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근’, ‘여근’이라는 ‘교양’이 철철 넘쳐흐르는 ‘학술용어’ 버리고 ‘자지’, ‘보지’를 당당히 말하자.
고→곳→좃→젓이 하나같이 솟아오른 것, 뻗쳐 있는 것을 가리킨다는 말이다.
‘자지’는 조(좃)의 ‘아지’(아기)다. ‘아지’는 송아지, 망아지, 강아지를 떠올리면 곧 알 수 있다. ‘조아지’의 준말이 ‘자지’다.
불두덩에서 솟았으되 아직 어려서 작게 솟아오른 것이 ‘자지’다. 옛날에는 아이들 것만 ‘자지’라고 불렀다.
‘보지’는 어떤가? ‘보아지’의 준말이다. ‘보’는 감싸는 것이다. 아기를 감싸고 있는 데를 ‘자궁’이라는 점잖은 말로 눈가림하지 않고 우리말로는 ‘애기보’라고 불렀다.
작은 보자기여서 ‘보지’다. 이것도 아직 덜 자란 ‘아기보’다.
그러면 ‘좃’의 짝이 되는 우리말은 무엇인가? ‘씹’이다.
이 말에는 다른 뜻이 없다. ‘씨’를 받아들이는 ‘입’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씨+입’→‘씹’이다.
언니를 언니라고 부르지 못하고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보다 더 서러운 사람은 자지를 자지라고, 보지를 보지라고 입에 담지 못한다.
아이들은 서너 살 무렵부터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저절로 자지 보지를 입에 올린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호들갑을 떨면서 이 말을 아이들이 입 밖에 내지 못하게 말문을 막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우리말을 말 같지 않게 여기고, 힘센 나라에서 들여온 알아듣기 힘들고 소리내기 힘든 말만 우러르는 ‘먹물’들이 예로부터 이 나라를 쥐고 흔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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