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0일(주)
* 시작 기도
(단 5:25) 기록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메네는 끝났다, 데겔은 모자라다, 바르신은 나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자기를 그 위에 세운 벨사살 왕은 끝이 나고 메데와 바사로 나뉘어 다리오가 메데의 왕이 되었습니다.
주님, 누구에게나 끝은 있습니다.
저 역시 하나님 앞에서 저울에 서면 입김 같아서 한참 모자라 부끄럽기 그지없어 어찌하면 좋겠는지요?
나의 행함으로는 그 무엇도 주님의 심판 앞에서 보탤 것이 없사오니 나는 그저 불의한 청지기와 같이 주님의 은혜만을 바라보며 구할 뿐입니다.
창세전 언약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나의 구원은 내게 있지 않고 오직 주님께 있습니다.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의 보혈로 나를 씻어 정결한 주의 신부로 세워주소서.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오늘 주의 날이오니 주님과 함께 하는 연합의 날이 되게 하소서.
나는 죽고 예수로 부요한 진정한 주의 날임을 고백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갈 2:1-10
제목 :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1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2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3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5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 나의 묵상
바울은 물리적인 시간 안에서는 30대 초반에 유대교인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는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구원의 시점은 물리적인 시간을 초월한 창세전 곧 영원전이며 육신적으로 태어나기 전이다.
(엡 1: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딛 1: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
따라서 구원받았다는 시점을 물리적으로 말하라고 하는 구원파의 주장은 거짓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인 구원의 시점이 아니라 내가 언제 구원을 깨달았는가이다.
(갈 1:16절)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우리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 즉 복음을 깨달았을 때를 말한다.
바로 이 때가 창세전에 계획되고 모태로부터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때이다.
따라서 계시된 복음을 아는 자는 모태로부터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 받은 자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구원의 은혜는 실로 부요하다.
바울의 경우 30대 초반, 그가 기독교인으로 예수를 영접하기 전까지는 얼마나 악한 일을 많이 하였는가?
물론 하나님을 위한다는 미명하에 저지른 악행들이지만 말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고 잡아다 옥에 가두는 그런 일은 곧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일에 직접 동참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한 번 보라.
그렇게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고 심지어 스데반 집사가 돌로 맞아 죽는 현장에서 증인으로 그들의 옷을 지켜주는 역할까지 하였다.
그것은 곧 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는 일에 둘째가라면 서운해 할 정도의 열심당원이었던 것이다.
(빌 3:4-6)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이처럼 그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율법의 행위자요 전수자였다.
그리고 이로 인하여 예수를 박해하고 그의 성도들을 사형장의 이슬과 같이 만드는 일에 앞장섰던 이 사람, 바울은 세상적인 관점으로 보면 도무지 용서 받을 수 없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그런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세우심을 받아 이방인의 사도로 쓰임받은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런 죄라면 나 또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이다.
바울은 자기의 신념에 그것이 옳은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 신념을 따라 행하였다.
하지만 나는 육신으로 세상을 살면서 옳지 않은 일인 줄 알면서도 그것을 행하여 온 자이다.
그런데 바울과 나의 차이점은 바울은 자기의 신념에 따라 드러나게 행하였고, 나는 드러나지 않게 행하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나를 겉으로 평가할 때는 꽤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평가를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나와 하나님은 안다.
내가 얼마나 더럽고 추하며 죽기에만 합당한 자인지를 말이다.
이런 내가 지금 주의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되고 또 선교사가 되어서 생명을 살아가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이는 도무지 나의 능력이나 의로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설명이 안 되는 대목이다.
이처럼 죄인 중에 괴수인 나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죄인으로 정죄하시고 죽이셨다.
그 대신 나를 의인으로, 무엇보다 당신의 아들로 삼으셨다.
그렇기에 나는 예수님짜리 인생이다.
마트에 가면 모든 물건에 가격표가 붙어 있다.
그것은 그만한 가치를 돈으로 내고 사라는 것이다.
그래서 천 원짜리 과자가 있으며 100만 원짜리 핸드폰이 있는 것이다.
이런 과자나 핸드폰을 천 원짜리, 100만 원짜리라고 하는 것은 그 물건 안에 그 만한 가치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복음을 통하여 아들의 생명을 얻은 우리들은 얼마짜리 인생인가?
우리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지옥의 자식이요 멸망 받을 인생이었다.
아니 우리는 죄와 허물로 이미 죽은 인생이다.
(엡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창세전 언약을 신실하게 이행하기 위하여 그런 나와 우리를 살리시고자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신 것이다.
그 무지무지한 고통과 아픔을 감내 하시면서까지 말이다.
나를 예수님의 피값으로 사신 나의 소유권은 하나님께 있다.
(고전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나는 주님의 피로 맺은 형제요 하나님의 아들이다.
또한 내 몸은 주님의 피값으로 사신 주의 성전이다.
따라서 나의 가치는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인 ‘예수님짜리’이다.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나는 천 원짜리 과자도, 100만 원짜리 핸드폰도 아니다.
나는 예수님짜리 인생이며 돌이킬 수 없는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이다.
오늘도 이 진리 안에서 나에게 이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목숨 걸고 수고하신 바울과 같은 사도와 선지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 말씀에 복종하시고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라는 사실이 나를 들뜨게 한다.
이 모든 일을 이루신 주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려 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 역시 이 세상, 만물 안에 속한 하나의 존재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그런 만물 안의 존재물들과 구별하셔서 내게 생명을 주셨으니 이 어인 일인지요?
이게 웬 사랑이며 웬 은혜입니까?
내가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고 깨달을 수도 없는 이 놀랍고도 큰 비밀을 주께서는 드러난 비밀로 알려 주시고 결코 감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러난 비밀을 아직도 알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오니 저들에게도 긍휼을 베푸사 이 드러난 비밀을 깨닫고 창세전부터 영생을 얻었다는 사실 앞에 감사와 찬송이 울려 퍼지게 하옵소서.
고난 가운데 있는 주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붙들어 주소서.
오히려 이런 고난을 통하여 주님의 더 깊은 사랑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하여 말씀의 교제를 통하여 그 생명 속으로 들어가는 믿음의 신실한 종들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