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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듣는거, 너무 너무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음악만을 듣는다는 것은... 사실 한편으로는 굉장히 수동적일 수 있는 여가입니다. 그냥 재생하고 듣기만 하면 되거든요. 집중해서 듣는 음악도 있지만, 출퇴근길에 혹은 술마시고 얘기하면서 음악을 듣기도 합니다. 얼마전에 기사에서 읽었는데, 여러 음원재생 싸이트들의 통계를 보면 사람들은 음악을 틀고 끝까지 다 듣지도 않는 경우가 90퍼센트 후반대 정도 된다고 합니다. 꼭 그렇지는 않겠지만, 사람들이 얼마나 음악 듣는 다는 것에 집중할 수 없고 (하지 않기도 하고), 수동적인지를 보여주는 숫자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음악을 듣는 것 뿐 만이 아니라 텔레비젼을 보는 것과 영화를 보는 것 등등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저도 음악을 티비처럼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할 때가 있거든요.
또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나 텔레비젼을 보는 것, 영화를 보는 것은... 때로 사람들을 고립시키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는데요, 좀 설명을 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래 음악을 들으면 들을수록 구석구석 음악들에 흥미도 생기고, 특이한 독립영화들을 찾아서 보게도 되고, 그런 음악이나 영화들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는 대중성은 없겠지만 참 좋은 것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래서 The Quietus, The Line of Best Fit, Pitchfork 등등에서 음악에 대해 읽고 찾아보거든요. 대중적이지 않고, 남들은 들어보지 않고 지나쳤을 수도 있는 음악들... 때로는 '힙하다'는 것의 매력을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공유와 소통인데, 이렇게 문화를 '찾아나서는, 그리고 혼자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떄론 이런 '고립'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가령, 고등학교 때에 락의 불모지대인 한국에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 어떤건지 아는 사람으로서 회상해보면, 분명히 그렇다는 것을 알면서도 음악을 열심히 들었습니다. 음악이 너무도 좋아서 그런게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지만, 시간도 없고 능동적일 수 없고 탈출, 아 탈출! 을 원하는 우리나라의 고등학생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고등학생 이후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지 않나요 ㅜㅠ. 지금도 나도, 그리고 사람들은 때로는 혼자 할 일이 없어 심심할 때, 혹은 혼자일 수 밖에 없는 출퇴근길 (또 얼마나 출퇴근길이 길어요 ㅜㅠ) 때에 이렇게 음악을 듣고 즐깁니다. 누구의 곡 제목처럼요, Lonely Press Play.
이런 수동성과 고립은 좋은 것이 아니라고 굳게 믿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작가 데이빗 포스터 월레스 (David Foster Wallace) 입니다.
데이빗 포스터 월레스 (David Foster Wallace)는 이렇게 텔레비젼이나 음악 등 문화을 이런 식으로 즐긴다는 것은 중독과 비슷하다고 봤습니다. 가령 사람들이 이렇게 수동적으로 혼자 즐기는 음악을 계속 듣고, 혼자일 때에 음악을 듣고 점점 파고들면서 음악을 들으면 고립이 생기고, 이런 고립과 수동성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멀어지게 할 수도 있고, 마치 무한한 고리처럼 돌고 돌아 중독처럼 작용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를 대지만, 한가지 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혼자 음악을 듣는 것이나 텔레비젼을 본다는 것은 외로울 수 있는 행위인데, '특이하고 남들이 잘 알지 못하는 음악' 을 듣는다는 것이, 외로운 순간들인 것이 아니라 '내가 특별하니까, 내가 힙하니까' 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게끔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힙하고 특이한 음악을 듣는다는 것에 파고 들면 들수록 더 많은 음악을 듣게 되는 것이구요. 공유와 소통이 없는 영화, 문학, 예술, 그리고 음악... 분명한것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은 음악이나 텔레비젼의 발명이 아닙니다. 이것 이전에도 인간은 외로웠거든요. 하지만 음악을 듣는다는 것이나 텔레비젼을 본다는 것에는 적지 않게 이런 요소들이 있습니다. 전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고 동의 합니다. 그는 '문화를 통한 공유와 소통'를 얘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데이빗 포스터 월레스 (David Foster Wallace) 의 가장 유명한 소설, '무한한 흥미 (Infinite Jest)' 라는 소설은 1996년 출판될 당시 젊은 작가였던 데이빗을 슈퍼스타로 만들어 준 작품입니다. 여러가지로 유명한 책인데, 사실 제가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시도하다가 포기하는 책'으로 알려져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 읽고 던져버리고 싶었다'는 평도 읽은 적이 있구요;;; 1000 페이지라는 분량, 그것도 아주 쬐끄만한 프린트도 그렇지만, 소설에 300여개의 주석들은 더 쪼끄만한 글씨로 몇 페이지에 걸쳐 나오고, 이 주석들 중에 몇개는 단편소설 분량이기도 하고, 내용은 미분학정리 (ㅡㅡ;;) 부터 시작해서 각종 의약품들에 대한 세세한 내용들까지 정말 엄청납니다. 거기다가 소설의 배경인 년도들은 2014년처럼 숫자가 아니라 요상한 이름들 ('기쁨의 해: year of the glad' 등;;;), 그것도 시간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몇 년에 걸친 내용들을 뒤죽박쭉 섞어놨고,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 정말 복잡하고 어지러운 책입니다. 그래서인지 여러가지 악명높은 말들도 많은 책인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농담반 진담반: "조롱하자면... 힙스터들이 가장 좋아하는 책" 입니다. 아래의 '힙스터들에게 추천하는 책' 알고리즘을 보자면 바로 처음 질문은 '무한한 흥미를 읽었는가?' 입니다. '아니오'를 대답하는 순간, '당신은 힙스터가 아님' ㅡㅡ;;; 으로 가서 이 책을 추천해 주죠 ㅡㅡ;;;;;;;;
과연 무엇에 관한 책인가?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고, 이것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들이 인터넷에 널려있습니다. '무한한 흥미 (Infinite Jest)'라는 영화에 관한 소설입니다. 배경은 미래의 어느 한 때, 우리가 알고 있는 미국과 캐나다는 '북아메리카 합중국' 으로 통합된 이후로, 고등학생 테니스 선수들을 위한 사립학교가 주 배경입니다.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은 이 고등학교의 학생인 '할 (Hal Incandenza)' 이라는 청년이고, 학교의 선생이자 독립영화 감독이었던 그의 아버지가 제작했던 영화인 '무한한 흥미' 라는 영화가 등장합니다. 이 영화는 너무나도 흥미로워서 한번 보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영화로, 결국 영화를 시청하는 사람은 끊임없이 영화를 보게 되어 죽음에 이른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북아메리카 합중국' 에서의 독립을 주장하는 퀘백의 테러리스트 집단들은 이 영화를 획득하여 테러를 감행하기 위해 영화의 행방을 찾아나선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소설의, 이 무한한 흥미라는 영화는 데이빗 포스터 월레스 (David Foster Wallace)가 생각하던 '문화의 중독성'을 얘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너무나도 흥미로워서 죽음에 이르는 영화' 외에도, 책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은 약물중독이나 담배, 술, 섹스에 중독되어있습니다. 위에 말한 사립학교 외에 중독치료를 위한 재활원이 또 다른 배경이기도 합니다.
작가가 이 책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에 대한 평들 중 가장 인상이 깊었던 것이 있습니다. 데이빗 포스터 월레스 (David Foster Wallace)는 사실 이렇게 텔레비젼, 음악, 영화, 그리고 특히 문학에서 현대인들이 수동적이고 고립되어가는 것을 매우 슬프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책에서 이런 모습을 꺽어보기 위해 읽으면서 수동적일 수가 없는, 정말 능동적으로 파고들을 수 있고, 사람들에게 느낄 수 있게끔 하는 소설들을 쓰고 싶어했습니다. 그냥 읽는 것이 아니라, 주석을 읽어야 하고, 내용이 어떻게 진행되었다 앞뒤로 책을 오가야 하는 책을요. '힙스터들을 위한 소설', '사람들이 읽다가 포기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어렵고 복잡한 소설'을 써서 그렇게 하고 싶어했다는 것이 이상하고 말이 안된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본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복잡한 문제들을 모든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면 좋은 세상이 올꺼야.' 라고 믿는 것과 같은 생각이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원한 것은 "사람들이 느끼고, 서로 얘기할 수도 있는 소설"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데이빗 포스터 월레스 (David Foster Wallace)는 또한 아이러니와 힙하다는 것에 깊은 반감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이렇게 끊임없이 텔레비젼이나 음악을 즐기는 것을 보면서, 그 안에 등장하는 아이러니를 비판했습니다. 가령 영화속의 아이러니컬 한 인물들, 무언가 쿨하고 힙한 인물들의 똑똑하고 흥미로운 비현실적인 모습들, 똑똑하면서 아이러니컬한 대사들을 툭툭 던질 수 있는 인물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단절되고 외로운 텔레비젼 감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인물들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 그런 영화를 보고 텔레비젼을 보고 음악을 듣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힙하다는 것과 아이러니에 대해 얘기하면서 Lewis Hyde 라는 학자의 말을 얘기했습니다: " 아이러니는 응급방편책일 뿐이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는 아이러니라는 것은 새장에 갇힌 이가 그 우리에 대해 만족하는 것 밖에 안된다 (Irony has only emergency use. Carried over time, it is the voice of the trapped who have come to enjoy their cage)."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정말로 중요하고 진실된 사실들은 아이러니와 힙하다는 필터로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평론가들은, '무한한 흥미'라는 소설을 통해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그가 믿는 '살아가는 데에 정말로 중요하고 진실된 사실들', 시대를 막론하고 아이러니컬 할 수도 없고 힙할 수도 없는 진실들', 즉: "중독은 나쁘다", "가족이 소중하다", "마약은 하지 말아야 한다", "항상 재미있다고, 흥미롭다고 좋은 것 만은 아니다", "완벽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등을 다 이야기 한 소설, 그게 바로 '무한한 흥미 (Infinite Jest)' 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 대작이 출판되었을 당시 나이는 34세, 그는 46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목숨을 끊고 생을 마감했습니다.
여기 회원분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고등학교 때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쭉 음악을 들어왔지만, 많은 것들이 그렇듯, 고등학교 때 즐겼던 기억들은 저에게는 소중합니다. 하교길에 foo fighters 1집을 들었던 기억, 당시 24,000 이라는 후덜덜한 가격으로 수입된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를 손떨며 발매 당일 문화상품권 다섯장으로 샀던 기억, 학원에서 집에 오니 어머니께서 "니가 좋아하는 REM 인가 뭔가 하는 애들 신곡이 라디오에서 나오더라" 하던 기억, 타워레코드에서 씨디 케이스가 이쁜 투명한 녹색이었던 Sugar 음반을 샀던 기억, 친구들한테 Oasis 싱글들 빌려주던 기억, 샤프로 촘촘히 수학문제들 풀었던 노트 글씨들 위에 펜으로 Weezer 가사들을 썼던 기억들 등등 수없이 많습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한국에서 락음악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을 찾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에, 그때는 혼자 들었던 기억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이건 무슨 deja vu 처럼 점점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또 사라져갑니다...
결론보다는 여담이지만,
음악을 듣는 사람으로서 공유와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영팝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의 영팝이었으면 좋겠구요.
여기는 다들 음악 좋아하시잖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앞으로 나에게... 과연 음악은 나에게 "무한한 흥미" 를 줄 수 있을 까 생각해봅니다.
첫댓글 여담인데 저는 인터넷이 발달하고 mp3를 쉽게 찾을수 있을때부터 그전에 비해 앨범 전체 트랙을 처음부터 끝까지 찾아듣는 횟수가 확실히 줄었습니다. 음악의 소중함을 덜 느끼게 되는게 참 슬퍼집니다.
후후... 저도 그랬어요~ 하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에, 너무나도 중요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느끼실 때가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에겐 그냥 값 싼 정신치료제라고나할까...
그래요~ 음악이라는 것은 사람 사람마다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고, 다른 의미를 갖을 수 있는 것이니깐요~ 맞아요, 그렇다고 '비정상적이다' 하는건 아니에요~
오우... 좋으면서 무지 공감가는 글이네요...
후후 다행;;; '공감 = 소통'은 아니지만. 소통이 가장 좋을 때는 공감하는것;;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문자로 좋아요 누릅니다.
현 영팝의 상황과 맞물려 적절한때에 올리신 글이네요. 순수?ㅋ했던 50년대 비트닉 세대와 나름 쿨해보였던 60년대 히피 세대와는 다르게 90년대에 슬래커 문화와 함께 나온 힙스터 컬쳐가 요센 의미가 많이 퇴색된거 같애요. 결국 그 뿌리는 같은데 말이죠. 60년대 히피땐 다 같이 사이좋게 드러그로 뭉친?ㅋ 플라워파워(사람들이 순진했던 시절이져 ㅋㅋ; 음악으로 세계평화가 가능하다고 외치던 떄였으니ㅋ)로 당시의 소셜이슈들을 태클하고 반전 시위 등등 비주류와 아웃사이더들이 유대감이 강한 커뮤니티를 형성을 했었는데 명목상으로만 히피정신을 계승한 힙스터들은 갠플이 성향이 강한거 같애요 ㅋ
그 이유들이야 여러가지가 있지만.. 별로 좋은게 아니라는걸 알수 있는 대목이 뭐냐면 요센 누구한테 "너 힙스터니?'라고 물어보면 그건 사실 좋은 의미로 말하는게 전혀 아니죠... 어떤 사람은 심지어 그걸 욕이라고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니깐요. 어느세 힙스터들은 기피대상이 되어버리고(심지어 자기들끼리 서로 피하는거 같기도 하더라고요ㅋㅋ;) pseudo intellectual과 pretentious snob을 대변하게 된걸 보면 딱히 좋은 현상은 아니라고 봐여.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힙스터들도 넘 소극적이거나 배타적인 성향을 좀 버리고 예전의 비트닉이나 히피 선배들처럼 레이드 벡, 이지 고잉했으면 좋겟네여. 서로 소통하면서 사이 좋게 지내야하는거 아님?!
여튼.. 결론은 같은 커뮤니티에 속해있는데 좋은거 있으면 서로 공유하고 댓글도 달고 소통 좀 하자고요 ㅎㅎ~
네~ 저도 비슷한 생각이기는 합니다. 데이빗 포스터 월레스의 모든 말들에 동의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간혹 보면 무언가 진짜 중요한 것들을 놓치는 것 같은 생각은 들더라구요. ㅎㅎ '힙스터니?' 란 질문이 좋은 어감이 아닌 것은 맞는 것 같더라구요~ 근데 그것도 무언가 썩 내키지는 않고...
그리고 공감, 이런거 게시판에서 하는 것도 좋지만, 진짜 사람이 만나 얼굴 맞대고 하는게 좋지 않나요?
공감 가네요. 사실 음악이 줄수 있는 즐거움이란게 혼자 찾아 듣는 것 만큼이나 큰것이 소통하고 또 누군가와 공감하게 되는 순간인 것을 말이죠. 전 가끔 취향이란 것이 닮고도 모두 다른 사람의
얼굴 같단 생각이 드네요. 이를 이해한다면 다소는 거칠고 핫한 소통도 거리낄것 없다 보구요. 좀 더 대화에 과감해질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이곳 영팝에선 더욱.
infinite jest 한글로 나왔나요?
뒤져보니 한글로는 아직 없나봐요. 도전해보고 싶은데 크흑...
@뮤매 아 그렇군요... 사실 infinite jest를 무한한 흥미라고 번역해서 나왔다면 오역인것같아서 물어본건데 현대문학 걸작들은 아직 번역안된게 많네요 ㅜㅜ;;
네 아쉽게도;;;
워..... 엄청 좋은 글이네요 ㅠㅠㅠㅠ
제가 평소 생각하던 것들이 많이 담겨 있네요.
감동했습니다..
(글을 보관하고 싶어서 스크랩 하려고 하니 막혀있네요. 혹시 개인적으로 메일로보내주실 수는 없으신지요?)
디폴트였나요? 암튼 수정해놨어요~ 스크랩 해가세요~
@Bahn 감사합니다~
공감이 많이가는 글이네요. 특히 마지막문단.. 저도 학창시절 딱 저랬는데ㅜㅜ 한국에서 해외음악 듣는사람들이 겪는 경험들이 비슷하군요. 데이빗 포스터 월러스는 이름만 자주들어봤는데 덕분에 새로운 걸 많이알고 갑니다. 나중에 한번 도전해봐야겠어요
제목에 흥미를 느껴서 나중에 정신이 또렷(?)할때 봐야겠다 하고 이제서야 봤네요 혼자 책보고 영화보고 음악듣는다는게 어찌보면 소통보다는 고립될수 있다는 아이러니에 대해 저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어요. 소수의 사람들이 그렇다 할 지라도 영팝 회원수가 2만명이 훌쩍 넘는 카페라면 그래도 세상은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는게 아닐까 싶어요~ 혼자 음악듣다가 좋은노래가 있다면 다른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