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에 대학친구들과 동티벳의 '주자이거우'와 '황룽'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수만 년 동안 자연이 빚어낸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아름다움에 며칠 간 흠뻑 젖어 지냈다.
감동이었다.
귀국하고 딱 1주일만에 그곳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했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고 곳곳의 비경들도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자연은 아름답지만 역시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다.
작년 5월에 대만의 '타이루거'에 다녀왔다.
깎아지른 절벽과 협곡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아슬아슬한 풍광과 숨이 막힐 듯한 신의 작품에 연방 탄성이 쏟아졌다.
협곡의 거대한 바위산을 뚫어 길을 냈다.
공사 중에도 많은 인부들이 죽어나갔다고 했다.
그럴 만했다.
그곳의 산맥은 고산준령으로 유명한데 3천미터가 넘는 고봉들이 즐비한 곳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입이 딱 벌어졌다.
엄청난 스케일의 대자연 앞에서 나는 개미보다도 작은 나약한 미물에 불과했다.
그리고 진정으로 두렵고 무서운 곳이었다.
그 길로 차도 조심조심 다녔고 사람도 다녔다.
평소에도 크고 작은 돌멩이가 떨어져 꼭 헬맷 착용을 권장하는 곳이었다.
(착용하라고 그리 얘길해도 70-80%의 사람들은 자기에게 무슨 일이 있겠냐며 쓰지 않았다. 세상은 어디나 똑같다)
24년 4월 3일 대만에 7.3 규모의 강진이 발생했다.
진앙은 대만의 동북쪽 바닷가였다.
'타이루거'와 '화렌지역'의 바로 앞바다였다.
강진 소식을 듣지마자 나는 '타이루거'를 떠올렸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서 여행을 하거나 지나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터널이 무너지고 절벽의 거대한 바위들이 쏟아져 내렸을 게 뻔했다.
죽거나 다친 사람들도, 갇힌 사람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했다.
외부 세계와 완벽하게 단절되고 고립되었을 터였다.
헬기 외에는 그곳으로 들어갈 방도가 없을 테니까.
그래도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긴급하게 길을 헤쳐 구조와 구호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자연재해의 현장에서 온몸을 불사르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는 구조대원들과 관계자들에게 재삼재사 깊은 감사를 드린다.
몇 해 전엔 '히말라야'에서 강진이 발생해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전 세계의 고산지대를 자주 가는 나로서는 남일 같지 않았다.
고산과 대양은 감동과 힐링의 원천이지만 그와 비슷한 질량으로 언제나 경외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도전과 탐방이 무서워 안전한 방안에서만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그렇게 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랬다.
인생은 순간 순간이 운명이었고 기적이었다.
연약하고 무지몽매한 인간이 어찌 '내일 일'을 다 알 수 있겠는가.
그건 신의 영역이었다.
우리가 사는 한국이라고 100%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던가?
어느 한 순간 백화점이 통째로 무너졌고(502명 사망), 다리가 끊어졌으며(32명 사망), 대구 '지하철 참사(192명 사망, 6명 실종)'와 '세월호 참사(304명 사망)'도 있었다.
또 비교적 최근인 22년 10월 29일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159명 사망)'도 그랬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 참사들로 인해 생때같이 귀한 생명들이 우리 곁을 떠났다.
또한 이태원에서 195명이 크고 작은 부상을 당했다.
강진이나 엄청난 폭우 또는 거대한 쓰나미 보다 더 말이 안되고, 더 눈물나는 인재의 끝판왕이었다.
이 지면에 다 열거를 할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인재들이 대한민국 안에서 발생했다.
매일, 매사에 조심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살아야 한다.
꼭 그래야 한다.
그러나 내가 조심한다고 해서 나에게 언젠가 닥칠지도 모를 거대한 자연재해나 끔찍한 사건사고를 피해 갈 수 있을까.
없다고 본다.
그것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신들의 영역이었다.
내가 그 참혹한 현장에 있었다면 그것도 내 운명일 터였다.
다만 오늘도 나는 감사기도를 드리면서, 내가 가는 긴 여로에 말없이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뿐이다.
오늘 새벽 Q.T시간엔 대만을, 특히 '타이루거'와 '화렌'을 생각하며 묵상했다.
어려움과 두려움이 형언할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하루 빨리 정상적인 일상을 되찾고 다시 한번 용기를 내주시길 기도했다.
삶과 죽음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우리에게 '생명의 호흡'과 '심장의 박동'이 계속 되는 한 다시 한번 힘을 내야 한다고 믿는다.
그것이 생명에 대한 기본 책무이자 예의가 아닐까 싶다.
아주 오랫동안 견지했던 나의 생각이자 내 삶의 원칙 중 하나였다.
다른 분들의 철학도 대동소이하리라 생각한다.
큰 슬픔과 아픔을 당한 대만의 국민들에게 신의 은총과 가피가 늘 함께 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해 마지 않는다.
부디 힘내시기를.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