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왔다.새로산 옷,새로 산 신발,그리고 또다시 만난 사람.
새 옷,새 신발을 입어보고 신어 볼 생각에 마냥 기쁘기만 했던 나는 방금 천해운과의 만남에 힘없이 거실 바닥에 주저 앉아 버렸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와서 열이 나는 것 같았다.
‘설레임’ 이라는 글자가 한가득 써 있던 것 같던 원피스도 어쩐지 축 처진 쓰레기통 같이 느껴졌다.
“…후우…….”
옷을 형편없이 내팽개 치고는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쉬었다.
소름끼치도록 조용한 거실에는 오직 내 숨소리만이 공존했다.
집을 나서기 전까진 몰랐는데,이 집에는…
“…나밖에 없구나…”
제길.나직한 욕설이 쥐도 새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한사람이 있기에 벅차도록 넓은 공간에서 홀로 선 다는 것은 정말이지 외로웠다.
발레를 갓 배우기 시작한 신입생이 바 없이 연습을 하는 것과 같았다.
아무 것도 의지 할게 없었고,더군다나 ‘안심’ 이라기 보다는 ‘냉전 속의 두려움’ 이라고 한다면 맞을 것이다.
이 외로움을 아늑함으로 즐길수도 있었건만,나는 그렇게 한참동안 거실 바닥에 주저앉은 상태로 허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아무 생각 없이.
혼자는 싫지 않다.단지 조금 외로울 뿐.
가끔씩 그런 때가 있었다.
밖에 나가면 입에서 안개귀신이 피어오르고 걸음을 옮길때마다 겨울바늘이 내 볼을 콕콕 찔러대는 그런 계절이 오면 ‘추웠다’.
춥고 추워서 오금이 저리고 치가 떨렸다.
그게,너무도 추워서…꼭 당장 죽을 것만 같은 두려움과 공포가 내 어깨를 감쌌다.
안 그래도 추위 많이 타는 내 속은 살아온 34년 내내 겨울.
이제 겨울은 그만 됐는데도 겨울은 더 깊어만 간다.
이렇게 창가에 앉아서 쓸데 없이 무드 잡고 있으려니 갑자기 20년전 일이 앨범처럼 내 머릿 속에 담긴다.
카메라 셔터처럼 찰칵.
‘정가람!정말 어떻게 그럴수가 있니?’
‘…….’
‘휴우,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구나.이제 겨우 중2되는 여자애가 남학생이랑 잠을 자?!’
‘…죄송합니다.’
‘넌 보나마나 퇴학이야.알겠니?퇴학이라구.하!나참.교사생활 20년만에 또 이런 애는 처음이네.’
‘그렇게 얘기하지 마세요.’
‘어머,얘가 뭐래는 거야?지금 나한테 대들기라도 한다는 거니?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대드는게 아닙니다.아무리 선생님이라도 그런 식으로 제가 한 일을 나쁘게만 생각하시는게 싫어요.’
‘그럼!그럼 이게 누가봐서 나쁘지 않은 일이니?아우,내가 기가막혀서.참.’
‘저는 장난으로 인생을 걸 짓을 하지 않아요.선생님.선생님께서 절 격려해주셨음 해요.’
‘뭐라구?얘,넌 안되겠다.당장 넌 자퇴서 내.너같은 게 있어봤자 학교 물만 더럽혀!’
‘…….’
피식.세월이 많이 흘러서 망정이지,그 때는 정말이지 끝이었다.
그 때 그 남자애랑 자고나서 영민이 가지게 되고,빽 때문에 그 인간은 퇴학 안 당했지만 난 그야말로 보통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으면서 영민이를 키웠다.
이제 갓 말을 시작한 영민이가 아빠 어딨냐고 그 맑은 눈으로 내게 물을 때마다 나는 말 없이 그 아이를 꼭 안아주며 울었다.
결국 나는 재혼했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 남편놈이랑 이혼했지 않은가.
재혼하기 전까지는 술집여자 취급 받아서 변태놈들이 들러붙었고,어렸기 때문에 돈 버는게 장난아니게 힘들었다.
지금이야 뭐 그 남편이란 인간이 돈 하나는 끝내주게 많이 줘서 별 문제 없이 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 인간이 돈도 없었으면 당장 거리 한복판에 내쫒길 당상인데 말이다.
어쨌든 갑자기 엄마된 입장으로써 한순간에 영민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군.
내일은 한 번 찾아가 볼까.
“아,추워.”
저절로 쉰내나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체감온도 영하 50도.내복을 시작해서 오리털 잠바까지 입고 무장을 했건만 이 빌어먹을 놈에 날씨는 왜 또 그렇게 추운지.
아니,이 착한 엄마라는 인간이 아들 얼굴 좀 보겠다는데 말이야.
어쩌면,이 겨울보다 더 얼어버린 건 영민이의 마음일지도 모른다는 아주 나답지 않은 생각이 뇌리를 파고 들었다.
추워서인지 온 몸이 꽁꽁 얼어서 당장이라도 냉동고기처럼 쿵쾅 하는 괴음을 내며 뒤로 나자빠질 지경이었다.
바람이 차면 찰수록 내 입에서 고운말이 나올리 만무했으므로 욕설이라는 친구가 얼굴을 빠꼼 내미는 순간이었던 것이었던 것이다.
아이,추워서 입까지 꼬이네.
“- _ -시팔…”
아,참고로 말해두겠는데.
내가 지금 서 있는 곳은 나의 아들 장영민이 있다는 천해운의 집 앞이었다.
저번에 만났던 그 나혜루인가 뭔가 그 여우년이 좀 걸리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나도 인간이라 아들 못보고 살 수는 없으니깐 말야.
오들오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초인종을 눌렀다.솔직히 집이 그리 크거나 화려하진 않았다.
싸구려 벨 소리가 울리고 안에서는 뭔가 소동이 일어난 듯 우당탕탕 꽤갱깽깽(?)괴음이 들려왔다.
나는 등골이 오싹해져서 잔뜩 움츠려져 있었는데,바로 그 타이밍에 하얀 거품과 물을 뒤집어 쓴 천해운이 문을 열어 날 맞아주었다.
뭔갈 하고 있었던 듯,그 아이의 얼굴은 즐거워 보였는데,아마도 친구들과 장난을 하고 있었나 보다.
젖은 머리를 탈탈 털며 손으로 집 문을 가리키며 날 안내한다.아유,이 귀여운 것.
“아줌마,어서와요.아주 잘 온거에요.”
마치 변녀와 흡사한 변태적인(?)미소를 헤실헤실 지어가며 그의 뒤를 따랐고,그 아이는 성격이 좋아서 그런지 먼저 내게 말을 걸었다.
“아줌마,그런데 옷이 왜 그 모양이에요?”
“신경써서 입고 온 건데.”
“머리 떡졌어요.”
“트린트먼트 받고 온 건데.”
“화장 떴네.”
“오늘따라 화장 잘 먹히던데.”
“ㅇ_ㅇ아줌마 말 많다.”
“-_-오늘따라 말 적게 한 건데.”
“하하.나랑 농담을 하는 거죠?”
“하하하하하하하.-_-.아니란다.”
‘역시 이상한 아이야’ 라고 생각하고는 그 아이와 실없는 농담을 초고속으로 주고받다 보니 어느새 집 안 내의 온기가 풍겨 오며 몸이 녹여지는 것 같았다.
“우리 놀고 있었어요.”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자기가 방금까지 있었던 듯한 방으로 날 들어가게 한다.
문 밖에서까지 엄청난 크기의 괴음이 들려온다.
조금은 겁먹은 내 어깨를 살짝 툭 치고는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아이의 손이 닿자마자 얼어붙었던 어깨가 마치 한의원에서 뜸을 들인 듯 아주 시원~하게 풀어졌다.
그리고 내 특기인 ‘쓸데없는 자신감자식’ 이 풀어진 어깨 곳곳으로 비집고 나와서 나는 이렇게 소리칠 수 있었다.제길.
“장영민!-0-너 도대체 어디 있는 거여,이 망할 자식아!”
내가 내뱉은 말이지만 정말이지 ‘황당’ 한 말이었고,저번에 봤던 그 ‘일진’ 으로 보이는 낯익은 남자 아이들은 모두 ‘동작일시정지’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그 타이밍에 어떤 의도로 내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영민이가 반항적인 반응을 보일 거라 나는…제길스럽게도 확신한다.
지금 내가 들어온 방은…….휴,엎친데 덮친격이란 그 말이 딱 맞았다니까.말하겠다.
화장실이었다.
“아악-!”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소리를 질러버렸다.
이런 말 하면 안 되지만,그 중에서 정말로 볼일을 보던 아이도 있었다.
나 한사람의 등장으로 아수라장이 된 남자아이들.그 사이를 비집고 정말 화가 난 듯한 표정으로 내게 오는 영민이.(화장실은 엄청 컸다)
내 옆에서 멀뚱멀뚱 서 있던 천해운에게 말한다.마치 나 들으라는 것처럼.
“왜 데려왔어.”
평소같은 장난스런 투가 아닌,뭐가 어떻든 될대로 되라는 듯한 식의 딱딱한 말투.
괜스레 눈물이 나온다.
한참을 그렇게 뭔 대꾸가 없던 그 아이는 이내 입을 연다.
“아줌마가 집 앞에서 쓰러져 있었어.”
엥??하마터면 ‘뭔 소리야?’ 하는 말이 나올 뻔했다.
속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건만,역시 내 아들답다.
얼마 안 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당황했다는 듯 말한다.
“정말이야?”
천해운은 거짓말을 어찌도 저리 순수한 얼굴로 잘 하는지 고개가 부러지도록 고개를 흔든다.
아까까지만 해도 나에게 짜증가득한 시선을 보내던 녀석이 걱정이 미어 터질 만큼 걱정스런 시선을 보낸다.
나는 이때다 싶어 오바액션으로 왼손으로 뒷골을 잡고 오른손으로 배를 잡고는 화장실 바닥으로 쿵 고꾸라 졌다.
“아이구 배야!아이구 뒷골이야!아이구 나 죽네,나 죽어!꺄오오-”
“엄마,엄마!죽으면 안돼!죽으면 안된다구!자,숨쉬어봐!후,하!후,하!엄마!”
막 모자 지간의 사랑이 싹트는 그 감동적인 순간,새침스런 여자의 목소리가 낯익게 귀에 들려온다.
“뭐야,이 아줌마가 여기서 뭔 원맨쇼를 벌이시는 거야.”
팔짱을 끼고 바닥에 쓰러져 있던 나를 건방진 시선으로 내려다 보는 나여사였다.(나혜루였습니다)
나는 미간을 대놓고 찌푸리며 ‘너 싫다’ 얼굴에 써 놓았고,나여사 역시 ‘나도 마찬가지야’ 얼굴에 써놓는다.
그 때,나 여사는 그 빌어먹을 놈에 잔머리를 어떻게 굴렸는지 내가 아프지 않다는 걸 단박에 알아챈다.(못알아채는게 이상하다)
“아줌마,진짜로 아파요?아-그러세요?그럼 병원 가셔야죠.그래야 진,단,을,받,죠.”
콧소리까지 내며 비아냥거리는 그 년을 내가 당장에 작살내고 싶었으나,일단 영민이가 있으니 참자.나는 질세라 얼른 말했다.
“아냐,조금 나아진 것 같아.아무래도 감기 몸살이 든 건 가봐.집에서 쉬면 괜찮아 질 거야.”
내심 나여사의 대답이 궁금해질 찰나,그녀는 특유의 ‘나 잘났다’ 미소를 화장실 곳곳에 페브리즈처럼 칙칙 뿌려대며 말한다.그 미소가,제길스럽게도…예뻤다.
“그럼 집에 가셔야죠.”
친절한 안내원처럼 손으로 대문을 가리키며 아주 친절히도 말하신다.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연기를 끝내려 했으나,이게 웬일이야.
“아야야……”
갑자기 진짜로 배가 아프기 시작한 것이다!
===
ㅠ_ㅠ아,죄송해요.
너무 늦었죠?
원래 준비기간을 길게 가질 예정이었던 소설이라서 매일 올리는 건 무리일 것 같아요.
소재가 소재라서 삘신(?)이 올때만 쓴답니다.ㅡ,.ㅡ
뭐,어쨌든간에 이번 새해에는 소설 잘 써졌으면 좋겠어요.ㅎㅎ
되도록이면 중학생되서는 소설 안쓰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되네요.ㅜ이것이 아주 중독인가봐용
아,그 책 읽으셨어요?한비야의 지도밖으로 행군하라.그거 오늘 다 읽었는데 재밌더라구요.
한비야가 책 쓰는 전문적인 작가는 아니지만 문법이 재밌어서 보기 좋더라구요.ㅎㅎ
큼..좀 쌩뚱맞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ㅎㅎ
꼬릿말 남겨주시면 제가 세뱃돈을...<-퍽
카페 게시글
하이틴 로맨스소설
[ 중편 ]
< 아줌마,사랑해 >[03]
쵸코송이■
추천 0
조회 32
06.01.07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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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왔어 ㅜㅜ ~ 이제 안놀고 공부에 몸담그려고하니까 참 힘들구나 ㅜㅜ 그냥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야갰어 공부는 내체질이 아닌가봐 -,- 흐흐흐 애들이 불러서 이만 > 0< ! ♡ 글고 힘내 ~
ㅜ.ㅜ*후훗 너덕에 내가 소설 쓰고 산다ㅋㅋㅋ공부가 니 체질이 아니라공?ㅇ_ㅇ훗 난 워낙 체질이야...<-퍽 -_#미...미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