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4~6 / 길과 진리와 생명
(요 14:4)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요 14: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였습니다. 부모님이 계시는 집입니다.
우리는 추석이나 설을 기다립니다. 추석이 오면 고향에 돌아갑니다.
부모님을 만나러 갑니다. 교통체증을 겪으면서 몇 시간에 걸쳐서 집에 갑니다.
이렇게 부모님을 만나러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부모님이 계신 집이 편안하고 좋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우리 부모님은 언젠가 돌아가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영존하시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가 계신 곳은 영원한 우리의 고향입니다.
우리는 추석이 되면 고향을 찾아가듯이 죽음이 가까이 오면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하나님 나라의 집을 찾아가야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습니다. 저녁이 되면 어머니가 한 사람 한 사람 부릅니다. 다 집으로 갑니다. 그러나 한 아이가 홀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돌아갈 집이 없는 고아입니다. 그는 가장 불쌍합니다.
예수 믿지 않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이 고아 아이와 같은 사람입니다. 임종할 때 천국을 생각하며 평안하게 가는 사람은 아버지 집으로 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죽을 때 두려움 속에 죽는 사람은 집이 없는 영적인 고아들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 집으로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도마는 예수님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겠느냐고 합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아버지 집으로 간다고 하였는데 도마는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도마는 분명히 예수님이 어디로 가는지 알면서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도마가 알 수 못한다고 하는 것은 아버지 집에 관심이 없고 싫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싫거나 관심이 없으면 모른다고 합니다. 도마는 하나님 나라가 싫었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는 현재 지구상에서 눈에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을 원하였습니다.
도마는 거꾸로 매달려서라도 이 땅에 살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의 마음이요 사람들의 일반적인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영생을 얻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1년 더 사는 것을 원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맨션에 사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에어컨 있는 넓은 집에서 사는 것을 원합니다. 금이 돌처럼 있는 하나님 나라보다 이 세상에서 금반지 하나가 낫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풍요를 누리는 것보다 이 세상에서 월급 10만 원 더 받는 것을 원합니다.
이렇게 우리는 도마처럼 현실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가지라고 하면 잘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도마에게 예수님 자신이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길이시고 생명의 길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로 가는 유일한 길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집에 대한 설명보다는 그곳에 가는 길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왕의 길을 원했습니다. 출세의 길 독립의 길을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길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는 진리의 참된 길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강을 건너게 하시는 생명의 길이십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가려면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물이 넘치는 시기에는 요단강은 건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들고 죽음을 무릅쓰고 요단강 물에 들어섰을 때 요단강물이 멈춰 섰습니다. 이스라엘은 맨땅을 밟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에는 죽음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죄에서 시작된 죽음의 강물은 아무도 건널 수 없습니다. 부처도 마호맷도 공자도 빌게이츠도 윤석열이도 건널 수 없습니다. 인간에서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죄의 강이 흐르고 죽음의 강이 흘러서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강물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인간에서 하나님 나라로 가는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새롭고 산길을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음의 강물을 딛고 서자 죽음의 강물이 멈추어 섰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로 가는 다리가 되어 주셨고 하나님 나라로 가는 새롭고 산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길입니다.
우리는 길 되신 예수님을 통하여 죽음의 강을 건너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주님을 거치지 않고도 하나님 나라를 소유할 수 없습니다. 성철 스님은 8년 동안 등을 땅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성철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불교의 극락은 가짜라고 합니다. 그는 서쪽으로 가면 극락이 있다고 하는데 서쪽에 있는 사람들은 어디로 가겠느냐고 합니다. 그는 결국 극락이 없다고 합니다. 법화경에는 극락이 있다고 하고 화엄경에는 조금 있다고 말하고 다른 경에는 없다고 합니다. 자신이 연구한 결과 극락이 없다고 합니다. 그는 중들은 극락이 없는데 있다고 속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석가는 사기꾼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극락을 원하므로 그들을 가르치기 위한 방편으로 극락이 있다고 한답니다.
법문을 가르치기 위한 방편술이라고 합니다. 그들이 성장하면 이 세상이 극락이라고 말합니다. 결국은 공즉시색(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실체가 없는 현상에 지나지 않지만, 그 현상의 하나하나가 그대로 실체라는 말로 반야심경에 나온다)이라고 합니다. 결국 예수님만이 참 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길을 내셨듯이 우리도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 길은 좁은 길입니다. 우리는 힘들어도 이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겸손의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믿음의 길을 만들고 감사의 길을 만들고 사랑의 길을 만들고 회개의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길이 천국 가는 길입니다. 길을 처음에 만드는 것은, 어렵지만 길을 내놓으면 편합니다. 처음에 새벽기도 하는 길은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길(습관)을 들이면 새벽에 일어나는 것, 쉽고 편안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