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유난히 빨개지는 사람이 있다. 이처럼 술을 마신 후 얼굴이 붉어지는 현상을 ‘알코올 플러시 반응(Alcohol flush reaction)’ 또는 ‘알코올성 홍조’라고 부른다. 알코올 플러시는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발생률이 높은데, 한국인의 경우 10명 중 3명은 알코올 플러시 반응을 보일 정도다. 알코올 플러시 반응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이며, 신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자.
한국인 10명 중 3명은 알코올성 홍조 반응을 보인다 |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알코올 분해 효소 부족하면 ‘알코올 플러시’ 나타나
술을 마신 후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들은 유전적으로 알코올을 분해하는 효소가 부족할 확률이 높다. 술의 주요 구성 성분인 에탄올은 간에서 분비되는 알코올분해효소(ADH)에 의해 ‘아세트알데히드(Acetaldehyde)’라는 독성 물질로 변한다. 이렇게 생성된 아세트알데히드는 알데히드분해효소(ALDH)에 의해 인체에 무해한 아세트산으로 변하고, 아세트산은 다시 이산화탄소와 물로 분해되어 몸 밖으로 배출되는 것이 일반적인 알코올 대사 과정이다.
알코올 플러시 반응은 대부분 이러한 알코올의 대사 과정에서 유전적으로 ALDH가 결핍된 경우 발생한다. ALDH가 부족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체내 아세트알데히드가 아세트산으로 분해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아세트알데히드는 피부에 염증물질인 히스타민의 분비를 촉진하는데, 히스타민은 혈관을 팽창하는 역할을 해 혈액이 얼굴로 몰리면서 빨개지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술을 마시는 중 심장이 빨리 뛰고 구토가 나오거나, 술을 마신 다음 날 두통과 같은 숙취를 유발하는 주범도 바로 이 아세트알데히드다.
아세트알데히드 1급 발암물질로 분류돼…60여 가지 질병 유발 가능성
현재까지 음주와 연관돼 있다고 밝혀진 질병의 종류는 60가지가 넘는다. 특히 ALDH가 부족한 사람이 술을 마시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체내 아세트알데히드 농도가 높아져 건강에 더욱 해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진들은 알코올 플러시가 있는 사람은 알코올로 인한 독소의 분해가 더딘 탓에 소량의 술도 해로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나 아세트알데히드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장기는 간이다. 체내에 유입된 알코올의 90% 이상은 간에서 분해되기 때문이다. 2주간 매일 알코올 60g, 대략 소주 1병을 마시면 대부분 간세포에 지방이 축적되는 알코올성 지방간이 발생한다.
만약 지방간이 생긴 상태에서도 음주를 계속하면 간세포가 파괴되면서 염증이 동반되는 간염으로 발전하게 된다. 간염이 생긴 후에도 음주를 계속하는 경우, 70%가량은 간이 딱딱하게 굳고 결국 기능을 잃어버리는 간경변증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알코올은 100여 년 전부터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아세트알데히드가 아세트산으로 변환되지 못하고 남아 있으면 장기의 세포와 접촉하며 DNA를 손상시키고, 간암을 포함해 유방암, 대장암, 구강암, 식도암 등 여러 암종의 위험을 높이는 것. 국제암연구소(IARC)는 알코올과 아세트알데히드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꼭 질병이 아니더라도 아세트알데히드는 구강의 점막을 붓게 만들고 콧물이 많이 나오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기도가 좁아지고, 코가 막히면서 체내 산소 공급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하면 일상 속 불편을 초래하거나 수면을 방해해 불면증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아스파라긴산’ 아세트알데히드 분해 도움…주의할 점은?
ALDH의 결핍으로 인해 술을 마시고 알코올 플러시 반응이 나타나거나 숙취가 심한 사람은 음주 전이나 후에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한 식품을 섭취하면 도움이 된다. 아스파라긴산은 ALDH의 활성화를 도와 아세트알데히드의 분해를 촉진하는 효능이 있다.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한 음식에는 △아스파라거스 △은행 △레몬 △콩나물 △녹차 △배 △복숭아 △굴 △땅콩 △매생이 △황태 등이 해당한다.
다만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한 원재료를 그대로 섭취하지 않고, 콩나물국이나 황탯국, 매생이 굴국과 같이 요리를 만들어서 먹는다면 합성조미료나 식품첨가물의 사용은 최대한 지양하는 것이 좋다. 이런 첨가물들은 간에 부담을 줘서 해장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맵고 자극적이거나, 염분이 많은 경우에도 오히려 위벽의 손상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최대한 삼삼하게 조리해 섭취할 것이 권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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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아 |하이닥 건강의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