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소방 공무원이다.
평생을 성실과 열정으로 봉직했다.
그랬던 그가 금년 상반기에 현직을 떠난다.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다.
그 친구를 위해 뭔가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고 싶었다.
부부동반으로 해외에는 여러 차례 다녀왔기에 다시 비행기를 탄다는 건 별 감흥이 없을 게 뻔했다.
그래서 한 여름날, '지리산' 장거리 트레킹을 제안했다.
매년 혼자서 '공룡능선'을 다닐 만큼 산을 사랑하는 친구라 그에게 제격일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흔쾌하게 수용했고 몇 번이고 "고맙다"고 했다.
"사실 지리산엔 그닥 경험이 많지 않다"고 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크든 작든 멋진 이벤트를 준비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인지상정이었다.
환갑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십대의 체력을 유지하고 있는 친구였기에 지리산에서 제일로 길고 팍팍한 코스로 잡았다.
용산역에서 KTX를 타고 '구례구역'에서 하차, 택시로 '쌍계사'까지 가서 '상불재', '삼신봉', '세석평전', '한신계곡', '백무동'에 있는
숙소까지 토요일 하루만에 다 끝내야 하는 일정이었다.
트레킹 코스만 약 24K 정도 된다.
평지라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지리산에서 제일로 팍팍하고 힘겨운 코스라서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폭염의 날씨까지.
어제 과거에 몇 번 묵었던 숙소 사장님께 전화했고, 그 집의 별채를 예약했다.
저녁식사까지 사장님께 의뢰했고 그 분도 흔쾌하게 수락했다.
산을 알고, 산을 잘 이해하는 분이라 말이 잘 통했다.
대지가 이글거리는 6월의 어느날.
소방 공무원으로 평생을 봉직한 친구와 함께 지리산에서 제일로 길고 힘겨운 종단코스에서 제대로 한번 부대껴 보고 싶다.
숱한 얘기보따리를 풀어가면서 말이다.
세월이 간다.
급류보다 더 빠르게 간다.
많은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이 현직을 이미 떠났고 또 떠나고 있다.
만추에 우수수 낙엽이 쏟아지듯 몇 해 전부터 '은퇴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얘기다.
각자에게 전개될 인생 2막이 더욱 의미 있고 건강하며 활기찬 나날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이 친구는 엄청나게 큰 농장을 두 군데나 소유하고 있고 오랫동안 자경하고 있었다.
은퇴하면 본격적으로 '컨트리 라이프'를 엮어가겠다고 했다.
지난 20년 이상 잘 준비해 온 만큼 멋진 인생 2막을 연출해 나갈 것으로 믿어의심치 않는다.
청년기부터 지금까지 오로지 한 길만을 걸어온 성실한 친구에게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와 경외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무더운 여름날,
장거리 트레킹을 마무리한 뒤, 얼음장 같은 지리산 '한신계곡'에 두 발을 담근 채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을 권하고 싶다.
유쾌하고 신명나는 '권주가'를 곁들여 가면서 말이다.
어제와 오늘, 봄비가 내린다.
뭇 생명체들에겐 최고의 선물이 될 것 같다.
오늘도 모든 분들에게 감사가 충만한 하루가 되길 빈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