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17일(토), 낙동정맥을 종주하는 정기산행일입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른 후 종주산행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몸이 다시 힘든 산행을 겪을 각오를 해야 합니다. 어쩌다 보니 산행을 즐겨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빨리 이 정기산행을 끝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더 큰게 아닌지 반성이 되었습니다. 산행이 짐으로 남아서는 안 되겠지만 현재의 심리상태는 그렇게 흐른다는 말씀이지요. 산행지가 멀고 산행구간이 길고 험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되는데 노년의 체력저하에 더해져 이번에도 산행이 매우 힘이 들었습니다.
이번 산행에는 다행히도 명산인 천성산이 들어 있어서인지 희망자가 지난달보다 5인이 늘었습니다.(경비 조달에도 도움이 되는 좋은 신호입니다.)
참석자 : 16조준희, 21이은목, 23양수석, 24이규성, 24김남진+부인 김양미, 25안철준, 25최원일, 27이정갑, 27이수룡, 29양장근, 30이상화, 31김종철, 31신윤수, 35정광윤, 39김대휴, 39이경초, 40이국일, 45박용철(19인)
7시 6분경 양재역에서 14인을 태우고 떠난 버스는 동천역에서 5인을 더 싣고 고속로를 달렸습니다. 차에서 한참을 졸다보니 휴식을 위해 쉬는 휴게소에 도착했는데 추풍령휴게소였습니다. 옛날에 고속도로가 경부고속도로만 있을 때 자주 들렀던 곳이라 감회가 새로웠는데 건물은 모두 바뀌어 새로 지은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경부고속도로로 가는 것이 왠지 이상했습니다.
(그 날은 기사의 고집인지 내려갈 때 상주를 거치는 당진영덕고속도로 - 상주영천고속도로 - 경부고속도로로 가면 빠를 터인데, 경부고속도로 - 대구에서 중앙고속도로 - 물금IC를 택하여 산들머리인 명곡리로 갔습니다. 내가 네이버 지도에서 GPS 검색으로 첵크해 보니 30분 가량 손해 봤습니다.
그런데 올 때에도 이 버스가 물금으로 남진하더니 경부고속도로만 이용, 또 시간 손해를 보았습니다. 수없이 남쪽지방으로 산행을 다녀도 상주를 거치지 않는 버스는 이번에 처음 보았습니다. 왕복 한 시간 이상 손해 봤습니다. 양재역 도착시간이 12시를 넘겨서 여러 사람이 택시를 이용했는데 보통 때라면 택시가 필요없이 전철을 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기사를 잘 만나야 하는데 맘대로 안 되는 일 인 것 같습니다.).
버스는 11시 40분이 되어서야 들머리인 명곡리에 도착하여 우리를 내려놓았습니다.(원래 예정지인 파브르캠핑장까지는 찻길이 좁아서 버스가 못 들어가기에 마을에서 차를 내렸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19인이 플래카드를 펴고 기념사진을 찍은 다음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때 이른 무더위가 있었지만 바람이 자주 불어주어 견딜 만 했습니다. 마을을 지나 찻길을 따라 파브르캠핑장 앞에 도착하니 거기부터 산길이 시작되었습니다.
길은 그럭저럭 나있었지만 분명하지 않은 것도 있어서 조심해서 찾아야 했습니다.(두 분이 뒤에 오다가 알바를 할 정도로 길이 희미했나 봅니다.) 12:41, 낙동정맥길을 만났습니다.(여기가 옛길 삼거리인 것 같습니다.) 좌로 틀어서 천성산을 향했습니다. 곧 이어서 캠프장사거리(파브르캠핑장[옛날다람쥐캠프장]에서 이곳으로 직접 오는 길이 있는데 캠프장 대문 앞에 길이 없다고 써 붙이고 폐쇄해 놓았습니다.)가 나오더니 길이 급하게 가팔라졌습니다.
캠프장사거리부터 다음의 목적지인 서낭단까지는 계속해서 힘들게 쳐올려야 하는 길이었는데 초장에 힘을 다 써버리게 하는 난코스였습니다.(너무 힘이 들어 이후의 산행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았는데 산행 후 GPS 기록으로 계산을 해 보니, 이 경사로의 하단(캠프장사거리)에서 상단(서낭단)까지의 수평거리는 530m였고 수직거리는 203m(553m - 350m)여서 탄젠트 값이 0.383이었습니다. 이를 각도로 환산하면 아크탄젠트(0.383)은 약 21도에 해당하는 수치였습니다. 그날 산행 중 가장 급한 경사였다고 생각됩니다.
경사로의 끝인 서낭단(다른 사람의 GPS기록인데 현장에서 확인 못 함)에서 길은 갑자기 평탄하게 되어 조금 더 전진하다가 벤치가 있는 쉼터를 만나서 식사를 하였습니다.(13:40) 출발이 늦은 탓으로 다른 때에 비하면 늦은 점심식사 시간이었습니다. 식사후 완만한 능선을 따라 계속 걷는데 길은 숲이 울창한 산길인데 양쪽으로 철조망을 쳐서 출입하지 못하게 해 놓고 여기저기 이 곳이 지뢰지대임을 알리는 간판을 세워 놓았습니다. 숲에 갇혀 시야가 제한된 데에다가 옆으로는 철조망에 제한되고 바람도 엾이 답답하여 유쾌한 길은 아니었습니다.
답답한 길을 묵묵히 걸어서 지나가니 아스팔트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따라 한참 올라가니 길은 다시 산으로 이어집니다. 15:31, 천성산 가기 전에 살짝 솟아오른 봉우리인 해발 718.6m 원득봉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길은 다시 하강하고 곧이어 아까의 임도와 합쳐졌습니다. 임도를 내려가며 앞을 보니 골짜기를 하나 건너 저 멀리 천성산제1봉(옛 명칭이 원효산)이 우뚝 솟아 있는데 힘이 죽 빠지는 듯 했습니다. 서낭단 올라오는 경사로에서 심했던 것 같았는데 이미 초장에 힘을 많이 빼었기에 저 곳 천성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이 힘들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이쯤에서 산행을 포기해야 하나 아니면 계속해야 하나 하는 의논을 일행과 하고 있는데 마침 검은 색 SUV 한 대가 와서 저 위까지 태워 주겠다고 하여 3인이 그 차를 얻어 탔습니다. 차가 정상 근처까지 가는 줄 생각했으나 차는 낮은 언덕을 올라가 500m 쯤 가더니 더 못 가고 원효암 입구에서 더 못 가게 길이 막혀 있었습니다. 예상보다 짧은 거리였지만 생각지도 못 한 때에 조금의 도움을 받았기에 원기가 조금 회복되어 정상을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습니다. 낡은 시멘트 임도를 따라 길이나 있었고 정상 근처엔 목제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걷기에 편리했습니다. 다만 길이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바람에 지루하기는 했습니다.
16:31, 드디어 해발 922m의 천성산 정상에 섰습니다. 정상 부근은 펑퍼짐하여 일종의 고원을 이루고 있었는데 사방을 둘러보는 경치가 뛰어났습니다. 멀리 2.6km 떨어진 곳에 있는 암봉인 천성산 제2봉도 빨리 오라는 듯 또렷이 보였습니다.(이 산은 제가 여러 해 전에 올랐었는데 그때 정상은 지뢰지대라서 막혀 있었습니다. 그 후 지뢰를 제거하고 부분적으로 길 부분을 개방한 것입니다.) 정상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동영상도 찍으며 사방의 경치와 특히 서쪽의 완만하게 경사지고 넓게 자리잡은 화엄벌도 조망해 보았습니다. 화엄벌에서는 원효대사가 야단법석을 열고 화엄을 설파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기서 산행 경로가 변합니다. 다음 목표는 천성산 제2봉이 되고 거기서 주남고개로 가서 지난 번 갔던 영산대학교로 내려가야 하나 대원들이 지치고 시간이 늦어져서 산행 경로를 조금 수정하기로 합니다. 미타암으로 하산하기로 한 것입니다. 정상의 고원지대를 빙 돌아서 은수고개(삼거리, 17:31)로 내려간 다음 직진하는 제2봉 쪽으로 가지 않고 우측의 미타암 쪽 길을 택했습니다.
미타암 가는 길은 작은 언덕을 하나 넘어서 계속 내려가야 하는 길인데 길이 거칠고 돌이 박혀 있어 지친 산객들에게는 쉬운 길은 아니었습니다. 철쭉제단(17:47)을 지나서 18:08, 미타암에 도착했습니다. 파이프로 물이 콸콸 쏟아지는 샘으로 가서 물을 마시고 물통에도 채웠습니다. 몇 바가지 머리 위에도 쏟아 부었습니다. 무더위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습니다. 고생도 거의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마음도 홀가분했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미타암까지 길이 잘 나있어 보통의 차는 올라올 수 있었지만 대형 버스가 오기에는 경사가 너무 급한 것 같았습니다. 우리 버스는 올라 오지 못하고 휴양림 어디 쯤 주차하고 있을 거라는 말을 듣고 찻길을 따라 계속 내려갔습니다. 무더위에 시달리며 제법 가파른 시멘트길을 약 2.5km 내려가서야 버스를 만날 수 있었고 그 때서야 산행이 끝났습니다.(18:35)
약 10분에 걸쳐 후미까지 도착한 후에 버스를 타고 저녁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지난 달에 갔던 주남동의 “맛골”로 가서 녹돈+밀면(10,000원) 정식으로 식사를 하며 막걸리를 달게 마셨습니다. 가격이 착하고 맛도 괜찮은 식당이라서 두 달 연속으로 이용하게 된 셈입니다. 오후 7시 40분 쯤 버스가 서울을 향해 움직였습니다. 버스는 제가 예측했던 울산 방향(북쪽)과는 달리 남쪽 방향으로 달리더니 물금IC로 해서 경부고속도로에 진입하여 내쳐 경부고속도로로만 오다가 옥산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12시 13분에 양재역에 도착하였습니다. 전철이 끝난 시각이라서 버스 이용 못하는 분들은 택시로 귀가해야 했습니다. 무더위에 시달리며 힘이 들었던 산행, 제게는 시련이자 고행이었던 하루였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동문들과 공감하며 같이 산행을 즐긴 하루였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해도 될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 후기 -
산행 후 시를 하나 지었습니다.
[제30차 낙동정맥 산행에 부쳐]
낙동정맥 지나는 곳
신라의 불교역사
천성산 역시도
빼놓을 수 없다
원효스님 화엄벌에
야단법석 차려놓고
꽃 한송이 들어서
화엄을 설파하니
당나라서 온 일천 스님
득도하여 성인되었다네
저 높은 산마루까지
가볍게 올라오시는
그 분
신라의 으뜸가는
등산가이시다
오늘 그 길은 왜 이리도
힘이 드는지
19인의 선지식들
힘을 짜내어
정상에 섰다
화엄의 득도란
이 길 오르기보다 힘들겠지
정상서 내려다보는
이 경치를
화엄의 세계로
그대로 보면 안 될까
낙동을 걷는 것은
도를 찾는 행위이다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라
치열한 탐구 속에
경동의 에이스 산악인들
오늘도 산의 도를 구한다
몰운대에서 낙동 끝내는 날
구름타고 둥둥 떠서
서방정토로 날아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