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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견오온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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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80편) 20250707
봉착(逢着)
백장이 마조의 회상에 있었는데 마조가 묻되 "어디서 왔는가?" 선사가 대답호대 "산 뒤에서 왔습니다." 마조가 묻되 "일찌기 사람을 만났던가" 선사가 대답호대 "만나지 않았습니다" 마조가 다시 묻되 "어찌하여 만나지 못했던가?" 선사가 대답호대 "만났으면 화상께 사뢰었을 것입니다." 마조가 다시 묻되 "어디서 그런 소식을 얻었는가?" 선사가 대답호대 "저의 허물이옵니다" 마조가 말호대 "아니요. 나의 허물이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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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원본)
逢着
百丈 在馬祖會下 祖問師 什麼處來 師云 山後來 祖云 還會逢着人麼 師云 不逢着 祖云 爲什麼不逢 師云 逢着 卽舉 似和尙 祖云甚處得這箇消息 師云 某甲罪過 祖云 却是老僧罪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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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번역본)
【一八○】 백장이 마조회하에 있었다. 마조가 스님에게 묻되 어느 곳에서 오느냐. 스님이 이르되 산 뒤에서 옵니다. 마조가 이르되 도리어 일찍이 사람을 봉착(逢着; 만나다. 着은 조사)했느냐. 스님이 이르되 봉착하지 못했습니다. 마조가 이르되 무엇 대문에 만나지 못했느냐. 스님이 이르되 봉착했다면 곧 화상에게 거사(擧似; 들어 보임)했을 것입니다. 마조가 이르되 어느 곳에서 이(這个) 소식을 얻었느냐. 스님이 이르되 모갑의 죄과(罪過)입니다. 마조가 이르되 도리어 이 노승의 죄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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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원본)
马祖一日问师:“什么处来?”师云:“山后来。”祖云:“还逢着一人么?”师云:“不逢着。”祖云:“为什么不逢着?”师云:“若逢着,即举似和尚。”祖云:“什么处得者个消息来?”师云:“某甲罪过。”祖云:“却是老僧罪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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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출처>
아래의 사이트 중 (3) 번 아래에 파란색 글자 본문 내용이 있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mp.weixin.qq.com/s?__biz=MjM5MjMzMDM2Mw==&mid=2660792458&idx=2&sn=9f0e441c23e7a838935b540264f744ad&chksm=bdcb3f9e8abcb68829f6abeef89a7871f446abe058c10254d70cb28bfc2eef74c1032dc36717&scene=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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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 😄🙏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8년 전 초기에 글을 쓸 때만 해도 이런 글에 누가 관심을 가져 줄까 싶어서 집안 형님과 지인 형님 한 분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었는데요.
그러다가 주의 사람들과도 같이 보게 되었고 그중에 불자 지인들이 카페에 저의 글을 올려주면서 직접 올려보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요.
생각보다 지금은 엄청 많은 분들이 동참을 해주시고 계시는데요.
이 자리를 빌려서 매우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인분들은 거의가 불교와는 상관이 없으신 분들이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질문을 주시고 따라 해 주셔서 늘 감사드리고 보람을 느끼고 있답니다.🙏🏻
수행이라는 것이 뭐 별거겠습니까?
모두가 참 나를 찾고자 하는 것이고 부처가 되기 전까지는 현명하고 지혜롭게 마음 편하게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지요.
아무쪼록 늘 건강하시고 무엇보다 이것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니 이 글을 보시는 모든 분들이 꼭 성불을 이루시길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 이 글은 주로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기 때문에 쉽게 풀어서 설명하느라 글이 좀 길답니다.😅
ㅡ♡
(본문 해설)
오늘 선문 내용도 아주 재미난 선문이 나왔는데요.^^
오늘 내용의 해석은 아래의 중국 자료에 저는 공감을 하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불교에서 말하는 사람이나 얼굴 등의 표현은 본성 자리를 비유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를 들면 본래면목(本來面目), 또는 단군신화에 곰과 호랑이가 마늘과 쑥만 먹고 토굴에 들어가 곰은 사람이 되었다는 내용 등이 모두 수행을 통해 본성을 증득한 것들을 표현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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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자료)
怀海打从山后来,亲证了这无耳鼻等貌的本来面目,谁能与之相逢
。马祖还是关切地问:“还逢着一人么?”怀海自然心里有数,从容地答道:“不逢着。”马祖再紧逼一句:“为什么不逢着?”怀海已知究竟,那无耳鼻等貌的本来面目岂能呼唤得出,因此,只能兼带地回答:“若逢着,即举似和尚。”马祖还是不放过,步步紧逼:“什么处得者个消息来?”怀海见这一问,自知已是怜伤了那个,故云:“某甲罪过。”事因马祖而起,不仅怜伤了那个,更紧逼怀海说出那个,所以马祖也说:“却是老僧罪过。”《金刚经》中说“善护念”,得个消息后须勤保护,“不知保护则成罪过,自知触犯得罪过,罪过即非罪过,翻成保护矣。”“他父子俩机用宛转,回护得妙;不存正位,那管大功”。
대강 해석하면 이런 내용이랍니다.
백장이 뒷산에서 내려오는데 마조가 백장을 보고 사람을 보았느냐는 질문은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본성을 보았느냐는 질문이랍니다.
그런데 백장은 사람(본성)을 보고도 보지 못했다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봤다고 하면 코는 어떻게 생겼고 귀는 어떻게 생겼는지 등의 본 것을 설명해 보라 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설명을 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백장은 아예 사람(본성)을 못 봤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지금까지 마조가 백장의 코를 꼬집는 등의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백장으로는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렇지 않겠어요?
요즘도 보면 큰스님들과 선문답을 하다 보면 답을 해도 꼬투리를 잡고 늘어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마조가 그동안 그와 유사했다는 것입니다.^^
툭하면 마조가 백장이 답변을 잘못할 때마다 코를 비틀어 댔으니 백장으로서는 주눅이 들어서 그럴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백장이 마조를 피하는 거랍니다.
마치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피하듯이 말이지요.^^
그런데 마조는 짓궂게도 다시 "어째서 만나지 못했느냐" 하면서 몰아붙이니까?
백장이 "제가 봤으면 봤다고 말을 했을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끝까지 발뺌을 하니까?
祖云:“什么处得者个消息来?”
어떻게 처소를 얻어 한 소식이 왔는가?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마조가 백장에게..
"어떻게 한 소식을 했는가?"
했다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백장의 답변이..
"황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했다는 것인데요.
왜냐하면 마조는 지금 백장이 사람(본성)을 보았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백장에게 짓궂게 다시"왜 보지를 못했느냐"라고 하니까 백장으로서는 "저의 잘못입니다" 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마조의 태도로 봤을 때 봤다고 하면 본 것을 설명해 보라 할 것이 뻔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랬더니 마조의 대답이?
“却是老僧罪过。”
"사실인즉 노승의 잘못이다."
했다는 것인데요.
왜냐하면 그동안 자신이 백장에게 얼마나 거시기 했으면 백장이 깨닫고도 깨닫지 못했다고 하니까 "사실인즉 노승의 잘못이다." 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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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 설명)
제 경우는 이런 글을 쓰게 되면서 여기저기서 큰 어른들이 한번 보자고 해서 찾아가 면 선문을 해왔던 경우가 많은 경우에 속하는데요.
갈 때마다 솔직히 초기에 오산 일물선원에 계시는 선원장님 딱 한 분만 빼고는 참으로 다들 거시기한 경우가 많았답니다.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선문염송]도 이분이 구해다 주신 것이고요.
선문답이란 이 어른처럼 한두 번만 물어보고 끝을 내야 하는데..
그런데 다른 어른들은 어떡해서든지 선문으로 상대를 찍어 누르려 하고 자꾸 지저분하게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거나 거의 대부분은 화를 내거나 큰 소리로 상대를 제압하려고 했다는 것인데요.
여러분들이 몰라서 그렇지 불법이란 마음 법이기 때문에 선문답을 주고받다 보면 상대의 마음이 금방 드러나는 경우가 많답니다.
어떤 분은 목석처럼 끔쩍도 안 하시는 분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분들은 겉으로는 점잖은척하지만 속 마음은 마구 요동치고 있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이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분들은 얼굴이 벌게지면서 말이 거칠어지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떤 어른은 주장자까지 들고나오면서 저를 때리려고 하신 분까지 있어서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건데요.
그런 면에서 오늘 마조가 백장에게 보인 마음은 그야말로 크다 할 수 있답니다.
왜냐하면
“却是老僧罪过。”
"사실인즉 노승의 잘못이다."
라는 이런 사과의 말 하나에는 대 스승으로서의 마음이 차고도 넘치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른들처럼 야단부터 치는 것이 아니고요.
그런 속 좁은 마음을 어디에다 쓰겠습니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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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에 대한 내용, 질문이 있는 경우 질문 내용
지면이 작아서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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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나누었던 질문답 내용들이 많이 밀려있는데요.^^
너무 많아서 다 올리지 못해 좀 거시기 하지만 가급적이면 여러분들에게 유익한 내용부터 골라서 올려드리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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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질문 내용은 지난 《맛지마니까야》20250623 (사무량심(四無量心) 이란?) 편을 보시고 질문을 주신 내용인데요.
오늘 내용은 다른 내용과 달라서 여러분들에게 아주 중요한 내용이라 그동안 질문 내용들이 많이 밀려 있는 상태이지만 먼저 올려보는 것인데요.
사실은 지난주에 했던 경허집을 보시고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 질문을 주신 분이 계셔서 재미로 이것을 먼저 올려드리려고 했었는데요.^^
그런데 수행에 관한 내용이 들어와서 수행 이야기가 우선라 부득이 이번 내용부터 올려보겠습니다.^^
그럼 같이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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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여여(如如)하다 ... 한자 수정해야겠죠
또 사무량심이 깨닫고 증득한 이들의 후공부라는 말도 무리가 있어요.
확실하게 사무량심을 닦지 못해도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점검하고 뉘우치며 닦는 도성제를 통해 평온한 열반의 상태인 멸성제를 이루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답변)
아, 안녕하세요. 햇살님..^^
네 여여(如如) 함이 맞습니다.^^
요즘 들어 수행에 관계되는 질문이 안 들어와서 방편으로 다른 글자를 넣어본 것인데요.^^
왜냐하면 이렇게 하면 반박 글이 올라오면서 다른 내용들도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혹 이런 것에 기분이 상하셨다면 양해 바랍니다.
저도 글을 오래 쓰다 보니까 요령이 생겨서요.😅
법우님의 내용 중에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점검하고 뉘우치며 닦는] 은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없으면 다른 것들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수행자들은 늘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포살(布薩)을 해야 하는 것이고요.
왜냐하면 이렇게 해야 신심(大信心) 도 생기고 분심(大憤心)도 생기고 의심(大疑心)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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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그런데 문제는 법우님의 말씀 중에?
[사무량심이 깨닫고 증득한 이들의 후공부라는 말도 무리가 있다는 말씀과
확실하게 사무량심을 닦지 못해도 스스로의 마음 상태를 점검하고 뉘우치며 닦는 도성제를 통해 평온한 열반의 상태인 멸성제를 이루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라는 말씀은 큰 착각이랍니다.
왜냐하면 마음이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마음을 닦고 다스릴 수가 있을까요?
마음은 형체도 모양도 없는 그저 허공과 같은 것인데요?
법우님은 허공을 관리하고 다스릴 수가 있다고 보십니까?
제 말은 법우님뿐만이 아니라 많은 수행자들이 알아차림을 해야 할 대상과 관리를 하고 다스려야 할 대상이 바뀌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혹시라도 법우님이 반발을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것은 후차 문제고 지금은 제 이야기를 잘 이해하시고 직접 따라 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수행자들은 비유를 하면?
마치 내가 지금 거울을 보고 있는데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에 뭐가 묻은 것을 보고 지금 거울을 닦으려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가시나요?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에 뭐가 묻었는데 내 몸(오온)에 해당하는 얼굴을 닦아야지 지금 거울 속에 비친 거울을 닦는 말씀을 지금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거울을 아무리 닦아봐야 내 얼굴에 묻은 것을 지울 수가 있겠느냐 이겁니다?
거울은 스스로 무엇이든 비추고 알아차리는 기능 박에 없는데요?
물론 세상의 거울은 밝게 닦으면 닦을수록 잘 보이고 잘 알아차릴 수는 있답니다.
그러나 거울을 어떻게 다스리고 가꿀 수가 있을까요?
거울은 그냥 그대로의 면목으로 존재하면서 알아차리고 있을 뿐인데요?
이해가 가시나요?
우리 마음(본성)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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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하신 화택 이야기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 큰 집 하나가 불에 타고 있습니다.
그 불타는 집은 마음일까요? 아니면 몸(오온)일까요?
그 불타는 집은 마음(어린아이들)을 담고 있는 집(몸/오온)이랍니다.
지금 이 내용이 얼마나 중요한 내용인지 지금 수행자들은 모르고 있답니다.
그냥 이야기로만 알고 있지요?
우리의 마음은 지금 화택 속의 아이들처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몸(집)에 갇혀서 철없이 놀고 있다는 비유랍니다.
그 마음을 밖으로 건져서 편히 쉬게 하려는 것이 장자의 마음이고요.
이것을 먼저 관찰을 통해 깨달으셔야 한답니다.
그러려면 불타는 집(몸/오온)과 마음(아이들)을 분리해서 볼 줄 알아야 하고요.
그래야 집(몸/오온)이 불타고 있는지 마음(아이들)이 불타고 있는지 알 수가 있지 않겠어요?
그래야 불타는 집(오온)을 다스릴 수가 있지 않겠어요?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마음과 몸(오온)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거울(마음)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사무량심이나 도성제 등은 때려죽어도 이해를 하시기 힘들고요.
왜냐하면 계속해서 거울(마음)만 닦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화택 이야기에도 보면 장자가 그 아이들을 마음대로 할 수가 있었던가요?
지금 법우님이 하시는 말씀이 바로 이렇게 하려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거랍니다.
내 마음(아이들)을 다스리고 닦으려는.. 것처럼 말이지요?
마음에 비추어지는 것들은 그저 거울에 비추어지는 것들 뿐이랍니다.
이것을 먼저 확실하게 알아차림이 확립되어 있어야만 사무량심이나 도성제 등을 그나마 알아차리고 수행을 해나갈 수가 있답니다.
수행할 때에 마음은 그냥 알아차리는 것이랍니다.
마음은 닦을 수 있는 그런 대상이 아니랍니다.
마음은 그저 청명하고 깨끗하면 그것으로 끝이랍니다.
사실을 알고 보면 본래 마음(본성)은 본래 청명하고 깨끗한 것이고요.
본래 청명하고 깨끗한 것을 닦기는 뭘 더 닦겠습니까?
부처님 말씀은 그런 것이 아니라 이미 잘 닦여있는 그 마음을 찾아서 쓰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거울처럼 세상을 잘 비추어보고 지혜롭게 살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하.. 거울(마음)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먼저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답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내 얼굴은 안 닦고 거울 속(마음)에 비친 얼굴만 닦고 있을 것이니까요?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시나요?
이것이 진짜로 그런지 아닌지를 아주 쉽게 확인해 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부처님이 알려주신 위파사나(조견오온)이고요.
그러니 법우님도 이렇게 해보십시오.
예를 들어 내 마음에 뭔가가 일어난다? 했을 때,
특히 화가 일어날 때, 시간에 쫓기고 있을 때, 두렵거나 공포에 휩싸여 있을 때,
또는 내가 뭔가에 집착을 하고 있때, 등등
무엇이든 좋습니다.
이럴 때에 조견오온을 즉 내 몸과 오온을 관찰해 보시면 반듯이 오온이 화를 내고 있고, 오온이 시간에 쫓기고 있고, 오온이 두려워하고 있거나 공포에 휩싸여 있음을 아실 수가 있을 겁니다.
마치 화택 이야기에서처럼 집(몸/오온)이 불타고 있는 것처럼 말이지요?
그래서 지금 먼저 법우님이 하셔야 할 일은 본성(마음)과 몸(오온)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정확하고 확실하게 알아차림을 확립 시켜야 한답니다.
이것이 확립되어 있으면 그제야 사무량심이나 도성제 내용들이 스스로 일어나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가 있답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처럼 계속해서 거울(본성)만 닦고 있을 것이니까요.
세상 속의 거울은 계속해서 닦아내야 밝아지지만 우리들 거울(본성)은 이미 너무나도 깨끗하고 청명하게 잘 닦여 있기 때문에 닦고 말고 할 것이 없답니다.
그냥 찾아서 쓰면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사무량심과 도성제 내용들은 본성에서 스스로 알아차리고 일어나는 것이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아실 수가 있게 된답니다.
그전에는 마치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이 진짜인 줄 알기 때문에 사무량심이나 도성제 등도 그렇게 볼일 수 박에 없을 것이고요.
끝으로 더 들려드릴 내용들이 많지만 장소가 협소하니 사무량심 중에 (사랑하는 마음)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예로 들어보고 마무리해 보겠습니다.^^
법우님도 살다 보면 아주 불쌍하고 가엾은 관경이나 소리를 들을 때가 있잖아요?
이것을 관세음(觀世音) 즉 세상을 보고 듣는 것이고요.
누구나 이렇게 깨달은 사람들이나 못 깨달은 사람들이나 관세음(觀世音) 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반 사람들은 보살(菩薩)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똑같이 보고 듣고 하지만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보살심(菩薩心)이 일어나는 반면
일반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서 일어났다가 안 일어났다가 어쩔 때에는 (보살심)은 고사하고 서로 물고 뜯고 죽이려고 하잖아요?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심이나 사무량심이나 도성제 등은 이랬다저랬다 하는 그런 마음이 아니랍니다.
늘 항상 고정되어 있는 그런 마음(心) 이지요.
만약에 부처님도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마음이라면 가짜라는 증거이고요.
예를 들면 아주 어린 들 고양이 새끼가 눈 밭에서 얼어 죽어가고 있거나?
자동차 도로 위에 고라니나 고양이 등이 차에 치여서 피를 뿌리면서 죽어가 있거나?
아니면 사랑하는 부모님이나 처자식이 잘 못되어 관 속에 누워 있거나 했을 때..?
이럴 때 보면 누구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스스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런데 이런 마음이 항상 그런가요?
어떤 사황이 다쳐도 항상 (사랑하는 마음)과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유지할 수가 있느냐 이 말입니다?
만약에 법우님에게 이런 마음의 힘(道)이 있다는 법우님은 이미 아라한이랍니다.
또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나의 처자식이나 부모가 사고로 피투성이가 되어서 관 속에 누워 있는데 사무량심이나 도성제 등으로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보통 도인은 아닐 것이고요.
지금 법우님이 하시는 말씀이 그런 내용을 말씀하고 계시다는 거랍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은 닦아서 되는 일이 아니랍니다.
이미 닦여 있는 그야말로 아주 깨끗하고 청명한 마음을 찾아서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제 말은 보살심이나 사무량심이나 도성제 내용들은 임의로 갈고닦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그런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깨닫고 증득을 하면 바로 쓸 수가 있는 것이라 하는 것이고요.
법우님이 아직 몰라서 그렇지 실제로 깨닫고 증득을 하게 되면 일 순간에 마음이 완전히 바뀐답니다.
부끄럽지만 제 경우를 예를 들면 어릴 적 친구들도 이 글을 보고 있지만 제 경우는 어릴 때부터 닭이나 개 등을 훔쳐서 닭 모가지를 비틀거나 몽둥이나 밧줄로 개 목을 묶어서 죽여서 잡아먹는 일을 예사로 했었던 사람이랍니다.
그것도 친구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말이지요.
고등학교 때에는 동내 잔치 때 돼지도 오한마로 머리를 때려서 한방에 죽인 적도 있고요.
그리고 장어 장사도 했었기 때문에 장어를 전기로 기절시키고 배를 가른 것만 해도 족히 수만 마리는 될 것이고요?
그리고 사채업도 20년 넘게 하면서 돈 받아 내는 것은 제가 타고났기 때문에 돈 하나만큼은 잘 받아냈던 그런 사람이었답니다.
그런데 지금은 비가 올 때에 도로에 나가 보면 지렁이들이 말라죽고 있잖아요?
그러면 지금은 눈물이 날 정도로 불쌍하고 애처로워서 손으로 그 지렁이들을 다 주워서 물가나 진흙이 있는 빗물 구멍에 넣어주고 있게 된답니다.
차에 치어서 도로에 누워있는 고라니나 고양이 들도 사고의 위험성이 없을 때에는 길가로 올려두기도 하고요.
이뿐만이 아니랍니다.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하면 본성의 마음이 본래 이렇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서랍니다.
그래서 저는 앙굴마라의 이야기도 이해를 하는 것이고 주리반다가의 이야기도 이해를 하는 것이고요.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이렇게 보살심이나 사무량심이나 도성제 등은 갈고닦는 것이 아니라 깨닫고 증득을 해서 바로 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갈고닦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아주 맑고 깨끗한 마음을 찾아서 쓰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찾기만 하면 보살심이나 사무량심이나 도성제 등은 하지 말라고 해도 스스로 마음이 일어나서 하게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법우님도 마음에서 무엇이든 일어나면 몸(오온)을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정말로 마음은 그렇다는 것을 아실 수가 있답니다.
정말이지 마음은 항상 그대로라는 것을 말이지요?
그러면 그대로인 마음은 닦고 말고 할 것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아시게 된답니다.
물론 이 방법은 부처님도 말씀하시길 하도 우리들이 헷갈려 하다 보니까 방편으로 설하셨다 하셨고요.
아셨지요?🙏🏻
(핵심 정리)
지금 여러분들이 거울(마음)을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 얼굴에 뭐가 묻어 있는 겁니다?
이럴 때에 여러분들은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인 거울을 닦아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거울을 보고 있는 진짜 내 얼굴(몸/오온)을 닦아야 하겠습니까?
부처님은 대념처경 멸성제에서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시고 계시답니다.
마음(거울)의 대상 즉 [안이비설신의]를 통해 거울(마음)에 비치는 여러 가지의 불타는 몸(오온/생각 포함)을 조견(照見) 즉 돌이켜 보면(바라보면) 일어난 자리에서 소멸한다고요.
실제로 여러분들도 똑같이 해보시면 신기하게도 잘 소멸이 된답니다.
더 기가 막힌 방법은 이때에 몸(오온/생각 포함)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은 무상(곧 변한다) 한 것이라고 사유(思惟)를 해 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훨씬 더 잘 소멸이 된답니다.
이 방법이 바로 위파사나(조견오온)의 핵심 방법이고 옛 어른들은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즉 오온(몸/생각 포함)을 돌이켜보고 개공 즉 모든 것이 공하면 바로 그 자리가 본성의 자리라 하셨던 거랍니다.
여기서 돌이켜 보라는 뜻은 오온(몸/생각 오온)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을 돌이켜 보라는 뜻이고요.(※ 핵심 ※)
그러자면 마음과 물질의 세계 즉 마음과 몸의 세계를 분리해서 보면 훨씬 더 잘 알아차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멸성제 참고 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com/watch?v=yjcPgo6tJjI&si=-4WxZRHC4iTcbj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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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문답(禪問答)
지난주 선문(禪問)입니다.
[도명 선사가 六조를 대유령에서 뵈웠는데, 六조가 말하기를 "선도 생각치 말고 악도 생각치 말라. 이럴 때에 어떤 것이 명상좌의 본래 면목인고 하니, 이에 선사가 크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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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답)
오늘 내용도 본성을 뜻하는 내용인데요.
만약에 육조 혜능이 저에게도..
"선도 생각치 말고 악도 생각치 말라. 이럴 때에 어떤 것이 명상좌의 본래 면목인고?"
하고 묻는다면 저는 바로?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곡을 하면서 큰 절을 두 번 올리겠습니다.
왜냐하면 명상좌의 본래 면목은 육식(六識)과 육처(六處) 등 몸(오온/생각 포함)이 죽어 있는 상태에서나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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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선문(禪問)입니다.
[남악양 선사가 처음으로 六조를 뵈니, 六조가 묻되 "어디서 오는가?” 하니, 남악이 대답호대 "숭산에서 옵니다" 하였다. 六조가 다시 묻되 "어떤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 하니,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 하였다. 六조가 다시 묻되 "닦아 증득하는가?" 하니, "닦아 증득하는 일은 없지 않으나 더럽힐 수는 없습니다" 하였다. 이에 六조가 말호대 "이 더럽힐 수 없는 것이 부처님들이 아끼고 염려해 주시는 바이니, 그대가 이미 그렇고 나도 역시 그렇노라" 하였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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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이 내용에 맞는 합당한 답변을 해주시면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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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다음 주 선문염송
[선문염송] 중에서.. (181편) 20250728
제목 : 재참(再參)
백장이 두 번 째로 마조께 뵈니 마조가 불자를 세웠다. 이에 선사가 말호대 "이것에 의하여 활용하오리까? 이것을 떠나서 활용하오리까?" 마조가 불자를 본 자리에 세우거늘 선사가 양구하니 마조가 말호대 "그대는 뒷날 두 조각의 가죽을 열 때에 무엇으로 중생들을 이롭게 하려 하는가?" 선사가 불자를 갖다가 세우니, 마조가 묻되 "이것에 의하여 활용하는가? 이것을 떠나서 활용하는가?" 선사도 역시 불자를 본 자리에 세웠다. 이에 마조가 할을 하니, 선사가 당장에 삼 일 동안 귀가 먹었다.
[나중에 황벽이 백장에게 가서 하루 만에 하직하고 마조에게 뵈로 가겠다고 하니 백장이 말호대 "마조는 이미 '천화하였느니라" 황벽이 말호대 "마조께서 무슨 말씀이 계셨습니까?" 백장이 두번 째로 뵈로 갔던 인연을 들고는 말호대 "내가 그때 마조의 한 차례의 할을 받고 三일 동안 귀가 먹었었다" 황벽이 이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는 결에 혀를 빼거늘 백장이 말호대 "그대는 후일에 마조의 대를 잇지 않겠는가?" 황벽이 말호대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스님을 인하여 마조대사의 큰 기틀의 작용을 보았을 뿐이요. 마조는 보지도 못했습니다. 만일 마조의 대를 이으면 뒷날의 저의 자손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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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원본)
再參
百丈再參馬祖祖豎起拂子 師云即此用離此用祖掛拂子於舊處師良久 祖云你已後開兩片皮將何爲人, 師遂取拂子竪起 祖云 即此用離此用師亦掛拂子於舊處 租便喝師直得三日耳聾
(後 黃蘗到百丈一日辭欲禮拜馬祖去丈云 馬祖已遷化也蘗云未審 馬祖有何言句 丈邃擧再參因綠云我當時被馬祖一喝直得三日耳聾黃蘗聞擧不覺吐舌 丈云子已後莫承嗣馬祖否蘗云不然今日因師舉得見馬祖大機之用且不識馬祖若嗣馬祖已後喪我兒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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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자신의 마음자리를 비추어보시고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혹시 개인별로 답을 주시거나 질문이 있으시면 메일로 주셔도 됩니다.^^
e-mail : 119e@daum.net
또는
다음 검색 창
[119 수행 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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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법문 동영상
(※) 오늘도 서암 스님의 육조단경 법문인데요.
전편에 이어서 듣고 배워보겠습니다.^^
제목: 서암스님 - 육조단경 강의 (13회). 제6,육조스님께 공부한 인연들(參請機緣) - (3).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com/watch?v=l5n-ArpVtrQ&si=qtnJHZFBFL_yes5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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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음악과 함게 수행을.. 》
"지금 음악을 듣고 있는 [나]는 누구인가?.."
하면서 안으로 의식을 돌려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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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Linda Ronstadt: "It's So Easy" - HBO Concert, 1980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com/watch?v=FpcV9Dpggg0&si=W6LYWGb94XD8oe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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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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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佛ㆍ法ㆍ僧 三寶님께 歸依합니다.
거룩하시고 慈悲하신 부처님의 加被와 慈悲光明이 비춰주시길 至極한 마음으로 祈禱드립니다. 感謝합니다.
成佛하십시요.
南無阿彌陀佛 觀世音菩薩()()()
I return to Buddha, Law, and Seung Sambo.
I pray with all my heart that the holy and merciful Buddha's skin and mercy light will be reflected. Thank you.
Holy Father.()()()
= 朴圭澤(華谷)·孝菴 公認 大法師(佛敎學 碩士課程)의 좋은글 중에서(Among the good articles of Park Gyu-taek(Hwagok) dharma-bhānaka and Hyoam's official Daebosa(an academic course in Buddhism) =
고맙습니다. 😁📿🙏🏻
습한 것이 많이 덥네요.^^
아무쪼록 이번 더위 잘 넘기시고 모든 가정에 화평이 깃들기를 기원드립니다.😁🙏🏻
"이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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