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슴베 같은 사람들 >
문하 정영인 -
슴베란 ‘호미나 칼 따위의 자루 속에 틀어박히는 뾰족한 부분’을 말한다. 석기시대에는 슴베찌르개라 하여 슴베가 달린 뗀석기가 있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연장이나 연모, 기구에 자루를 썼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자루 없는 호미, 낫, 꼭지 없는 냄비를 생각하면 그 역할을 짐작할 수 있다. 슴베는 호미에서 보이지 않는 부분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그 역할이나 구실이 지대하다는 것이다.
쇠붙이 호미와 나무 자루는 오행상으로 보아 금극목(金克木)으로 상극(相克)이다. 도끼는 나무를 쪼개고, 나무는 쇠붙이를 녹일 수 있다. 어찌 보면 호미와 자루의 슴베는 상극 간의 조합니다. 아마 상극(相克)인 동시에 상생(相生) 관계인 것 같다. 세상에 어울리는 것은 상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극도 있다는 것이다. 마치 서로 많이 다른 부부가 구순하게 해로(偕老)하는 것을 보면. 서로가 없는 것을 보충해 가면서 살아서 그런가.
써레를 보면 몸체는 소나무이고, 써레 이빨은 참나무이다. 소나무는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부드러운 목재인 연목(軟木)이다. 참나무는 단단한 견목(堅木)이다. 써레의 몸체인 소나무에 구멍을 뚫어 견목으로 만든 단단한 써레 이빨을 박는다. 몸체도 연목, 이빨도 연목이면 아마 금시 부러져 못 쓰게 될 것이다. 또한 견목만으로 몸체에 이빨을 박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닐 것이다. 강한 것과 강한 것이 만나면 엇박자를 놓게 마련이다. 연목인 몸체와 견목인 이빨이 만나 서로 상극의 조화를 이룬다. 호미와 호미자루의 슴베도 그런 이치이다.
슴베는 자신의 모습을 숨김으로써 서로 상생의 관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즘처럼 까발리기를 좋아하는 세상에 숨기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아름다울 수가 있다. 그 대표적인 연장이 호미다.
아마존 닷컴에서 한국의 호미를 ‘ho-me’ fk 할 정도로 세계에서 최고의 정원기구로 칭찬하고 있다.. 유명한 정원사들이 호미의 소박한 구조와 기능적인 쓰임에 최고로 치고 있다. 하기야 기계문명이 최고를 달리는 미국이라 할지라도 정원의 소소한 일을 트랙터로 할 수 없지 않은가? 서양에는 별의별 농기구가 있지만 뿌리를 다치지 않고 옮겨 심거나 북돋아주어 식물을 정성스레 가꿀 수 있는 섬세한 도군느 달래마늘 향기나는 호미날일 것이다.
서양의 농기구나 목공기구는 대개 안에서 밖으로 미는 형이지만 한국의 호미나 대패는 밖에서 안으로 잡아당기는 형이다. 이것도 역사적인 숙명의식이 잠재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서양의 역사는 안에서 밖으로 뻗어나가 정벌과 식민지를 차지했지만 우리는 밖에서 안으로 잡아당겨 어떤 때는 우물 안 개구기 되는 경우도 많았다.
호미는 휘뚜루마뚜루 쓰는 농기구이다. 땅을 파는 삽질, 흙덩이를 부수는 괭이질, 흙을 고루 펴주는 레이기나 쇠스랑 역할 등이 땅을 숨쉬게 하는 세계적인 독특한 농기구라는 것이다. 호미는 한국인이 발명한 가장 작은 농기구다. 또 한국에만 있는 유일한 연장이기도 하다. 흙을 갈아 업고 잡초를 뽑고 모를 심고 북을 주고 구덩이를 파고 그 소소한 역할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주로 앉아서 일을 할 수 있어서 여자들에게 적합하였다. 바닷가에서 갯벌을 뒤져 조개까지 캘 수 있는 경이적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슴베의 쇠꼬챙이를 물어주는 나무는 주로 물푸레나무다. 나무의 재질이 단단하고 쇠처럼 강하고 단단하나 잘 휘어지는 성질이 있다. 쇠붙이와 나무는 서로 상극이다. 쇠는 나무를 뽀개고, 나무는 쇠를 녹이기도 한다. 불같은 사람, 나무 같은 사람이 서로 어울리는 것은 슴베 같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서로 서로 가변적 존재이기 때문에 나무는 쇠를 녹여서 다른 형체를 만들 수 있다. 쇠는 나무를 쪼개고 다듬고 다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 숱한 역항을 하는 것이 슴베이거나 슴베 같은 사람이다.
가정에서는 쇠 같은 아버지와 나무 같은 어머니의 서로 다른 관계다. 아마 슴베 같은 역할을 다 하는 이는 어머니일 것이다.
태극의 문양이 적(赤)과 청(靑)의 영원히 합칠 수 없는 상극이지만 그래도 음양의 조화가 있다.
세상에서 보아는 것이 다가 아니다. 빙산일각(氷山一角)이라 하듯이 보이지 않는 부분이 더 많을 것이다. 참된 인간사(人間事)란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아우르는 것이 참된 인간사일 것이다.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닐 때가 많으니 말이다. 나무가 저리 꿋꿋하게 세월을 견디며 숱한 세월을 서 있는 것도 보이지 않는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호미의 쇠나 나무 같이 보이는 사람도 많지만 슴베 같이 보이지 않지만 숨겨져 있는 사람도 많다. 이번 신종 코로나 19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하는 의사, 간호사, 자원봉사자들이 슴베 같은 사람들이다. 어찌 보면 세상을 묵묵히 이끄는 사람들은 슴베 같은 사람들이다.대개 재주는 곰이 부리고 얻는 것은 주인이 되는 경우가 흔하디흔하다.
우리 부부도 아마 호미와 호미자루처럼 상극이다. 나는 원숭이띠고, 집사람은 개띠다. 그러니 견원지간(犬猿之間)이다. 서로 못 잡아먹어서 으르렁거리는……. 성격이나 좋아하는 음식도 거의 반대인 경우가 허다하다. 나는 국물을 좋아한다면 집사람은 건더기를 좋아한다. 사사건건(事事件件) 엇박자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 있으면 금혼(金婚)이 다가온다. 사실 엇박자는 치기 어려운 박자이지만 잘만 치면 아름다운 소리로 변한다. 아마 슴베 같은 사랑을 한다면 말이다.