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박가경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요, 아주 많이 내리고요
창가의 화분에서는 만손초가 막 돋아나요 만 개의 손들이 흔들리는 사이로 공중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어요 나는 화분 안으로 들어갔어요
이곳은 혼자 생각하기에 좋았는데요
누가 오는 발소리를 들을 수 있고요 누가 오는 발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고요
화분 속 어둠은 편안하고 따뜻해요 가장 멀리까지 갈 수 있는 마음이겠지요 뿌리들은 어디로든 가요 이 모든 건 살아서 할 수 있는 친절 그런 다정일 텐데 모든 건 그림자 속 이야기일 뿐이죠
공중 뿌리는 아름다워요 만날 수 없으니까요 그게 오늘을 살아가는 방식이라면 오늘의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실까요
나의 필담은 당신의 계절보다 앞서 지나가죠 나는 지금의 계절을 물어보려다 말았어요 잠이 쏟아질 것 같아서
그러니까 우리들은 서로 모르는 척 잘 살아요
모르는 척하는 거랑 모르는 거랑은 서로 반대말인데
반대말과 거짓말이 비슷한 말인지 궁금했어요
궁금할 땐 딸꾹질이 자꾸 튀어나와요, 나는 얼굴을 찡그리지 않았어요 시치미는 아주 능숙하게 나오죠
그럴 때마다 나는 옆구리가 가려웠어요 박박 긁은 손톱에서는 무표정이 쑥쑥 자라요
—계간 《시와 편견》 2022년 봄호 ------------------- 박가경 / 1969년 경기 남양주 출생. 2015년 《열린시학》으로 등단. 시집 『우리 사이에는 모르는 계절이 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