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라고 아래 본문 전인 다니엘 6장 7절에 증거되어 있는 말씀과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아래 본문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지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그가 거했던 땅의 이방 왕이나 다른 신들이 아닌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경배했음은 물론 말씀을 따라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변함없이 하루 세 번씩 기도했을 정도의 말씀대로의 믿음, 말씀의 열정이었던 것입니다..
사실은 그 이전에도 다니엘은 다니엘 1장 8~9절에서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우상에게 제사한 음식 및 율법에서 금하는 음식을 말씀에 따라 거부함에 있어 그렇게 목숨까지 걸었을 정도의 말씀대로의 믿음, 말씀의 열정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의 세 친구들은 다니엘 3장 16~18절에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세상적, 상식적으로는 당장에 풀무불에 던져져 비참하게 죽임을 당함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를 거절했고, 심지어는 재론도 못하게 했을 정도로 말씀대로의 믿음, 말씀의 열정이었음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요셉은 창세기 39장 9절에서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과 그 전후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거부함으로서 그 자체로 얼마든지 봉변을 당하거나 보복을 당하거나 심각한 위기를 자처할 수 있는 상황이고 실제로 그렇게 해서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쓰게 되어 감옥에 까지 갇히게 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만을 경외하면서 한 구절의 말씀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을 정도의 말씀대로의 믿음, 말씀의 열정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전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창세기 12장 1~3절에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말씀에서 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듯이..
인간적, 현실적으로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낯선 땅으로 간다는 것이 당시에는 이동 간에, 또한 정착지에서 만나게 되는 여러 모양의 부족과 족속과 민족들로 인해 크고 작은 위기들을 당하기가 쉬웠고 게다가 목숨까지 잃게 될 수도 있으며 심지어는 모든 가족들이 몰살, 또는 패망케 될 가능성까지도 컸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랐을 정도로 말씀대로의 믿음, 말씀의 열정이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바로 그 정도까지의 치열하고 뜨거웠던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과 함께 인간적으로는 연약함 투성이였던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까지 불리고, 요셉은 별안간 애굽의 총리가 되며,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7배의 풀무불에서도 죽지 않게 되었던 것일 뿐 아니라 머리카락 하나 그을리지 않게 되고, 다니엘은 이방 왕 그 자신이 꾼 꿈을 그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환상을 통해 알 수 있게 되며 굶주린 사자 굴에서도 조금도 상하지 않게 되는 등과 같았을 정도로 그렇게까지 하나님으로 인한 힘과 역사와 이적들이 강렬하고 또 강렬했던 것인데..
그 이유와 근거는 조금도 어려울 수 없는 것으로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그와 같은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을 창세 전부터 계획, 약속, 준비, 진행하시면서 그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나타내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야 말로 근본적으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인 것이고, 게다가 믿음으로 인한 값없는 은혜들을 그렇게 공짜와 같은 선물 같이 누릴 수 있게 하시는 분일 뿐 아니라 그러한 하나님 아버지께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그 이름으로 나아가고 간구할 수 있게 하시는 구주 예수님께서도 본질적으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인 것이며, 더 나아가 처음부터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분이며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뜻과 약속과 말씀들을 다 실행하시고 무엇보다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온 세상과 전 인류,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그 목숨값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다 이루신 구원을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믿음과 함께 말씀대로 모두 실제가 되게 하시는 성령님께서도 단적으로 말씀의 영이신 분인 것이고, 근원적, 본질적으로는 그렇듯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시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과 함께, 실제로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 가운데 기뻐 역사하시면서 말씀 그대로 모든 것을 다 실행하시며 하나하나 모두 다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6:10)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5년 2월 12일(수)1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