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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신신야(信信信也)
믿을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라는 뜻으로, 상대의 말을 무조건 의심만 하면 안 되고 진실 된 것은 믿어야 신실한 모습이 생긴다는 말이다.
信 : 믿을 신(亻/7)
信 : 믿을 신(亻/7)
信 : 믿을 신(亻/7)
也 : 어조사 야(乙/2)
출전 : 순자(荀子) 비십이자편(非十二子篇)
第六信信信也, 疑疑亦信也.
믿을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고, 의심할 것을 의심하는 것도 믿음이다.
貴賢仁也, 賤不肖亦仁也.
어진이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어짊이고, 못난 자를 천하게 보는 것도 어짊이다.
言而當知也, 默而當亦知也.
말하여 바로잡는 것도 앎이고 침묵하여 바로잡는 것도 앎이다.
故知默猶知言也.
이 때문에 침묵을 안다 함은 말할 줄 아는 것과 같다.
순자(荀子) 비십이자편(非十二子篇)에 나오는 구절이다.
신실함은 어디서 나오는가? 덮어놓고 믿지 않고 살피고 따져보아 믿을 만한 것을 믿는 데서 생긴다. 의심할 만한 일을 덩달아 믿어 부화뇌동하면 뒤에 꼭 후회하고 책임질 일이 생긴다. 다 잘해주고 무조건 베푸는 것이 인(仁)이 아니다. 그의 언행을 보아 그가 받을 만한 대접만큼 해주는 것이 인(仁)이다.
가리지 않고 잘해주면 그가 달라질 기회를 빼앗는 것이나 한가지다. 문제가 생겼을 때 바른말로 상황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지혜다. 때로는 입을 꾹 다문 침묵이 더 무서울 때도 있다. 침묵이 언어의 힘을 넘어서는 것은 아주 가끔이다. 이어지는 말이다.
知而險, 賊而神, 爲詐而巧, 言無用而辯, 辯不惠而察, 治之大殃也.
알면서 모른 체하고, 나쁜데 고상한 듯 굴며, 속임수를 쓰면서 교묘하고, 쓸모없는 말을 하지만 번드르르하며, 도움이 안 되는 주장을 펴면서 꼼꼼한 것은 다스림의 큰 재앙이다.
行辟而堅, 飾非而好, 玩奸而澤, 言辯而逆, 古之大禁也.
편벽되게 행동하면서 고집을 부리고, 그른 것을 꾸며서 그럴듯하게 보이며, 간악한 자를 아껴서 은혜를 베풀고, 반지르르한 말로 이치를 거스르는 것은 옛날에 크게 금한 것이다.
잘못인 줄 알면서도 음험하게 속내를 숨긴다. 못된 심보를 안 들키려고 겉꾸민다. 속임수는 항상 그럴싸해 보이고, 쓸데없는 말이 더 현란하다. 희한한 짓을 하면서 고집을 부린다. 잘못을 해놓고도 인정하지 않고 자꾸 꾸며서 좋다고 우긴다. 간사한 자를 곁에 두고 총애한다.
말은 청산유수인데 막상 이치에 맞지 않는다. 이런 현상이 자꾸 벌어지면 그 사회나 조직에 문제가 커지고 있다는 증좌다. 믿을 것을 믿고 의심할 것은 의심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다. 불편해도 진실을 따르는 것이 맞는다.
▣ 자신감(自信感)
자신의 능력이나 가치를 확실하게 믿는 느낌을 이르는 말이다. 인간의 뇌(腦)는 확고한 자신감(自信感)이 있을 때 회로(回路)가 막힘 없이 가장 조화(調和)롭게 움직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자신이 과거 성공하였던 경험(經驗)을 생각해 보도록 도와주거나 자신감(自信感)을 갖게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한다.
'사람(人)의 말(言)은 믿어야 한다'에서 나왔다고 생각되는 '믿을 신(信)'은 꼭 '믿다'는 의미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서신(書信), 통신(通信), 송신(送信), 수신(受信)에서는 '편지'라는 의미이고, 신호(信號), 발신(發信)에서는 '표지'의 의미이며, 신상필벌(信賞必罰)에서는 '반드시'라는 의미인 것이다.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아니하고 덮어놓고 믿는 것을 맹신(盲信)이라 하고, 꽃이 피는 소식을 화신(花信)이라 하며, 믿어서 근거나 증거로 삼는 일을 신빙(信憑)이라 한다. 그리고 믿음성이 있고 진실함을 일러 신실(信實), 믿고 일을 맡김을 신임(信任)이라 한다.
신언불미 미언불신(信言不美美言不信)이라 하였다. 진실성이 있는 말은 결코 아름답게 수식하지 않고, 화려하게 수식한 말에는 진실성이 없다는 의미이다. 신신의의 역신야(信信疑疑 亦信也)라고도 하였다. 믿을만한 것을 믿고 의심스러운 것은 의심하는 것이 참다운 인간의 믿음이라는 말이다.
논어(論語)에 신이후로기민(信而後勞其民)이라는 말이 나온다. 군자(君子)는 자신이 믿음을 얻은 이후에 그 백성들에게 힘든 일을 시킨다는 의미이다.
▣ 당신은 무엇을 믿는가?
2010 벤쿠버 동계올림픽이 끝난 지 오래지만 한국을 빛낸 선수들의 성공신화와 그 후일담을 얘기하며 그들을 귀감으로 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밴쿠버 성적표에 세계경제 패권이 보인다'는 말이 나올 만큼 그들의 선전은 국가 전체에 큰 희망을 주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과연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김연아 선수의 인터뷰 내용 중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바로 '자신감'이다.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긴장 되지 않았다. 연습을 잘해 왔기 때문에 잘할 자신(自信)이 있었다."
표준국어사전에 따르면 자신(自信)이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다거나 어떤 일이 꼭 그렇게 되리라는 데 대하여 스스로 굳게 믿음 또는 그런 믿음'을 뜻한다. 김연아 선수는 이미 금메달을 딸 수 있고 꼭 그렇게 되리라는 데 대하여 스스로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를 향해 혼신의 힘을 다해 연습하고 또 연습했기에 금메달을 딴 것이다.
성공학의 대가 폴 J 마이어는 '믿음의 마력(The Magic of Believing)'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얘기했다. "당신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리고 열렬히 소망하며 깊이 믿고 그를 위해 열의를 가지고 행동하면 어떤 일이라도 반드시 실현된다."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딴 이상화 선수의 미니홈피에는 금메달을 예언이라도 한 듯 "금메달 다 내꺼" 라는 자신감 넘치는 멘트가 올라 있었다. 이상화 선수의 금메달은 자신의 승리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믿는가? 머릿속에 선명하게 그리고 열렬히 소망하며 깊이 믿고 그를 위해 열의를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있는가? 당신의 믿음을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믿음을 가지고 있는 대상 또는 기준이 있는가? 이 물음에 바로 답을 할 수 없다면 당신은 '자신감'이 없을 것이다.
아마도 매사에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말을 자주 쓸 것이다. 무엇인가 열심히 하고 있고 겉으론 아닌 척해도 불안할 것이다. 바로 믿을 대상이 없고,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 조차 모르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해서도 굳게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믿어야 자신이 있을까? 순자는 신신신야, 의의역신야(信信信也, 疑疑亦信也)라고 했다. "꼭 믿어야 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그런데 의심해야할 것을 의심하는 것도 역시 믿음이다"라는 뜻이다.
▣ 信(믿을 신)
중국의 전통적인 도덕규범의 하나이다.
성실하고 속임이 없으며 언행이 일치되는 것을 가리킨다. 좌전(左傳) 희공(僖公) 25년 조에서 "신은 나라의 보배요, 백성이 의지할 바이다"라고 했다. 논어(論語) 위정(爲政) 편에서 "인간이면서 신이 없다면 그가 괜찮은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사물에 순응하면서 거스름이 없는 것을 가리켜 신(信)이라 한다"고 했다.
하남정씨수언(河南程氏粹言) 권1에서는 '붕우지도(朋友之道)'라고 했는데, 신(信)은 바로 친구간의 도리이기도 하다. 논어(論語) 공야장(公冶長) 편에서는 '붕우신지(朋友信之)',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편에서는 '붕우유신(朋友有信)'이라고 했다.
信(신)은 유교 사상에서의 중요한 덕목으로, 인간다운 모습 가운데 하나이다. 허신(許愼)의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신의는 성실[誠]인데, 사람[人]과 말[言]의 회의자(會意字)이다'라 하여, 이는 주로 인간의 언어적 약속이 거짓 없이 실현되는 것을 지칭하는 개념임을 보여 준다.
공자(孔子) 이전에 있어서 신의라는 개념은 주로 사회적인 모든 인간 관계에서 강조되던 개념이었다. 증자(曾子)의 삼성(三省) 가운데 신의는 벗과의 인간 관계에서 지켜져야 할 덕목이며, 정치적 측면에서는 치자(治者)가 피치자(被治者)인 민에게 지켜야 할 덕목이며, 나아가 국가간의 관계에서도 서로가 지켜야 할 덕목이다.
즉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 등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신의는, 그들 사이의 갈등과 분쟁을 해소하고 이상적인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토대가 되는 것이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상호 신뢰의 토대가 결여된 상태에서는 모든 인간 관계와 사회적 관계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음을 뜻하는 것이다.
공자가 "사람이 신의가 없으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이는 마치 큰 수레에 예(輗)가 없고 작은 수레에 월(軏)이 없는 것과 같으니, 어떻게 움직일 수가 있겠는가?" 하였으니, 신의는 인간의 모든 사회적 관계와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다만 붕우간의 관계를 출발로 한 신의에 있어서, 모든 신의 있는 행위가 꼭 정당한 것은 아니다. 공자는 “신의는 의리에 맞는 것이라야 그 말을 실천할 수 있다”고 하였듯이, 정당성이 수반되지 않는 약속과 신의는 참다운 것이 아니다. 즉 반의리의 신의, 반생명적이고 반사회적인 신의는 부정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사회적인 덕목으로서의 신의는 도덕적 정당성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이 도덕적 정당성의 터전은 인간 내면의 본성이 가지는 성실함이다. 맹자(孟子)는 이런 관점에서 신의를 인간성의 하나로 규정한 것이며, 이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유한 인간다움의 모습이다.
초기 신(神)에 대한 믿음과, 사회적 도덕 개념으로 전개된 신은 맹자에 이르러 인간의 본성으로 확인되고, 다시 중용(中庸)의 성(誠)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내용을 갖게 된다. 중용(中庸)은 성을 천도(天道)로 규정하는 한편, 그 첫머리에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한다”고 하여, 인간성을 천도의 구현으로 보았다.
바로 여기에서 인간 본질로서의 본성은 천도 자체인 성(性)이며,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의 내용은 성(性)의 구체적인 내용이 되었다. 이와 같은 사상적 전개는 성리학에 이르러, 신(信)과 성을 같은 위치에 놓고 이해하게 하였다.
즉 성리학은 성즉리(性卽理)의 전제 아래 우주적 본질인 천도의 성실성이 곧바로 인간의 본질인 인성(人性)의 신임을 주장하였다. 이는 윤리적 선진 유학이 철학적 심화를 거치면서 나타난 것인데, 그 의미는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 힘으로서 신의는 더 나아가 인간의 삶의 토대인 이 세계의 본질 자체임을 천명한 것이다.
실로 인간의 삶은 이 세계에 대한 굳은 신뢰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한 것임을 생각한다면, 이런 이론이 가지는 의미가 분명해진다. 사회가 있는 곳에 그 구성원간의 신뢰가 중요하듯 한국사에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유학이 수용되기 시작한 삼국 시대는 전국적 상황(戰國的狀況)인만큼 내부의 상호 신뢰와 국제간의 신뢰가 자주 강조 되었으며, 화랑의 세속오계에도 신의를 강조한 내용이 들어 있다. 성리학의 수용 이후 신의는 인간성 및 세계 본질인 이(理) 또는 성과 연계되어 이해되었으며, 특히 인물성 논쟁(人物性論爭)이 벌어진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 오상론(五常論)을 중심으로 많은 논변이 전개되었다.
불교에서는 信(신)을 이해와 올바른 사고에 도달하기에 앞서 붓다의 가르침을 우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신의 권위나 붓다의 말 자체에는 의존하지 않으며, 부처의 가르침이 모두 경험적으로 증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불교의 대표적 정신수련체계의 하나인 팔정도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우선 믿음을 통해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을 잠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단계가 전제되고 있으며, 부처의 가르침은 그뒤에 직접적 체험과 올바른 이해력이 생겼을 때 확증된다.
불교 경전의 몇몇 주석가들은 믿음을 3가지로 나누었는데, 신앙적, 정서적인 믿음으로서의 신애, 노력을 포함하는 의지적인 믿음으로서의 정신, 이성적, 지적인 믿음으로서의 신해가 그것이다.
신앙을 중시하는 대승불교의 몇몇 종파에서 믿음은 지혜와 대등하게 중요한 위치로 높게 평가되고 있으며 현세에 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는 가장 적절한 길로 간주되었다. 예컨대 정토종에서는 아미타불의 이름을 정성껏 부르기만 하면 아미타불의 서방정토에 환생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설문해자(說文解字; 중국 한나라의 허신이 한자의 형성 과정과 뜻을 부수별로 정리한 책)에는 '신(信)'자는 '사람(人)의 말(言)은 믿을 수 있다'고 풀이하며, 확신(確信), 신뢰(信賴), 신용(信用)을 의미한다.
우선 고대 한자 '신(信)'은 어떻게 성립됐는지 알아보자. 믿을 신(信)은 사람 인(人)과 말씀 언(言)이 합해진 회의자(會意字; 둘 이상의 한자를 합해 새로운 뜻을 나타낸 글자)로 사람(人)다운 말(言)은 믿을 수 있다는 데서 '믿음'이라는 뜻을 가진다.
말씀 언(言)은 축문(口)을 하늘에 전하는 모습으로 기도나 제사를 통해 하늘의 말씀을 받아 내리는 장면을 설명한 것이다. 신과 인간 사이의 직접적인 소통을 담당하는 역할을 '사람 인(人)'으로 표현하고 있을지라도 사람의 말이 아니라 신탁으로 받아 내리는 말씀이 아니고는 믿을 게 못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믿음의 근본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신의 말을 약속대로 행동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을 일컫는다. 이것이 믿을 신(信)에 담긴 깊은 뜻이다. 공자가 주장한 유교의 도덕 이념 또는 정치 이념에서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다섯 가지 도리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중 하나다.
믿을 신(信)은 원래 '편지'라는 뜻이었다(서신). 편지는 중요한 내용이 담겨있으므로 '정보'의 의미로 쓰이게 됐고(송신, 수신, 통신 등), 정보는 믿을 만한 사람한테 전달해야 하므로 여기서 '믿는다'는 뜻이 추가됐다. 현대에도 편지, 정보, 믿음의 3가지 뜻으로 쓰고 있다.
어떤 일을 처리함에 평상 시에는 직위나 권위로 밀어붙일 수 있지만 위기 때는 통하지 않는다. 위기 상황에서 리더는 어떤 어려움이나 곤경에 처해도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는 꿋꿋한 자세를 보이고 구성원들이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리더는 따뜻하고 밝은 철인(哲人)의 면모와 강철같이 꿋꿋한 철인(鐵人)의 면모를 함께 보여줘야 한다.
신(信)과 관련된 사자성어를 소개한다.
▶가신지인(可信之人)은 믿을 만한 사람이나 믿음직한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거경지신(巨卿之信)은 거경(巨卿)의 신의(信義)라는 뜻으로, 굳은 약속(約束)을 뜻하며 성실(誠實)한 인품을 나타내는 말이다.
▶경낙과신(輕諾寡信)은 무슨 일에나 승낙(承諾)을 잘 하는 사람은 믿음성이 적어 약속(約束)을 어기기 쉽다는 말이다.
▶광신망설(狂信妄說)은 이치(理致)에 어긋난 허망(虛妄)한 말을 이르는 말이다.
▶교우이신(交友以信)은 벗을 사귐에 신의(信義)으로써 사귐을 이르는 말이다.
▶무신무의(無信無義)는 믿음성도 의리(義理)도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은 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는 뜻으로, 정치(政治)나 개인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義理)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무의무신(無義無信)은 의리(義理)도 없고 믿음도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미생지신(尾生之信)을 미생(尾生)의 믿음이란 뜻으로, 우직(愚直)하게 약속(約束)만을 굳게 지킴 또는 융통성이 없이 약속만을 굳게 지킴을 비유한 말이다.
▶민보어신(民保於信)은 백성은 신의(信義)가 있을 때에 안정(安定)된다는 뜻으로, 백성은 신의(信義)에 의해서만 잘 다스려진다는 말이다.
▶반신반의(半信半疑)는 반은 믿고 반은 의심(疑心)함 또는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함을 이르는 말이다.
▶불신지심(不信之心)은 믿지 아니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붕우유신(朋友有信)은 친구 사이의 도리(道理)는 믿음에 있다는 뜻으로, 오륜(五倫)의 하나이다.
▶사목지신(徙木之信)은 위정자(爲政者)는 백성(百姓)과의 약속(約束)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서신왕래(書信往來)는 편지로 전하는 소식이 오고 감을 이르는 말이다.
▶신급돈어(信及豚魚)는 돼지나 물고기 등 무심(無心)한 생물조차 믿어 의심(疑心)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신의(信義)의 지극함을 이르는 말이다.
▶신사가복(信使可覆)은 믿음은 움직일 수 없는 진리(眞理)이고, 또한 남과의 약속(約束)은 지켜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은 상을 줄 만한 훈공(勳功)이 있는 자에게 반드시 상을 주고, 벌(罰)할 죄과(罪科)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벌(罰)을 준다는 뜻으로, 곧 상벌(賞罰)을 공정(公正)하고 엄중(嚴重)히 하는 일을 말한다.
▶신심직행(信心直行)은 옳다고 믿는 바대로 거리낌 없이 곧장 행(行)함을 이르는 말이다.
▶신지무의(信之無疑)는 꼭 믿어 의심(疑心)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이다.
▶십분준신(十分準信)은 아주 충분히 믿음을 이르는 말이다.
▶음신불통(音信不通)은 소식이 서로 통(通)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이다.
▶이목지신(移木之信)은 위정자(爲政者)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百姓)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信用)을 지킴을 이르는 말 또는 남을 속이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이다.
▶자신만만(自信滿滿)은 아주 자신(自信)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직궁지신(直躬之信)은 직궁(直躬)의 신의(信義)라는 뜻으로, 인정(人情)에 벗어난 신의(信義)를 이르는 말이다.
▶차신차의(且信且疑)는 믿음직하기도 하고 의심(疑心)스럽기도 함을 이르는 말이다.
▶한신포복(韓信匍匐)은 한신(韓信)이 엎드려 기다의 뜻으로, 큰 뜻을 가진 자는 눈앞의 부끄러움을 참고 이겨냄을 이르는 말이다.
▶효제충신(孝悌忠信)은 어버이에 대한 효도(孝道), 형제(兄弟)끼리의 우애(友愛), 임금에 대한 충성(忠誠)과 벗 사이의 믿음을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 信(믿을 신)은 ❶회의문자로 䚱(신)은 고자(古字), 㐰(신), 孞(신),은 동자(同字)이다. 人(인)과 言(언; 말)의 합자(合字)이다. 사람이 말하는 말에 거짓이 없는 일, 성실을 말한다. 옛날엔 사람인변(亻)部에 口(구)라 썼으며(㐰), 또 말씀 언(言)部에 忄(심)이라 쓴 글(䚱) 자체도 있다. ❷회의문자로 信자는 '믿다', '신임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信자는 人(사람 인)자와 言(말씀 언)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믿다'라는 뜻은 人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㐰(믿을 신)자가 먼저 쓰였었다. 이후 소전에서는 口자가 言자로 바뀌면서 본래의 의미를 더욱 명확하게 표현한 信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있어야 하고 거짓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信자는 '믿다'나 '신뢰하다', '신임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래서 信(신)은 ①믿다 ②신임하다 ③맡기다 ④신봉하다 ⑤성실하다 ⑥~에 맡기다 ⑦확실하다 ⑧마음대로 하다 ⑨알다 ⑩신의(信義), 신용(信用), 신표(信標) ⑪편지(便紙ㆍ片紙), 서신(書信) ⑫정보(情報) ⑬증거(證據), 기호(記號) ⑭서류(書類) ⑮소식(消息), 소식을 전하는 사람 ⑯확실히 ⑰정말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믿을 시(恃),믿을 양/량(諒),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의심할 의(疑)이다. 용례로는 믿고 받드는 일을 신앙(信仰), 믿고 의지함을 신의(信倚), 믿음성이 있는 사람을 신인(信人), 믿고 일을 맡기는 일을 신임(信任), 믿고 받아 들임을 신수(信受), 믿음직하고 착실함을 신실(信實), 변하지 않은 굳은 생각을 신념(信念),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신도(信徒), 옳다고 믿는 마음을 신심(信心), 믿고 따라 좇음을 신종(信從), 믿어 의심하지 아니함을 신용(信用), 남을 믿고 의지함을 신뢰(信賴), 상을 줄 만한 훈공이 있는 자에게 반드시 상을 주고 벌할 죄과가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벌을 준다는 뜻으로 곧 상벌을 공정하고 엄중히 하는 일을 이르는 말을 신상필벌(信賞必罰), 돼지나 물고기 등 무심한 생물조차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신의의 지극함을 이르는 말을 신급돈어(信及豚魚), 옳다고 믿는 바대로 거리낌 없이 곧장 행함을 일컫는 말을 신심직행(信心直行), 꼭 믿어 의심하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신지무의(信之無疑), 믿음은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이고 또한 남과의 약속은 지켜야 함을 이르는 말을 신사가복(信使可覆), 성서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그리스도에 대한 자기의 신앙을 공적으로 나타내는 일을 일컫는 말을 신앙고백(信仰告白), 신앙을 가지고 종교에 귀의하는 영적 생활을 이르는 말을 신앙생활(信仰生活), 위정자가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 한다는 뜻으로 신용을 지킴을 이르는 말을 이목지신(移木之信), 미생의 믿음이란 뜻으로 우직하게 약속만을 굳게 지킴 또는 융통성이 없이 약속만을 굳게 지킴을 비유하는 말을 미생지신(尾生之信), 친구 사이의 도리는 믿음에 있음을 이르는 말을 붕우유신(朋友有信), 벗을 사귐에 신의으로써 사귐을 일컫는 말을 교우이신(交友以信), 반은 믿고 반은 의심함 또는 믿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심함을 일컫는 말을 반신반의(半信半疑), 무슨 일에나 승낙을 잘 하는 사람은 믿음성이 적어 약속을 어기기 쉽다는 말을 경낙과신(輕諾寡信) 등에 쓰인다.
▶️ 也(잇기 야/어조사 야, 잇달을 이)는 ❶상형문자로 뱀의 모양을 본떠서 본 뜻은 뱀이다. 그 음(音) 빌어 오로지 어조사(語助辭)로 쓰여지고 있다. ❷상형문자로 也자는 '어조사'로 쓰이는 글자이다. 여기서 말하는 어조사란 '~이다'나 '~구나', '또한', '역시'와 같은 것을 뜻한다. 也자는 乙(새 을)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새'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그렇다고 也자가 어떤 것에서 기원한 것인지도 명확하지는 않다. 일부에서는 뱀이 꽈리를 틀고 있는 모습으로 해석하고 있지만, 고대에 사용하던 주전자를 그린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 두 가지 해석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닌 것은 也자와 결합하는 글자들을 보면 두 해석이 모두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고대에도 也자의 기원에 대해 명확히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也(야, 이)는 ①잇기(한곳에 대어 잇거나 한곳에 닿아서 붙는 일) ②어조사(語助辭), ~이다, ~느냐?, ~도다, ~구나 ③발어사(發語辭) ④또한, 역시(亦是) ⑤딴, 다른, 그리고 ⓐ잇달다(다른 사물에 이어서 달다)(이) ⓑ대야(둥글넓적한 그릇)(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영탄하는 어조사 야야(也耶), 그러한가를 야여(也歟), 별로 해로울 것 없음을 야무방(也無妨), 괜찮음 또는 해롭잖음을 야자무방(也自無妨) 또는 야자불방(也自不妨), 마침내 또는 마지막에는 급기야(及其也), 만일에 또는 행여 나를 혹야(或也), 그 사람 또는 그 자라는 궐야(厥也), 나는 것 같음이나 매우 빠름을 비야사(飛也似), 홀로 푸르다는 독야청청(獨也靑靑), 말인즉 옳다는 언즉시야(言則是也), 입이 관문과 같다는 구자관야(口者關也), 옳으니 그르니 하고 시비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일을 시야비야(是也非也), 전쟁에서 사람은 죽는다는 병사지야(兵死地也), 누구들이라고 드러내지 않고 가리키는 말을 모야수야(某也誰也), 의외로 많음을 이르는 하기다야(何其多也)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