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무 결벽증

[아해]

2004년 7월 1일 목요일. 내 동무 결벽증이 왔다. 결벽증에 편집증이 겹쳐, 속지만 5만원 한다는 무슨, 체계적이고 또 철저한 자기 관리가 가능하다는 유명한 다이어리를 쓰는 그는 사반세기를 알고 지낸 사이지만 내 교분이 대개 그렇듯 간혹 1년, 어떤 때는 3년이나 4년을 무심하게 잊고 지내다 만나기도 한다. 도중에 전화 연락이야 있었지만 보기로는 이 번 만남이 4년 만이다. 그 사이 나는 어머니 두 분이 돌아가셨고 또 이사를 했다.


결벽증은 무척 애닳아했다. 그 마음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조차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아는 이 세심한 결벽증은, 드러내지 않으려 하면서도 도저히 말끔하게 감출 수는 없었는지 간혹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호방하고 낙천적으로 타고난 성격 어디 가랴 싶게 우스개소리를 줄곧 풀어놓았다.


아이들은 아직 그의 별명을 잊지 않고 '키다리 아저씨'라고 불렀다. 185센티미터 키다리 결벽증이 화장실에 들어가서 오래 나오지 않을 때 이미 짐작했다. 그는 화장실 구석구석에 낀 곰팡이를 닦고 있었다. 아수라장 같이 어질러진 집안의 물건들과 굴러다니는 먼지 뭉텅이들이 내 무기력함을 감출 도리 없이 선명하게 드러냈을 테고, 결벽증은 장마에 널린 빨래 같이 눅눅하고 퀴퀴한 나를 햇살 쨍쨍한 빨래줄에 옮겨 널어 빠닥빠닥하게 말리고 싶었을 거다.







손이 보이지 않을만큼 열심히 여러 물건들을 닦고 빨아대는 결벽증.
화장실 타일에 낀 까만색 물때 곰팡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말끔해진 주방.
오래된 음식 찌꺼기에서 막 깨어나기 직전의 에이리언을 보았다고 결벽증은 너스레를 떨었다.













보리차를 끓여 하루만 넣어놓아도 쉬던 냉장고.
메모 쪼가리 한 장, 오래된 장아찌 하나 버리지 못하는 성격 탓으로
작은 틈 하나 없이 가득 들어찬 물건들 때문에 고장난 것이 틀림 없는 냉장고에서
물건들을 죄다 꺼내놓고 과감하게 버릴 것들을 골라내는 결벽증.













땀을 뻘뻘 흘리며 냉장고 선반을 닦는 결벽증.
나는 그 치밀하고 체계적인 노동에 연신 감탄하며 옆에서 구경만 했다.













물건을 반 넘어 버리고 종류별로 솎아 칸칸이 따로 정리한 모습.
자신만만하고 흐뭇해하는 결벽증의 표정이라니!













청소 후, 나보다 더 뿌듯해하며 득의만면하는 결벽증.










지금 강아지가 문제냐, 사람이 굶느냐 먹는냐는 판이다, 그런 말로 애써 책임을 미루고 눈길을 돌리려고 하는데, 비쩍마른 채 털이 엉키고 눈곱이 까맣게 낀 강아지 뭉치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던 결벽증이 강아지 샴푸를 찾아 목욕을 시킬 때만 해도 저러다 말겠지 했다. 화장실 구석에 처박아놓은 말라죽은 화분 몇 개를 정리하고, 세면기 옆으로 느런히 늘어선 자잘한 화장실용 물건들을 수납장에 정리해놓았는데 어느새 남의 집 화장실처럼 말끔하게 변해있었다.


다음 날,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연장(?)을 챙겨 올 걸 그랬다고 하더니 아예 묵은 때 닦는 세제를 사와야겠다고 하며 장에 나가 세제와 강아지 빗과 사료를 사 들어왔다. 본격적으로 웃옷을 벗어부치고 장식장 위에 수북하게 쌓인 아이들 그림과 책들과 각종 물건들을 버릴 것은 제 알아서 버리고 버릴지 말지 내가 결정해야 할 것은 따로 모아 나더러 간추리라고 했다.


식탁에 가득 늘어선 별별 고지서와 잡지와 살림 등속도 금세 치워지고 내 앉은뱅이 책상과 그 옆에 쌓인 책들도 다 책꽂이를 찾아 꽂았다. 청소하기 가장 어렵다는 렌지 후드 위에 낀 기름때도 닦고 냉장고 위에 낀 먼지에 범벅된 기름때도 닦았다. 그러더니 아이들이 잠든 늦은 밤, 냉장고 청소를 해야겠다고 한다. 아, 됐어. 그만해도 충분해. 너 그러다 몸살 나겠다고 해도 물러지고 군데군데 터져 벌겋게 된 손을 후후 불어대며 기어이 냉장고에 든 물건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냉장고 야채칸에는 곯아 고인 물이 흥건했다. 곰팡이 핀 반찬통도 끌려나왔다. 일어서거나 앉을 때 결벽증은 끙끙대는 소리를 냈다. 청소는 이른 두시를 지나 새벽이 되어서야 끝났다. 결벽증은 거실에서 이불을 펴고 눕자 마자 금세 코를 곯았다.


또 날이 지나고 삼일 째. 아이들 학교 가는 길에 같이 나가 결벽증은 서울로 갔다. 보내는 악수를 하면서 속으로 말했다. '미안해.' 딱히 무엇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냥 미안하기만 했다. 애초에 올 때는 잠깐 들렀다 가마 한 거였는데 이박삼일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온 집안을 닦고 치우느라고 여러 일들이 엉켰다고 하면서도 결벽증은 마저 치우지 못하고 가는 걸 아쉬워했다.


쓸고 닦고 치우고 버리는 내내 우리는 결벽증네 아이들에 대해, 그 아이들의 성격과 타고난 형질에 대해, 우리 아이들의 끊임없는 다툼에 대해, 결벽증의 아들과 내 딸의 결혼에 대해, 결벽증이 꿈꾸는 사업의 절차에 대해, 또는 여러 번 겪은 시행착오라면 과연 극복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설사 극복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지난한 고난밖에 달리 방법이 없는지에 대해, 결벽증이 근래 두루 읽었다는 수 백권의 책에 대해, 풍수 인테리어를 이용한 사업에 대해, 인터뷰와 강연에 대해, 탄탄한 조직의 참모 역에 대해, 또 홀가분한 모노 드라마에 대해, 문화예술 타운의 기획에 대해, 물주에 대해, 군림하려는 자들과 착취에 대해, 불의를 지나치지 않고 사는 법에 대해, 까만 물때 곰팡이에 대해, 참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여섯 쪽 가득히 빽빽하게 적은 결벽증의 편지를 읽었다. 그 편지의 수신인은 내가 아니었지만 그 편지를 읽고 나는 가슴이 아팠다. 결벽증이 성경을 빌어 말했다. '고난은 견딜 수 있는 만큼 주어진다'고. 논어인지 아닌지 명확하지 않은 출처를 대며 내가 말했다. '무릇 하늘이 큰 사람을 낼 때 그 배를 주리게 하고 몸을 곤고하게 하고 그 정신을 어지럽게 하고.....'





Pascal Comelade - Ball de gegants

[이상교]

오늘은 간딴히 말하겠지만 .... 쓸모있는 남자가트다.

[오리농장]

쓸모정도가 아니라 국가적으로 다가 유익한 사람임에 틀림없슴미다.

[아이리스 겅주]

결벽증이 아니고 쓸모 없는 남자 가트다..................그래야 상교님 답글 올라올것 같으니까............. 근디 인물이 넘 훤출하여, 저 지금 거울보고 있어요. 저도 괜찮은디,,,,험시롱!!!!!!!!!!!!!!

[이상교]

아해.... 은제 나즘 소개해조.

[봄봄]

아해님과도 닮은 느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