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지를 헐값에 사들인 뒤 지분을 쪼개 되팔아 수익을 챙기는 이른바 ‘기획부동산’에 대한 금융회사 대출이 사실상 금지된다. 또 대출을 더 받기 위해 농지 감정평가금액을 매입 가격 이상으로 부풀리는 행위도 제한된다.
금융당국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으로 허점이 드러난 농지 대출 규제를 대폭 강화해 부동산 투기 차단에 나서려는 것이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28일 농협중앙회 등 상호금융권과 ‘1차 상호금융정책협의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대출 규제를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번 대출 규제 방안의 핵심은 토지 지분을 공동으로 소유한 기획부동산에 대해 사실상 대출을 제한하는 것이다. 기획부동산은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이나 맹지 등 개발 가능성이 낮은 토지의 지분을 쪼개 불특정 다수에게 팔아 수익을 챙기는 투기 수법이다.
그동안 기획부동산은 토지 지분을 나눠 가진 사람 중 신용도가 가장 높은 사람이 다른 투자자들의 지분을 담보로 넘겨받아 전체 토지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왔다. 큰돈을 빌릴 수 있어 투기에 악용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앞으로는 보유 지분을 다른 사람에게 담보로 제공하는 게 금지된다.
또 농지 담보 대출 과정에서 토지 감정평가액이 시세를 넘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다. 금융당국이 3월부터 현장 검사를 실시한 결과 대출을 더 받기 위해 토지 소유주와 금융사 직원, 감정평가법인이 짜고 감정평가액을 부풀린 사례들이 적발됐기 때문이다. 당국은 또 부동산 투기가 의심되는 영농법인 10곳을 발견해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자본금 6억 기획부동산, 290억 대출도… ‘지분쪼개기’ 담보 막는다
기획부동산 대출 규제
A농업법인은 지분 쪼개기 방식으로 투자자를 모은 뒤 지역농협 등에서 토지담보대출을 받았다. 법인 대표가 투자자들로부터 지분을 담보로 넘겨받아 전체 토지에 대한 대출을 받은 것이다. 자본금 6억 원의 A법인이 290억 원의 거액을 빌릴 수 있었던 이유다. 금융당국은 이 법인이 영농 활동을 하기보다는 부동산 투기를 전문으로 해온 사실상의 ‘기획부동산’ 업체라고 판단하고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금융당국은 필지를 쪼개 매입한 농지를 다른 사람에게 담보로 제공하는 것을 막으면 A법인과 같은 기획부동산들이 자금줄로 활용한 금융회사 대출이 사실상 차단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기획부동산은 농지나 토지 지분을 많게는 100명 이상에게 쪼개 팔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개별로 대출을 받기는 쉽지 않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사건에서도 직원 10여 명이 서로 지분을 넘겨주며 신용도가 좋은 일부를 대표로 앞세워 북시흥농협 한 곳에서 50억 원을 대출받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제 토지 소유자가 여러 명이면 상호금융회사들이 대출 심사를 강화하게 된다”며 “영농 목적의 농지는 소유주가 1명이거나 소수인 경우가 많아 이번 규제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당국은 농지 감정평가액이 실제 매입가를 넘지 못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하거나 농협중앙회 내규를 변경할 계획이다. 감정평가를 조작해 평가액을 부풀린 뒤 대출 한도를 높인 위법 사례들이 다수 적발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3월부터 국무조정실, 경찰청, 검찰, 국세청 등이 합동으로 부동산 투기 단속을 벌이고 있다. 금융당국은 ‘부동산 투기 특별금융대응반’을 꾸려 규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상호금융권 대출과 비(非)주택담보대출에 대한 실태 조사와 현장 검사를 벌였다. 이를 토대로 5월 농지담보대출 심사 절차 강화 및 임직원 대출에 대한 내부 통제 강화 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이번에 추가적인 대출 규제를 마련한 것이다.
금융당국은 추가 대출 규제 강화를 위해 8월 말까지 농림축산식품부 등 관계 부처의 의견을 들어 9월 중 입법예고할 예정이다. 또 3기 신도시 지정 발표를 전후로 대출 신규 취급액이 급증한 금융회사 영업점에 대한 검사를 확대하고 투기 혐의가 발견되면 수사 당국에 이첩할 계획이다.
금융대응반은 최근 일부 투기 혐의가 의심되는 농업법인 20곳에 대해 추가적으로 조사를 벌여 10곳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금융당국은 이들이 토지 지분을 쪼개 투자자를 모집했기 때문에 사실상 미등록 부동산펀드를 운용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자료원:동아일보 2021.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