속에서 성경책을 꺼내어 읽곤 했습니다. 주일 예배 드리는데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군종 장교와 자주 만나서 교제하면서 아주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군법에 저촉되는 것이지만 조용히 합니다. 7 사단에서 군 생활을 하는 동안 사병들이 즐거워하는 시간 중의 하나는 저녁에 누군가가 부대 밖으로 나가서 동네 가게에서 과자와 빵을 사가지고 와서 함께 먹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병들은 저녁에 부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장교만이 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까이 지내던 군종 장교에게 다가가서 장교님 군복과 모자를 좀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 군종 장교는 저처럼 장난끼가 있는 장교여서 저에게 군복과 모자를 빌려주었습니다. 저는 장교의 군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부대 밖으로 나가서 맛있는 것들을 사 가지고 들어오곤 했습니다. 부대를 지키고 있는 사병들이 저에게 깍듯이 경례를 하면 저는 모자를 눌러 쓰고 점잖게 답례를 하곤 했습니다. 좀 지나친 “장난꾸러기” 행위였지만 아주 재미가 있었습니다. 결국 저는 군 생활을 “즐겁고” “재미있게” 했습니다.
일곱 번째로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시절”의 추억들을 살펴봅니다. 저는 1961년 대학을 졸업한 후 총회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수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교수진은 박형룡, 명신홍, 한철하, 최의원, 오병세, 강태국 교수님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저는 한철하 박사님으로부터 학문적 도전과 감화를 많이 받았습니다. 교회사를 사건 위주가 아닌 주제와 흐름 위주로 연구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어거스틴 연구” 강의 시간에는 어거스틴의 초기 작품들을 영문으로 읽으며 그의 신학 방법론과 신앙과 이성과의 관계에 대한 그의 입장들을 다루었는데 그 당시 저에게 많은 감동과 학문에 대한 정열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결국 저는 후에 어거스틴을 전공하며 석사 학위와 박사학위 논문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총회신학교에서 세 학기 공부를 마치고 1962년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훼이스 신학교로 유학 가서 신학수업을 계속했습니다. 돈 104불을 내고 미국 군함을 타고, 단돈 백 불을 가지고 미국으로 간 것이었습니다. 단돈 백 불을 가지고 미국에 가서 12년 동안 유학생활을 했는데 부족함이 없는 넉넉한 생활을 했습니다. 두 주 반 동안의 항해 후 샌프란시스코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즉시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이틀 동안 밤낮으로 타고 가서 훼이스 신학교에 도착하자 마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교장 매크레이 박사님의 “교회사” 강의를 잘 듣고 공부를 잘 해서 칭찬을 받았고, 교내 인쇄소 책임자의 신임을 얻어서 제가 원하는 시간에 인쇄소에 가서 일하면서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도 했습니다. 매킨타이어 박사가 학교에 와서 자유주의를 신랄하게 공격하곤 했는데 저는 거부반응을 느끼곤 했습니다. 그러나 훼이스 신학교에서의 유학생활은 부족함이 없는 즐거운 생활이었습니다. 이사 가는 부부 학생에게서 싼 값에 전축을 사다 놓고 고전 음악 레코드 판들을 사서 모으며 제가 즐기던 고전음악을 들으면서 행복한 시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1964년 훼이스 신학교를 졸업한 후(B.D. 취득)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 입학하여 1년 반 동안 신학석사 과정에서 교회사를 전공했습니다. 석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신의 도성에 나타난 어거스틴의 역사이론” 이었는데 이는 후에 박사학위 논문으로 발전했습니다. 저는 교회사를 전공하면서도 구약학 교수 에드워드 제이 영 박사님의 인격과 신앙과 학문에 깊은 감화를 받으며 그 분을 흠모하고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귀중한 것은 학문 자체라기보다는 학문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잊지 못할 즐거운 일들 중의 하나는 그곳에서 함께 공부하던 손봉호, 김영익, 전연택 등 총각들이 주일 오후마다 결혼한 김의환, 한기범, 한의신 등 선배 목사님들의 가정을 주기적으로 차례로 방문하여 한국 음식을 마음껏 맛있게 얻어 먹은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사모님들이 무척이나 고생들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 총각들이 그런 사정도 모르고 당당하게 방문 시간표를 만들어 전하면서 그들 가정들을 찾아가서 음식을 얻어 먹곤 한 일이 고마우면서도 죄송하게 느껴집니다. 그 일을 주도한 사람은 바로 저였습니다. 저는 1966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신학석사 학위(Th. M.)을 얻으며 졸업한 후 뉴 헤이븐에 있는 예일대학교 신학원에 입학하여 또 다시 신학석사 과정에서 역사신학을 전공했는데. 한 해 동안의 수학은 매우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강의를 듣고 시험을 보는 식의 공부가 아니고 연구 논문을 써서 제출하는 리서치 위주의 공부였습니다. 역사신학 교수 자로슬라브 펠리칸 박사님의 강의는 명 강의 중의 명 강의였고 내가 만난 교수들 중의 교수요 학자들 중의 학자였습니다. 그 분은 또한 복음주의 정열을 가지고 설교하는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한 해 동안 도서관에서 살 정도로 밤낮 책에 파묻혀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펠리칸 교수님의 지도를 받아 쓴 석사학위 논문의 제목이 “교부들에 나타난 이사야서의 메시야적 해석” 이었습니다. 예일대학에서 수업하던 시절 교회사의 대가인 라토렛 교수님과 베인톤 교수님과 친분을 갖게 된 것은 저의 행운이었습니다. 두 분은 은퇴 교수로 계속 저술에 종사하며 캠퍼스에서 학생들과 같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12년 동안의 미국 유학생활 중 여름 방학에는 물론 학기 중간에도 틈틈이 일을 해서 돈을 벌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훼이스 신학교에서는 건물 청소, 식당 웨이터, 인쇄소 일, 건물 페인트 등을 했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시절에는 화장실 청소, 식당 웨이터, 화학 도금 공장 일, 정원 가꾸기, 주택 페인트,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판매, 접시 닦기, 상점에서 판매 등을 했습니다. 예일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는 주로 학교 도서관 일을 했고, 아이오와에서 공부할 때는 동물병원에서 살면서 밤에 전화 받는 일과 함께 주택 페인트 하는 일도 종종 했습니다. 요사이는 한국 유학생들이 한국교회의 보조를 받으면서 공부하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 당시에는 대부분의 한국 유학생들이 일을 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 일하면서 공부한 것이 아주 좋은 경험이 되었고 즐겁고 유익한 일이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공부하던 어느 해 여름 나는 뉴욕 번화가에 있는 일본인이 경영하던 아주마 라는 선물 판매 상점에서 손봉호, 마루야마(후에 동경대학교 총장 역임) 친구들과 함께 판매원의 일을 했습니다. 각색 인종의 여자 손님들을 날마다 주로 대했는데 저는 그들 나라의 말로 인사하는 법, 대화하는 법, 설득하여 물건을 사게 만드는 법을 익혔습니다. 남미 여자에게는 스페인 말로, 독일 여자에게는 독일 말로, 프랑스 여자에게는 프랑스 말로, 유대인 여자에게는 히브리 말로, 그리스 여자에게는 희랍어로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면 이미 그들의 마음을 절반은 산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판매원의 판매 술에 넘어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그 일본 상점에서 손봉호와 마루야마를 제치고 제가 물건들을 제일 잘 팔아서 주인의 신임을 얻기도 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일하던 일들 중 주택 페인트 하는 일과 정원 가꾸는 일이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일이었습니다. 뜨거운 태양 열 아래서 이층 또는 삼층 주택 벽의 낡은 부분들을 베껴 내고 보수한 후 그곳을 깨끗하게 페인트 하는 일과 넓은 정원의 풀을 깎고 흐트러진 화단을 깨끗하게 새로 단장하는 일은 너무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일하다 말고 풀밭에 드러눕곤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즐거웠습니다. 낡은 집이 새 집으로, 흐트러진 정원이 단정한 정원으로 바꾸어지는 것을 바라 볼 때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때로는 지나가다가 허름한 집을 발견하고 집에 들어가서 주인에게 이 집을 페인트 하면 아주 멋진 집으로 바뀌어지는데 페인트 하는 것이 좋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저는 페인트 하는 경험이 많은 사람이고 비싼 돈도 받지 않는다고 말하면 대부분 그렇게 하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도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모두 “즐겁고” “재미있게” 했습
여덟 번째로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시절”의 추억들을 조금 더 살펴봅니다. 저는 1967년 예일대학 신학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취득하고 졸업할 때는 “에드워드 흄 휄로우십” 이라는 상을 받았는데 그 상금의 대부분을 총신대학에 “손양원 목사님 기념 장학금”으로 보냈고 일부를 한국의 어느 작은 교회에 후원금으로 보냈습니다. 몇몇 학교에 박사학위 과정에 입학원서를 제출했으나 대부분 거절 당했고 아이오와 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 입학이 허락되었습니다. 아이오와 대학에 입학은 허락되었지만 장학금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장학금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저에게는 해당되기 어렵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저는 한참 생각을 하다가 헌 자동차에 짐을 싸서 싣고 무조건 동부에서 중부 아이오와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종교학과 주임교수 포렐 교수님을 만나서 입학을 허락해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한 다음 장학금이 하나 있는데 그것이 저에게 해당되기 어렵다는 편지를 받았지만 저에게 줄줄 믿고 이렇게 달려왔습니다 라고 말했더니 나를 한참 응시하던 포렐 교수님이 “그러면 할 수 없이 그 장학금을 줄 수 밖에 없다” 라고 말해서 저는 그 장학금을 받게 되었습니다. 포렐 교수님은 동물병원에 내가 살 처소까지 마련해주었습니다. 저는 어떤 때는 이렇게 무작정 돌진해 나가므로 저의 일생을 헤쳐 나가곤 했습니다. 포렐 박사님은 저를 자기의 조교로 일하게 해 주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이오와에 있는 동안 광활한 옥수수 밭과 연못들로 이어진 자연을 즐길 수 있었고 그곳에서 공부하고 있던 한인 학생 가정들과의 교제를 증진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오와 시에는 아이오와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인 교수와 공부하는 한인 학생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30여명 있었는데 한인들 사이에 별다른 교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인들이 만나는 교제의 장들을 마련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운동회, 야유회, 회식 등을 마련했고 ”아이오와 소식지”를 만들어 한인들간의 교제를 증진하도록 했습니다. 결국 “한인회”가 만들어 졌고 후에는 “한인교회”까지 만들어 졌습니다. 저는 외국 학생들과의 만 남과 교제를 증진하는 일도 도모했습니다. 저는 어느 사람의 소개로 시카고에서 일하고 있던 여성을 사귀게 되었는데 6개월 동안 매 주말마다 4시간 거리의 시카고로 드라이브를 하며 데이트에 열중하게 되었습니다. 6개월 동안의 데이트 후 저는 그녀와의 결혼에 꼴인 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대문 교회 김 모 장로님의 딸로 서울 음대를 졸업한 후 그 당시 시카고의 모 감리교 기관에서 사무직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봉화양은 내가 좋아하는 딸 같은 타입의 귀여운 숙녀였습니다. 저는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어서 결혼 반지 하나 살 돈도 없었으나 아무 주저함이나 미안함도 없이 무작정 결혼하기로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아이오와 대학의 콘세트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했지만 재미가 있었습니다. 조그만 텃밭에 꽃도 토마토도 심었으며 주말마다 이곳 저곳 호수를 찾아 다니며 낚시도 함께 즐겼습니다. 결혼 일년 후 귀여운 딸 혜원이를 얻었습니다.
저는 아이오와 대학에 그대로 머물면서 아이오와 대학, 아퀴나스 신학원, 드뷰크 장로교 신학교가 공동으로 참여하는 “공동 박사학위 프로그램”에 등록을 하고 리써치 위주의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교부신학 라틴신학 종교개혁과 카톨릭의 반응 현대교회론 어거스틴 연구 등의 강의를 들으며 학위논문 작성을 위한 연구에 집중했습니다. 교부신학 전공의 매고니글 교수는 젊은 교수였지만 옥스포드 대학 출신의 박식하고 유능한 교수로 내가 학위논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친절한 지도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매고니글, 포렐, 드러먼드 교수 등의 지도를 받아 완성한 철학박사 학위 논문의 제목은 “두 도성에 대한 어거스틴의 교훈에 나타난 종말관의 기능”이었습니다. 학위논문에서 제가 취급한 문제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종교적 욕구의 성취 가능성의 관점에서 본 현세에 있어서 인간 존재의 의미였습니다. 어거스틴의 사고의 “양면성”과 “포용성”은 저의 사고에 평생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1972년 12월 아퀴나스 신학원에서 철학박사(Ph. D.) 학위논문을 완성한 후 1973년 1월 예일대학으로 다시 와서 리써치 펠로우로 한 해를 지냈습니다. 긴장과 억압에서 벗어난 홀가분한 마음으로 독서와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바로 그 때 뉴욕을 방문한 조동진 목사님이 저를 만나자고 했습니다. 한국교회 선교의 선구자인 조동진 목사님과의 만 남은 저의 연구와 사역의 방향에 획기적인 영향을 마쳤습니다. 조 목사님은 제가 유학을 마친 후 후암교회에 교육 목사로 오라는 말씀과 귀국하기 전에 풀러 신학교 선교신학원에 가서 선교학을 연구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씀을 했습니다. 저는 본래 남의 말을 쉽게 잘 듣는 터라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 해 연말 저의 생애에 획기적인 영향을 미친 또 하나의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1973년 11월 11일 저의 둘째 아이 철원이가 뇌수정이란 불치의 병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었습니다. 저는 1973년 12월 말 아내와 함께 3살 된 혜원이와 생후 1개월 된 철원이를 데리고 동부에서 자동차로 대륙을 횡단해서 서부 캘리포니아 파사데나 풀러 신학교로 향했습니다. 여행 도중 철원이의 병세가 악화되어 시속 140여 마일 속도로 30여 시간을 5분만 쉬고 계속해서 서부 사막지역을 달려서 로스안젤스 췰드런스 호스피탈에 도착했습니다. 입원을 시킨 후 우리는 풀러 신학교 기숙사에 여장을 풀고 1974년 1월부터 풀러 신학교에서의 연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생후 2개월 된 철원이가 뇌 수술을 하기 전 의사가 전해 주는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수술 후 철원이가 장애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철원이가 장애아가 된다면 내가 철원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저는 그렇다고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며칠 동안의 깊은 고민과 기도 끝에 저는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철원이가 내 아들이란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저의 사고의 변화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저의 시각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저는 본래 착하고 아름답고 신앙이 좋은 사람들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당신의 자녀들이기 때문에 덜 착하고 덜 아름답고 신앙이 덜 좋은 사람들도 꼭 같이 사랑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 때, “너는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사람들을 차별하느냐?” 라는 준엄한 책망이 들려 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손을 들고 항복했습니다. 그 후부터 저는 불치의 병에 걸린 사람들을 찾아가게 되었고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게도 되었습니다. 저는 1974년 1월부터 풀러 신학교 선교신학원에서 리써치 어쏘우시에이트로 8개월을 지내며 “선교학” 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접하기 시작했습니다. 풀러 선교신학원에서의 선교학 수업은 저의 학문연구와 사역 방향에 획기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신학과 사역을 선교적인 관점에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아홉 번째로 “귀국 후 목회 사역을 하던 시절”의 추억들을 살펴봅니다. 12년 동안의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1974년 가을에 귀국한 후 후암교회에서 5년 동안 대학생과 청년들을 지도하며 교육목사로 목회한 일이 있었습니다. 목회 초년생이었지만 순수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사역에 임했는데, 많은 젊은이들의 삶이 변화되었고 복음 사역을 위해 헌신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즉 선교의 길과 목회의 길로 가게 된 젊은이들이 상당수 있었습니다. 안성원, 김동화, 박선규, 최성호, 이진, 양용태, 한옥희, 탁정희 등이 목사 또는 선교사로 헌신해서 지금까지 사역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후암교회 사역을 마치고 1978년 6월 22일부터 1979년 2월 18일까지 8개월 동안 영안교회에서 개척 목회를 한 일이 있었습니다. 영안교회는 한 가족이 1억원에 달하는 돈을 투자하여 강남 신사동에 새로 건축한 교회였습니다. 누군가의 소개를 받아 그들이 저에게 전화를 걸고, 와서 개척목회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본래 남의 말을 잘 듣는 터라 가서 그 교회를 섬기기로 했습니다. 한 가족과 친척들 10여명이 모여서 시작한 교회였는데 8개월 후 교인이 100여명 이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저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교회를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영안교회에서 8개월 동안의 목회 사역을 마친 후 5, 6개월이 지난 다음, 영안교회에 다니던 몇몇 신자들의 요청으로 영안교회에서 멀리 떨어진 광장동 워커힐에 있는 한도정 집사님 댁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후에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25동 505호로 옮겨서 성경공부를 계속했습니다. 성경공부를 함께하던 사람들의 마음과 뜻이 모아져서 교회를 하나 시작하기로 하고 1979년 11월 4일 20여명의 신자들이 함께 모여 교회 설립 예배를 드렸습니다. 박윤선 목사님 부부도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몇 달 동안 현대아파트에서 예배를 드리다가 1980년 4월 6일 강남구 청담동 41-3 삼익상가 3층으로 이전하여 강변교회 입당예배를 드렸습니다. 입당예배 설교는 박윤선 목사님께서 하셨습니다. 저는 신학교 사역과 목회 사역을 하면서 박윤선 목사님의 지극한 사랑과 도움을 받았습니다.
1980년 4월 6일 강변교회를 시작하면서 강변교회의 표어를 다음과 같이 정했습니다. “서로 돌아보고 기쁨으로 섬기면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적 신앙생활을 힘쓴다”. “교제”와 “봉사”를 강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서로 돌아보고”는 교제에 힘쓴다는 말이고 “기쁨으로 섬기면서”는 봉사에 힘쓴다는 말이었습니다. 교회 이름을 강변이라고 정한 것은, 강변에 세워졌던 빌립보 교회를 모델로 삼았기 때문이었고, 빌립보 교회가 “교제”와 “봉사”에 치중했고 “기쁨”이 넘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친밀한 “교제”와 사랑의 “봉사”가 부족한 교회는 부끄러운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교제”와 “봉사”를 힘쓰면서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 “교회 중심”적 신앙생활을 힘쓰는 것을 교회의 표어로 삼고 28년 동안 목회를 했습니다. 성도들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과 “봉사”의 손길을 펴는 데 주력하면서 목회했습니다. 저는 성도들과의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데 최선을 다했는데, 특히 새 신자들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어린이들과 아주 “친하게” 지냈습니다. 이웃의 동회와 구청과 학교와도 가깝게 지냈고 불우한 사람들이 사는 구룡 마을과도 가깝게 지냈습니다. 그리고 이들 모두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폈습니다. 저는 다시 목회를 시작한다 해도 여전히 같은 표어를 가지고 같은 방식으로 목회를 할 것입니다. 사실 교회는 설교 위주도 아니고, 교육 위주도 아니고, 행사 위주도 아니고, 프로그램 위주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와 성도들과의 친밀한 “교제”와 이웃들과의 친밀한 “교제”를 힘쓰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고, 성도들과 이웃들을 사랑으로 “섬기면서” “봉사”하는 것이 교회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주력하여야 할 실천 목표 다섯 가지를 정했습니다. “예배가 생동하는 교회,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교회, 연합운동을 펴 나아가는 교회, 북한동포를 돕고 선교하는 교회, 청소년을 육성하여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 요사이 한국교회가 행사와 프로그램에 치중하는 것은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잘못을 범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28년 동안의 강변교회의 목회를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사랑과 축복으로 그리고 성도들의 순수하고 적극적인 헌신과 협력과 사랑과 도움으로 너무너무 행복한 목회를 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고 강변교회 성도들 모두에게 감사와 사랑과 존경을 표하고 또 표합니다.
제가 강변교회에서 목회할 때 주력한 “교제”에 대한 이야기를 한 마디 더 합니다. 저의 목회의 첫째 특징은 “교제” 였습니다. 성경은 물론 교회의 특징은 “교제”와 “소통”과 “편지” 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성도들과의 “교제”를 힘썼는데, 특히 새 신자들과의 “교제”에 힘썼습니다. 주일 예배를 마친 다음 간단한 점심 식사를 한 후 저는 제 방에서 20여명의 새 신자들과 만나 한 시간 반 정도 친밀한 “대화”와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또한 어린이들을 아주 많이 좋아했는데 어린이들도 저를 아주 많이 좋아했습니다. 저는 주일 아침마다 주일 학교 각 부서 즉 유아부, 유치부, 유년부,·초등부에 들어가곤 했는데 유아부 유치부 어린이들은 나에게 달려들어 안기고 업혔습니다. 유치부 어린이들 몇 명은 빙빙 돌려달라고 졸랐습니다. 이레는 아기 때부터 내가 안아주며 예뻐하던 아이였는데 내가 내 방에서 안아주면 내 품에 안겨서 한 시간도 두 시간도 편하게 잠을 자곤 했습니다. 성혜진은 아기 때부터 내가 예뻐하고 사랑하는 믿음과 생각이 깊은 어린이였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 나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목사님, 제 꿈이 커졌어요. 목사님 요번 성탄절을 생각하면서 선물을 먼저 떠올렸지만 설교 말씀을 듣고 나서 깨달았어요. 예수님이 태어 나신 건 좋은 소식이지만 우리 죄를 위해서 돌아가실 분이었기 때문에 슬펐어요. 그래서 요번 성탄절은 선물만 고집할게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드리고 싶어요. 목사님 추운 날씨에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목사님 뜻 깊은 성탄절 되세요♪” 사실 혜진이와 주고 받은 편지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어린이들과 새 신자들과 성도들과 여러 교회의 목회자들과 여러 지역의 선교사들과 그리고 이런 저런 사람들과 주고 받은 편지들이 너무너무 많은데 요사이 세어보니까 일만여 개나 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강변교회에서 목회하면서 교역자들과도 친밀하게 교제하며 이곳 저곳으로 자주 놀러 가곤 했습니다. 설악산을 비롯해서 거의 모든 산들을 찾아 다녔습니다. 동해에 뛰어들어 수영을 하면서 소리를 지르면서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행선지를 미리 알려주지 않고 서울을 떠나 태국의 좀티엔에 가서는, 모두들 놀라면서 즐거워하기도 했습니다. 강변교회의 목회는 즐거움이 넘치는 행복한 목회였습니다.
열 번째로 은퇴 후 “순회 목회 사역 시절”의 추억들을 살펴봅니다. 저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지난 2008년 1월 13일 강변교회에서 은퇴한 후 그 다음 주일부터 지난 10년 3개월 동안 매주일 전국의 작은 교회들 한두 곳을 주로 방문하며 “교제”하고 “설교”하는 “순회 목회 사역”을 하고 있는데 얼마나 보람되고 즐겁고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평균 2, 30여명 또는 3, 40여명 내외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고 있는데 피차간 반가움과 즐거움과 은혜와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과 교회를 사랑하며 양 무리들을 정성껏 돌아보는 작은 교회 목회자들과 사모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저는 많은 감동과 은혜를 받곤 했습니다. 만약 제가 강변교회에 계속해서 머물고 있었다면 저의 시야가 좀 넓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교파와 교단에 속한 다양한 작은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교파 의식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고 개 교회 의식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합동이나 고신이나 합동이나 합신 교단들만이 옳은 교단이란 생각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개척해서 목회하던 강변교회만이 제일 귀중한 교회라는 생각도 거의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모든 교단의 모든 교회들이 비록 아주 작은 교회들이라도 모두 예수님께서 피 흘려 사신 하나님의 귀중한 교회라는 사실을 점점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작은 교회들이 더 귀중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교회들을 귀중하게 여기며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부족하고 부족한 죄인인 제가 작은 교회들을 방문할 때마다 그렇게도 좋아하고 고마워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은혜를 받는 것을 발견하고 저는 놀라고 또 놀라곤 했습니다. 제가 작은 교회들을 방문할 때마다 교인들 수에 맞게 떡이나 빵과 초콜릿을 그리고 어린이들에게는 떡이나 빵과 초콜릿과 함께 스티커를 나누어주곤 하는데 모두들 너무 좋아합니다. 전주 부르심 교회에는 어른들 10여명 어린이들 20여명이 있는데 어느 해 제가 자동차를 타고 교회에 도착하니까 어린이 한 명이 “왔다. 왔다” 라고 소리를 지르니까 아이들이 나와서 저를 반갑게 맞았습니다. 작은 교회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보낸 감사의 글 하나를 여기 옮깁니다. “목사님! 온 성도가 울면서 눈물로 드린 예배였습니다. 지난 번에도 그러했지만 오늘은 더욱 그랬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예배를 소홀히 여겼는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성도의 거룩한 교제를 무시하며 살아왔는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더불어 사랑하지 못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았는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주님께서 기뻐하실 봉사에 게으르고 인색해 왔는지 가슴치며 회개했습니다. 큰 깨우침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맛난 떡과 초콜릿도 감사드립니다. 목사님께서는 여전히 아무것도 받지 않으시니 더욱 송구할 따름입니다. 목사님의 귀한 사역에 큰 열매가 있기를 위해서 기도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목사님의 귀한 말씀과 보살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2012 10 29 김춘기와 전주 미래교회 교우 일동 드림.”
저는 가난한 작은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예수님께서는 부자들보다는 가난한 자들을 귀중하게 여기시는 참으로 이상하신 분이라는 사실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교회들을 섬기는 사역자들이 귀중한 사역자들임을 발견하고 또 발견했습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크게 성장한 그래서 부족한 것이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보다는 환난과 궁핍 중에 있던 서머나 교회를 더 귀하게 보시며 칭찬하셨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심각한 문제 중의 하나는 세상의 유행에 따라서 크고 부요한 것을 너무 좋아하고 추구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도시에서는 큰 교회들과 작은 교회들이 전쟁을 하는 것 같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크고 부요한 것을 칭찬하시는 대신 오히려 가난하고 궁핍한 것을 칭찬하시고 격려하셨는데 말입니다. 저는 주일마다 국내의 작은 교회들을 주로 방문하지만 서너 달에 한번씩 선교지를 방문하며 선교사들과 현지인들과 친밀하게 교제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와 사랑을 전하며 나누곤 합니다.
제가 은퇴 후 작은 교회들을 돌아보는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독일의 한인교회 목회자들이 “독일에도 작은 교회들이 있으니 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2008년 10월 9일부터 11일까지 독일 슐란트하임 산 속에서 모인 한인교회 연합수양회로 달려갔습니다. 5개의 작은 교회들로부터 100여명 이상의 신자들이 함께 모였습니다. 다섯 분의 목사님들과 다섯 분의 사모님들도 함께 모였습니다. 저는 3일 동안 1시간 30분 가량의 긴 설교를 다섯 번 했습니다. 감성보다 흥분보다 프로그램보다 음악보다 이적보다 체험보다 주님 닮으려고 하는 진실하고 소박한 삶이 가장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런 삶은 버리는 삶이고 찾아가는 삶이고 항복하는 삶이고 사랑을 베푸는 삶이고 제물 되는 삶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프랜시스, 길선주, 이기풍, 주기철, 손양원, 장기려, 한경직 목사님 같은 분들이 그런 삶을 살았다고 지적했습니다. 말씀을 경청하는 참석자들의 마음 가짐이 순수하고 간절하고 눈물겹도록 아름다웠습니다. 집회 시간마다 젊은이들은 눈물과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금요일 저녁 세 번째 집회를 인도하며 세 번째 설교를 마쳤습니다. 제가 축도로 예배를 마치자 연합수양회의 준비위원장인 김익진 목사님이 나와서 간단한 광고를 했습니다. “혹 강사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몇 명이라도 좋으니 남아 주시오.” 몇 명이 앞으로 나와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저는 마이크를 붙잡고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20명, 30명, 40명, 50명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와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받았습니다. 흐느끼며 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별 생각 없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기도했는데 자기들 형편에 꼭 맞는 기도를 해주었다고 고백했고, 어떤 젊은이들은 자기들의 삶에 대한 예언과 같은 기도들을 해 주어서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으면서 그 기도들을 가슴에 깊이 간직했다고 말했습니다. 안수기도는 결국 1시간 20여분 동안 계속되었다고 했습니다. 90여명의 신자들이 모두 나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받았습니다. 수양회 동안 15명 정도의 어린 아이들과 아주 친하고 즐겁게 지냈는데, 몇몇 아이들은 나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스티커를 두 개씩 또는 세 개씩 받아 들고 좋아했습니다. 토요일 오후 마지막 다섯 번째 집회를 인도하며 마지막 설교를 했습니다. 예배 후 젊은이들이 떠나지 않고 줄을 서서 내가 안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젊은 여자 청년들도 남 집사님들도 독일 남성도 목사님들의 사모님들도 내가 안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섯 분 목사님들 중 한 분의 며느리는 나보고 좀 오래 꼭 안아 달라고 두 번이나 나에게 졸랐습니다. 부족하고 또 부족한 죄인을 귀중하게 사랑스럽게 써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너무너무 큰 것을 고백하고 또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모두 주님의 은혜입니다
고전 15:10 / 이정익목사
저는 오늘 공식적으로 담임목사로서는 마지막으로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제 목회는 1970년 1월부터 시작해서 금년으로 47년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촌교회에 부임하게 된 것은 1991년 9월부터이니까 4개월 모자라는 25년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즈음하여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면 꿈만 같습니다. 한마디로 결론 짓는다면 “모두 주님의 은혜였다”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본문은 사도바울의 고백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고 증오했던 사람입니다. 그랬던 그가 마침내 주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런 나를 버리지 않고 부르시고 사용하시고 알아주심에 너무 감사해서 그때부터 그는 열정을 다하여 열심히 사역을 하였습니다. 그런 마음을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마틴 루터의 전기를 보면 이런 회고가 나옵니다. “내 인생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내 인생 마디마디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광산촌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나의 조부와 아버지의 꿈은 장차 내가 커서 광산촌의 읍장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님은 나를 대학에 가서 학사가 되게 하셨고 수도사가 되게 하셨고 마침내 파계한 수녀와 결혼하게 하셔서 교황권과 맞서 싸우게 하셨다, 나의 걸어온 지난날의 인생을 되돌아보면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다“
지금 제 심정이 꼭 이 심정입니다. 지난날 저의 인생 70년을 돌아보고 지난 날 목회 47년간을 되돌아 보고 또 신촌교회에서 목회한 25년의 시간을 되돌아 보면 마틴 루터가 고백한 심정이 바로 나의 심정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니 순간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어찌 저 자신만의 일이겠습니까. 여러분들도 다 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 보니 동네에 작은 교회가 하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말할 때 얼마나 크냐 얼마나 많이 모이느냐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 작은 교회가 규모는 작았지만 오늘 내 인생과 내 운명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저는 그 교회를 통해서 예수를 알게 되었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 인생 가운데서 가장 큰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교회안에서 성장하니까 어머니는 저에게 신학교에 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순종해서 신학교에 갔습니다. 온실속의 화초처럼 자란 제가 그렇게 신학교에 가서 졸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졸업후 어느 교회에 전도사로 실전에 배치되어 갔습니다. 목회현장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가장 힘든 일이 새벽기도였습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예배드려야 합니다. 이 일은 보통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을 평생 하여야 한다니 눈앞이 캄캄해 왔습니다. 그래서 너무 다급해서 산기도원을 갔습니다. 가서 평생 처음 금식 기도를 했습니다. 너무 다급하고 앞날이 암담해서 산을 찾아간 것입니다. 그때 산기도에서 제 인생 처음으로 영적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제에 대해서 해결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47년간을 목회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많은 신앙인, 교회중직자, 그리고 목회자들 중에 아직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채 목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송에서 자꾸만 주님의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내 이야기와 내 생각이 나오곤 합니다. 그러니까 남들이 보이지 않게 내적으로 고민이 크고 피곤해 하고 힘들어 하고 무력감을 느끼며 신앙인들과 목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요한 웨슬레가 아주 경건한 어머니 밑에서 경건훈련받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믿음이 아주 좋은 줄 알고 자랐습니다. 마침내 그는 미국 조지아주로 선교사로 가겠다고 나섰습니다. 가서 인디언들을 다 회심시키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자신감과 의기가 충천하였습니다. 그래서 1735. 10월 동생과 함께 런던을 출발하여 배타고 대서양 건너게 되었습니다. 가다가 요한 웨슬레는 자신의 신앙 수준을 측정할 기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도착하기 10일전 1735. 10. 25날 바다 한가운데서 큰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거친 파도가 어떤 것인가를 그날 처음으로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배가 파선할 것 같았습니다. 그때 웨슬레는 혼비백산하여 몹시 두려워하였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좋다고 믿었던 자신의 믿음에 의문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배 한켠에서 조용히 앉아 촌치도 흔들림도 없이 묵상하고 있는 한 무리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토록 두렵고 떨리는데 저들은 촌치의 흔들림도 없이 앉아 묵상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이고 나는 왜 이렇게 흔들리는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라비안 교도라는 평신도들이었습니다. 그들도 조지아주로 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두려워하는데 저들은 어떻게 저렇게 초연할 수 있는가” 그는 오랫동안 그 의문이 머리를 가득 채웠습니다.
웨슬레는 고초끝에 마침내 조지아주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도 그 의문은 꼬리를 물고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그는 그 모라비안 교도들의 지도자인 슈펜겐 부르그라는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만나자 마자 웨슬레에게 세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당신은 예수를 아십니까, 당신은 예수를 만났습니까, 당신은 진정으로 예수를 사랑하십니까“. 오늘 이 세가지 질문은 요한 웨슬레에게 던져진 질문이지만 오늘 이 아침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진정 예수를 아십니까. 여러분은 진정 예수를 만나고 사랑합니까“ 우리는 이 질문에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웨슬레는 그 질문을 받고 또 한번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교에 실패하고 영국으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의문에 싸여 고민하며 보냅니다. 그러다가 그는 어느날 밤 모라비안교도들이 집회하는 장소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웨슬레는 또 모라비안 교단 지도자인 피터 뵐러를 만나게 됩니다. 그는 만나자 마자 또 한마디 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머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그 철학부터 씻어내시오” 그 말은 또 웨슬레로 하여금 충격에 빠지게 했습니다. 그리고 웨슬레는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렇구나 내 머릿속에는 예수가 아닌 철학이 가득 들어 있구나, 아 지금까지 과신했던 내 믿음은 믿음이 아니었구나, 모양만 믿음이었구나, 나는 그동안 이론을 믿음이라고 착각하고 철학을 믿음이라고 착각 했구나“. 그리고 회개하게 되었고 그는 마침내 1738년 5월 24일 밤 회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날의 회심은 그의 인생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사도바울이 뒤집어 진 것과 같이 완전히 변화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결국 요한웨슬레는 88세 인생을 사는 동안 52년동안을 전도자의 생활을 합니다. 총 4만번 설교하였고 40만km를 전도 여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은 영적생활입니다. 영적생활에는 성령의 영적 충족과 성령의 추진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신앙의 삶에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수입니다. 내가 회심하고 변화를 받은 후에는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그것이 연합의 삶이고 그때부터 성령은 나를 도우십니다. 그때부터 나의 인생에 사역에 성령이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그 힘으로 사역을 하는 것이 목회이고 주님을 위한 사역입니다. 목회를 할 때 가장 힘든 일은 무력감을 느끼는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목회하면서 수시로 무력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 무력감이 잠시 느껴져야지 오래 느껴지면 목회가 어려워집니다. 그때 무슨 힘으로 그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성령의 도우시는 힘으로 가능합니다. 오늘까지 제가 47년 동안 목회를 하는데 가장 지근에서 나를 도와주신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었기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점에서 생각할 때 나의 나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저의 생각이고 사도바울의 생각이고 여러분들의 생각일 것입니다.
산에 가서 문제를 해결받고 난후 이제는 마음을 잡고 목회를 해야지 하고 다짐하였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대견하게 보시고 전적으로 도와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저는 당연히 그럴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짐하고 이제 일 해야지 하고 나서자 그때 감당하기 어려운 병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그때 깨달은 것이 한가지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하나님은 도와주시는 것만 있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그때 시련을 통해 또 다른 훈련을 하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시련은 저의 시역을 위한 준비라는 점도 알았습니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세례받고 40일 금식하는 것으로 다가 아니고 광야로 몰아가 시련을 받으신 것과 같습니다. 모세가 왕궁에서 40년동안 훈련받고 이제는 민족을 위하여 사역을 시작하려 할 즈음 사람을 죽이고 도망가서 광야에서 40년간 혹독한 훈련을 받은 것 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김으로 금방 왕이 된 것이 아니고 사울로부터 40년 동안 혹독한 훈련을 받은 후 비로서 왕이 되었습니다. 제가 3년동안 병으로 고난받으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새벽예배하는 일이었습니다. 병으로 힘이 없으니까 새벽기도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습니다. 어느날은 간신히 일어나 새벽기도를 하는에 온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너무 힘들어서 나를 도와주세요 하고 엎드려 잠을 자고 깨어보니 오전 10시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 새벽마다 그 시간이 되면 밖에서 누가 내 이름을 불러 깨웠습니다. 깜짝 놀라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면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그랬습니다. 이상해서 심방하다가 할머니 권사님들에게 물으니 주님께서 깨우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배려해 주셔서 성령으로 하여금 그런 은혜를 주시는데 그것도 모르고 지냈습니다. 그런 일이 언제까지 계속되었는가 병원에서 더 이상 주사 맞지 않고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는 판정이 나던 그날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다가 병드는 것도 은혜로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이런 상황과 과정을 통해서 나타나는구나“. 하나님의 손길은 자세히 보면 우리의 삶에 조용히 다가오시는 것을 우리는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한계이고 무지이기도 합니다. 그 하나님의 부드러운 손길을 매일 느끼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감칠맛 나겠습니까.
몸이 조금 회복되자 군에 갔고 군목으로 제대한 후 어느 교회에 부목회자로 부임했습니다. 부임해 갈때는 3년만 부목회자로 섬기고 곧 임지를 찾아 목회를 시작하자고 다짐했습니다. 스스로 다짐한 3년의 시간이 다 되자 그때부터 새 임지를 위해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밤 10시면 교회에 올라가 아무도 없는 텅빈 공간에서 혼자 앉아 기도했습니다. “주님 아시지요 나의 능력, 자질, 그릇됨을 아시니 제에게 꼭 맞는 사역지로 나를 보내 주세요, 어디든 주님이 보내시면 순종하고 가겠습니다, 제가 이제부터 40일간을 이렇게 기도할테니 그 안에 꼭 응답주세요“ 그렇게 기도하기를 40일 동안 했습니다. 어쩌면 40일 기도가 끝나는 밤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응답의 전화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진지한 기도가 있다면 그 기도는 진로를 위한 기도일 것입니다.
저는 오늘 신앙인들에게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스팩을 쌓는 것도 중요하고 자격증을 많이 따 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병행해서 진지하게 기도하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미래를 위해서, 진로를 위해서, 앞날을 위해서 길 되시는 주님께 엎드려 진지하게 상담의 기도를 하라는 말입니다. 미래 배우자를 위해서, 미래 앞길을 위해서, 당면한 현재의 일을 위해서 진지하게 기도하는 일, 세상에 이 기도처럼 소중하고 진지한 기도가 또 있겠습니까. 그 기도가 주님께서 아주 기쁘게 받으시는 기도일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기도해서 간 곳이 춘천입니다. 가서 7년동안 아주 행복하게 목회를 하고 크게 교회가 부흥하였습니다. 교회도 아름답게 건축하고 빚도 7년동안 다 갚았습니다. 그렇게 빚을 다 갚고 이제 성지를 갔다 와야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서울에 있는 교회에서 오라고 해서 올라 오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와서 또 열심히 재미있게 행복하게 목회를 하였습니다. 이제 뭔가 이루어지는구나 생각되었고 성도들도 다 기대를 가지게 되었을 즈음 정진경 목사님이 하루는 보자고 하시더니 신촌교회로 와야 되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25년 전에 제가 신촌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신촌교회로 올 때 세가지 목표를 세웠었습니다. 하나는 교회를 반드시 부흥 시킬 것이라는 의지입니다. 리더의 의지는 중요합니다. 분명한 중심이 세워져야 합니다. 두 번째는 지역과 교단과 교계를 위하여 이바지 하는 교회가 되게 하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신촌은 젊은이들이 많고 여러대학들이 있는 장소이니 젊은이들이 모이는 교회를 이루자 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지금에 와서 보니 이 세가지가 어느 정도 다 이루어졌습니다. 모두 주님이 이루셨습니다. 모두 성령께서 하신 일입니다. 모두 감사할 뿐입니다.
제가 춘천으로 서울로 그리고 신촌교회로 오는 동안 이력서를 써 본 적이 없습니다. 더구나 찾아가 설교를 선 보고 누구에게 임지를 부탁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것은 적어도 담임목회자를 청빙하는데 있어서 좋은 방법은 아니하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담임목사를 청빙하는 일에 신문에 공고하고 이력서 받고 사원뽑듯이 면접하고 하는 일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담임목사님을 모시는데 그런 방법은 사용하지 말기를 권고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 담임목사님을 청빙하는데 하나님께서 주장하시도록 맡겨 드리고 하나님이 일 하시도록 위임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안내하실 것이고 인도하실 것이고 인사를 이루어 나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진행과정에서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면 또 하나님은 사람들을 통해서 반대하게 하실 것입니다. 작금 교회들이 담임목사님을 청빙하는 과정을 보면 너무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수단과 방법들이 앞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결과 우리교회는 청빙문제를 잘 이루어 모두가 함께 잘 이루어 냈습니다.
이 싯점에서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면 모두가 꿈만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두 꿈만 같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의 사도바울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내가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이 사도바울의 심정이 꼭 지금 저의 심정입니다. 모두 주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제 목회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고 잘 따라주셨기 때문에 부족한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제가 승리하도록 그렇게 격려해 주시고 기도해 주셨듯이 이제는 후임 담임목사님에게도 그렇게 해 주셔서 목회 승리하게 도와 주시기 요청합니다. 여기서 저는 떠나면서 한가지 욕심이 있다면 우리교회가 앞으로도 중단없이 부흥하고 우리사회와 교계에 크게 이바지 하고 곗혹해서 젊은이들이 이 교회에서 마음 놓고 드나들며 양육되어 그 젊은이들이 이 사회의 주역이 되는 날 역할을 다하는 모습들이 나타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은혜로 봉사 합시다
고전15장 10절 / 강성찬목사
영화‘비무장지대’(DMZ)를 만든 이규형(47) 감독이 영화홍보와 함께 자신의 신앙고백을 하였다합니다. 1979년 10·26 사태 등으로 어수선한 시기에 DMZ에서 무전병으로 근무한 이 감독은 그때 하나님을 만났다고 고백합니다. 이등병일 때 아주 위험한 곳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하루는 지뢰밭을 건너 철책을 수색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경험이 없던 그는 공포감에 몸을 떨었지요. 사실 전날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밤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거의 절규에 가까웠지요.”다음날 이 감독은 잠깐 동안 다른 병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수색활동에 나선 무전병 그룹을 놓치게 됐다합니다. 그때 갑자기 ‘펑’하는 소리가 났고 앞서 걸어가던 병사들이 쓰러졌습니다. 그들은 지뢰를 밟아 일부 죽거나 다쳤다. 이 감독은 그때 자신이 받은 충격과 느낌을 담아 이들의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바로 ‘비무장지대’라 합니다. 이 감독은 1980년 시나리오를 썼고 25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세상에 내놓게 됐다합니다. 이 감독은 ‘비무장지대’를 ‘이규형식의 하나님 영화’라고 설명한다합니다. 졸병이 시편 23편을 읊으며 위로를 구하는 장면이나 피 묻은 손에 꽉 쥐어진 십자가, 그리고 주인공이 기독교 신자인 졸병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장면, 극적 장면에 5분간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넣어 간접적으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특히 천국에서 주인공과 북한군 병사가 손 잡고 웃는 장면을 통해 이 감독은 “하나님 나라는 남과 북이 없고 서로 사랑만이 가득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합니다. 1991년 일본으로 건너가 15년 동안 일본 교회를 다니며 일본에 대한 비전을 가진 이 감독은 항상 날이 저물면 가장 가까운 교회를 찾아가 기도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영화를 찍으면서도 이 감독은 교회에서 하나님께 간구하며 모든 것을 의논했습니다. 어린 시절 영화 ‘벤허’를 보며 영화감독의 꿈을 키운 이 감독은 기독교 선교영화는 모두 봤으며 ‘저런 영화를 만드는 게 나의 길’이라고 다짐했다합니다.
은혜(恩惠 Grace)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자발적이고도, 제한 받는 일 없는 사랑의 은사(선물).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해, 그 죄와 무가치함에도 불구하고,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해, 사죄와 생명을 주심을 말합니다.
은혜는 죄사함 받은자를 새로운 사명 위해 분발케 합니다(롬 1:5,고전 3:10,15:9-10,갈 2:9,엡 3:7-8).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결과로 우리들도 다른 사람에 대하여 은혜를 베풀며 봉사해야 합니다(엡 4:29)
우리도 은혜 받은 자들로 받은 은혜에 대하여 올바로 보답하여야 하며 조심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부스러기 하나라도 헛되이 되기를 원치 않으시고 기적으로 주신 떡의 남은 조각까지 거두라 하셨습니다
(요 6:12) 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 건너편에서 복음을 전하실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 몰려 왔는데, 이는 예수께서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많은 무리를 광야에서 먹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초자연적인 능력만이 가능한 일이었기에 예수께서는 한 소년이 가져 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표적을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언제나 그 은혜는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풍족한 것입니다.
(눅6:38)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그리고 주님은 먹고 남은 조각을 버리시지 않고 모아 간수하게 하심으로써 풍족하게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더욱 고귀하게 만드셨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봉사의 책임이 더 큼을 알아야 합니다.
(눅 12: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그리 하지 못함을 셩경은 지적합니다
받은 은혜를 버렸다고 합니다
(욘 2: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회개 하며 기도하며 은혜를 버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맛본 자들 중에 하나님이 그에게 베푸신 자비를 곧바로 잊어버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자들의 경우를 우리는 결코 특별한 경우라 볼 수 없는데 그것은 그만큼 은혜에 대해 쉽게 잊어버리는 게 인간들의 보편적인 성향이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경우를 우리는 예수께서 열 명의 문둥병자를 고쳐 주신 사건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한 번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실 쌔 열 명의 문둥병자를 만나 그들을 모두 고쳐 주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중에 예수께 돌아와 사례 드린 사람은 딱 한 명이었습니다(눅 17:11-19).
방탕한 것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유 1: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그들은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하지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방탕한 것으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유다서는 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 경건치 않아서 하나님의 은혜를 오히려 방탕한 것(색욕 거리-개역)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이단들의 일반적인 특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교리를 악용하여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므로 마음대로 행하여 방종한 생활을 해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의 도리를 육체의 색욕 거리로 바꾸었던 것입니다.
보답지 아니한다고 합니다.
(대하 32: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는 보기 드문 선한 왕으로서 많은 업적을 남긴 훌륭한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감스럽게도 한 가지 오점을 남겼는데 그것이 바로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희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위급한 상황에 처한 히스기야를 하나님께서는 그때그때마다 구해 주셨으며, 여러 면에서 그를 영예롭게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히스기야의 유다는 강성해졌고 이웃 나라로부터 부러움과 경계를 동시에 받는 강국이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바벨론까지도 유다에 사자를 보내어 히스기야에게 선물을 바치고 환심을 사기에 급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으로 말미암아 히스기야는 도리어 교만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즉 하나님의 거듭된 은혜를 입고 보니 모든 일들이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잘 되었고, 그러자 스스로 자신감이 생기고 자부심이 생겨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의무를 망각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도는 문제가 생겼을 때보다 그 문제가 해결된 후에 더욱 조심을 해야 합니다.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때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면서 감사의 고백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스스로의 노력이나 의지의 결과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에 의한 복임을 깨달아 항상 교만하여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히스기야는 백성들과 외국의 왕으로부터 많은 보물과 존경을 받았으나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섬기는 데는 인색하였습니다. 인색한 마음은 성도의 신앙을 좀먹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색한 봉사나 헌신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인색한 연보에 대해 말하기를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고후 9:7).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무지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은혜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은혜를 저버리는 행위가 얼마나 악한 행위이며, 그것이 나중에는 어떠한 결과로 나타나는지 알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한다고 하셨습니다(호 4:6). 무지하면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늘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며, 성숙한 신앙에 이르지를 못합니다.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익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한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금하신 우상 숭배를 적극 행함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케 하였습니다(대하 33:1-10).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합니다.
(고후 6:1)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받은 은혜를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딤전 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을 통하여 받은 것을 가볍게 여기지 말며
은혜를 받고 봉사하지 아니하면 은혜를 빼앗길 수 있습니다.
한 달란트 맡은 종의 모습에 나타납니다
[마 25:24-25]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사울왕에게서 봅니다
(삼하 7: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사울 왕은 몇 차례에 걸쳐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마지막 회개의 기회마저 놓치고 결국 왕위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가능한 한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기를 원하지만 아무리 기회를 주어도 끝끝내 범죄의 길에서 떠나지 않는 자는 결국 자신의 죄악 된 행실로 말미암아 영원한 형벌의 자리에 이르게 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은혜대로 봉사하여야 합니다.
다윗은 성실되게 봉사하였습니다.
[시 78:70-72]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성전을 지을 준비도 합니다(행 7:46-47).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하게 하여 달라고 하였으나 하나님이 허락지 아니하시고 그 아들 솔로몬이 짖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전을 건축하려는 다윗의 마음을 가상히 여기신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그와 항상 동행하며 존귀케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이름을 존귀케 하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단순히 다윗의 명성만을 높여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그의 존재와 그에게 속한 후손을 존귀하게 만들어 주신 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다윗을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합니다.
(행 13:22)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사도 바울은 더 많이 수고 하였다고 합니다
(고전 15:10)...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도 바울은 이러한 봉사를 하게 됨을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 하면서 자신이 사도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고 소개합니다.
(고전 15: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리고 그 이유가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기 은혜 때문임을 고백 합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그 어떤 사도보다도 큰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었고, 많은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였습니다.
(고후 11:5)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고후 12:11) 내가 어리석은 자가 되었으나 너희가 억지로 시킨 것이니 나는 너희에게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도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나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부족하지 아니하니라
그럼에도 그는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자신을 겸비하고 겸손을 나타냅니다.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은 진정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자의 고백이요, 자신을 은혜로 불러 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더 많이 수고하며 봉사합니다.
[고후 11:23-27]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우리도 은혜대로 봉사 합시다.
모 교회 김 권사님은 93세의 고령에도 교회 강단 청소를 사명으로 알고 매주일 예배 1시간 전에 오셔서 기쁨으로 찬송하며 닦고 계신다. 한 번은 너무 힘드신 것 같아 그만 하시라고 하니 “하나님의 사명은 은퇴가 없어요.”하시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마치 천사같이 보였다.
남강 이승훈 선생은 항상 궂은일에 솔선하기로 유명하였다합니다. 남강 선생께서 오산학교를 세웠을 때이다. 선생은 남들이 꺼리는 변소청소를 하곤 했다. 변소가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남강이 그쪽으로 가면, "서쪽, 서쪽!"하면서 학생들은 웃으며 따라갔다. 추운 겨울날 남강은 도끼로 얼어붙은 똥덩이를 깨고 있었다. 또 후에 선생께서 3.1운동으로 옥중에 있을 때에도 변기를 맡아 청소하였다. 처음에는 젊은이들이 "선생님이 그렇게 하셔서 되겠습니까?" 하더니 그 후에는 으레 `저 영감이 하는 것'으로 되어 버렸다. 그러나 남강은 그것을 자기의 십자가로 알고 달게 받았다. "하나님, 이 민족을 위해 언제까지나 똥통 소재를 할 수 있게 해주옵소서." 자기 몸을 깨끗이 하고 거처를 깨끗이 함이 곧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라고 믿었던 남강 선생의 인품을 보여 주는 일이었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하시고 부부지간 부자지간 노사간 서로 봉사하라고 하십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은혜로 봉사하는 달입니다. 더욱 은혜대로 봉사하며 영광 돌리는 모두가 됩시다.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전15장 10절 / 강성찬목사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예수님을 믿은지 얼마 안되어서의 일이라 합니다. 길을 지나는데 앞쪽에서 한센병 환자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복음도 전하면서 기도해주고 싶은데 왠지 더러운 생각에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아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런데 계속 마음이 편치 않아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저 병자를 그냥 지나친 것이 잘못입니까?”“왜 그냥 지나쳤는데?”“더럽게 느껴져서 그랬습니다”“그래? 너는 그 병자보다 나은 게 있었는 줄 아느냐? 너는 그 병자보다 더 더럽고 추한 냄새나는 죄인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너를 그대로 받아주었고 사랑해 주었다” 그는 즉시 그 병자에게 뛰어갔습니다. 프란체스코는 병자의 손을 꼭 붙들고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면서 그를 위해 기도해주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게 됩니다. 겸손해야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터어너"는 말하기를 너는 기억하라 네가 나기 전에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난 후에는 연약한 그릇, 일생을 통하여 죄인, 그리고 성공의 결정에 선 때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땅과 양친에게 빚진자라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고 소개하면서 그 이유가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기 때문임을 밝혔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치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또한 자신이 모든 다른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음을 진술하면서, 자신이 그와 같이 행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자신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임을 간증합니다.
은혜란 말은 교회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말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죄인들을 대하실 때 선하심으로 대하시는 속성을 은혜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은혜라는 말을 구원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시는 구원의 길이 열렸다고 합니다.
(롬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아버지 켄트 고작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켄트 공작의 임종 시 의사가 공작을 위로하기 위해 공작의 위대한 정치적인 공적을 열거하며, 공작의 사후는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공작이 '내가 구원 얻는 것은 공작이기 때문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이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인도에서는 구원을 얻기 위해 찌는 듯한 햇볕 아래서 못이 박힌 널빤지 위에 누워 있는가 하면, 일생을 벙어리로 살 것을 서약하는 사람도 있고, 수백 Km나 되는 곳을 기어서 순례 여행하기도 하며, 갠지스 강에서 목욕을 하기도 합니다. 구원을 위한 이러한 행위를 그리스정교나 카톨릭에서조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행위의 종교를 선호하며 따라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 만든 종교적인 사슬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행위의 사슬은 사람을 힘들게 하고 고통으로 몰아넣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행위에 따라 좌절하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하지만 인간의 불완전성 때문에 확신 없는 삶을 살다가, 죽음에 앞서서도 자신의 내세가 어떻게 될 것인지 불안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은, 구원은 행위가 아니라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확언합니다. 구원은 은혜로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은혜로 의롭다 함을 얻고 상속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딛 3:7)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롬 4: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블란서에서 나폴레옹이 ‘황제로 즉위하고 난 초기에 파리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그의 통치권에 저항하여 반란이 일어났었습니다. 어느 날 반란의 주모자가 나폴레옹 앞에 끌려나왔습니다. 재판결과 그에게는 무거운 형벌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때 문밖에서 나폴레옹에게 면담을 요청하는 소녀가 있어 들여보냈더니 면담을 요청하는 그는 주모자의 딸이라고 신분을 밝히면서 나폴레옹 앞에 엎드려 자신의 아버지를 용서해줄 것을 애원했습니다. 너무나 간절한 소녀의 모습에 나폴레옹은 소녀에게 “나도 용서해 주고 싶지만 너희 아버지는 여러 번 반란을 주도했기 때문에 법의 심판을 받아야만 한단다.” 하면서 타일렀습니다. 그러자 소녀는 “황제님 저는 법의 정의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긍휼과 자비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면서 용서해줄 것을 말했습니다. 그러자 소녀의 말에 감동을 받은 나폴레옹이 “좋다. 너를 보아서 네 아버지를 석방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죄인인 우리가 심판받는 것이 마땅함에도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은혜로 영적 복에 부요한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고후 8: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살후 2: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해밀턴 대학의 유명한 교수인 바커스는 병세가 악화되어 위독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의사가 교수 부인에 귀에 대고 “박사님의 임종 때가 가까웠습니다.”라고 속삭였습니다. 우연히 이것을 들은 교수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면서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곧 죽음의 시간이군요. 미안하지만 나를 좀 일으켜 자리에서 나오게 해서 무릎을 꿇게 해 주십시오. 해밀턴 대학의 학생들을 위해 하나님의 복을 기도한 후 죽고 싶습니다.” 집안사람들은 의사를 도와 그의 소원대로 침대 곁에 무릎을 꿇게 했습니다. 그의 안색은 점점 변하고, 죽음의 때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힘을 다하여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해밀턴 대학의 학생들을 죄에서 구하여 주시옵소서.”그의 얼굴은 너무나 창백했습니다. 그가 고통 가운데 괴로워하는 것을 안타까워한 의사는 그를 다시 침대에 눕게 했습니다. 그는 침대에 누워서도 입술을 미약하나마 계속 움직였는데, 그것은 “하나님이시여. 학생들을 구하여 주시옵소서.”라는 기도였습니다. 그가 임종의 순간까지 기도한 결과는 놀랍게도 해밀턴 대학의 학생 거의 전부가 예수를 구주로 믿게 되었다합니다.
지금도 하나님 주시는 은헤로 영적 부요함이 함께 하므로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역사가 함께 하는 줄 믿습니다.
필경 은혜로 구원을 받는 다고 합니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딛 2: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성 잘 내고 욕 잘하는 어떤 노인이 꿈에 천국에 가게 되었습니다. 천국 문을 들어가려는데 문지기 천사가 성 잘 내고 욕 잘하는 사람은 천국에 못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 노인은 성도 안 내고 욕도 안 하기로 약속을 하고 천국의 여기저기를 구경하게 되었습니다. 한 곳에 가보니 천사들이 우물에서 물을 길어 큰 물통에 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통을 자세히 보니까 밑이 뚫어져서 물이 새고 있었습니다. 이 노인은 너무나 답답하고 성이 나서 왜 새는 것을 막지 않고, 새는 줄 알면서 그냥 물을 길어 넣느냐고 욕을 하려다가 아까 문지기 천사와 약속한 것을 생각하고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자세히 보았더니 물이 흘러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비로소 이 노인은 '내가 욕 안 하기를 잘했구나' 생각하면서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는 큰 짐차가 길가 개천에 빠져 있었습니다. 한 천사가 짐차를 끌어내기 위해 말 두 필을 끌고 와서 짐차 앞에 맸습니다. 이 때 또 다른 천사가 말 두 필을 끌고 와서 그 짐차 뒤에 매어서 등진 채로 당기게 했습니다. 이것을 본 노인은 그예 참지 못하고 그 천사들을 보고 욕을 했습니다. '이것 봐요, 당신들은 참 바보구려. 짐차 앞뒤로 말을 매면 그 짐차가 어떻게 개천에서 나오겠소. 천사는 사람보다 못난 바보구려.' 노인이 욕을 하고 자세히 보니 그 짐차 앞뒤에 매어놓은 말 등에 별안간 날개가 나서 공중으로 둥둥 떴습니다. 그러자 짐차도 둥둥 떠올랐습니다. 그제서야 노인은 '옳지 저렇게 하는구나. 천국은 뭔가 달라도 다르구나'하고 감탄하였습니다. 노인이 감탄하고 있을 때 문지기 천사가 나타나서 '기어이 욕을 하고야 말았군' 하면서 노인을 천국문 밖으로 내쫓았습니다. 이 노인은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놀라 잠에서 깨어보니 자다가 침상에서 떨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노인은 그 꿈을 꾼 후에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은 다 자신의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욕하거나 성내지 않게 되었다합니다. 우리의 행위대로는 구원 받을 수 없고 천국에 들어 갈 수 없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십자가의 은혜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겸손해야 합니다.
사무엘상 1장~4장을 보면, 한나의 가정과 엘리 제사장 가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나의 집안은 평범하고 소박한 가문입니다. 반면 엘리 제사장의 가문은 명문가입니다. 한나는 자식이 없었지만 기도함으로 사무엘을 얻습니다.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니 갈수록 빛나는 가문이 됩니다.
반면 엘리 집안은 배은망덕한 가운데 은혜를 까먹고 결국 패가망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면 무엇보다 먼저 겸손해야 합니다.
[고전 15:8-9]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자기는 팔삭둥이같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낮춥니다. 사실은 바울이 엘리트 중의 엘리트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니까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딤전 1: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자기는 가장 사악한 죄인이었다고 합니다.
우리 말에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내 모습이 있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 은혜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늘 겸손한 모습을 지킬 때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가 지속됩니다.
하나님 은혜에 늘 감사해야 합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모든 게 감사하다고 합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감사 제목입니다.
흔히 우리는 나에게 없는 것을 생각하면서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있는 만큼 감사한 겁니다. 그것조차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고난과 시련조차 감사의 제목일 수 있습니다.
고난을 겪을 때는 힘들었는데, 나중에 되돌아보면 그것조차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알고 감사하게 됩니다.
[고후 12:7-10]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육체의 가시가 그를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이것조차 감사했습니다. 육체의 가시 때문에 겸손을 유지하고 그로 인해 계속 능력이 나타나니까 너무 감사한 겁니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오히려 약한 것을 자랑하겠다고 고백합니다.
헬렌 켈러는 3중 장애인으로 시각장애, 청각장애, 언어 장애를 안고 살았으니 인간적으로 얼마나 안 됐습니까? 그런데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혹시 하나님이 원망스럽지 않느냐고 ...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은혜를 헤아리기도 바쁜데, 어찌 원망할 시간이 있겠습니까? 감사하고 기뻐하기만 해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관점의 차이입니다.
이런 그에게 하나님이 은혜를 계속 베푸니 마침내 장애인 최초로 대학 교육을 받고(하버드대), 사회복지가로서 세계적 명성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의 고난으로 인해 오히려 하나님께 더 크게 영광을 돌리는 생애가 되었습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충성해야합니다.
10절 하반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합니다.
그 은혜를 절실히 깨달을수록 더욱 더 수고했습니다.
‘수고하였으나’(코피아오 κοπιαω)는 탈진한 정도로 열심히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재미있게 설명하며 코피 나게 일한다는 우리 말하고 비슷하다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충성하자 하나님께서 계속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평생 하나님의 위대한 사도로서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음악가 하이든(Franz J. Haydn 1732∼1809)은 오스트리아 출신 작곡가로 오라토리오「천지창조」를 작곡하였습니다. 그가 66세 되던 해 지나온 생애를 회고하면서 얼마나 감사한지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창세기 내용을 기초로 만든 곡입니다. 그는 매일 기도하면서 그 곡을 썼습니다. 하나님이 큰 은혜를 부어주신 결과가 그 곡입니다. 곡이 완성된 후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이든! 하이든!” 연호를 하면서 하이든에게 「천지창조」연주를 부탁합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잠깐만 하늘을 보십시오 고개를 들고,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모든 게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한 게 없습니다. 이런 고백이 있었기에 그에게 계속 은혜가 부어진 것입니다. 바로 은혜 위에 은혜(Grace upon Grace)의 역사입니다.
교회창립76주년도 교회 근속 20년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백하며 영광돌리는 모두가 됩시다.
하나님의 세 가지 은혜
고전15장 10절 / 박인걸목사(수주중앙교회)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나의 달려갈 길 다 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 은혜라./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한량없는 은혜/ 갚을 길 없는 은혜/ 내 삶을 에워싸는 하나님의 은혜/ 나 주저함 없이 그 땅을 밟음도/ 나를 붙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조은아 작사, 신상우 곡입니다. 한국교회에서 많이 불러지는 찬송입니다.
은혜라는 말은 카리스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선물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나 좋아 하는 사람으로부터 선사받는 물건이나 특혜를 말합니다. 선물 중에는 상당히 부담스런 것들도 있고, 내가 갚을 수 없는 큰 것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갚아야 할 선물도 있습니다. 그리고 평생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아주 큰 선물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은 평생을 갚아도 다 갚을 수 없고, 선생님이나 스승으로부터 받은 사랑의 선물을 평생을 갚아도 다 갚을 수 없습니다.
저는 두 주간에서 걸쳐 미주지역을 돌아왔습니다. 14일 출국하여 미국 켈리포니아주의 LA를 거쳐 콜로라도주의 덴버, 덴버에서 같은 주에 있는 스프링스(록키산)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에서 My Kids World 대회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에 우리 교회에 와서 부흥회를 인도한 신원규 목사님은 미주 이민사회에서 목회자 대표회장을 지낸 분으로서 노년 시기를 전 세계에 버려진 고아 및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하여 살고자 My Kids World를 만들고 활동을 하시면서 그곳으로 저를 초청하였습니다. 이곳에서 4일을 보내고, 목요일 LA로 와서 LA삼성장로교회에서 주일 까지 부흥집회를 인도하였습니다. 이렇게 1주을 보낸 후, 제 난생 처음 미국엘 갔으니 서부지역 몇 곳을 투어 한 후 토요일 새벽에 인천 공항에 도착 하였습니다. 저는 마이키즈월드의 이사는 아니지만 그들로부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분에 넘치는 융숭한 대접과 사랑을 받았고, LA 삼성 장로교회 목사님과 장로님들, 그리고 성도들로부터도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만난 분들 가운데 미 상원 부의장 신호범 의원과 LA에 있는 이주사 퍼시픽대학교 부총장인 존 박 교수를 만난 것이 큰 보람과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들은 미국에 입영되거나 이민을 가서 세계적인 인물들이 된 분들이며 그들의 간증과 강연은 저에게 큰 도전을 주었습니다. 특히 신호범 의원의 간증은 저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고, 그분의 간증을 들으며 많이 울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무궁무진하게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임하시는지를 깨닫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어디 특정인에게만 임하였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백성들에게 골고루 내려 주시는 은혜입니다. 다만 그 은혜를 은혜로 여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크게 느끼고 고백한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바울일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딤전1:15)라고 고백하였으며, “만삭 되지 못하여 난 자”(고전15:8)“어리석은 자”(고후12:11)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고, 예수 믿는 자를 죽이거나 핍박한 자였으나 하나님의 은혜의 손에 붙잡혀 사도로 한 평생을 살다가 사람입니다. 그는 오늘 본문에서 최종적으로 이렇게 고백합니다.“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하나님의 은혜가 어디 바울에게만 국한 된 것이겠습니까? 우리 모두에게 임하신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까요?
(1) 나를 택하신 은혜입니다.(엡 1:4-5; 고전 2:7)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5)“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2:7)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하나하나 택하여 부르시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타락한 시대에 방주를 짓기 위하여 노아를 택하여 불러 사용하였습니다.(창6:13) 아브라함을 불러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십니다.(창12:1-3) 모세를 택하여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십니다.(출3:4) 여호수아를 택하여 모세 이후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삼으셨습니다.(수1:1-2) 다윗을 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았습니다.(행13:22) 기드온, 입다, 사무엘, 엘리야와 엘리사, 그리고 이사야와 예레미야, 수많은 선지자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7,000명의 선지자(왕상18:19) 신약의 주의 제자들과 바울 사도 모두 주님이 택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오늘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은 택하여 부른 자들입니다.
나보다 높은 분이 나를 택하여 특별한 일을 맡기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 일이 중요한 일어거나 중요한 역할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두 가지 측면에서 큰 은혜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첫째, 구원을 위하여 택하고 불러주신 은혜입니다.(엡2:5) 우리는 모두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입니다. 영원한 죽음에 처한 신분입니다. 자력으로 구원 받을 길이 없는 자들입니다. 힘쓰고 애써서 얻을 구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하나님의 선재 적 은총과 강력한 부르심이 아니면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 때문입니다. 아주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다. 둘째,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일꾼으로 택하시고, 불러주신 은혜입니다.(빌1:16)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심은 그의 긍휼하심에기 근거하며, 또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사역자로 택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크고 놀라운 은혜입니다.
예수님의 비유가운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기 있습니다. 이른 아침 장터에 서 있는 일꾼들에게 품삯을 약속하고 포도원으로 보냅니다.(마20:8) 오전 9시, 낮 12시 오후 3시, 그리고 오후 5시에 일꾼들을 포도원으로 보냈습니다. 놀고 있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 포도원에 보낸 것입니다. 그들은 보낸 것은 포도원에서 일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누구도 써 주지 않는 사람들을 포도원 주인은 저녁때 까지 데려다가 일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일한 사람들 모두에게 넉넉한 품삯을 지불하였습니다. 물론 일찍 온 사람들이 늦게 온 사람들에 대우에 대하여 주님에게 따졌지만 주인은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일꾼들에게 일감을 주기 위하여 부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일꾼들에 대한 주인의 은혜 베풂입니다. 그리고 품삯도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수주 중앙교회에서 일 할 수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축복입니다. 상급입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특히 한국교회에서 하나님 교회를 섬길 수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저는 미국 이민사회를 동경했습니다.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짧은 기간이지만 그곳에 가서 본 후 그 생각을 접었습니다. 특별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힘들고 고생스럽게 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그것으로 갔고, 그곳에서 교회를 섬기겠지만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교회를 섬기는 것이 더 큰 은혜요 축복이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나이든 분들은 하나같이 한국으로 다시 오고 싶어 하며, 그것에서 키운 자녀들 역시 한국에 사는 짝을 원하고 있었습니다. 이민 가서 미국 주류 사회에 진입이 어렵고,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아직도 여전한 것을 보면서 한국에 사는 것이 큰 축복이구나 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무튼 우리가 하나님의 예정과 택정함을 입어 구원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고, 더 나아가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 수주 중앙교회 일꾼으로 택함을 받은 것은 은혜 중에 은혜인 것입니다.
또 어떤 은혜를 입었습니까?
(2) 나의 삶을 인도하시는 은혜입니다.(시78:6-72)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택하여 부르신 후 그들의 가는 길을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일생동안 그 길을 인도하십니다. 구약의 악장 아삽은 시편 78편에서 하나님의 그의 백성을 얼마나 철저하게 인도하시는 지를 노래로 지어 예배시간마다 불렀습니다. 바로의 손에서 그의 백성들은 인도하였고,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였으며, 밤에는 불과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였습니다. 광야에서 반석을 쪼개어 물이 나오게 하여 흡족히 마시게 하였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그들의 배를 채워 주셨으며, 적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한 은혜입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미 상원 부의장 신호범 의원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분은 경기도 파주에서 태어납니다. 네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일곱 살 때 아버지도 그를 버리고 없어졌습니다. 어린 나이에 거지가 되었습니다. 파주에서 문산을 돌며 거지 짓을 하다 서울로 가야 굶지 않을 것 같아서 서울 사는 기차에 몰래 탔습니다. 서울역에서 구걸을 하며 한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는 거지짓을 하며 매일 죽고 싶다고 했습니다. 하루는 철로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길래 가까이 가 보았더니 자기 친구였습니다. 신호범은 두 주먹을 쥐면서“나는 죽지 않을 거야!”하면서 아를 악물었습니다. 신문팔이 구두닦기 안 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던 중에 6,25가 터졌습니다. 걸어서 한강을 건너고 수원을 지나 남쪽으로 계속 피란을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폭격으로 폐허가 되 용산 시내를 걷고 있는 호범이를 미군이 트럭에 강제로 태웠습니다. 잘 생긴 미군에 “너는 오늘부터 우리 부대에서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소위 하우스보이가 된 것입니다. 그날부터 물 긷고, 빨래하고, 다리미질 하고, 구두 닦고, 심부름 하고, 미군이 시키는 일을 열심히 했습니다. 인물 잘생기고, 성실하고, 착하니까 전쟁이 끝난 후 16세 소년을 미군들이 데리고 미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좋은 집에 입양이 되었습니다. 양 부모는 그에게 대학을 가라고 했으나 한국에서 학교를 가본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양부모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면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검정고시를 보면 대학에 갈 수 있다면서 공부를 시켰습니다. 그는 하루에 세 시간도 채 자지 않으면서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을 만납니다. 공부를 하다 힘들면 밤에 눈을 감고“하나님이 계시다면 저에게 힘을 주어 검정고시에 합격하게 해 주세요.” 2년 만에 초, 중,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패스합니다. 그리고 대학에 입학합니다. 워싱턴 주립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20년 동안 교수가 됩니다.
그는 원낙 성실하고 진실하여 미국 주류사회인 워싱턴에서 하원 의원에 출마합니다. 미국 최고의 정치인들이 뿌리내린 사회에서 하원에 출마 했을 때 사람들이 비웃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20,000가정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자신을 알렸습니다. 8,000가정을 돌았을 때 미국 신문기자가 하루는 동행 취재를 하더니 두 손을 들면서 신호범 의원을 대서특필하였습니다. “조실부모, 미국 하우스보이, 독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대학교수, 정치자감 없이 맨발로 선거운동, 근면, 성실, 진실, 꿈이 있는 사람” 그는 선거에서 당선되었습니다. 의원이 된 후 열심히 의정활동을 했습니다. 상원의원도 세 번 했습니다. 지금은 상원의원 부의장입니다. 1년 후에 상원의원 의장이 될 수 있는 순서입니다. 출마하기만 하면 당선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는 정계은퇴를 선언하였습니다. 76세입니다.
수년 전에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찾았습니다. 다른 부인을 얻어 네 명의 자식을 두었습니다. 왜 자신을 버렸느냐고 물었더니 먹고 살 길이 없어서 남의 집 머슴살이와 일제 징용등으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듣고 아버지를 용서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아버지와 처음 보는 계모, 그리고 이복형제들 4명을 모두 이민 시켰습니다. 이복형제들도 모두 공부를 못 했지만 데려다가 공부를 시켰고 집도 사주고 미국에서 편히 살게 해 주었습니다. 저는 한국판 요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한국정부가 수여하는 “자랑스런 한국인 상”을 받았습니다. 이번에 저와 4일을 함께 있으면서 우리교회도 와서 간증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오시면 초청할 예정입니다. 장로님인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저의 삶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뒤돌아보면 거지로 산 것도, 하우스보가 된 것도, 미국에 입양 된 것도, 미 상원의원이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이며, 특히 고아가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말씀을 들으며 저는 많이 울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가는 길을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전적으로 그분께 삶을 맡기고 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복되게 인도하시는 분입니다.
(3) 나를 축복하시는 은혜입니다.(민6:27)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축복하시기 기뻐하십니다. 출 애급 시대의 대제사장은 아론입니다. 대제사장은 그의 백성들을 축복하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복을 내리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를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이고 주님은 그의 백성 된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① 손으로 하는 직업에 복을 내리십니다.(시128:1-2) ② 개인에게 복을 내리십니다.(시34:9-10) ③ 자녀들에게 복을 내리십니다.(시112:1-3) ④ 사업에 복을 내리십니다.(시128:1-2) ⑤ 가정에 복을 내리십니다.(시128:3-4) ⑥ 육체와 건강에 복을 내리십니다.(말4:3-4) ⑦ 특별한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말3:16-18) ⑧ 국가와 민족이 복을 받습니다.(신28:9)
미국은 1620년 영국에서 천주교의 신앙적 백해를 받는 개신교도들, 특히 청교도들이 오직 신앙생활을 잘 해보고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두 척의 배를 임대하여 대서양을 건넌 후 미국의 동부에 자리를 잡고 천신만고의 고생을 하며 자리를 잡습니다. 이후 수많은 유럽인들이 미국으로 건너와 그 땅을 정복합니다. 물론 그 땅에 살고 있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많이 학살하고, 땅을 빼앗는 결과를 낳았지만 오늘만 미국인들의 조상들의 가슴에는 오직 신앙, 하나님을 잘 믿으며 살아 보자는 신앙 원리주의 적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였고,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초 일류국가가 된 것입니다. 그들의 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중국이나 러시아가 아직은 미국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들의 조상들이 하나님을 잘 섬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을 축복하시는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복을 맘대로 복을 받을 수 있는 방법과 원리를 알려주셨습니다. 그 복을 받고 못 받고는 그 사람의 태도와 자세에 달렸습니다. 저는 이번에 미국 삼성교회에서 설교하면서 제가 하나님께 복 받는 간증을 했습니다. 저는 시골사람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없습니다. 오직 어머니로부터 신앙하나 물려받았습니다. 탁월한 가문도 아닙니다. 뛰어난 머리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제 가슴에는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종일 예수님만 믿음과 찾고,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제 삶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자”는 좌우명이 있습니다. 성실과 근면, 그리고 진실을 삶의 밑바탕에 두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건강을 붙잡아 주셨습니다. 행복하고 안정된 가정을 주셨습니다. 공부도 하고 싶은 만큼 하도록 하나님이 도와주었습니다. 자녀들도 기도하는 대로 모두 인도하고 계십니다. 목회도 안정되게 할 수 있도록 항상 도우시는 에벤에셀이 있습니다. 전부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축복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도 축복의 은혜가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잘 믿으면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잘 살게 하십니다. 잘 되게 하십니다. 승리하게 하십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세 가지 은혜를 말씀드렸습니다. ① 택하신 은혜입니다. ②인도하시는 은혜입니다. ③ 축복하시는 은혜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다
고전15장 09절 ~ 11절 / 박용래목사
다윗이 일생을 마감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놓고 고백하는 말이 있었습니다. 나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부와 귀가 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다윗은 살아온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으로 축복받고 살아온 사람들이 한결같은 고백이 있는데 그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그의 일생 가운데 크고 작은 실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있었습니다. 기근으로 말미암아 애굽에 내려갔고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내를 누이라고 속여가면서 자신의 안일을 찾았던 비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복을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고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노아가 심판에서 구원받게 된 것, 그리고 심판 후에 노아를 통하여 새로운 민족이 이루어져 가는 것 그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노아의 일생 가운데 노아의 실수와 허물도 성경에는 숨김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노아가 자격이 있고 공로가 있어서 하나님께 구원받고 복을 받게 된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6장 8절에는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말씀합니다. 이 한마디의 말로 노아는 자신의 생애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고 있음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에 대한 표현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노아를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브라함을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다윗과 솔로몬을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은혜라는 통로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은혜는 평범한 사람을 위대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보통 사람을 탁월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은혜입니다. 쓸모없는 인생이 가장 쓸모 있는 인생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을 말합니다. 구원받을 자격이 없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게 된 것입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엡2:5) “너희가 그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2:8)
은혜란 아무런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거듭나게 된 것도 아름답게 사는 것도 사명자로 사는 것도 귀한 직분자가 된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나라가 1945년 당시에는 국민소득 45달러, 문맹률 80%였던 나라입니다. 더욱이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 3년간 전쟁 속에 살다가 1953년 휴전협정 됨으로 전쟁에 폐허가 되었던 나라입니다. 굶주림과 헐벗음에 허덕이며 살았습니다. 60년대만 해도 한국교회 목사님들이 필리핀에서 모이는 국제회의에 참석하면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고 경비를 도와주곤 했습니다. 정말 가난하게 살았던 민족입니다. 보릿고개를 넘기기 위해서 굶주림 속에 허덕이던 민족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은 아시아에서 일본과 싱가폴 다음으로 잘사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계 경제대국으로 급부상하고 있고 대학진학률이 세계에서 최고이며 정보화 시대에 인터넷 보급률이 세계에 최고인 국가로 발전하였습니다. 가난을 극복하고 군부독재를 종식시키고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땅이 넓고 자원이 풍부하고 석유가 쏟아져 나오는 그런 나라도 아닙니다. 잘 살아야 할 조건과 환경이 갖추어진 나라가 아닙니다.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복음이 들어와서 이 나라에 하나님의 은총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19세기에 세계 강대국으로 군림했던 소련은 공산화되면서 예배당을 폐쇄하고 공회장과 오락장으로 삼았던 소련은 나라가 망하여 식량이 모자라 굶주리는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청교도들이 신앙을 가지고 들어간 미국은 오늘날 세계를 이끌어가는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미국 국민의 고백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남북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은 우리 의지와는 상관없이 북한을 선제공격함으로서 한반도에 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국론이 분열되어 있습니다. 정치가 불안하고 경제와 사회가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치와 향락과 이기주의와 물량주의에 빠져 세계 자살 1위, 이혼율 1위, 매춘 1위, 출산율 저하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한국교회 부흥은 퇴보를 하고 있고 복음에 열정은 싸늘하게 식어져 있고 영적으로 태만에 빠져 있고 신앙의 잠을 자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저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100년 전에 일어났던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났던 영적 대 각성운동 회개운동 기도운동 성령운동이 다시 일어나야 할 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죄악의 길에서 회개하고 돌아오는 운동, 교만하고 태만하고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자 하는 복음의 뜨거운 열정과 불길을 다시 불붙여야 합니다. 바울이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고백했던 것처럼 오늘 한국교회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살아가는 영적인 타락과 교만과 태만에서 다시 깨어나 일어나라고 합니다. 은혜를 저버리고 은혜를 배신하는 땅에 언제나 하나님의 채찍이 찾아왔습니다. 시련의 파도가 찾아왔습니다.
이번 독일 월드컵에서 최고의 감독으로 히딩크 감독을 선정했습니다. 2번이나 월드컵 4강에 이어 32년 만에 처음 본선 무대를 밟은 호주를 16강에 올려놓은 지도력을 발휘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가 4강을 했을 때 히딩크 감독에 대한 국민들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습니다. 히딩크호텔, 히딩크거리 등이 생기고 평생시민권을 수여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히딩크가 처음부터 영웅대접을 받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언론과 축구 관계자들과 팬들은 히딩크를 비난했습니다. 히딩크의 훈련과정은 팬들과 언론의 비난을 받았습니다. 국내 팬 70%가 한국축구는 16강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응답했습니다. 나중에는 히딩크 사생활까지 들먹이며 그를 비난했습니다. 또 프랑스와의 시범경기에서 패했을 때는 인신공격적인 비난까지 합세하였습니다. 모 방송사에서는 100분 토론에서 히딩크호 집중점검이란 프로까지 방송했습니다. 이 세상에 완전한 지도자도 없고 사람도 없습니다. 완전한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도 언제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비난이 이어졌고 12제자 중에는 예수님을 종을 파는 값인 은 30냥에 팔아먹는 배신자도 있었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도 바울의 고백은 오늘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은혜를 떠난 그리스도인은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도록 힘을 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그리스도인은 늘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우리는 부족하고 무능하지만 능력 있는 삶을 살고 하나님의 거룩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사랑할 수 있고 헌신할 수 있고 능력 있는 사역을 감당케 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이 비난받고 비난하는 것은 무엇보다 은혜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은혜 없는 곳에는 기쁨도 없습니다. 초대교회가 은혜 받고 나니 칭찬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였습니다.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항상 은혜 속에 살아야 감사가 있고 기쁨이 있고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충만함을 받기 위해 영적인 태만과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회개운동, 기도운동, 성령운동, 말씀운동으로 항상 은혜 속에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능력 있는 성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명을 감당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고전15장 09절 ~ 11절 / 안효관목사
“언어는 사유의 집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언어철학자인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1889-1951)이 한 말입니다. 생각이 언어 속에 다 담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언어를 벗어난 사고란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는 또 언어를 도시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오래된 도시와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새로운 도시와 같다는 것입니다. 도시 안에는 옛날부터 존재해 있던 좁은 골목길이 있는가 하면 현대화된 큰 광장도 있습니다. 낡고 오래된 헌 집도 있는가 하면 세련되고 거대한 현대식 집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래된 집을 수리하고 증축한 옛날과 현대가 공존하는 집들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도로와 집들로 구성된 도시가 언어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언어는 복잡하고 다양성을 함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지요? 지금 내가 한 말 한마디는 2010년 1월 24일이라는 지금의 나만을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의 모든 영역을 다 담아내기도 하고, 그 짧은 말 한마디에 내 삶의 많은 것들이 묻어나기도 합니다.
오래 전 일입니다. 임영수 목사님께서 서울 영락교회에 계실 때에 동기 모임을 영락교회에서 가진 적이 있습니다. 임영수 목사님을 모시고 그분의 강의도 듣고 그분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임영수 목사님은 목소리가 크지 않고 조용조용히 말씀하시지만, 그분의 말씀 속에는 권위가 있고 힘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분과 이야기하면서 동기 가운데 한 분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왜 한국교회에서, 특히 큰 교회에서 목회자를 뽑을 때에 설교테이프를 내라고 합니까? 어떻게 설교 테이프 하나로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습니까? 그건 혹 큰 교회에서 교회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 아닙니까?” 그런 질문을 하자, 임목사님께서 이렇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목회자를 뽑을 때 설교 테이프를 제출하라고 하는 것은, 설교를 테스트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교회가 권위를 세우려는 것도 아닌 줄 압니다. 비록 단 한 편의 설교이기는 하지만 설교를 들으면서 그분의 됨됨이, 인격의 됨됨이를 느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한 편의 설교 속에서 그 목사님이 어떤 용어를 쓰고, 또 어떻게 성경을 해석해서 전달하느냐 하는 것을 보면, 그 목사님의 인격이나 됨됨이를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오랫동안 관찰해 보지 않았기에 그분이 우리 교회에 맞는 분인지 아닌지를 쉽게 판단할 수 없는데, 설교를 들으면 그분의 삶이나 인격의 윤곽이 잡히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 필요한 분이겠구나’ 하는 것을 판단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저도 그 때까지는 교회에서 목사를 뽑을 때 설교 테이프를 내라고 하고 그 설교 테이프 하나로 목사를 뽑는다는 것에 굉장히 거부감이 있었는데, 임영수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에는 ‘그 말씀에 일리가 있다’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하면서 사느냐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말이 곧 우리 생각의 열매이고, 우리 인격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말로 그대로 표현되어 나타납니다. 그리고 자신이 어떤 말을 하느냐 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을 만들어 내게 되고, 더 나아가서 행동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우리의 삶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말은 그 사람의 인격입니다.
말은 생각과 인격만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떤 말을 하고 어떤 용어를 선택하느냐 하는 것에 따라서 우리의 신앙생활과 신앙의 양태가 달라집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신앙적인 말을 하는 것이 굉장히 어색하다면, 아직 어린아이의 신앙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앙적인 말을 자연스럽게 하는 사람이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문에서 보여지는 사도 바울의 모습은 참 아름다운 신앙의 향기가 풍겨나는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이 짧은 표현 속에 여러 가지 신앙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가장 먼저는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나를 인도하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입니다.
본문의 말씀이 기록된 고린도전서 15장을 흔히 부활장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논증하면서, 5절 이하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들이 많다는 것을 열거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셨고, 열두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한 번에 500여 명이 보는 가운데서도 나타나셨는데, 그 부활의 주님을 만난 사람들 가운데는 세상을 떠난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까지 살아 있는 사람도 있다고 말씀합니다. 아직도 절반 이상이 살아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아주 확실한 사건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바로 앞인 8절에 보면 “맨 나중에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다.”고 선언합니다.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라는 말은 ‘유산된 아이’ 또는 ‘8달 만에 난 아이’라는 뜻입니다. 그만큼 자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사람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본문 9절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는 부활의 주님을 만나기 전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는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교회를 핍박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구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사랑해 주셔서 사도로 삼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고백합니다. 사도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을 사도라고 불러주셨는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자신은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럽다는 표현입니다.
신약성경에 사도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모두 14명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가 가장 먼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고,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죽은 후에 사도행전 1장에 보면 가롯 유다 대신에 맛디아가 사도로 뽑혔습니다. 그래서 모두 13명에다가 사도 바울까지 모두 14명입니다.
이 14명의 사도 가운데 가장 나중에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사도 바울입니다. 또 나머지 13명은 모두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 예수님을 직접 따라다녔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살아 계실 때 예수님을 직접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스스로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앞서 부르심을 받은 12명의 사도들보다 맨 나중에 부르심을 받은 사도 바울이 기독교 역사에 가장 많은 공을 세웠습니다. 복음 전도를 위해서 그는 목숨을 걸고 사역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수고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 중 신약성경 27권 중에서 13권이 사도 바울이 쓴 편지글입니다.
가롯 유다 대신에 사도로 뽑힌 맛디아는 사도로 뽑혔음에도, 사도로 뽑힌 것을 기록한 사도행전 1장을 제외하고는 성경 그 어디에도 그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도로서 활동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물론 기록이 없다고 사도로 활동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 시대에 활동했던 13명의 사도 중에서도 복음을 위해서, 또 주님을 위해서 가장 많은 일을 한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스스로를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나 이런 사람이야! 나 이런 일을 한 사람이야! 내가 남긴 업적이 이렇게 많아!’ 라고 자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랑하지 않습니다. 아니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왜요? 만삭되지 못해 난 자 같은 자신을 그렇게 크게 쓰신 분은 하나님이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잘나서 그렇게 큰일을 한 것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 자신을 드러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을 찬양할 뿐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은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저 감사할 뿐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참된 신앙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는 순간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의 입에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나 같은 사람은 사랑해 주신 것이 감사하고,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서 써 주신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앞을 보아도 감사하고 뒤를 보아도 감사할 것뿐입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복음성가 가운데 ‘날 구원하신 주 감사’라는 제목의 찬양이 있습니다. 그 내용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향기로운 봄철에도 감사하고, 외로운 가을날도 감사합니다. 평안하고 즐거운 삶을 살아온 것에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아픔 때문에 흘렸던 눈물에도 감사합니다. 기도에 응답해 주신 것도 감사하고, 기도를 거절하신 것도 감사합니다. 풍랑과 같은 험난한 세월을 살아오게 하심도 감사합니다. 기쁘고 좋은 일에만 감사한 것이 아니라 아픔도 있었고 절망 중에도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위로해 주심에 감사합니다. 길가에 아름답게 핀 장미꽃도 감사하지만, 우리를 찌르는 가시가 있음에도 감사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인의 언어는 감사입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기에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입에서는 감사라는 말이 자주 나와야 합니다. 감사가 우리 신앙인의 의식 중심에 자리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감사를 하나님께 자주 표현해야 합니다. 그 표현의 첫 번째 방법이 바로 감사의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의 입에서는 은혜라는 말이 자주 나와야 합니다. 은혜를 알 때 감사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단 한 절 안에 은혜라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만큼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느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신앙인과 비신앙인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신앙인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신앙을 갖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지 않으시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만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지 않는 사람도 사랑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만 은혜를 주시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신앙을 가진 사람이나 갖지 않는 사람이나 똑같이 사랑하시고 똑같이 은혜를 주시는데, 그렇다면 신앙을 가진 사람과 신앙을 갖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그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살고 있느냐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살고 있느냐 하는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특별히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데도 그 사랑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을 외면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에 지금 내가 목숨을 부지하고 살고 있는데도, 내가 잘나서 사는 것처럼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비신앙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신앙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비신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즘 아이티에서 일어난 엄청난 지진으로 인해 전 세계가 아이티를 돕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이티에 왜 그런 재난이 일어나서 수십만 명의 아까운 생명이 죽어가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아이티를 사랑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까? 아이티가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입니까? 아이티는 전통적으로 카톨릭 국가입니다. 인구의 약 80%가 카톨릭 신자입니다. 그리고 16%가 개신교입니다. 다시 말하면 전체 인구의 96%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어제 발표한 것을 보면 지난 12일에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12만 명 이상이 죽었고, 약 20만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지진으로 집을 잃어버리고 임시거처에서 난민처럼 사는 사람이 60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이런 가정을 해 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큰 지진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만, 만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도 큰 지진이 일어나서 내가 건물더미 안에 매몰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간신히 일주일 만에 구조되었습니다. <옛날 우리나라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한 청년이 11만에 구조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방송에서 가만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방송사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면서 “어떻게 해서 살아날 수 있었습니까?” 라고 물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예, 재수가 좋아서요. 운이 좋아서요.” 그렇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재수나 운이 좋다는 말은 신앙인의 언어가 아닙니다.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긴 채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이 할 수 있는 표현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어떻게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지요.” “하나님께서 도우셨기에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비단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큰 문제 앞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작은 일상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신앙인은 은혜를 은혜로 아는 사람들입니다. 은혜를 은혜인 줄 모르는 사람은 신앙인이 아닙니다.
- 건강하십니까?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건강하십니까? 내가 열심히 운동하기 때문에 건강하다고 대답한다면 비신앙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건강한 것입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겠다고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 가운데 허무하게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것도, 또 건강이 좋지 않다 하더라도 오늘 여기까지 살아올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 직장에 잘 다니고 계십니까? 누구 때문에 직장에서 잘리지 않고 다닐 수 있는 것입니까? 내가 열심히 직장생활 했기 때문에요? 나도 열심히 했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지금까지 직장에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비신앙적인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 때문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사람이 신앙인입니다.
모든 게 다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사도 바울은 사도직을 수행하기 위해서 무던히도 애를 썼습니다. 열정을 다했습니다.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했습니다. ‘그렇게 내가 열심히 했기 때문에 오늘의 내가 있는거야!’ 그렇게 말했다면 그건 신앙적인 표현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열심히 하긴 했지만 오늘의 내가 있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야!’ 이게 신앙인의 고백입니다.
오늘날은 ‘자기중심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입니다. ‘나’라고 하는 존재가 드러나지 않으면 성공할 수도 없고, ‘나’라는 존재를 내 스스로 높이지 않으면 세상 살아가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은 그런 것에 현혹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은 ‘나’를 드러내야 성공하고 ‘나’를 드러내야 내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유혹한다 하더라도, 그럴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주님을 생각하고 주님을 높여 드려야 합니다.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않고 그 은혜를 은혜로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은혜를 은혜로 아는 사람은 지금까지 내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앞으로의 삶도 인도해 주실 것을 확신하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우리가 바라고 생각한 대로만 굴러가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기대한 것보다도 기대하지 않는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힘들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삶에 형통하기를 바라는데, 형통한 것 같아 보이지 않을 때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주 ‘힘들어 죽겠다’는 표현을 씁니다. 그러나 신앙적으로 생각하면 표현을 좀 바꿔야 합니다. 내가 생각했던 대로 잘 풀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똑같은 상황에서 ‘힘들어 죽겠다’ 그러면서 사는 사람과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거야.’ 그렇게 믿으면서 사는 사람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쓴 편지가 성경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의 글 중에 어디를 보아도 ‘힘들어 죽겠다’ 그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것도 나를 위해서 살았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서 생명을 바치고 주님을 위해서 이방인의 사도로 살겠다고 하는데 그 길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웠습니다. 죽을 고비도 숱하게 넘겼습니다. 매도 많이 맞았고, 굶주리고 험한 길을 무척 많이 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힘들어서 죽겠다’느니 ‘이 길을 포기하겠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도 바울은 매를 맞아도 아프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사도 바울은 며칠을 굶주려도 배고픈 줄 모르는 그런 사람이었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매를 맞으면 아프고, 굶으면 배가 고프고, 잠을 자지 못하면 눈꺼풀이 천근보다 더 무겁게 느끼는 사람입니다. 우리와 똑같이 아프고 힘들고, 외롭고 괴로움을 느끼며 사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그 모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분명한 확신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시편 23편에 보면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에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자신을 의의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3절)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께서 함께 하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로 자신을 안위해 주심을 믿기 때문입니다.(4절) 그리고 그 주님을 믿고 따라가다 보면 언젠가 주님께서 자신을 푸른 초장에 눕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셔서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2절)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시는 분입니다. 선한 목자가 되셔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인생의 길을 걸어간다 하더라도 우리의 발을 지키사 든든한 반석 위에 세워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고백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의 삶이 힘들 때, 그리고 우리의 생각에 이해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때에라도 우리의 믿음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거야.’ 라고 말하게 합니다.
20세기 최고의 부흥사인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복음을 전하러 다니실 때, 같이 다니면서 사역한 한국계 아가씨가 한 분 있었습니다. 킴 웍스 라는 시각장애인 아가씨입니다. 6.25전쟁 때 시력을 잃고 고아원에서 자랐는데, 한 미군의 도움으로 미국에 가서 성악을 공부하여 훌륭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그녀가 예수를 믿고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함께 집회를 다니면서 찬양도 하고 간증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유명한 간증이 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간증했습니다. “사람들이 맹인인 나를 인도할 때, 저 100미터 전방에 뭐가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고 말하고, 층계가 있으니 발을 올려놓으라고 말합니다. 나를 인도하는 그 사람을 믿고 그 사람이 말한 대로 한 걸음씩 걸음을 옮기기만 하면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꼭 도착을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10년 후를 알지 못합니다. 20년 후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를 부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한 걸음 한 걸음 가다보면,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예비하신 그 영광스러운 목적지에 도착할 것을 믿습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10년 후의 길을 가르쳐주지 않으십니다. 또 20년 후에 내가 어떻게 되어 있을 것인가도 말씀해 주시지 않습니다. 대신 오늘의 내 삶을 인도해 주십니다.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길로 말입니다.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가장 좋은 곳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단 한 순간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매일 매 순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 은혜를 은혜로 인정하며 살고 계십니까? “감사합니다.”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이런 고백이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아는 아름다운 신앙인의 언어입니다.
그분이 주신 자리
고전15장 09절 ~ 11절 / 조재호목사
요즘 전 세계를 흥분시키는 한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해리포터 이야기'입니다. 해리포터 영화는 영국 소설가 조앤 롤링(36)이 쓴 해리 포토를 영화화한 것입니다. 저자는 생활 보조금을 받는 실업자로 빈궁하게 지내다가 1997년 첫 소설인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완성하게 됩니다. 출판사로부터 출판을 여러 차례 거절당하다가 서서히 소문이 나며 인기를 얻기 시작하여 곧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됩니다. 전 세계 1억부 이상 팔리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꾸며낸 재미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매료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해리포터가 아무리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어도 그것은 현실인생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은 꾸며진 이야기나 소설이 아닙니다. 우리의 진정한 인생은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먼 길을 걸으며 사는 현실인 것입니다.
오늘은 2001년 마지막 주일입니다. '어제는 역사, 내일은 희망, 오늘은 선물이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영어에 오늘이란 단어와 선물이란 단어가 같습니다. 선물도 Present이고 오늘도 Present입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하루 하루가 쌓여 한해가 되고, 한해 한해가 쌓여 우리의 인생이 됩니다. 선물은 한없이 고마워해야 하고 잘 간직해야 하며 잘 사용해야 합니다. 올해 보다 내년이 더욱 보람 있고 의미 있고 믿음 있고 성취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거듭나고 하나님의 일군이 된지 한 10∼15년 후에 있었던 고백입니다. 10절 한 절에 '은혜'라는 단어가 3번이나 나옵니다. 그는 은혜의 사람이었고, 그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을 사는 여러분에게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합니다.
1. 첫째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자신의 정직한 모습을 보게 합니다.
"나는 사도들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 밖에 있을 때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잘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 전에는 이 세상에서 자신이 대단한 의인 인줄 알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학문 지식, 자신의 뛰어난 경험, 자신의 가문과 신념을 자랑하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리 쬐는 은혜의 빛을 받고 나서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겨울 긴 햇살이 거실이나 방 깊이 파고들어 올 때 쌓여있는 먼지가 보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뛰어 다닌 열심이 하나님의 뜻에 벗어난 얼마나 큰 우매한 것이었는지, 그는 하나님의 은혜가 개입하는 순간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는지 깨닫게 됩니다. 부끄러움 없이 자신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만삭되지 못한 나" "지극히 작은 자"라고 말합니다. 그랬던 자신이 이렇게 변화된 것은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었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빛을 받는 순간 우리의 모습을 정직하게 볼 수 있습니다. 사람과 동물이 다른 점이 있다면 사람은 동물과는 달리 지나온 세월을 뒤돌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1년을 뒤돌아보면서 어떤 것이 생각납니까? 세계적으로는 테러의 공포와 전쟁의 비참함, 특별히 비행기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러시아 출신의 '한국인'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교수는 말하기를 "도덕성보다는 부패, 절차보다는 폭력, 상식보다는 비상식이 위세를 떨쳤던 한 해"라고 말했습니다. 국내적으로는 조폭의 이상스런 유행과 정치 권력자들이 얽히고 설킨 부정부패 게이트가 유난히 많았던 해였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세상 속에서 교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뒤돌아보면 하나님께 감사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우리 교회가 우리 교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 자신과 교회가 세상에 더욱 책임 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자신의 삶의 자리를 알게 합니다.
세상의 모든 물건은 다 자기가 있어야 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기차는 철로 위에 있을 때 달릴 수 있습니다.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는 기차의 탈선은 곳 큰 사고를 내게 되어있습니다. 기차의 제자리는 철로이고 자기 자리에 있을 때 쓰임새가 많고, 사람에게 유용한 도구가 됩니다. 꽃이 화병에 꽂혀 있을 때 아름답습니다. 꽃의 아름다움을 나타낼 수 있는 제 자리는 화병인 것입니다. 금붕어가 어항 속에 있을 때 숨을 쉴 수 있고 생명이 유지됩니다. 어항 밖에 뛰어 나온 금붕어는 죽고 말 것입니다. 물고기의 생명의 자리는 어항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자기 자리가 어디인 줄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바다 같은 은혜 아래서만 살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믿음이 없이는, 주님의 사랑이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 없음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의 자리가 하나님 안에 있음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을 때에만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만 인생의 바른 길과 행복의 길을 찾아 갈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무용지물이 있습니다. 쓸모 없는 물건이지요. 쓸모 없는 존재는 죽은 존재입니다.
세상 모든 만물이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상 모든 사람도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내는 아내의 자리, 남편은 남편의 자리, 선생은 선생의 자리, 학생은 학생의 자리가 있습니다. 교회는 교회의 자리, 성도는 성도의 자리, 직분자는 직분자의 자리가 있습니다. 지난 한해 동안 교회와 가정에서 사회에서 자기의 자리를 잘 지키며 살아왔는지요?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여러분의 자리가 내년에도 축복의 자리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는 자기 자리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게 합니다.
"내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은혜가 고마워서 수고를 많이 했지만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은혜"라는 바울의 고백을 생각해 봅시다.
인생은 세 번 태어납니다. 첫째는 육신의 탄생이고, 둘째는 영혼의 탄생이고, 셋째는 사명의 탄생입니다.
육신의 탄생은 부모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 영혼의 탄생은 하나님 은혜로 믿음 안에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명의 탄생은 어떻게 살며, 무엇을 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지 알게 되는 새로운 출발을 의미합니다.
세계적인 비디오아트 개척자이자 권위자인 백남준 선생은, 병상에서 자신의 예술 세계를 꿈꾸며, "그 동안 허송세월 한 것에 대하여 자신에게 화가 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인생에는 3무가 있습니다.
첫째로 인생은 반복되지 않습니다. 버스는 지나가면 또 오고 해는 지면 또 떠오르지만, 인생은 한번 지나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 인생은 연습(리허설)이 없습니다. 운동시합도 연습이 있고 오케스트라 공연도 연습이 있지만, 반복되지 않는 인생은 연습할 수도 없습니다. 인생은 연습 없이 사는 것입니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우리의 인생은 지울 수 없습니다. 시험 답안을 잘못 쓰면 지우개로 지울 수 있고, 약속을 지킬 수 없으면 취소할 수 있지만, 인생에는 지울 수 있는 지우개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인생은 고귀하고 아름다우며 가치가 있습니다.
운동장에는 경기를 보기 위해 표를 사고 들어가는 입장객이 있고, 극장에도 연극을 보기 위해 표를 사고 들어가는 관람객이 있지만, 인생에는 구경꾼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야만 합니다.
운동경기는 정해진 시간에 끝이 나고, 연극도 공연하는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우리의 인생은 언제 끝이 날지 잘 알지 못합니다. 반드시 결산의 날이 옵니다. 좋은 결산! 그것은 모든 인생의 꿈입니다.
내년에는 더욱 복된 은혜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구하므로 주시는 은혜를 입어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 받은 자의 3가지 증거
고전 15장 09절 ~ 11절 / 오창우목사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께서 큰 사랑 큰 은혜로 함께 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아침에 얼굴을 뵈니까 보기 좋으십니다.
어느 시골 교회의 수줍음 많기로 소문이 난 김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구역 식구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나가게 되었는데 착실하고 믿음 좋기로 소문난 김 집사가 대표기도를 하게 됐다고 합니다.
떨리는 가슴으로 앞으로 나가서, 마음을 가다듬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기도는 너무나도 간절했고 은혜가 넘쳐서 모두들 은혜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긴장해서 였을까요? 기도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김 집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하고 마쳐야 하는 데 그만 예수님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만 것이었습니다. 김 집사는 얼굴이 빨게 져 있고, 모두들 "주여, 주여!" 만 하고 있었는데 김 집사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그 때 물 위를 걸으신 그 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긴장하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이름은 잊어서는 안 될 이름입니다.
오늘 본문은 고린도교회를 향한 편지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고린도교회에는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성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방언을 하는 사람, 통역을 하는 사람, 병을 고치는 사람, 귀신을 내 쫒는 사람, 노래를 잘하는 사람, 각양각색의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많은 교회니 얼마나 좋은 교회입니까? 그런데 이렇게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주를 위해 충성하지는 않고, 자기가 받은 은사를 가지고 높고 낮음을 재고 크고 작음을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시끄러워졌습니다. 파당이 생겼습니다. 교회가 나뉘어서 논쟁이 되고 그래서 상처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사랑이 가장 중요하다고 고린도 전서13장에서 말합니다. 그래서 고전13장을 사랑장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방언을 하고 통역의 은사가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13장에서 사랑을 이야기 하고 나서 15장에 와서 자기에 대한 신앙의 고백, 자신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이렇게 살고 있노라고 은혜 받은 자의 증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 로라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오늘 본문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 받은 증거 3가지를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받은 증거로 첫번째는 겸손한 자세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낮추는 행위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잊지 않았습니다. 9절 말씀을 보게 되면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과를 다 잊어 버리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만은 '내가 허물 많은 사람인데, 나는 허물이 많았던 사람인데·····' 하면서 그 죄과를 가슴에 갖고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이 지금은 교회의 지도자요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군인 사도이지만 자기의 과거는 교회를 핍박하던 죄인이라고 솔직하게 고백을 하면서 겸손해하고 있습니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을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죄인이었고 지옥에 살았던 우리의 과거를 그리스도인들이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모두 겸손해야 합니다.
어떤 글을 읽어보니까 물고기의 IQ, 곧 지능지수는 0.3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로 옆의 동료가 낚시 바늘에 걸려 발버둥치면서 끌려가는 것을 보고도, 물고기는 그것을 잊어버린 채 또 다시 입질을 계속한다는 것입니다. 한때 우스개 소리로 우리나라의 정치인의 지능지수도 물고기와 같이 0.3에 불과하다고 했습니다. 동료 정치인이 뇌물을 먹고서 감옥에 끌려가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괜찮다' 하며 뒤돌아서서 또 다시 뇌물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IQ 0.3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영적인 지능지수는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리스도인으로의 우리는 겸손합니까?
예수를 믿기 전의 우리의 과거를 잊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지옥에 있는 죄인이었습니다. 잊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찬송가 405장 "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를 아시지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큰 죄악에서 건지신 주 은혜 고마워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하는 찬송 말입니다. 이곡은 영국의 존 뉴턴 목사님이 작사한 것입니다. “나 처음 믿은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무슨 말입니까?
존 뉴턴 목사는 청년시절, 매우 불량하고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아무리 가르치고 타 일러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그를 바르게 고치기 위해 영국의 해군에 입대를 시켰습니다. 하지만 뉴턴은 군대의 엄격하고 규칙적인 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하고 탈영을 했다가 체포되어 실컷 매도 맞고 영창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변하지 않자 화가 난 함장은 그를 아프리카 노예선에 팔아 버리는 바람에 15개월 동안 아프리카의 어느 작은 섬에 갇혀서 노예처럼 비참한 생활을 했습니다. 탈출에 탈출을 하는 중에 극적으로 영국 무역선에 구조되어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노예선에서 잡혀갔던 자신의 경험을 살려서 새로운 사업으로 시작한 것이 노예선의 선장이 되었습니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잡아다가 팔아넘기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었지요. 그러나 사람들을 팔아먹는 인신매매는 사람을 죽이는 것 이상으로 나쁜 일이 아닙니까?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바다 위에서 심한 폭풍우를 만났습니다.
그는 다 죽게 되었을 때 비로소 하나님 앞에 고꾸라졌습니다. "살려달라고 그러면 새사람이 되겠다"고 하나님은 이런 사람의 기도도 들으셨고 살아났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죄인 존 뉴턴이 변했습니다. 불량배요, 말썽꾸러기요 아주 악한 인신매매범이 예수를 믿고 목사라는 전혀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존 뉴턴 목사님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기억력이 쇠퇴해지는 속에서도 항상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내가 다른 것을 다 잊어버린다 할지라도 나는 이 한 가지만큼은 결코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과거에 너무나 큰 죄인이었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종종 설교시간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다음에 내가 천국에 가면 세 가지 때문에 깜짝 놀라게 될 것입니다.
첫째는 그곳에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그곳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놀랄 것이고,
둘째는 그곳에 있을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며,
마지막으로 나 같은 죄인이 그곳에 와 있는 것을 보고 놀랄 것이다."
한마디로 과거의 죄인이었음을 잊지 아니하는 태도, 바로 겸손함입니다. 과거를 돌아 볼 줄 아는 사람은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는 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은 바리새인처럼 자기 의가 강한 교만한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면서 반대로 세리와 창기처럼 겸손하게 자기의 죄를 뉘우치면서 회개하는 겸손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우리 자신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큰 죄인입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그런데 나 같은 죄인이 천국에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깜짝 놀라게 되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 가수 심수봉씨 아시죠?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미워요’, ‘사랑밖에 난 몰라’등 수많은 히트곡으로 사랑 받고 있는 심수봉씨는 그렇게 전도한다고 합니다.
심수봉은 상아색 그랜드 피아노 앞에서 하늘색 원피스를 곱게 차려 입고 스물셋 꽃다운 나이에 ‘그때 그 사람’을 부르며 1978년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10·26 정치현장을 목격했다는 이유로 5년간 방송 출연 금지 조치를 당했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인생입니다. 한창 열정적으로 무대에 서야 할 나이에 그녀는 족쇄에 묶여버렸습니다. 벗어날 방법을 찾던 그녀는 사주와 점술에 빠졌습니다.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나도 제 운명은 항상 나쁘더군요. 그때 오래 된 한 친구를 만나 우연히 상담을 하게 됐지요. 두 어 시간 정도였나? 마음이 편안해지더군요. 그 친구는 제게 ‘너 같은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길이 있다’고 했어요.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고.”
1985년 그녀는 충현교회에 등록하고 믿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3일 동안 눈물만 흘렸다는 그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마치 잃어버렸던 부모님을 찾은 심정이었지요. 세상에서 겪은 외로움, 서러움, 고통들이 모두 얽힌 눈물이었을 거예요. 절대자 앞에 다 내려놓으니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 없었어요.”
이후 첫 남편과 광림교회에서 결혼한 그녀는 집사 직분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곧 이혼의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외국에 나갈 때면 가끔 찬양 간증집회에 초청되기도 했지만 이혼 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교회의 집회에 일절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93년 재혼하면서 그녀는 교회와 멀어지게 됐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남편의 거부감이 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들을 키우는 데 말씀보다 더 중요한 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심씨는 남편을 이끌고 6년 전부터 한우리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평신도 중심으로 사역하는 독립교회입니다. 어릴 적 친구가 교회 장로님인데 그분을 중심으로 성도 몇 분이 성경공부를 하고 있지요. 성경공부를 본격화하면서 제 신앙도 상당히 업그레이드된 느낌이 들더군요.”
이 같은 기쁨을 나누기 위해 그녀는 홈페이지 관리자에게 ‘수봉복음’의 개설을 부탁하였습니다.
현재도 심수봉 공식 홈페이지(www.simsoobong.com)를 보면 ‘수봉복음’ 이라고 그녀가 팬들과 이야기하는 코너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는 심씨가 이를 통해 자신의 신앙이 한층 성숙되는 것을 경험하고 팬들에게도 성경 이야기를 하고 싶어 만들었다고 합니다.
“사실 그 방 오픈 할 때 좀 힘들었어요. 어떻게 그런 방을 공식적으로 공개할 수 있느냐? 콘서트 때 찬송을 앙코르로 부를 수 있느냐? 실망했다. 는 등 정말 비난이 심했지요. 그런데 심하게 몰아붙인 분들을 제가 전도했어요. ‘수봉복음’에서 함께 교제하면서 교회에 출석하게 됐고 지금은 얼마나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는지 몰라요.”
“제가 가수이다보니 십일조 액수가 클 때가 많잖아요. 자랑하고 싶은데 우리 교회는 헌금 봉투에 이름을 밝히지 않더라고요. 순간 서운한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바로 회개했지요. 제가 바로 철두철미하게 계산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바리새인의 모습이잖아요.”
심씨는 앙코르 때 마지막으로 부르는 곡이 바로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잃었던 생명을 찾아 광명을 얻었다'는 것이 자기의 신앙의 고백이라고 간증을 했습니다. 험난했던 지난 세월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었다면서 전화위복을 주신 주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지나간 삶을 돌이켜 보면 우리도 역시 큰 죄인이었습니다. 용서받기 어려운 죄인이었습니다. 누가 누구를 정죄하고 비판을 한다는 말입니까?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셔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새로운 생명의 자리에까지 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과연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겸손한 태도가 바로 은혜받은 사람의 증거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받은 증거의 두 번째는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고마워하는 마음으로 현재의 상황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상황에 대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10절 상반부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 있게 하심을 감사해야 합니다.
외부로 보내는 편지가 모두 검열 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교도소의 죄수가 아내로부터 편지를 받았습니다.그의 아내는 편지에서 “여보, 텃밭에 감자를 심고 싶은데 언제 심는 게 좋죠?”하고 물었습니다.그는 이렇게 답장을 써서 보냈습니다.“여보, 우리 텃밭은 어떤 일이 있어도 파면 안돼요. 거기에 내 총을 모두 묻어놓았기 때문이오.”
며칠이 지난 후 그의 아내에게서 또 편지가 왔습니다.“수사관들이 여섯 명이나 와서 우리 텃밭을 구석구석 파헤쳐 놓았어요.” 죄수는 즉시 답장을 써 보냈습니다. “이제 됐소.지금이 감자를 심을 때요.”
감옥에 있더라고 살아있는 자체가 감사한겁니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다는 겁니다.
마이너스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플러스 질문을 해야 합니다.
2002년 영국 BBC 방송이 영국인 100만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설문 내용은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는 누구인가?’ 이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사람은 윈스턴 처칠이었다.
그러나 그의 학창시절 생활기록부는 엉망이었습니다. “품행이 나쁘고 믿을 수 없는 아이. 희망이 전혀 없으며 다른 아이들과 싸움질만 일삼는 문제아….” 성적도 초라했습니다. 지리 점수는 겨우 낙제를 면할 정도. 그는 3수 끝에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셰익스피어를 제치고 영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그의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그는 철저한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처칠의 회고록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처칠만큼 많은 배신을 당한사람도 없더라구요.
그러나 처칠은 전쟁터에서나 국회에서 늘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이런 용기 있는 믿음이 그를 가장 존경 받는 인물로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무한대의 능력을 주십니다. 기도는 ‘희망이 없던 소년’을 ‘희망을 주는 지도자’로 변화시켰습니다.
사도 바울은 본시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변해서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영광스러운 직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전적으로 예수님 때문에 라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오늘 말씀 속에서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내가 무슨 직분을 갖고 있는지를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숨쉬고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할 수밖에 없는 사람은 기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은 본시 소문난 깡패였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조직폭력배의 우두머리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새 사람이 되고 난 뒤 평소에 자기가 괴롭히던 사람을 찾아다니면서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러분! 과거에 여러분을 괴롭히던 김익두는 이미 죽었습니다. 여기 서 있는 사람은 새롭게 거듭난 김익두 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저처럼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십시오."
하루는 어떤 아주머니가 그를 한 번 시험해 보고 싶었습니다. "정말로 김익두가 죽었는지 어디 한 번 확인해 봅시다." 그러면서 그는 바가지에 찬물을 가득 담아서 지나가던 김익두의 얼굴에 끼얹었습니다. 그러자 김익두는 빙그레 웃으면서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지금도 아주머니가 그 자리에 살아 계신다는 것이 김익두가 죽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김익두목사는 자신이 목사가 된 것,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일군이 된 것만으로도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그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항상 확신에 찬 음성으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만 믿으면 저처럼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나에게 직분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군으로 기쁘게 사는 그 모습을 보고 감화를 받아 예수님 앞으로 몰려오게 된 것입니다.
박주영선수가 우주베키스탄과 경기에서 골을 넣었잖아요. 골을 넣으면 바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스포츠 의학하는 의사들이 걱정을 하는 것은 운동을 하다가 바로 무릎을 꿇게 되면 무릎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지 말라고 해도 무릎을 꿇잖아요. 박주영선수의 꿈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기 때문입니다. 이영표 선수가 개인 홈페이지에 올린 글입니다.
『저의 꿈은 어려서부터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나름대로 고된 훈련과 많은 시련을 겪은 후 이 꿈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경기장에서 골을 넣거나 중요한 경기에서 이겼을 때, 저는 짜릿한 기쁨과 즐거움을 느꼈고 관중의 응원과 엄청난 함성에 자긍심과 성취감을 맛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항상 제 주위에 계셨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주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자신의 목적만을 위해 살았던 제게 주님은 내가 누군지, 어디로 가야하는지,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주신 기쁨과 행복은 그 동안 축구를 통해 얻었던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하루하루 주님의 사랑 때문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주님의 존재를 알지 못한 체 힘들게 살고 있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여러분들을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어떠한 상황에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 때문임을 믿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힘이 납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업을 하면서 "예수믿는 사람입니다." 하면 손해 볼 것 같습니까?
우리나라 연예인들이 예수믿는 사람이 많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이를테면 2004 연예인 시상직장에서“하나님께 영광을” 지난해 말 방송사 시상식 현장에서 하나님께 수상의 영광을 돌린 기독 연예인들의 소감이 이어져 눈길을 끌었습니다.
가장 감동을 준 연예인은 2003년에 이어 10대 가수 대상을 2연패한 이수영씨가 31일 열린 시상식에서 눈물만 흘리며 “하나님 감사합니다”고 외쳤습니다.
‘발라드의 천사’로 불리는 이수영은 평소에도 “큰 힘이 되고 기쁨이 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자신의 신앙을 떳떳이 밝혀왔습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를 시작하는 이수영은 일찍 부모를 여의었지만
“늘 따뜻하게 다가와 위로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외롭지 않다”고 고백했습니다.
지난해 드라마 ‘불새’에서 악녀로 나와 인기를 끈 정혜영씨 역시 독실한 신앙인입니다.
지난해 10월 가수 션과 결혼하면서 그는 상을 받은 뒤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면서 “특히 나를 위해 매일 기도해주는 오빠 션에게 고맙다”고 말했습니다.
또 가수이면서 연기자로 나선 유진은 “나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실망시키지 않는 딸이 되겠다”고 시상식장에서 약속했습니다.
탤런트 최민수는 다른 연기자들이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을 보고 수상 소감에서 “저 역시도 마음속에 하나님이 계십니다”고 말했고 오랜만에 억척스런 아줌마 연기로 인기를 끈 오연수 역시“제 마음속에 계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올해 시상식에서는 기독 연예인들의 감사 멘트가 그 어느 해보다 풍성했습니다. 이들 외에도 김석훈, 김성택, 조인성과 개그맨 박수홍, 가수 린, 조PD 등이 수상 소감 첫머리에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고백했습니다.
살아있는 이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지요.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나 된 것..하나님이 내게 주신 직분,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사명은 내가 잘나서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우리 모두가 감사해야 하시기를 바랍니다.
은혜받은 증거 세번째로는 충성하는 일꾼입니다.
소망이 있는 미래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은 충성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살아온 과거가 있고, 살고 있는 현재가 있으며, 살아야 할 미래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다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이 사도바울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겸손해 졌습니다. 오늘을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삶을 위해서 사도바울이 어떤 것을 선택했느냐? 충성했습니다.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함께 있을 것인데" 이 말씀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봤습니다. 과거를 생각할 때에 믿음입니다. 오늘을 생각할 때에 사랑입니다. 미래를 생각할 때에 소망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자기의 미래를 어떠한 심정으로 살아가기를 바랐습니까? 10절하∼11절입니다.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 로라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더 많이 수고한 것이 뭐겠어요?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시116:12에 기자의 말씀처럼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그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살고자 했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내가 무슨 일을 하지 말아야 할까 ?"하고 자문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무슨 일을 해야 할 것인가?"하고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김천의 한 설렁탕집 이야기입니다. 그 집은 항상 최고의 재료를 썼습니다. 예수님이 드셔도 만족해하실 설렁탕을 끓인다는 것이 집 주인의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주재료인 뼈와 고기는 물론 양념과 무, 배추도 가장 좋은 것을 삽니다.
그런데 어느 날입니다. 국물이 뽀얗지 않고 누렇게 됐습니다. 24시간은 끓여야 되는데 큰일이다 싶어 뼈를 대주는 사람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저런 죄송합니다. 물건이 바뀌었나 봅니다. 사장님, 오늘만 크림을 타시죠,” 크림을 타면 국물이 뽀얗게 된다는 것은 설렁탕집 주인도 익히 들어온 터였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크림을 타는 대신 가게 문에 글을 하나 써 붙이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설렁탕 재료가 좋지 못해서 쉽니다. 죄송합니다.” 고객을 예수님처럼 모시는 이 정직한 마음과 주인의 행동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하지 말까 자문하지 말고 오히려 내가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 어떤 사도보다도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말씀했습니다. 그는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매도 수도 없이 맞았으며, 감옥에도 여러 번 갇혔습니다. 생명의 위협도 수도 없이 많이 받았습니다. 때로는 춥기도 하고 굶주리기도 하고 헐벗기도 했습니다.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이 모든 수고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습니다. 내가 수고하는 것도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겁니다. 얼마나 역설적입니까?
우리는 무엇이든지 잘 되고 형통해야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으로 생각합니다. 건강했다가 회복되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실패했다가 성공하고 난 뒤에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처럼 생각합니다.
은혜 받은 증거 세 가지로 첫째는 겸손입니다. 지난날에 우리들이 다 죄인이었다는 것을 잊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 번째는 감사입니다. 우리 믿음 잃지 않고 이시간 주의 전에 나오는 것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이 많습니까? 여러분 살아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내게 주신 은혜 무엇으로 보답할꼬 하며 내가 모든 일을 하는 것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라 생각하며 겸손하며 맡은 바 일을 잘 감당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일이 현충일입니다. 나라를 위해서 목숨 바친 순국선열을 추모하는 날입니다. 이분들이 있었기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유럽이나 미국을 나가도 대한민국 국민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좁은 땅덩어리가 있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자원이 없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세계 경제의 10대국가로 만들었습니다.
은혜 받은 증거 세 가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충성하면서 기뻐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로 함께 하실 줄로 믿습니다.
은혜가 넘친 한 해
고전15장 09절 ~ 11절 / 문기태목사
오늘은 송년 주일입니다. 2002년도가 벌써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 한해를 돌아볼 때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지겹고도 힘든 한 해였습니까? 아니면 감격스럽고 축복된 한 해였습니까? 아마도 많은 위기를 통과하며 괴로움과 어려움을 감당해야만 하는 분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참새 시리즈' 유머를 들어 본 일이 있습니까? 전기줄에 참새 한 쌍이 앉아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냥꾼이 총을 쏘았습니다. 사냥꾼의 총에 맞아 마누라 참새가 전기줄에서 떨어지면서 남편참새에게 유언을 합니다. 뭐라고 했을까요? 그게 시대마다 다르답니다. 그런데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1950년대에는 죽으면서 뭐라고 말했는가 하니 "부디 몸조심하시오" 그랬답니다. 60년대에는 "먼저 가서 미안하오", 70년대에는 "내 몫까지 살아주", 80년대에는 "날 두고 가지마오", 90년대에는 "아무리 급해도 내 장사는 치뤄주고 장가드시오" 그랬답니다. IMF 이후에는 "혼자서 욕 좀 봐요. 나 먼저가요." 여러분 얼마나 살아가는 것이 힘이 들면 그런 말이 다 유행하겠습니까? 우리는 그렇게 힘든 한 해를 지나서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2002년도를 보내는 것이 좋겠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갖고 이 한 해를 마무리하기를 원하실까요?
백남준이라고 하는 예술가가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탑클래스에 있는 한국 예술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그가 거기까지 정상에까지 올라가는 동안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잠깐 입원해서 병중에 있을 때 그는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허송세월 한 것에 대하여 자신에게 화가 났다." 허송세월한 데 대하여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랬어요. 그렇다면 여러분, 도대체 얼마나 부지런하게 살아야 화가 안 나는 것입니까?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그만하면 잘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백남준 선생의 이 말을 다시 한번 새겨보세요. 여러분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십니까? 부지런을 다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십니까? 너무나 부끄럽게 산 시간이 아닌가요? 보다 더 많은 할 일을 하지 못한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뭔가 많이 잘못한 것이 많지 않은가요? 그래서 후회속에 연말을 맞는 것은 아닙니까? 율법적 관점에서 보면 끝이 없는 것입니다. 자기 비판도 끝이 없는 것이에요. 원망과 불평, 좀더 나아가서는 율법적 관점에서는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맘때만 되면 후회를 많이 합니다. 허송세월을 보냈다고 시간을 낭비하고 기회를 많이 잃어버렸다고 안타까와합니다. 그럼에도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없음에 안타까와하며 속상해합니다. 그리고 잘못을 저지른 것들 때문에 부끄러워하고 괴로와합니다. 물론 그런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뒤를 돌아보며 탄식만 하다보면 아주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한 해를 돌아보면 복 받을 만한 대단한 일 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큰 업적을 이룬 것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전적으로 은혜가 아닙니까? 은혜 아닌 것이 없어요. 우리가 잊고 있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도와주셨어요. 어리석음을 많이 막아주셨고 우리에게 미친 화를 복으로 바꾸어주시지 않았습니까? 사단에게 속아 어리석음으로 나아갈 때 깨닫게 하시고 돌아서게 하신 때가 많지 않습니까?
무엇보다 우리는 한 해를 돌아보며 주님께 받은 은혜를 깨닫고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함을 안고 이 해를 마무리하는 것이 아름다울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한 해동안 무엇을 이루셨습니까? 한 해동안 수고하여 열매를 맺은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만난 위험과 시련을 어떻게 통과하셨습니까? 많은 사건들속에서 주님께서 함께하시고 부어주신 은혜를 기억할 수 있습니까?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하여 지나간 시간들을 돌아보며 후회하거나 죄책감에 괴로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은혜만을 바라보며 감사하며 자랑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여러분도 바울을 본받아 2002년도를 멋있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누가 물어보면 금년은 은혜가 넘친 한 해 였다고 가장 놀랍고 복된 한 해였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은혜란 무엇입니까? 은혜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너무 막연하게 아는 것 같아 쉽게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음식을 잘 만듭니다. 온 세계적으로 '중국 음식' 하면 아주 유명합니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중국 사람은 거의 100%가 다 남자가 음식을 요리한답니다. 뿐만아니라 시장 보는 것까지 남자가 다 합니다. 좀 귀찮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그 사회는 다 그렇게 삽니다. 그런가 하면 그정도는 괜찮은데, 음식을 만들어 주면 그 부인이 그냥 고맙다고 먹어주면 좋겠는데, 뭐 잔소리가 많답니다. '뭐 그따위로 했느냐? 맛이 이게 뭐냐?' 남자들이 정성껏 음식을 만들고는 듣는 부인의 잔소리가 참 견디기 힘들어 한답니다. 그러니까 우리 여기 있는 남자분들 오늘 집에 가서 부인께 엎드려 절하세요. 참으로 감사합니다.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밥투정하면 안됩니다. 생각해보세요. 자, 아무튼 한국은 여자가 하지만 중국은 남자가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떤 중국 사람이 아주 자랑스럽게 얘기를 했습니다. "나는 잔소리도 안듣고 늘 아내가 고맙다고 하고 가끔 아내가 음식을 장만해 주기도 하는데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친구를 아주 몹시 부러워하고 묻습니다. "도대체 비결이 무엇이냐?" 비결은 이분이 한국 여자하고 결혼한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남자인 자기가 해야될 일을 남편이 좀 늦든가 하게되면 부인이 해줘요. 또 바쁘면 또 시장도 봐다줍니다. 당연히 자기가 해야될 일을 부인이 해주고 있으니까 남편의 입장에서는 전폭적으로 은혜입니다. 이런 고마운 일이 어디 있어요. 또 그런가하면 한국 여자의 입장에선 또 어떠냐?하면 요리는 당연히 자기가 할 일이요, 시장보는 일도 자기 일인데 이걸 남편이 도와주고 있으니 아니 남편이 전적으로 해주니 얼마나 고맙겠어요. 게다가 중국 사람의 좋은 솜씨로다가 날마다 맛있게 음식을 해주니 이처럼 고마운 일이 없어요. 부인의 입장에서도 이것도 전폭적으로 은혜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이게 율법이냐? 은혜냐?를 잘 설명해 줍니다. '마땅히 내가 할 일, 해야된다, 의무다' 그래서 억지로 하면 이건 율법입니다. 그런데 내가 해야할 일인데도 불구하고 또 다른 이가 해야될 이유가 없는데도 내게 해 주었어요. 그러니 이렇게 고마운 일이 어디 있어요. 은혜죠.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율법으로 생각하고 살면 불행입니다. 그러나 은혜를 깨닫고 살면 행복합니다. 행복은 그 마음속에서 율법적으로 생각하느냐, 은혜적으로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따라서 송년의 시간에도 율법적으로 의무를 다 이행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며 자책하는 것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이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자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떤 은혜를 묵상하여야 할까요?
1. 내가 오늘의 나 된 것은 주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자주 우리 자신이 슬기로와서 성공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자신이 재주가 뛰어나고 남보다 탁월한 면이 있어서 오늘의 내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부지런하고 열심이 있고 머리가 좋아서 남보다 더 성공하고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나의 나된 것은 주님의 은혜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이 교회를 핍박하는데 앞장서고 죄인중의 괴수임에도 사도의 반열에 든 것은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래도 '자신이 남보다 더 많이 공부하였기 때문이다. 또는 로마 시민권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율법에 능통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도 항상 같은 고백을 해야 하겠습니다. 목사로, 안수집사로, 서리집사로 또는 각 팀장이나 목자로 그외 각각 존귀한 직분을 맡게 된 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사회에서 성공하고 가정이 평안한 중에 여기까지 이른 것도 주님의 은혜입니다. 부유하게 된 것도,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게 된 것도, 건강하게 지낸 것도, 자녀들이 잘 자라준 것도 다 주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감사하며 같은 고백을 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의 은혜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을 잊는다면 큰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금방 잊기때문에 얼마나 많은 문제가 생기는 지 모릅니다. 자기가 대단해서 뭔가를 이룬 줄 알고 자기 자랑에 도취하고 교만해집니다. 교만해져서 자신을 대단하게 여기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며 삽니다. 말을 함부로하고 주위 사람들에 큰 상처를 입히면서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잘 나갈 때 특히 나의 나된 것은 주의 은혜라고 더욱 고백해야 합니다. 탈없이 평안하게 지낼 때 주의 은혜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되었다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난중에도 주의 은혜로 어려운 중에도 이만큼 견뎌내며 여기에 이르렀다고 고백할 수 잇어야 합니다.
영국에 목사님이면서 찬송가 작가인 존 뉴튼이라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부르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하는 그 405장 그것을 작사한 분입니다. 그 분의 글에 아주 유명한 말 한마디가 있답니다. 내가 만일에 천국에 가게되면 틀림없이 깜짝 놀랄 일이 세 가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그 사람은 틀림없이 천국에 와 있으리라고 했는데 와 보니까 없어요. 꼭 올 수 있다고 생각한 분이 천국에 없더랍니다. 또 한가지는 저런 사람은 천국과는 관계없다. 영영 구제 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 생각했는데 이 사람이 천국에 와 있더래요. 또 한가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구원받을 만한 사람이 못되는데 내 자신이 천국에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대요. 이렇게 세 가지를 놀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은 전적인 은혜지요. 사도바울은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나됨은 그 자체가 근본적으로 본질적으로 은혜라고요. 오직 은혜라고. 그런 확실하게 구체적으로 은혜를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를 은혜로 아는 은혜를 받았다는 겁니다. 여러분, 환경을 바꿔 놓는다고 은혜가 아니에요. 은혜란 깨달음에 있는 거예요. 은혜를 은혜로 깨닫는 은혜가 중요한 것이요. 그걸 깨닫게 하신 것이 중요한 것이에요. 은혜를 은혜로 안다는 게 중요합니다.
저는 2002년도를 보내면서 새로운 경험도 많이 했습니다. 힘든 일도 참 많이 겪었습니다. 그리고 창원시 기독교연합회장을 하면서 많은 사람도 만나고 어려운 일도 많았습니다. 돌아보면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지나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서 있습니다. 힘들 때도 많았지만 주님의 은혜가 넘쳤기에 다 감당한 줄로 믿습니다. 내가 힘들어하고 쓰러질 것 같으니까 주님께서도 긴장하시고 더 세고 큰 은혜를 부어주셔서 능히 감당하게 하신 것으로 믿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그런 은혜를 경험하며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감당치 못할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로, 성전과 성도로 구별하시고 귀한 직분 주시고 잘 감당케 하신 은혜를 찬양합시다. 할렐루야!
2. 내가 많이 수고한 것도 주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주를 위해 많이 수고하고 남보다 더 헌신하였을 때 조심하여야 합니다. 우리중에 헌금 많이 내고 시험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의 말씀에 감동을 받고 자신은 어려운 중에도 힘을 다해 드릴 수 있는 최선을 드렸는데 가만히 보니까 자기보다 더 부유하고 신앙생활도 오래하고 교회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처럼 힘껏 하지 않습니다. 그럴수가 잇느냐?고 흥분합니다.
교회안에서 힘을 다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화를 내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자기는 주님과 교회를 위해 마땅히 그렇게 수고해야 하는 줄 알고 궂은 일,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뛰어다니며 봉사를 했습니다. 교회 차량으로 봉사하여 차없는 분들 교회오는데 불편없도록 시간지켜 실어다주고 또 빗자루, 걸레자루 들고 교회당 지저분한곳 청소하고 하다보니 지치고 힘이 들거든요.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니 할 만한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 것 같습니다. 나만 열심인것 같고 나만 바보된 것 같이 생각됩니다. 그러니까 억울한 생각이 들고 가만히 있는 사람들이 미워지고 슬그머니 화가 나서 불평을 터트리게 됩니다. 그러니 안한 것만 못하게 되었습니다. '안하고 가만히 잇었으면 미워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불평하다가 마음에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인데...' '괜히 열심히 봉사하고 은혜를 쏟았다.'하고 생각이 드니까 혼란스럽게 됩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시험들지 않기 위해서 헌금도 안 하고 헌신 봉사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야 합니까? 그럴수는 없습니다. 그렇게하면 우리를 가만히 잇도록 붙들어놓으려는 사단의 술책에 말려드는 것입니다. 열심히 수고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바울처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수고하여야 합니다. 바울처럼 고생도 감수하고 목숨을 다하여 주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그리고 바울처럼 고백하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바울이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바울은 내가 수고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의 은혜로 주님이 주신 힘으로 수고했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이렇게 고백하지 않으면 더 많이 수고하고 시험들게 되어 있습니다.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힘을 다해서 주님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내가 한 것 같지만 사실은 내가 아니요. 주님이 내안에서 하신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헌신할 수 있도록 감동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헌신할 수 잇도록 물질과 건강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헌신할 수 있도록 용기와 지혜를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능력을 공급하셨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수고할 수 있었고 그로인해 주의 나라에 상급이 쌓이고 주의 몸된 교회가 더 건강해지고 힘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수지 맞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더 많이 수고한 사람입니다. 내것 같지만 사실은 주님의 것을 가지고 내가 인심쓰고 수고하여 내가 상을 받고 인정과 존경을 받게 되엇으니 복이 아닙니까? 생각하기에 따라 크게 감사할 일이 아닙니까? 불평할 일이 전혀 아닙니다. 화낼 일도 전혀 아닙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싱글벙글할 일입니다.
또한 내게 주신 은혜가 헛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많이 수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셨는데도 여러분이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았거나 여러분의 마음이 길가 밭이나 돌짝 밭, 또는 가시떨기 밭같아서 사단이 받은 은혜를 빼앗아 가거나 믿음이 자라지 못하도록 방해하거나 하여 주의 은혜가 헛되게 되었다면 여러분은 아무 수고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베푸신 은혜가 헛되지 않았기에 여러분이 봉사할 수 있엇고 헌금을 드릴 수 있었고 전도할 수 있었고 순종할 수 잇었으며 한 해동안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금년 한 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수고한 것을 인하여 2002년도에도 은혜 많이 받았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보함이라고 하는 그런 작가가 어떤 때 자기 친구네 집에 가서 한 일주일동안 머물러야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사랑하는 친구가 당신의 집처럼 생각하고 그저 아랫방이든 윗방이든 냉장고든 뭐든 다 마음대로 먹기도 하고 쓰기도 하면서 지내십시다. 그런데 단 당신이 있는 맞은 편에 있는 방, 그 한 방은 절대로 문을 열지 말고 또 그 방을 들여다보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아 이게 궁금해 못 견디겠어요. 도대체 그 속의 뭐가 있나. 하지만 친구의 부탁이니까 약속을 지켜가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중에 무슨 소리가 들리면서 잠을 깼어요. 바로 그 방에서 소리가 나는 거예요. 호기심에 자기 침실을 나와서 보니까 마침 저쪽 방이 문이 조금 열려있어요. 그래서 자기가 연 건 아니고 열려 있기에 그 문틈으로 그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잠깐 안을 들여다 볼 수도 있었습니다. 이 사랑하는 친구의 어머니, 어머니 되는 분이 침대에 걸터앉아서 무릎을 꿇고 그 침대에 천장만 보고 누워 있는 한 20살 난 청년이 있어요. 그 앞에서 기도하면서 눈물로 호소를 합니다. "내가 너를 낳았고 내가 네게 생명을 주었다. 내가 돌보았고 오늘까지 정성을 다했노라.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네게 끼친 사랑을 되돌려 받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랑을 느끼고 그저 한 번 웃는 얼굴을 보여다오. '나는 이렇게 사랑을 받아서 행복합니다' 하고 빙그레 한 번 웃음을 보여다오." 그리고 애타게 부르짖고 있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고 사는데 기뻐할 줄을 모르고 행복할 줄도 모른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답답해 하실 일이 아닙니까? 여러분 자녀들을 위해서 수고 많이 하잖아요. 내가 정성을 다했으면 그저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이래 감사합니다" 그리고 행복해 주었으면 좋겠는데 밤낮 질질 짜고 있잖아요. 돌아앉으면 원망만 하고 말이지. 심지어는 나를 왜 낳아주었냐고 원망하고 말이지요. 이게 얼마나 큰 죄가 됩니까? 은혜를 은혜로 느끼지 못하는 것, 참으로 불행한 일이죠. 사도바울을 생각합니다. 빌립보 2장에서 말합니다. 너희 믿음과 재물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기뻐하리라. 은혜에 충만하고 보니까 이대로 피를 쏟고 죽어도 나는 좋다, 이래요. 나는 좋다. 나는 행복하다. 은혜를 깨닫고 은혜로 충만하게 감격해서 사는 거 그것이 바울의 은혜에 대한 느낌이었어요. 그런 바울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고 사랑하셨을 것인가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여러분 2002년도를 돌아보면서 바울의 심정과 같이 우리도 은혜를 깊이 깨닫고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넘침 덕분이다. 라고 고백할 수 잇기를 바랍니다. 더 많이 수고할 수 있게 함께하시며 능력 주신 주님께 기쁨으로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새 해에는 더 큰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